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화웨이 보안논란…우리는 안전할까?

입력 2019.04.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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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바오안’(寶安)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선전의 중북부에 위치한 화웨이(HUAWEI) 본사에 다다른다. 본사에 다가 갈수록 고속도로 양 옆에 ‘화웨이’(華爲)라는 글씨가 적힌 교통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단순한 기업 명칭이 아닌 한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이 된지 오래다. 원래 화웨이 본사가 있는 ‘반톈’(坂田)지역은 우리나라 민속 가면극인 사자춤 비슷한 중국 전통의 ‘기린춤’ 고향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화웨이가 이 지역을 대표할 만큼 상징성을 갖게 됐다. 동네 입구에 세워진 화웨이(華爲)라고 쓰인 표지석은 이를 대변하듯 거대하다. 본사는 여의도 면적(290만㎡)에 맞먹는 210만㎡에 이른다. 규모도 규모지만 보안도 삼엄하다. 사전 등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또 길 곳곳에 CCTV가 설치돼 누가 다니는지, 어떤 차량이 통행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이곳엔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실이 있는 건물과 연구동, 생산시설, 강의실을 갖춘 건물이 블록별로 구성돼 있다.


원래 30여 년 전인 1987년 창업당시, 화웨이는 현재의 본사로부터 차로 1시간 정도 남쪽에 있는 ‘난여우’(南油) 공업단지 인근 아파트에서 창업을 했다. 지금은 의류 봉제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당시 공병 말단 간부였던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감군(減軍) 방침에 따라 군복을 벗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다. 런정페이는 1968년부터 14년간을 인민해방군에서 복무를 하고 44살에 화웨이를 창업했으니 불혹(不惑)을 한참 넘긴 나이에 단돈 2만 천 위안(약 3백 60만 원)으로 창업을 한 것이다. 애국심으로 가득 찬 군인 때를 벗지 못해서 일까. 화웨이(華爲)라는 명칭은 “심계중화(心系中華), 유소작위(有所作爲)”, 즉 중화를 품고 할 바를 적극적으로 이룬다는 뜻에서 마지막 두 글자를 따 화웨이(華爲), 즉 중국 간체로 ‘华为’가 된 것이다. 런정페이는 군 경력과 관련해 정보장교, 혹은 통신장교 출신이라는 기사가 가끔 눈에 띄지만 사실은 엔지니어, 즉 우리말로 공병 출신에 가깝다. 실제로 런정페이는 당 기관지인 문회보 1977년 10월 14일자에 중국 최초로 공기압력 저울을 개발했다는 보도가 실명과 함께 실린 적이 있다. 또 런정페이는 1963년 지금의 충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창업 당시 런정페이는 홍콩에서 소형 전화 교환기 PBX(Private Branch Exchange)를 떼다 파는 대리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중국내 가정에 막 유선전화가 보급되면서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에 대박을 쳤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런정페이는 2년 뒤 100회선짜리 전화 교환기를 자체 개발했고 나중에 1,000회선짜리 교환기도 만들어냈다. 이익금은 모두 또다시 연구 개발비로 투입했다. 당시 기술력이 떨어진 화웨이는 주로 대부분 농촌이나 일부 호텔 등에 판매 역량을 집중했다. 인근 홍콩을 통해 들어온 세계적인 외국 제품이 수요가 많은 도시를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다. 화웨이 천리팡(陈黎芳) 부회장은 ‘시사기획 창’과의 인터뷰에서 창업당시 화웨이는 가진 것 없이 꿈만 가득한 창업자 런정페이 외에는 모든 게 어려웠다고 말한다. 화웨이 직원들은 당시 화웨이를 ‘3무(無) 기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3무’란 자금도 없고, 기술도 없고, 배경도 없다는 그야말로 맨주먹 ‘바닥’에서 창업했다는 뜻이다. 창업자금이 300만 원에 불과했고 공병 출신이니 기술이 전무했고 당시 중국 정부는 규모가 큰 국영기업 위주로 지원해 줬기 때문에 배경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화웨이 본사를 방문하면 화웨이의 오늘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가장 먼저 방문객을 인도한다. 이곳에는 '5G is On' 이라는 화웨이의 슬로건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마치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봤던 화웨이 부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곳 전시관을 돌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LG 유플러스가 화웨이 5G장비를 설치하는 영상을 스크린에 띄워 놓은 것이다. 이 곳 안내자는 LG 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쓰는 이유를 현재 5G 시장에서 엔드투엔드(End to End) 방식으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에 쥐는 단말기에서부터 통신 장비 네트워크, 클라우드 장비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쟁업체 보다 최소 1년 6개월 내지 2년 정도 앞선 기술이라고 자랑한다. 궈핑(郭平) 화웨이 순환 회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019’ 개막식 하루 전날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는 전세계 5G 영역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경쟁사보다 1년은 앞서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화웨이는 순환 회장직을 두고 있다.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가지만 화웨이는 이 또한 조직 관리에서의 혁신이라고 부른다. 현재 화웨이 직원 수는 18만 명이 넘고, 17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9만 7천 명이 직원 주주다. 그러니까 절반 정도가 주주다. 이들은 직원이지만 주주처럼 배당을 받는다. 입사한지 3-4년이 흘러야 주주 직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15명이 주주대표로 선출되고 주주대표 115명 중에서 다시 17명의 이사를 뽑는다. 현재 17명의 이사는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와 그의 딸 멍완저우(孟晚舟)를 비롯해 이사장인 량화(梁华), 순환 회장인 궈핑(郭平), 쉬즈쥔(徐直军), 후허우쿤(胡厚昆) 3명 등이 포함돼 있다. 화웨이는 순환 회장 3명이 6개월씩 회사를 이끌어 가는 구조다. 현재는 궈핑이 회장을 맡고 있다. 화웨이는 이 같은 순환회장을 두는 이유를 개인이 회사를 이끄는 것이 아닌 집단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 곧 집단 지성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순환회장은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회사의 중요 업무 사항이나 정책 발표는 반드시 논의를 거쳐야 한다. 현재 런정페이 회장은 지분이 1.14%밖에 안 되지만 최대 주주다. 그래서 주요 정책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있다. 지난달 초 궈핑 회장이 선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 제품의 사용을 금지한 미국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한 결정이나 100억 위원(약 1조7천억 원)을 들여 유럽풍으로 꾸민 둥관의 화웨이 ‘R&D 캠퍼스’인 옥스혼 캠퍼스 역시 런정페이 회장의 결정이다.


