[특파원리포트] 한 번 만에 박살…中 농민공 ‘불량 안전모’ 동영상 파문

입력 2019.04.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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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부용 안전모 '박살' vs 관리자용 '멀쩡'"
·네티즌 "신분에 등급이 있는 게 아니다"
·中 정부 '일침'..그날로 "튼튼한 것으로 교환"
·"내가 구매한 것" 말 바꿨지만 논란 여전

출처 : 취앤징왕(全景網)

"오늘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것(노란색)은 우리 인부들의 안전모이고, 이것(빨간색)은 관리자의 안전모인데, 어느 것이 튼튼할까요?"
공사장을 배경으로 한 인부가 양손에 안전모를 들고 있다. 하나는 노란색, 다른 하나는 빨간색. 두 개를 서로 부딪치자, 인부들이 쓴다는 노란색 안전모는 커다란 구멍이 나면서 파편이 튀었다. 반면 관리자용이라는 빨간색 안전모는 조금 흠집이 났을 뿐 멀쩡했다.

중국 동영상 공유 앱 콰이쇼우(快手)에 '인부의 안전모'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더우(窦) 씨라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이 올린 이 영상은 지난 11일 게시된 뒤 일주일 만에 220만 번 넘게 재생되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일, 中 ‘콰이쇼우’에 올라온 안전모 실험 영상. 인부용 안전모만 부서졌다.지난 11일, 中 ‘콰이쇼우’에 올라온 안전모 실험 영상. 인부용 안전모만 부서졌다.

中 네티즌 "안전에는 등급 없어"..영상 게시자 "우리에게 당연한 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소 노래 부르는 모습 같은 일상을 촬영해 공유하기를 즐기는 농민공 더우 씨. 노란 안전모는 그에게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다. 11일 게시한 안전모 충격 비교 동영상도 일상처럼 올린 영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한 번 부딪치자마자 일방적으로 박살 나버린 노란 안전모의 품질에 중국 네티즌들이 폭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일주일 만에 만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농민공에게 안전모는 정말 중요한 것인데 너무하다" "안전모 색깔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나다니 사람의 안전에 어떻게 등급이 있단 말인가?" "정부가 조사에 나서야 한다" 등 상당수가 그를 지지하는 글들이었다.

이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해 매체들도 기사를 쏟아냈다. 더우 씨는 관차저왕(观察者网)과의 인터뷰에서 안전모를 직접 구매해서 다니기도 하지만 영상 속 노랑과 빨강 안전모는 공사장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동료들에게 지급되는 노란 안전모는 보통 6, 7위안(한화 약 1,000~1,200원)짜리로 어떻게 만져도 쉽게 부서지는 품질이라고 밝혔다. 더우 씨는 반문했다. "생각해 봐요. 윗사람들이 좋은 거 쓰고, 우리 같은 인부들에게 이런 거 주는 게 당연하잖아요."

"무허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안전모 썼는지만 확인"

중국 응급관리부에 따르면 작업장에서 역할에 따라 안전모의 색상이 나뉜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감리자, 빨간색과 파란색은 기술자용, 그리고 노란색이 인부들의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건설자재 도매시장을 현장 취재해 인부들이 쓰는 노란 안전모가 단 5위안(한화 850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도매업자는 "농민공들이 쓰는 안전모는 며칠 만에 새로 갈아야 해서, 5위안짜리가 질은 최악이어도 가장 잘 팔린다"고 했다. 안전모의 품질을 나타내는 라벨을 가짜로 만들어 무허가 공장들이 불량품 안전모를 대량 생산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공사업계 관계자는 "이윤을 남기려면, 항상 시공 공구나 인부들의 보호장구 같은 것들을 불량으로 충당해 원가를 절감한다"고 실토했다.

펑파이(澎湃新聞)가 만난 건설업계의 한 임원도 불량 안전모가 유통되는 사례가 확실히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상급 기관에서 안전모와 관련해 검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착용 여부나 착용 방식이 올바른지에 국한될 뿐 안전모의 품질이 어떤지는 검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국 도매시장의 가격대별 안전모, 왼쪽부터 5위안, 8위안, 10위안 (출처 : 신화통신)중국 도매시장의 가격대별 안전모, 왼쪽부터 5위안, 8위안, 10위안 (출처 : 신화통신)

中 정부 '일침'..."내가 산 것" 말 바꿨지만 논란 계속

급기야 중국 정부가 나섰다. 응급관리부는 17일 오전, 공식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근로자의 안전모조차 안전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안전한 생산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안전한 생산의 주체의 책임을 다함에서 결코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라며 안전모의 국가 표준 규정을 명시했다.

그러자 당장 그날 오후, 더우 씨는 매체에 "공사장 책임자가 인부들의 안전모를 교체해 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그는 논란이 된 영상 속 불량 안전모는 공사장에서 지급한 것이 아닌 자신이 산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는 220만 번 넘게 재생된 그 영상을 비롯해 안전모 실험과 관련한 영상 3개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 이에 대해 더우 씨는 "나는 일해야 한다"라고만 답했다.

네티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비난하기보다는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협박을 당한 것 아니냐"며 두둔하는 모양새다. 이제는 안전모를 누가 샀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이번 영상을 통해 불량 안전모 실태가 다시금 확인됐기 때문이다.

