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이언주의 변신은 어디까지?

입력 2019.04.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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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 아이콘’으로 정치 무대 등장

19대 총선 선거 운동 첫날인 지난 2012년 3월 29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수도권 첫 지원 유세를 펼쳤습니다.

당 대표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무섭게 두 팔 걷어붙이고 지원에 나선 후보, 바로 광명을 선거구에 출마한 이언주 후보였습니다.

한 대표는 이언주 후보를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 이언주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젊고, 패기 있고, 실물 경제를 잘 아는 CEO이자 변호사입니다. 젊은 여성지도자 이언주가 광명의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합니다. 무너진 서민 경제를 살린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미래의 지도자, 광명의 경제를 살릴 사람, 기호 2번 민주통합당 이언주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주기 바랍니다." - 2012.3.29 광명역 지원 유세

그리고 총선 결과, 이언주 후보는 3선 중진 전재희 의원을 꺾고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언주 의원의 당선 일성도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제가 항상, 평소에 경제 민주화를 외쳐왔는데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고 또 이 지역 주민들과도 소통하는 정치인, 지역 현안에 대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그런 열린 정치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2012.4.12 당선 소감 인터뷰


‘운동권보다 더 운동권 같았던’ 민주당 시절

기업인 출신 여성 변호사, 3선 중진을 꺾고 등장한 정치 신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이 의원은 386 운동권과 노동·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주류인 민주당에선 꽤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의원 임기 초반부터 원내대변인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주요 당직을 맡았습니다.

민주당 당직자는 "이 의원의 이질적 정체성이 당시에는 오히려 참신성과 희소성을 돋보이게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당시 이 의원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최근 "이 의원이 운동권을 욕하는데, 내가 원내대표할 때 이 의원은 우리 당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장 세게 이야기한 좌파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극복할 수 없었던 ‘비주류의 한계’…탈당으로 이어져

그렇다면 이 의원의 변신은 언제부터, 왜 시작된 걸까요.

민주당 인사들은 대체로 2015년 말, 2016년 20대 총선 즈음이 변곡점이 됐다고 얘기합니다.

2015년 당시 민주당은 친문, 비문계간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당시 이언주 의원은 비문계에 가까왔습니다.

문재인 대표 체제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이 의원은 빠른 속도로 김종인 위원장과 가까워졌습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의 핵심 보직인 조직본부장에 선임됐고, 김종인 전 위원장이 소속된 의원 연구단체 '경제민주화정책포럼 조화로운 사회'의 대표 의원도 맡았습니다.

여세를 몰아 그해 8월엔 경기도당 위원장에 출마했지만,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하다 친문계에 의해 정치적 꿈이 한번 접힌 셈인데, 이 의원은 여기서 큰 소외감과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신이 느꼈던 소외감을 이렇게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에 있을 때, 친노도, 친문도, 참여정부에서 일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결코 지도부가 될 수는 없다, 당권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우리끼리 했었다. 극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 2017. 6.13 국민의당 의원-지역위원장 워크숍


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거침 없는 우클릭

민주당에서 5년을 머물렀던 이언주 의원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에서 2년을 보내며 거침 없는 우클릭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지난해 7월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시장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기업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시장경제살리기연대'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시절 '경제 민주화'의 선봉장으로 법인세율 인상과 소득 분배 개선을 주장해온 이 의원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한다며 '시장 경제 지킴이'로 180도 변신한 겁니다.

한달 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 의원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이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천재였다, 이런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발언한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단숨에 유튜브 구독자 19만 명을 모으며 '보수의 잔다르크'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이런 이 의원이 2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좌파 운동권 정부가 들어선 이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문재인 정권의 광기 어린 좌파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단기필마로나마 신보수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의원은 그러나 한국당 입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입당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면서 "한국당이 변화되고 보수 세력을 위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때 그때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우클릭에 우클릭을 거듭해온 7년의 정치 역정, 이 의원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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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이언주의 변신은 어디까지?
    • 입력 2019-04-23 20:12:13
    취재K
‘경제 민주화 아이콘’으로 정치 무대 등장

19대 총선 선거 운동 첫날인 지난 2012년 3월 29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수도권 첫 지원 유세를 펼쳤습니다.

