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人災 ⑥] 국책연구기관이 “지진 위험 없다”…부실 평가로 사업 연장

입력 2019.04.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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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시리즈로 연재해왔고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무책임한 사업 관리 실태를 고발합니다.


"발파 등에 의한 진동에 비해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 위험은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100여년 간의 지열발전 역사에서 구조물에 피해를 준 지진 발생 사례가 없다."


한 국책연구기관이 민간 지열발전 사업자에게 한 자문 내용의 일부입니다. 규모 5.4의 지진에 놀라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포항 주민들에겐 안이함을 넘어 무책임해 보일텐데요, 해당 기관은 바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입니다.

문제는 지질연이 포항 지열 발전 사업에 참여하며, 주관사인 넥스지오 측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지질연이 포항 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문서 / 출처 :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문서 / 출처 :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실

국책연구기관, "지열발전, 지진 피해 위험 없다" 자문

포항 지열발전 사업 시작 9달 전인 2010년 3월, 지질연은 한 발전 회사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주도에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인데 지진 위험은 없는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KBS는 지질연이 당시 작성한 '지열발전소 건설에 따른 환경적 영향'이란 제목의 자문서를 입수했습니다. 지질연은 일단 지열발전은 "(땅속 암반 내) 균열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아주 미약한 진동 또는 미소지진을 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소지진의 크기는 보통 규모 1.0 내외로서 지표에서 사람이 느낄 수 없고", "발파 등에 의한 진동에 비해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 위험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강조합니다.

덧붙여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구조물에 대한 위험은 전혀 없다"고 단언합니다. 균열이나 벽면이 떨어지는 등의 건물 손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질연은 스위스 바젤에서 예외적으로 "규모 3.0 수준의 지진이 4회 발생"했지만 "이 경우에도 구조물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이 자문 1년 전쯤 스위스 정부는 바젤에서 일어난 규모 3.4 지진이 지열발전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고, 심지어 발전소를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제 학술지 논문에도 바젤 지진으로 2천 개 이상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발전 회사가 피해 보상으로 9백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00억 원)을 지급했다고도 돼 있습니다. 이같은 연구 결과에도 지질연은 피해 위험이 없다고 단정지었던 겁니다.

지질연의 결론은 "발전 회사가 지열발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추진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자문한 연구원들, 포항 지열발전 사업 참여

문제는 이 자문에 관여한 연구원들이 몇 달 지나, 포항 지열발전 사업에 그대로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 때문'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사업 주관사인 넥스지오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질 특성에 대한 조사나 개념 모델은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지질자원연구원의 자료에 기반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질연은 지진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은 포항 지열발전 사업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땅 속 물 주입 후 규모 2.0이상 지진이 수차례 발생했지만 사업단은 그때마다 잠시 실험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곧 물 주입은 재개됐습니다. 대규모 지진 가능성을 고려한 안전 조치나 근본적인 사업 재검토는 없었습니다.

4문장짜리 전문가 의견서…부실한 사업 평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또 다른 국가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입니다. 국가 R&D 과제를 공모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진행 과정을 단계별로 평가해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포항 지열발전 사업을 최일선에서 관리감독했던 기관입니다.

에기평은 넥스지오 측의 사업 기간 연장 요청을 4차례나 승인해줬습니다. 승인 거부는 없었습니다. 당초 사업계획서 상 2015년에 끝나야 했던 발전소 건설이 2017년 말까지 이어진 이유입니다. 포항 지진은 이 연장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취재팀은 에기평이 연장 승인 여부를 검토한 내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해봤습니다. 2017년 6월 에기평이 4번째 연장 요청을 승인해주면서 타당성 검증을 위해 받았다는 전문가 의견서입니다.

검토회의 의견서 / 출처 :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실검토회의 의견서 / 출처 :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실

4문장 분량인데, "천재지변에 의한 연구 연장의 건으로 연구 수행 능력 부족, 고의 지연 등과는 거리가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학문적 발전에는 오히려 반대적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선 지열발전으로 유발된 미소지진에 대해 '천재지변'이라고 규정한 것 자체가 정말 이 분야의 전문가 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게다가 지진 위험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지진이 되레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썼습니다.

2016년 12월 3번째 연장을 해줄 때도 전문가 2명의 의견서를 받았는데, 부실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 "해외 사업에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성과 확산을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 는 등 낙관적인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에기평의 평가 항목에 지진 모니터링 부분이 없었다면 잘못"이라면서 설사 없었다고 할지라도 "평가위원들이 지적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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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수록 人災 ⑥] 국책연구기관이 “지진 위험 없다”…부실 평가로 사업 연장
    • 입력 2019-04-20 07:00:48
    취재K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시리즈로 연재해왔고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무책임한 사업 관리 실태를 고발합니다.


