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치매 아내 맡기고 싶지 않아서”…91세에 요양보호사 된 남편

입력 2019.04.25 (08:31) 수정 2019.04.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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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몇 년 전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가 있었죠.

백발 노부부의 80년에 가까운 애틋한 사랑 얘기가 큰 감동을 줬는데요.

영화 속 부부 못지않은 사랑을 보여준 고령의 커플이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이번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90대 어르신의 사연입니다.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지난 요양보호사 자격 시험에서 특별한 합격생이 탄생했습니다.

[공동식/예산 요양보호사교육원장 : "90세가 넘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단 한 시간도 지각이나 하루라도 결석 없이 240시간 과정 전체를 다 똑바로 이수하셨죠. 굉장히 성실하신 분이셨습니다."]

단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고 모범생다운 모습을 늘 유지했다는 90대의 학생.

선생님의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는 특별한 학생은 바로 이분 최대식 어르신입니다.

[최대식/91세 : "아흔 하나예요. 1929년 12월 25일생. 밤낮 없이 계속 공부한 덕분인 것 같아요. 100점은 아니고 그저 등수에는 들어간 것 같아요. 합격 등수에는."]

역대 최고령 합격생이랍니다.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 주경야독을 이어갔다는 어르신.

하루에 8시간씩 수업을 듣고, 점심은 김밥으로 때우기도 했다는데요.

240시간의 이론 수업과 실습까지 모두 마친 뒤,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이었는데요.

[최대식/91세 : "글쎄 나이 먹어서 될 수 있을까 그 얘길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끝까지 해 봐야겠다."]

[성덕제/학원 동기 : "제 앞에 앉아 계셨는데 거의 한순간도 선생님과 눈 맞춤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시고, 계속 책에 밑줄 그으면서 강의를 들으시더라고요. 대단했습니다."]

학원을 나선 어르신이 집이 아니라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공부에 피곤할 법도 한데 과자를 하나하나 신중히 고릅니다.

[최대식/91세 : "할머니 간식거리. 입가심이나 하라고 간식을 좀 사는 거야. 뭐가 있나 보자, 보자…. 이거 괜찮네. 이것만 사서 가야 되겠네."]

할머니를 위한 간식을 사 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데요.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간 사이 종일 혼자 있었을 아내와 만나자마자 수다 삼매경에 빠진 어르신, 주변에선 잉꼬 부부로 통한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이거 먹을만한지 모르겠지만 먹어 봐요. 조금만 먹어 봐요. (꼭 아기 같네.)"]

60년 동안 함께 해 온 아내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건 6개월 전.

가족이라곤 부부 둘뿐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엉뚱한 걸 자꾸 얘기하지. 그땐 뭐를 자기가 두고도 자기는 모르고 자꾸 물어 보고 그리고 나보고 했다 그러고. (의사에게) ‘어떻습니까?’ 했더니 치매 초기라고."]

그때 문득 어르신은 아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최대식/91세 : "할머니 때문에 시작을 한 거예요. 나이 먹어서 죽는 날까지 누가 살든 죽든 간에 그 때까진 내가 가족을 보호해야겠다. 그래서 이걸 배운 거예요."]

보건소에 수소문해, 요양보호사 학원을 찾아낸 할아버지.

[최대식/91세 : "원장님이 그야말로 어르신 나이 먹었어도 충분합니다. 여기는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하더라고."]

치매 초기엔 아내의 행동을 이해 못해 싸움도 많이 했었지만 요양사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아내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치매에 대해서 몰랐던 걸 배운 거지. 치매 환자한테는 이렇게 이렇게 관여를 해야 된다.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걸 집에서 써 먹는 거야. 환자한테 써 먹는 거야."]

합격한 뒤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신데요.

하나라도 잊어버릴까, 책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합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합격의 비결은 뭘까요?

6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모두 암기했다는데요.

선생님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이렇게 잊을까 봐 줄쳐 놨다고 합니다.

