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공안도 못 막은 성난 학부모, 놀란 중국정부

입력 2019.04.21 (07:01) 수정 2019.04.2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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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까지 이어진 시위.. 최루가스로도 진압 안 돼

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공공장소나 도심 도로에서 시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달 13일 중국 쓰촨성 성도 청뚜에서 보기 드문 이런 시위가 발생했다. 한낮 사람들이 청뚜의 한 사립학교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현수막도 내걸었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학교 앞 대로까지 점거했다. 공안은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현행범으로 12명을 체포했다. 그런데도 시위대의 기세가 꺾이질 않는다. 시위는 중국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그날 밤 자정 넘게 이어졌다. 결국, 공안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공권력 통제가 철저한 중국에서 공안도 막지 못한 시위.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사립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아이들이 달린 일이니 아마도 무서울 게 없었던 모양이다. 시위는 학교 측이 나서 해명을 하고, 청뚜시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면서 진정됐다. 성난 학부모들! 그들이 화난 이유는 뭘까?

학부모들이 발견한 청뚜 OO 사립학교 불량 급식재료학부모들이 발견한 청뚜 OO 사립학교 불량 급식재료

곰팡이 과일에 썩은 고기 .. 엉망인 급식재료

발단은 아이들이 설사하면서 시작됐다. 한두 명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것이 부모들 사이에 전해졌다. 증세가 심해 혈변을 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왜 그런지는 그날 시위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교에 들이닥친 학부모들은 급식 식자재 보관창고를 뒤졌고, 상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급식재료들을 무더기로 찾아냈다. 유통기한을 넘긴 것은 예사고, 곰팡이가 슬거나 썩고 변질해 폐기해야 급식재료가 수두룩했다. 학부모들은 이런 급식재료를 찾아내 학교 당국자에게 따졌다.


이 학교는 중국의 유명 사립학교다. 초중고 과정은 물론 국제반도 운영한다. 재학생이 5,700여 명, 교직원도 800여 명에 이른다. 학교 홈페이지에 '중국 10대 사립학교', '전국 기초교육 100대 시범학교'라는 거를 자랑스럽게 올려놓을 정도다. 한 달 급식비도 600위안, 우리 돈 10만 원으로 중국 공립학교 급식비 보다 두 배 비싸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던 거다. 최루가스까지 쏘며 진압하던 청뚜 시 당국도 납작 엎드렸다. 학부모들에게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약속했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한 학부모 12명도 석방했다. 학교 급식 관리자 8명에 대한 조사와 압수한 급식재료에 대한 감식 결과도 곧바로 공개했다.

그런데 사실 중국 유치원과 학교에서 이런 불량 급식 사고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중국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검색해봐도 2018년 9월 장쑤성 완안현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신고로 불량 급식이 적발됐다. 25명의 아이가 식사 뒤 위염과 복통 증세를 보였다. 안후이성의 한 유치원에서도 상한 닭 다리를 먹은 아이들이 집단 발병했고, 10월에는 상하이 한 국제학교에서 상한 급식재료가 주방에서 발견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학교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2019.4.1베이징의 한 학교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2019.4.1

"교장은 반드시 학생과 같이 밥 먹어라."

그때 마다, 성 정부 차원에서, 또 국무원 교육감독위원회가 각 성 책임자를 불러 모아 대책회의까지 열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학교 식품안전 및 영양건강 관리규정'을 대폭 강화해 개정해 버렸다. 늦출 새도 없이 지난 1일 자로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핵심은 학교 식품 안전 책임은 학교장에게 있고, 불량 급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에게 형사적, 행정적 책임을 묻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학교 책임자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했다. 학교장은 점심 식사 때 아예 밖에 나가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관영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불량 급식 사고로 악화한 민심에다 청뚜 학부모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중국 정부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후난성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 죽에 독극물을 풀어 23명이 중독됐다. 2019.4.2후난성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 죽에 독극물을 풀어 23명이 중독됐다. 2019.4.2

위생 강화도 헛일…. 이번엔 유치원에서 독극물

그런데 아뿔싸 또 일이 터졌다. 그것도 강화된 관리규정을 시행한 지 단 이틀만이다. 더구나 이번엔 독극물이었다. 후난성의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 아침 식사에 독극물을 타서 23명이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 아이들 음식에 탄 독극물은 아질산염으로 알려졌다. 식품 보존제로 쓰이는 물질이다. 많이 섭취하면 인체에서 단백질과 결합해 독성물질 나이트로소아민으로 변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유치원 아이 중 7명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중국 매체는 보도했다. 범행동기는 동료 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충칭에서 이른바 '两不愁 三保障(먹는 것과 입는 것에 걱정이 없고, 교육과 의료, 주거를 보장한다)' 탈빈곤 정책 탐방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15일 한 시골 학교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학교 식당과 주방을 직접 둘러보며, 아이들의 식비 지원과 식품 안전, 위생에 빈틈없이 할 것을 당부했다. 아이들 먹거리를 두고 터져 나오는 학부모들의 원성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우리도 각급 학교에 급식이 시행되면서 독극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량 급식재료 파동을 심심찮게 겪었다. 하지만 촘촘한 감시 체계를 갖추고, 학교 당국과 조리사 등의 인식이 바뀌면서 지금은 거의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중국 거리를 지나다 보면 '文明(문명)'이라는 글자를 자주 보게 된다. 좋은 급식재료로 맛있게 아이들을 먹이는 거, 이것도 중국이 따라가고 싶은 문명일 것이다. 빠르게 성장한 경제만큼, 중국에 문명도 빨리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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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공안도 못 막은 성난 학부모, 놀란 중국정부
    • 입력 2019-04-21 07:01:14
    • 수정2019-04-21 22:07:31
    특파원 리포트