노란 안전모를 쓰는 인부들은 더우 씨처럼 대부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돈을 벌러 온 농민공들이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뒤에서 지탱해 왔지만,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단 한 번 충격에 쉽게 부서지는 '노란 안전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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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8 16:25:14
    특파원 리포트
·"인부용 안전모 '박살' vs 관리자용 '멀쩡'" <br />·네티즌 "신분에 등급이 있는 게 아니다" <br />·中 정부 '일침'..그날로 "튼튼한 것으로 교환" <br />·"내가 구매한 것" 말 바꿨지만 논란 여전
출처 : 취앤징왕(全景網)

"오늘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것(노란색)은 우리 인부들의 안전모이고, 이것(빨간색)은 관리자의 안전모인데, 어느 것이 튼튼할까요?"
공사장을 배경으로 한 인부가 양손에 안전모를 들고 있다. 하나는 노란색, 다른 하나는 빨간색. 두 개를 서로 부딪치자, 인부들이 쓴다는 노란색 안전모는 커다란 구멍이 나면서 파편이 튀었다. 반면 관리자용이라는 빨간색 안전모는 조금 흠집이 났을 뿐 멀쩡했다.

중국 동영상 공유 앱 콰이쇼우(快手)에 '인부의 안전모'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더우(窦) 씨라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이 올린 이 영상은 지난 11일 게시된 뒤 일주일 만에 220만 번 넘게 재생되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일, 中 ‘콰이쇼우’에 올라온 안전모 실험 영상. 인부용 안전모만 부서졌다.
中 네티즌 "안전에는 등급 없어"..영상 게시자 "우리에게 당연한 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소 노래 부르는 모습 같은 일상을 촬영해 공유하기를 즐기는 농민공 더우 씨. 노란 안전모는 그에게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다. 11일 게시한 안전모 충격 비교 동영상도 일상처럼 올린 영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한 번 부딪치자마자 일방적으로 박살 나버린 노란 안전모의 품질에 중국 네티즌들이 폭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일주일 만에 만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농민공에게 안전모는 정말 중요한 것인데 너무하다" "안전모 색깔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나다니 사람의 안전에 어떻게 등급이 있단 말인가?" "정부가 조사에 나서야 한다" 등 상당수가 그를 지지하는 글들이었다.

이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해 매체들도 기사를 쏟아냈다. 더우 씨는 관차저왕(观察者网)과의 인터뷰에서 안전모를 직접 구매해서 다니기도 하지만 영상 속 노랑과 빨강 안전모는 공사장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동료들에게 지급되는 노란 안전모는 보통 6, 7위안(한화 약 1,000~1,200원)짜리로 어떻게 만져도 쉽게 부서지는 품질이라고 밝혔다. 더우 씨는 반문했다. "생각해 봐요. 윗사람들이 좋은 거 쓰고, 우리 같은 인부들에게 이런 거 주는 게 당연하잖아요."

"무허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안전모 썼는지만 확인"

중국 응급관리부에 따르면 작업장에서 역할에 따라 안전모의 색상이 나뉜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감리자, 빨간색과 파란색은 기술자용, 그리고 노란색이 인부들의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건설자재 도매시장을 현장 취재해 인부들이 쓰는 노란 안전모가 단 5위안(한화 850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도매업자는 "농민공들이 쓰는 안전모는 며칠 만에 새로 갈아야 해서, 5위안짜리가 질은 최악이어도 가장 잘 팔린다"고 했다. 안전모의 품질을 나타내는 라벨을 가짜로 만들어 무허가 공장들이 불량품 안전모를 대량 생산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공사업계 관계자는 "이윤을 남기려면, 항상 시공 공구나 인부들의 보호장구 같은 것들을 불량으로 충당해 원가를 절감한다"고 실토했다.

펑파이(澎湃新聞)가 만난 건설업계의 한 임원도 불량 안전모가 유통되는 사례가 확실히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상급 기관에서 안전모와 관련해 검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착용 여부나 착용 방식이 올바른지에 국한될 뿐 안전모의 품질이 어떤지는 검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국 도매시장의 가격대별 안전모, 왼쪽부터 5위안, 8위안, 10위안 (출처 : 신화통신)
中 정부 '일침'..."내가 산 것" 말 바꿨지만 논란 계속

급기야 중국 정부가 나섰다. 응급관리부는 17일 오전, 공식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근로자의 안전모조차 안전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안전한 생산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안전한 생산의 주체의 책임을 다함에서 결코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라며 안전모의 국가 표준 규정을 명시했다.

그러자 당장 그날 오후, 더우 씨는 매체에 "공사장 책임자가 인부들의 안전모를 교체해 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그는 논란이 된 영상 속 불량 안전모는 공사장에서 지급한 것이 아닌 자신이 산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는 220만 번 넘게 재생된 그 영상을 비롯해 안전모 실험과 관련한 영상 3개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 이에 대해 더우 씨는 "나는 일해야 한다"라고만 답했다.

네티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비난하기보다는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협박을 당한 것 아니냐"며 두둔하는 모양새다. 이제는 안전모를 누가 샀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이번 영상을 통해 불량 안전모 실태가 다시금 확인됐기 때문이다.

노란 안전모를 쓰는 인부들은 더우 씨처럼 대부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돈을 벌러 온 농민공들이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뒤에서 지탱해 왔지만,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단 한 번 충격에 쉽게 부서지는 '노란 안전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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