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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에게 쏜 감성의 화살 ‘어벤져스:엔드게임’
입력 2019.04.24 (11:34) 수정 2019.04.24 (14:37) 취재K
팬들에게 쏜 감성의 화살 ‘어벤져스:엔드게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잠깐, 아직 쏘지 마."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첫 장면을 여는 첫 대사다. 평화로운 공원, 호크아이가 딸에게 활쏘기 연습을 시키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이 대사는, 마블스튜디오의 핵심 전략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난 11년 동안 적절한 시점에 새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팬들의 충성심을 쌓아올린 마블은 이제 정확한 타이밍을 잡았다는 듯 잔뜩 당긴 활시위를 놓는다. 호크아이의 딸은 아빠의 가르침에 따라 과녁을 명중시킨다.

미국인들이 1970년대 '스타워즈'에 열광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그들이 새로운 신화를 갖게 됐다는 점도 꼽힌다. 유럽이나 아시아에는 있는 고대 신화가 없었던 그들이 자신만의 신화, 특히 백인 중심의 신화를 스크린을 통해 갖게 된 쾌감이 적지 않았다. 이제 마블스튜디오의 영화들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즉 하나의 세계관으로 불리며 '스타워즈' 시리즈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고 인기 있는 신화가 되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24일 개봉함으로써 신과 인간, 인공지능이 어우러진 21세기판 건국(建國)신화, 아니 '건은하계신화' 시즌1이 마무리됐다. 그 세계관 구축의 연대기를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MCU는 이렇게 서양에서 동양, 지구에서 은하계 전반, 그리고 천문학적 상상에서부터 양자역학이라는 최소 단위 영역에 이르기까지, 실로 우주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 완결판으로서 '엔드게임'이 집중하는 건 감성이다. 팬들의 감정은 이미 충분히 이입돼 있다. 전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전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켜버렸으니, 활시위는 당길 만큼 당겨놓은 셈이다. 새로운 시도나 논리 전개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소중한 이들을 되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만 하면 된다.

'엔드게임'은 그래서 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액션 장면만큼이나 자주 보여준다. 영웅들의 글썽이는 눈물,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는 절박한 눈빛, 그리고 인간적인 유머를 수시로 배치한다. 배우들도 어느 때보다 표정 연기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봤던 치밀한 액션 디자인이나 주인공들끼리 벌이는 논쟁도 줄었다. 전편에 비해서도 신(神)인 토르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유머러스하게 등장하고, 인간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더욱 신격화한다. '엔드게임'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애초에 마블은 두 개의 전쟁, 즉 2차 세계대전과 2000년대 중동전쟁에서 갈등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토니 스타크는 애초에 군수재벌 2세였다. 자신의 기업에서 제조한 무기가 테러에 쓰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아이언맨이 됐다. '어벤져스' 영웅 중에서도 주인공 격인 아이언맨의 정치적 고뇌는 그래서 현실 세계의 미국 자신을 은유하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은 과거 소코비아 전투 당시 숨진 한 민간인 희생자의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듣는다. "우리를 위해 싸운다고? 당신 자신을 위해 싸우는 거겠지." 세계 평화를 위한답시고 국제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벤져스'의 쌍두마차 중 한쪽인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 태생이다. 그는 인류 최악의 파시스트인 히틀러를 모델로 한 악당과 싸워왔다. 오랜 세월 절대악을 상대해온 그는 그래서 강경 노선이다. 반면 미국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의문투성이인 중동전쟁을 출발점으로 하는 아이언맨은 온건 노선이다. 그래서 둘은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빚는다. 인공지능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캐릭터 '비전'은 평화를 빌미로 한 무력 사용에 비관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된 이후 특별한 힘을 가진 수도 급증했고 같은 기간 세상을 위협하는 사건도 비례해서 늘었죠. 우리의 힘은 도전을 부르고 도전은 충돌을 야기해요. 충돌은 재앙을 낳죠."

이와 같은 정치적 고뇌가 마블 시리즈 바탕에 흘러왔지만 '엔드게임'에서 이런 논쟁은 비중이 작다. 대신 모두가 예상했듯 시간을 되돌리는 작전이 펼쳐진다. 많은 이들이 예측했듯 '앤트맨'에 등장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재앙 이전 시간대로 돌아가려 한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그 시간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영화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종반부 우주의 위기가 마지막 결말을 맺는 장면에서는 '저 기술은 전편에서도 가능한 것일 텐데 그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엔드게임'은 논리 전개가 다소 허술한 대목이 군데군데 보인다. 각 영웅들의 장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액션 디자인도 전편들에 비해 약한 편이다. 막판 대규모 액션 시퀀스는 지금껏 여러 차례 봐왔던 백병전 화면 설계와 비교해 그다지 나아간 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3시간 57초의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앞서 말했듯 관객의 감정을 지난 11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덕이다. 여기에 어느 작품보다 관객의 마음을 향해 감성적인 화살을 쏜 경우가 이번 '엔드게임'이다. 마블 서사시의 한 시즌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는 동안 관객을 붙들어온 마블의 쿠키영상은 이번에는 없다. 마블스튜디오는 올해 7월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으로 다시 찾아온다.
  • 팬들에게 쏜 감성의 화살 ‘어벤져스:엔드게임’
    • 입력 2019.04.24 (11:34)
    • 수정 2019.04.24 (14:37)
    취재K
팬들에게 쏜 감성의 화살 ‘어벤져스:엔드게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잠깐, 아직 쏘지 마."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첫 장면을 여는 첫 대사다. 평화로운 공원, 호크아이가 딸에게 활쏘기 연습을 시키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이 대사는, 마블스튜디오의 핵심 전략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난 11년 동안 적절한 시점에 새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팬들의 충성심을 쌓아올린 마블은 이제 정확한 타이밍을 잡았다는 듯 잔뜩 당긴 활시위를 놓는다. 호크아이의 딸은 아빠의 가르침에 따라 과녁을 명중시킨다.