한밤중까지 이어진 시위.. 최루가스로도 진압 안 돼

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공공장소나 도심 도로에서 시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달 13일 중국 쓰촨성 성도 청뚜에서 보기 드문 이런 시위가 발생했다. 한낮 사람들이 청뚜의 한 사립학교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현수막도 내걸었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학교 앞 대로까지 점거했다. 공안은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현행범으로 12명을 체포했다. 그런데도 시위대의 기세가 꺾이질 않는다. 시위는 중국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그날 밤 자정 넘게 이어졌다. 결국, 공안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공권력 통제가 철저한 중국에서 공안도 막지 못한 시위.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사립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아이들이 달린 일이니 아마도 무서울 게 없었던 모양이다. 시위는 학교 측이 나서 해명을 하고, 청뚜시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면서 진정됐다. 성난 학부모들! 그들이 화난 이유는 뭘까?

학부모들이 발견한 청뚜 OO 사립학교 불량 급식재료
곰팡이 과일에 썩은 고기 .. 엉망인 급식재료

발단은 아이들이 설사하면서 시작됐다. 한두 명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것이 부모들 사이에 전해졌다. 증세가 심해 혈변을 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왜 그런지는 그날 시위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교에 들이닥친 학부모들은 급식 식자재 보관창고를 뒤졌고, 상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급식재료들을 무더기로 찾아냈다. 유통기한을 넘긴 것은 예사고, 곰팡이가 슬거나 썩고 변질해 폐기해야 급식재료가 수두룩했다. 학부모들은 이런 급식재료를 찾아내 학교 당국자에게 따졌다.


이 학교는 중국의 유명 사립학교다. 초중고 과정은 물론 국제반도 운영한다. 재학생이 5,700여 명, 교직원도 800여 명에 이른다. 학교 홈페이지에 '중국 10대 사립학교', '전국 기초교육 100대 시범학교'라는 거를 자랑스럽게 올려놓을 정도다. 한 달 급식비도 600위안, 우리 돈 10만 원으로 중국 공립학교 급식비 보다 두 배 비싸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던 거다. 최루가스까지 쏘며 진압하던 청뚜 시 당국도 납작 엎드렸다. 학부모들에게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약속했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한 학부모 12명도 석방했다. 학교 급식 관리자 8명에 대한 조사와 압수한 급식재료에 대한 감식 결과도 곧바로 공개했다.

그런데 사실 중국 유치원과 학교에서 이런 불량 급식 사고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중국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검색해봐도 2018년 9월 장쑤성 완안현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신고로 불량 급식이 적발됐다. 25명의 아이가 식사 뒤 위염과 복통 증세를 보였다. 안후이성의 한 유치원에서도 상한 닭 다리를 먹은 아이들이 집단 발병했고, 10월에는 상하이 한 국제학교에서 상한 급식재료가 주방에서 발견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학교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2019.4.1
"교장은 반드시 학생과 같이 밥 먹어라."

그때 마다, 성 정부 차원에서, 또 국무원 교육감독위원회가 각 성 책임자를 불러 모아 대책회의까지 열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학교 식품안전 및 영양건강 관리규정'을 대폭 강화해 개정해 버렸다. 늦출 새도 없이 지난 1일 자로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핵심은 학교 식품 안전 책임은 학교장에게 있고, 불량 급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에게 형사적, 행정적 책임을 묻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학교 책임자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했다. 학교장은 점심 식사 때 아예 밖에 나가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관영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불량 급식 사고로 악화한 민심에다 청뚜 학부모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중국 정부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후난성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 죽에 독극물을 풀어 23명이 중독됐다. 2019.4.2
위생 강화도 헛일…. 이번엔 유치원에서 독극물

그런데 아뿔싸 또 일이 터졌다. 그것도 강화된 관리규정을 시행한 지 단 이틀만이다. 더구나 이번엔 독극물이었다. 후난성의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 아침 식사에 독극물을 타서 23명이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 아이들 음식에 탄 독극물은 아질산염으로 알려졌다. 식품 보존제로 쓰이는 물질이다. 많이 섭취하면 인체에서 단백질과 결합해 독성물질 나이트로소아민으로 변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유치원 아이 중 7명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중국 매체는 보도했다. 범행동기는 동료 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충칭에서 이른바 '两不愁 三保障(먹는 것과 입는 것에 걱정이 없고, 교육과 의료, 주거를 보장한다)' 탈빈곤 정책 탐방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15일 한 시골 학교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학교 식당과 주방을 직접 둘러보며, 아이들의 식비 지원과 식품 안전, 위생에 빈틈없이 할 것을 당부했다. 아이들 먹거리를 두고 터져 나오는 학부모들의 원성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우리도 각급 학교에 급식이 시행되면서 독극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량 급식재료 파동을 심심찮게 겪었다. 하지만 촘촘한 감시 체계를 갖추고, 학교 당국과 조리사 등의 인식이 바뀌면서 지금은 거의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중국 거리를 지나다 보면 '文明(문명)'이라는 글자를 자주 보게 된다. 좋은 급식재료로 맛있게 아이들을 먹이는 거, 이것도 중국이 따라가고 싶은 문명일 것이다. 빠르게 성장한 경제만큼, 중국에 문명도 빨리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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