KBS와 인터뷰에 나선 천리팡(陈黎芳) 화웨이 부회장이자 이사는 1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대답했지만 유독 목소리가 약간 잠기는 질문이 있었다. 눈가에 이슬마저 맺히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멍완저우(孟晚舟) 관련이다. 천 부회장은 캐나다에서 멍완저우가 체포되기 전까지 한 건물에서 일했다며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천 부회장은 멍완저우 보다 2년 뒤인 1995년 화웨이에 입사했다. 천 부회장은 같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4명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녀는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했다며 지금 많이 괴로울 거라고 말했다. 멍완저우의 체포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개 기업의 문제일 수 있는데 중국 정부가 너무 과민하게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천 부회장은 절대 특수 관계가 아니라며 화웨이는 그저 법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는 중국 기업이고 자국 국민을 보호하는 건 중국 정부의 역할이라고 못 박는다.


지난 3일,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5G 상용국’이 됐다. 하지만 엘지 유플러스가 화웨이 5G 통신 장비를 사용하면서 보안 논란은 여전하다.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는 우리는 과연 안전할까? 자세한 내용은 4월 23일(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화웨이, 우리는 안전한가?'에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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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1 0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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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바오안’(寶安)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선전의 중북부에 위치한 화웨이(HUAWEI) 본사에 다다른다. 본사에 다가 갈수록 고속도로 양 옆에 ‘화웨이’(華爲)라는 글씨가 적힌 교통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단순한 기업 명칭이 아닌 한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이 된지 오래다. 원래 화웨이 본사가 있는 ‘반톈’(坂田)지역은 우리나라 민속 가면극인 사자춤 비슷한 중국 전통의 ‘기린춤’ 고향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화웨이가 이 지역을 대표할 만큼 상징성을 갖게 됐다. 동네 입구에 세워진 화웨이(華爲)라고 쓰인 표지석은 이를 대변하듯 거대하다. 본사는 여의도 면적(290만㎡)에 맞먹는 210만㎡에 이른다. 규모도 규모지만 보안도 삼엄하다. 사전 등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또 길 곳곳에 CCTV가 설치돼 누가 다니는지, 어떤 차량이 통행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이곳엔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실이 있는 건물과 연구동, 생산시설, 강의실을 갖춘 건물이 블록별로 구성돼 있다.