"발파 등에 의한 진동에 비해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 위험은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100여년 간의 지열발전 역사에서 구조물에 피해를 준 지진 발생 사례가 없다."


한 국책연구기관이 민간 지열발전 사업자에게 한 자문 내용의 일부입니다. 규모 5.4의 지진에 놀라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포항 주민들에겐 안이함을 넘어 무책임해 보일텐데요, 해당 기관은 바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입니다.

문제는 지질연이 포항 지열 발전 사업에 참여하며, 주관사인 넥스지오 측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지질연이 포항 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문서 / 출처 :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실
국책연구기관, "지열발전, 지진 피해 위험 없다" 자문

포항 지열발전 사업 시작 9달 전인 2010년 3월, 지질연은 한 발전 회사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주도에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인데 지진 위험은 없는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KBS는 지질연이 당시 작성한 '지열발전소 건설에 따른 환경적 영향'이란 제목의 자문서를 입수했습니다. 지질연은 일단 지열발전은 "(땅속 암반 내) 균열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아주 미약한 진동 또는 미소지진을 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소지진의 크기는 보통 규모 1.0 내외로서 지표에서 사람이 느낄 수 없고", "발파 등에 의한 진동에 비해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 위험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강조합니다.

덧붙여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구조물에 대한 위험은 전혀 없다"고 단언합니다. 균열이나 벽면이 떨어지는 등의 건물 손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질연은 스위스 바젤에서 예외적으로 "규모 3.0 수준의 지진이 4회 발생"했지만 "이 경우에도 구조물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이 자문 1년 전쯤 스위스 정부는 바젤에서 일어난 규모 3.4 지진이 지열발전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고, 심지어 발전소를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제 학술지 논문에도 바젤 지진으로 2천 개 이상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발전 회사가 피해 보상으로 9백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00억 원)을 지급했다고도 돼 있습니다. 이같은 연구 결과에도 지질연은 피해 위험이 없다고 단정지었던 겁니다.

지질연의 결론은 "발전 회사가 지열발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추진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자문한 연구원들, 포항 지열발전 사업 참여

문제는 이 자문에 관여한 연구원들이 몇 달 지나, 포항 지열발전 사업에 그대로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 때문'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사업 주관사인 넥스지오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질 특성에 대한 조사나 개념 모델은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지질자원연구원의 자료에 기반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질연은 지진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은 포항 지열발전 사업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땅 속 물 주입 후 규모 2.0이상 지진이 수차례 발생했지만 사업단은 그때마다 잠시 실험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곧 물 주입은 재개됐습니다. 대규모 지진 가능성을 고려한 안전 조치나 근본적인 사업 재검토는 없었습니다.

4문장짜리 전문가 의견서…부실한 사업 평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또 다른 국가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입니다. 국가 R&D 과제를 공모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진행 과정을 단계별로 평가해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포항 지열발전 사업을 최일선에서 관리감독했던 기관입니다.

에기평은 넥스지오 측의 사업 기간 연장 요청을 4차례나 승인해줬습니다. 승인 거부는 없었습니다. 당초 사업계획서 상 2015년에 끝나야 했던 발전소 건설이 2017년 말까지 이어진 이유입니다. 포항 지진은 이 연장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취재팀은 에기평이 연장 승인 여부를 검토한 내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해봤습니다. 2017년 6월 에기평이 4번째 연장 요청을 승인해주면서 타당성 검증을 위해 받았다는 전문가 의견서입니다.

검토회의 의견서 / 출처 :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실
4문장 분량인데, "천재지변에 의한 연구 연장의 건으로 연구 수행 능력 부족, 고의 지연 등과는 거리가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학문적 발전에는 오히려 반대적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선 지열발전으로 유발된 미소지진에 대해 '천재지변'이라고 규정한 것 자체가 정말 이 분야의 전문가 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게다가 지진 위험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지진이 되레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썼습니다.

2016년 12월 3번째 연장을 해줄 때도 전문가 2명의 의견서를 받았는데, 부실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 "해외 사업에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성과 확산을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 는 등 낙관적인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에기평의 평가 항목에 지진 모니터링 부분이 없었다면 잘못"이라면서 설사 없었다고 할지라도 "평가위원들이 지적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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