미국인들이 1970년대 '스타워즈'에 열광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그들이 새로운 신화를 갖게 됐다는 점도 꼽힌다. 유럽이나 아시아에는 있는 고대 신화가 없었던 그들이 자신만의 신화, 특히 백인 중심의 신화를 스크린을 통해 갖게 된 쾌감이 적지 않았다. 이제 마블스튜디오의 영화들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즉 하나의 세계관으로 불리며 '스타워즈' 시리즈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고 인기 있는 신화가 되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24일 개봉함으로써 신과 인간, 인공지능이 어우러진 21세기판 건국(建國)신화, 아니 '건은하계신화' 시즌1이 마무리됐다. 그 세계관 구축의 연대기를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MCU는 이렇게 서양에서 동양, 지구에서 은하계 전반, 그리고 천문학적 상상에서부터 양자역학이라는 최소 단위 영역에 이르기까지, 실로 우주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 완결판으로서 '엔드게임'이 집중하는 건 감성이다. 팬들의 감정은 이미 충분히 이입돼 있다. 전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전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켜버렸으니, 활시위는 당길 만큼 당겨놓은 셈이다. 새로운 시도나 논리 전개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소중한 이들을 되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만 하면 된다.

'엔드게임'은 그래서 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액션 장면만큼이나 자주 보여준다. 영웅들의 글썽이는 눈물,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는 절박한 눈빛, 그리고 인간적인 유머를 수시로 배치한다. 배우들도 어느 때보다 표정 연기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봤던 치밀한 액션 디자인이나 주인공들끼리 벌이는 논쟁도 줄었다. 전편에 비해서도 신(神)인 토르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유머러스하게 등장하고, 인간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더욱 신격화한다. '엔드게임'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애초에 마블은 두 개의 전쟁, 즉 2차 세계대전과 2000년대 중동전쟁에서 갈등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토니 스타크는 애초에 군수재벌 2세였다. 자신의 기업에서 제조한 무기가 테러에 쓰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아이언맨이 됐다. '어벤져스' 영웅 중에서도 주인공 격인 아이언맨의 정치적 고뇌는 그래서 현실 세계의 미국 자신을 은유하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은 과거 소코비아 전투 당시 숨진 한 민간인 희생자의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듣는다. "우리를 위해 싸운다고? 당신 자신을 위해 싸우는 거겠지." 세계 평화를 위한답시고 국제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벤져스'의 쌍두마차 중 한쪽인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 태생이다. 그는 인류 최악의 파시스트인 히틀러를 모델로 한 악당과 싸워왔다. 오랜 세월 절대악을 상대해온 그는 그래서 강경 노선이다. 반면 미국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의문투성이인 중동전쟁을 출발점으로 하는 아이언맨은 온건 노선이다. 그래서 둘은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빚는다. 인공지능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캐릭터 '비전'은 평화를 빌미로 한 무력 사용에 비관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된 이후 특별한 힘을 가진 수도 급증했고 같은 기간 세상을 위협하는 사건도 비례해서 늘었죠. 우리의 힘은 도전을 부르고 도전은 충돌을 야기해요. 충돌은 재앙을 낳죠."

이와 같은 정치적 고뇌가 마블 시리즈 바탕에 흘러왔지만 '엔드게임'에서 이런 논쟁은 비중이 작다. 대신 모두가 예상했듯 시간을 되돌리는 작전이 펼쳐진다. 많은 이들이 예측했듯 '앤트맨'에 등장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재앙 이전 시간대로 돌아가려 한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그 시간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영화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종반부 우주의 위기가 마지막 결말을 맺는 장면에서는 '저 기술은 전편에서도 가능한 것일 텐데 그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엔드게임'은 논리 전개가 다소 허술한 대목이 군데군데 보인다. 각 영웅들의 장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액션 디자인도 전편들에 비해 약한 편이다. 막판 대규모 액션 시퀀스는 지금껏 여러 차례 봐왔던 백병전 화면 설계와 비교해 그다지 나아간 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3시간 57초의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앞서 말했듯 관객의 감정을 지난 11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덕이다. 여기에 어느 작품보다 관객의 마음을 향해 감성적인 화살을 쏜 경우가 이번 '엔드게임'이다. 마블 서사시의 한 시즌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는 동안 관객을 붙들어온 마블의 쿠키영상은 이번에는 없다. 마블스튜디오는 올해 7월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으로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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