원래 30여 년 전인 1987년 창업당시, 화웨이는 현재의 본사로부터 차로 1시간 정도 남쪽에 있는 ‘난여우’(南油) 공업단지 인근 아파트에서 창업을 했다. 지금은 의류 봉제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당시 공병 말단 간부였던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감군(減軍) 방침에 따라 군복을 벗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다. 런정페이는 1968년부터 14년간을 인민해방군에서 복무를 하고 44살에 화웨이를 창업했으니 불혹(不惑)을 한참 넘긴 나이에 단돈 2만 천 위안(약 3백 60만 원)으로 창업을 한 것이다. 애국심으로 가득 찬 군인 때를 벗지 못해서 일까. 화웨이(華爲)라는 명칭은 “심계중화(心系中華), 유소작위(有所作爲)”, 즉 중화를 품고 할 바를 적극적으로 이룬다는 뜻에서 마지막 두 글자를 따 화웨이(華爲), 즉 중국 간체로 ‘华为’가 된 것이다. 런정페이는 군 경력과 관련해 정보장교, 혹은 통신장교 출신이라는 기사가 가끔 눈에 띄지만 사실은 엔지니어, 즉 우리말로 공병 출신에 가깝다. 실제로 런정페이는 당 기관지인 문회보 1977년 10월 14일자에 중국 최초로 공기압력 저울을 개발했다는 보도가 실명과 함께 실린 적이 있다. 또 런정페이는 1963년 지금의 충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창업 당시 런정페이는 홍콩에서 소형 전화 교환기 PBX(Private Branch Exchange)를 떼다 파는 대리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중국내 가정에 막 유선전화가 보급되면서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에 대박을 쳤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런정페이는 2년 뒤 100회선짜리 전화 교환기를 자체 개발했고 나중에 1,000회선짜리 교환기도 만들어냈다. 이익금은 모두 또다시 연구 개발비로 투입했다. 당시 기술력이 떨어진 화웨이는 주로 대부분 농촌이나 일부 호텔 등에 판매 역량을 집중했다. 인근 홍콩을 통해 들어온 세계적인 외국 제품이 수요가 많은 도시를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다. 화웨이 천리팡(陈黎芳) 부회장은 ‘시사기획 창’과의 인터뷰에서 창업당시 화웨이는 가진 것 없이 꿈만 가득한 창업자 런정페이 외에는 모든 게 어려웠다고 말한다. 화웨이 직원들은 당시 화웨이를 ‘3무(無) 기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3무’란 자금도 없고, 기술도 없고, 배경도 없다는 그야말로 맨주먹 ‘바닥’에서 창업했다는 뜻이다. 창업자금이 300만 원에 불과했고 공병 출신이니 기술이 전무했고 당시 중국 정부는 규모가 큰 국영기업 위주로 지원해 줬기 때문에 배경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화웨이 본사를 방문하면 화웨이의 오늘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가장 먼저 방문객을 인도한다. 이곳에는 '5G is On' 이라는 화웨이의 슬로건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마치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봤던 화웨이 부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곳 전시관을 돌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LG 유플러스가 화웨이 5G장비를 설치하는 영상을 스크린에 띄워 놓은 것이다. 이 곳 안내자는 LG 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쓰는 이유를 현재 5G 시장에서 엔드투엔드(End to End) 방식으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에 쥐는 단말기에서부터 통신 장비 네트워크, 클라우드 장비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쟁업체 보다 최소 1년 6개월 내지 2년 정도 앞선 기술이라고 자랑한다. 궈핑(郭平) 화웨이 순환 회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019’ 개막식 하루 전날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는 전세계 5G 영역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경쟁사보다 1년은 앞서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화웨이는 순환 회장직을 두고 있다.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가지만 화웨이는 이 또한 조직 관리에서의 혁신이라고 부른다. 현재 화웨이 직원 수는 18만 명이 넘고, 17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9만 7천 명이 직원 주주다. 그러니까 절반 정도가 주주다. 이들은 직원이지만 주주처럼 배당을 받는다. 입사한지 3-4년이 흘러야 주주 직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15명이 주주대표로 선출되고 주주대표 115명 중에서 다시 17명의 이사를 뽑는다. 현재 17명의 이사는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와 그의 딸 멍완저우(孟晚舟)를 비롯해 이사장인 량화(梁华), 순환 회장인 궈핑(郭平), 쉬즈쥔(徐直军), 후허우쿤(胡厚昆) 3명 등이 포함돼 있다. 화웨이는 순환 회장 3명이 6개월씩 회사를 이끌어 가는 구조다. 현재는 궈핑이 회장을 맡고 있다. 화웨이는 이 같은 순환회장을 두는 이유를 개인이 회사를 이끄는 것이 아닌 집단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 곧 집단 지성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순환회장은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회사의 중요 업무 사항이나 정책 발표는 반드시 논의를 거쳐야 한다. 현재 런정페이 회장은 지분이 1.14%밖에 안 되지만 최대 주주다. 그래서 주요 정책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있다. 지난달 초 궈핑 회장이 선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 제품의 사용을 금지한 미국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한 결정이나 100억 위원(약 1조7천억 원)을 들여 유럽풍으로 꾸민 둥관의 화웨이 ‘R&D 캠퍼스’인 옥스혼 캠퍼스 역시 런정페이 회장의 결정이다.


KBS와 인터뷰에 나선 천리팡(陈黎芳) 화웨이 부회장이자 이사는 1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대답했지만 유독 목소리가 약간 잠기는 질문이 있었다. 눈가에 이슬마저 맺히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멍완저우(孟晚舟) 관련이다. 천 부회장은 캐나다에서 멍완저우가 체포되기 전까지 한 건물에서 일했다며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천 부회장은 멍완저우 보다 2년 뒤인 1995년 화웨이에 입사했다. 천 부회장은 같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4명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녀는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했다며 지금 많이 괴로울 거라고 말했다. 멍완저우의 체포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개 기업의 문제일 수 있는데 중국 정부가 너무 과민하게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천 부회장은 절대 특수 관계가 아니라며 화웨이는 그저 법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는 중국 기업이고 자국 국민을 보호하는 건 중국 정부의 역할이라고 못 박는다.


지난 3일,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5G 상용국’이 됐다. 하지만 엘지 유플러스가 화웨이 5G 통신 장비를 사용하면서 보안 논란은 여전하다.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는 우리는 과연 안전할까? 자세한 내용은 4월 23일(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화웨이, 우리는 안전한가?'에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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