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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한일 위안부 합의’,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입력 2019.04.20 (09:00) 수정 2019.04.20 (09:01) 취재후
1심서 공개 결정한 '한일 위안부 협상'...항소심은 "비공개"
항소심 "국가의 중대한 이익 해칠 우려"
[취재후] ‘한일 위안부 합의’,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는 송기호 변호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협상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며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항소심 재판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안부 합의 문건이) 정보공개법에서 정한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며 "일본 측 입장의 내용이 일본 측 동의 없이 외부에 노출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쌓아온 외교적 신뢰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양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외교관계의 긴장이 초래될 수 있다"며 1심 선고를 뒤집었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1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 재판부는 "비공개로 인하여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정보공개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며 "객관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일반적인 추론만으로 섣불리 비공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문건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요지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지원이라 할 수 있고, 일본 정부가 사죄를 하고 지원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비공개 한일 국장급 협의 전문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포함한 '국민의 알권리'에, 항소심 재판부는 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국가의 이익'에 초점을 둔 겁니다.


대법원에서도 항소심 인정되면 2045년에야 공개 가능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의 이익'.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 지 판단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문제임은 분명"하다고 판결문에 밝히며 깊은 고민의 흔적을 보였습니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15살 나이에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옥선 할머니는 항소심 재판 결과를 전해듣고 기자와 만나 "(문건을) 봐야 문제가 해결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어 "어린 나이에 끌려가서 칼맞고 매맞고 그랬는데 일본은 왜 사과를 안하나"며 "우리는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데, (위안부 합의 당시) 그것을 하지 않고 넘어가니까 진실을 알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이 우리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는 '강제 연행'을 인정했었는지, 인정하지 않았다면 왜 우리 정부는 합의를 맺어야 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단 겁니다. 그렇기에 위안부 할머니 측은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불복하고 상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여유롭지 않습니다. 올해 故 김복동, 곽예남 할머니가 눈을 감는 등 2017년 1심 승소 때만 해도 40분이었던 피해 할머니는 이제 21분 남았습니다. 대법원의 판결까지는 기약이 없는 상황. 혹시라도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 합의 시점 30년 뒤인 2045년에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성희 정의기억연대 인권연대처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때도 그랬듯 (한일 합의 과정서) 늘 배제되고 있다"며 "문제를 해결할 때 피해자중심주의 접근 원칙에 따라서, 피해자들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내용을 알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외교부는 2017년 자체 조사를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고 밝혔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역시 다음 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전의 노력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이전 정부가 맺은 합의가 명백히 잘못됐다고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국가 對 국가로 맺은 합의인 만큼 파기하지는 못하고, 화해치유재단만 해산했습니다. 사법부도 관련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이 상반된 판결을 내리는 등 고민이 큰 모양새입니다. 그러는 사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합의가 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던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아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한 번 잘못 맺은 합의가 이렇게 위안부 할머니는 물론 정부에도 큰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 [취재후] ‘한일 위안부 합의’,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 입력 2019.04.20 (09:00)
    • 수정 2019.04.20 (09:01)
    취재후
1심서 공개 결정한 '한일 위안부 협상'...항소심은 "비공개"
항소심 "국가의 중대한 이익 해칠 우려"
[취재후] ‘한일 위안부 합의’,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는 송기호 변호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협상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며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항소심 재판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안부 합의 문건이) 정보공개법에서 정한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며 "일본 측 입장의 내용이 일본 측 동의 없이 외부에 노출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쌓아온 외교적 신뢰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양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외교관계의 긴장이 초래될 수 있다"며 1심 선고를 뒤집었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1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 재판부는 "비공개로 인하여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정보공개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며 "객관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일반적인 추론만으로 섣불리 비공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문건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요지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지원이라 할 수 있고, 일본 정부가 사죄를 하고 지원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비공개 한일 국장급 협의 전문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포함한 '국민의 알권리'에, 항소심 재판부는 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국가의 이익'에 초점을 둔 겁니다.


대법원에서도 항소심 인정되면 2045년에야 공개 가능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의 이익'.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 지 판단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문제임은 분명"하다고 판결문에 밝히며 깊은 고민의 흔적을 보였습니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15살 나이에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옥선 할머니는 항소심 재판 결과를 전해듣고 기자와 만나 "(문건을) 봐야 문제가 해결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어 "어린 나이에 끌려가서 칼맞고 매맞고 그랬는데 일본은 왜 사과를 안하나"며 "우리는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데, (위안부 합의 당시) 그것을 하지 않고 넘어가니까 진실을 알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이 우리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는 '강제 연행'을 인정했었는지, 인정하지 않았다면 왜 우리 정부는 합의를 맺어야 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단 겁니다. 그렇기에 위안부 할머니 측은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불복하고 상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여유롭지 않습니다. 올해 故 김복동, 곽예남 할머니가 눈을 감는 등 2017년 1심 승소 때만 해도 40분이었던 피해 할머니는 이제 21분 남았습니다. 대법원의 판결까지는 기약이 없는 상황. 혹시라도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 합의 시점 30년 뒤인 2045년에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성희 정의기억연대 인권연대처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때도 그랬듯 (한일 합의 과정서) 늘 배제되고 있다"며 "문제를 해결할 때 피해자중심주의 접근 원칙에 따라서, 피해자들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내용을 알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잘못 끼운 첫 단추에 사법부도 외교부도 고민

외교부는 2017년 자체 조사를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고 밝혔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역시 다음 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전의 노력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이전 정부가 맺은 합의가 명백히 잘못됐다고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국가 對 국가로 맺은 합의인 만큼 파기하지는 못하고, 화해치유재단만 해산했습니다. 사법부도 관련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이 상반된 판결을 내리는 등 고민이 큰 모양새입니다. 그러는 사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합의가 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던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아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한 번 잘못 맺은 합의가 이렇게 위안부 할머니는 물론 정부에도 큰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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