당 대표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무섭게 두 팔 걷어붙이고 지원에 나선 후보, 바로 광명을 선거구에 출마한 이언주 후보였습니다.

한 대표는 이언주 후보를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 이언주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젊고, 패기 있고, 실물 경제를 잘 아는 CEO이자 변호사입니다. 젊은 여성지도자 이언주가 광명의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합니다. 무너진 서민 경제를 살린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미래의 지도자, 광명의 경제를 살릴 사람, 기호 2번 민주통합당 이언주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주기 바랍니다." - 2012.3.29 광명역 지원 유세

그리고 총선 결과, 이언주 후보는 3선 중진 전재희 의원을 꺾고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언주 의원의 당선 일성도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제가 항상, 평소에 경제 민주화를 외쳐왔는데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고 또 이 지역 주민들과도 소통하는 정치인, 지역 현안에 대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그런 열린 정치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2012.4.12 당선 소감 인터뷰


‘운동권보다 더 운동권 같았던’ 민주당 시절

기업인 출신 여성 변호사, 3선 중진을 꺾고 등장한 정치 신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이 의원은 386 운동권과 노동·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주류인 민주당에선 꽤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의원 임기 초반부터 원내대변인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주요 당직을 맡았습니다.

민주당 당직자는 "이 의원의 이질적 정체성이 당시에는 오히려 참신성과 희소성을 돋보이게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당시 이 의원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최근 "이 의원이 운동권을 욕하는데, 내가 원내대표할 때 이 의원은 우리 당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장 세게 이야기한 좌파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극복할 수 없었던 ‘비주류의 한계’…탈당으로 이어져

그렇다면 이 의원의 변신은 언제부터, 왜 시작된 걸까요.

민주당 인사들은 대체로 2015년 말, 2016년 20대 총선 즈음이 변곡점이 됐다고 얘기합니다.

2015년 당시 민주당은 친문, 비문계간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당시 이언주 의원은 비문계에 가까왔습니다.

문재인 대표 체제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이 의원은 빠른 속도로 김종인 위원장과 가까워졌습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의 핵심 보직인 조직본부장에 선임됐고, 김종인 전 위원장이 소속된 의원 연구단체 '경제민주화정책포럼 조화로운 사회'의 대표 의원도 맡았습니다.

여세를 몰아 그해 8월엔 경기도당 위원장에 출마했지만,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하다 친문계에 의해 정치적 꿈이 한번 접힌 셈인데, 이 의원은 여기서 큰 소외감과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신이 느꼈던 소외감을 이렇게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에 있을 때, 친노도, 친문도, 참여정부에서 일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결코 지도부가 될 수는 없다, 당권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우리끼리 했었다. 극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 2017. 6.13 국민의당 의원-지역위원장 워크숍


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거침 없는 우클릭

민주당에서 5년을 머물렀던 이언주 의원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에서 2년을 보내며 거침 없는 우클릭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지난해 7월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시장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기업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시장경제살리기연대'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시절 '경제 민주화'의 선봉장으로 법인세율 인상과 소득 분배 개선을 주장해온 이 의원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한다며 '시장 경제 지킴이'로 180도 변신한 겁니다.

한달 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 의원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이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천재였다, 이런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발언한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단숨에 유튜브 구독자 19만 명을 모으며 '보수의 잔다르크'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이런 이 의원이 2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좌파 운동권 정부가 들어선 이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문재인 정권의 광기 어린 좌파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단기필마로나마 신보수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의원은 그러나 한국당 입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입당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면서 "한국당이 변화되고 보수 세력을 위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때 그때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우클릭에 우클릭을 거듭해온 7년의 정치 역정, 이 의원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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