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임시정부②] “조언비어 죄에 처한다”…임정 단파라디오 밀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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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됐습니다. 임정은 중국에 있었지만, 국내에 통치망을 구축하려 부단히 애썼습니다. 이를 일제는 끈질기게 추적했습니다. 그 쫓고 쫓긴 흔적은 일제 법원의 판결문으로 남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판결문 250여 건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KBS는 이를 발굴해 『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상』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안동농림학교는 일제 말에 접어들자 이름과는 달리 군사양성소로 변질합니다. 학도병 강요도 심해집니다. 이에 학생들은 '조선회복연구단'이라는 비밀결사로 맞섭니다. 경찰서와 헌병대에서 무기를 탈취해,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하기로 합니다. 모의 훈련도 하고, 우체국 직원을 포섭해 일제의 기밀을 빼내려 했지만, 계획은 누설돼 줄줄이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 비밀 결사의 배후? 2,000km를 넘어온 '라디오 전파'
폭압이 극으로 치닫던 일제 말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배후는 무엇이었을까요. 임시정부 연구자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는 충칭방송국을 꼽았습니다.
한반도에서 직선거리로 2천여km 떨어진 충칭. 일제에 쫓기고 쫓기던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마지막으로 충칭에 자리 잡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도 창설됩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곧바로 '방송 공작'을 시작하는데, 그 거점이 충칭방송국이었던 겁니다.
임시정부가 송출한 방송 공작의 주된 내용은 국내 동포들에게 독립운동과 전쟁 상황을 알리고, 저항과 궐기를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날로 패색이 짙어갔던 일제의 전황을 알게 됐고, 그 정보는 용기가 됐을 겁니다.
■ 잇단 밀청(密聽), 얼마나 몰래 들었나?
임정 라디오를 몰래 듣는, 밀청(密聽) 시도는 안동농림학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잇따랐습니다. 국가기록원의 판결문에서 확인된 인물만 최소 6명입니다. 조명수(경기도 파주), 김규석(서울 본정), 김근익(서울 관동정), 안춘형(서울 낙원정), 이창득(서울), 천덕기(강원도 강릉) 등입니다.
남몰래 임정 라디오를 청취한 이들은 소리통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연합군이 곧 상륙할 것이다' '솔로몬 군도에서 미군이 일본군을 대파했다' '일본군의 물자 부족이 심각하다' 와 같은 반가운 소식을 주변에 퍼뜨렸고, 결국 꼬리가 잡혀 일제 법원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 법원이 이들에게 적용한 죄목은 '군사(軍事)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 지금의 말로 풀어쓰자면, 군과 관련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방송됐던 내용은 일제는 숨기고 싶었던 실제 전황과 상당 부분 일치했습니다.
■ 2010년 SNS, 1945년 라디오
일제에 불리한 정보는 모두 차단됐던 당시. 임시정부의 충칭발 라디오는 단비와 같았을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판결문이 아닌 다른 자료에는 경성방송국(KBS의 전신) 직원 40여 명 등 150여 명이 단파 라디오로 불법 방송을 듣다 무더기 검거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010년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작된 뒤 세계 유수 언론은 1등 공신으로 SNS를 꼽았습니다. SNS의 확산력이 정치 혁명의 불쏘시개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일제가 정보 확산을 두려워하며 '조언비어'라는 죄목으로 엄벌하려 했던 배경과도 맥이 닿습니다.
판결문에 기록된 6명 중 이창득을 제외한 5명은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암흑의 시기에 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낭보를 전했던 그들의 노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 본 기사는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일제 판결문과 해설집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 등을 참고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발굴, 임시정부③] 잇고, 끊고, 잇고, 끊고…‘가정부 불온문서’ 살포 작전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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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 임시정부②] “조언비어 죄에 처한다”…임정 단파라디오 밀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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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25 07:01:02
- 수정2019-04-27 13:47:44
안동농림학교는 일제 말에 접어들자 이름과는 달리 군사양성소로 변질합니다. 학도병 강요도 심해집니다. 이에 학생들은 '조선회복연구단'이라는 비밀결사로 맞섭니다. 경찰서와 헌병대에서 무기를 탈취해,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하기로 합니다. 모의 훈련도 하고, 우체국 직원을 포섭해 일제의 기밀을 빼내려 했지만, 계획은 누설돼 줄줄이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 비밀 결사의 배후? 2,000km를 넘어온 '라디오 전파'
폭압이 극으로 치닫던 일제 말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배후는 무엇이었을까요. 임시정부 연구자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는 충칭방송국을 꼽았습니다.
한반도에서 직선거리로 2천여km 떨어진 충칭. 일제에 쫓기고 쫓기던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마지막으로 충칭에 자리 잡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도 창설됩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곧바로 '방송 공작'을 시작하는데, 그 거점이 충칭방송국이었던 겁니다.
임시정부가 송출한 방송 공작의 주된 내용은 국내 동포들에게 독립운동과 전쟁 상황을 알리고, 저항과 궐기를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날로 패색이 짙어갔던 일제의 전황을 알게 됐고, 그 정보는 용기가 됐을 겁니다.
■ 잇단 밀청(密聽), 얼마나 몰래 들었나?
임정 라디오를 몰래 듣는, 밀청(密聽) 시도는 안동농림학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잇따랐습니다. 국가기록원의 판결문에서 확인된 인물만 최소 6명입니다. 조명수(경기도 파주), 김규석(서울 본정), 김근익(서울 관동정), 안춘형(서울 낙원정), 이창득(서울), 천덕기(강원도 강릉) 등입니다.
남몰래 임정 라디오를 청취한 이들은 소리통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연합군이 곧 상륙할 것이다' '솔로몬 군도에서 미군이 일본군을 대파했다' '일본군의 물자 부족이 심각하다' 와 같은 반가운 소식을 주변에 퍼뜨렸고, 결국 꼬리가 잡혀 일제 법원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 법원이 이들에게 적용한 죄목은 '군사(軍事)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 지금의 말로 풀어쓰자면, 군과 관련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방송됐던 내용은 일제는 숨기고 싶었던 실제 전황과 상당 부분 일치했습니다.
■ 2010년 SNS, 1945년 라디오
일제에 불리한 정보는 모두 차단됐던 당시. 임시정부의 충칭발 라디오는 단비와 같았을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판결문이 아닌 다른 자료에는 경성방송국(KBS의 전신) 직원 40여 명 등 150여 명이 단파 라디오로 불법 방송을 듣다 무더기 검거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010년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작된 뒤 세계 유수 언론은 1등 공신으로 SNS를 꼽았습니다. SNS의 확산력이 정치 혁명의 불쏘시개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일제가 정보 확산을 두려워하며 '조언비어'라는 죄목으로 엄벌하려 했던 배경과도 맥이 닿습니다.
판결문에 기록된 6명 중 이창득을 제외한 5명은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암흑의 시기에 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낭보를 전했던 그들의 노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 본 기사는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일제 판결문과 해설집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 등을 참고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발굴, 임시정부③] 잇고, 끊고, 잇고, 끊고…‘가정부 불온문서’ 살포 작전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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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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