[최대식/91세 : "중요한 대목은 두 줄. 그렇게 체크가 돼 있고, 알아만 둘 것은 그냥 하나."]

마음과 집중력만큼은 아직도 10대라는 어르신.

지난 두 달간 400여 쪽의 문제집도 모두 풀어낼 정도로 공부 벌레였다고 합니다.

할머니 얘기 한번 들어 보시죠.

[김현정/82세/아내 : "그렇게 앉아서 공부를 새벽까지 하더라고. 원래 머리가 좀 좋기는 했어요. 평상시에도. 그 전에 회사 다닐 때도 괜찮더라고."]

이렇게 남편 자랑을 하시는 할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가 합격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는데요.

[김현정/82세/아내 : "학원에 원장님 만난다고 나갔는데 아저씨가 전화가 왔더라고. '나 됐대. 합격했대. ''아이고 정말요?' 그랬더니 '정말이야.' 부원장님이 합격했다고 축하한다고 그러더래."]

어르신의 합격 소식을 들은 이웃들의 축하도 이어졌는데요.

그동안 남편의 고생이 빛을 보는 것 같아 아내는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김현정/82세/아내 : "그 나이에 이렇게 도전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게 참 감사해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도 싶고 노력을 하면 뭔가가 이루어지는구나 이런 것도 생각이 들고."]

오로지 아내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뤄낸 결실.

어르신은 이제 남편이자, 자격증 있는 요양사로 할머니 간호할 생각이 벅찹니다.

[최대식/91세 : "내가 보호하고 간호해 주면 자연적으로 나을 거 같고 나을 거 같아요. 꾸준히 옆에서 간호는 해야지. 내가 자격증 따고 내가 능력이 있잖아. 배운 게 있고 자격증도 있고 간호하는 게 어렵지 않은 얘기지 뭐."]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준 90대 최대식 할아버지의 합격 스토리.

여기에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60년이 훌쩍 넘은 오늘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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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치매 아내 맡기고 싶지 않아서”…91세에 요양보호사 된 남편
    • 입력 2019-04-25 08:33:38
    • 수정2019-04-25 1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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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몇 년 전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가 있었죠.

백발 노부부의 80년에 가까운 애틋한 사랑 얘기가 큰 감동을 줬는데요.

영화 속 부부 못지않은 사랑을 보여준 고령의 커플이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이번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90대 어르신의 사연입니다.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지난 요양보호사 자격 시험에서 특별한 합격생이 탄생했습니다.

[공동식/예산 요양보호사교육원장 : "90세가 넘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단 한 시간도 지각이나 하루라도 결석 없이 240시간 과정 전체를 다 똑바로 이수하셨죠. 굉장히 성실하신 분이셨습니다."]

단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고 모범생다운 모습을 늘 유지했다는 90대의 학생.

선생님의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는 특별한 학생은 바로 이분 최대식 어르신입니다.

[최대식/91세 : "아흔 하나예요. 1929년 12월 25일생. 밤낮 없이 계속 공부한 덕분인 것 같아요. 100점은 아니고 그저 등수에는 들어간 것 같아요. 합격 등수에는."]

역대 최고령 합격생이랍니다.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 주경야독을 이어갔다는 어르신.

하루에 8시간씩 수업을 듣고, 점심은 김밥으로 때우기도 했다는데요.

240시간의 이론 수업과 실습까지 모두 마친 뒤,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이었는데요.

[최대식/91세 : "글쎄 나이 먹어서 될 수 있을까 그 얘길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끝까지 해 봐야겠다."]

[성덕제/학원 동기 : "제 앞에 앉아 계셨는데 거의 한순간도 선생님과 눈 맞춤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시고, 계속 책에 밑줄 그으면서 강의를 들으시더라고요. 대단했습니다."]

학원을 나선 어르신이 집이 아니라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공부에 피곤할 법도 한데 과자를 하나하나 신중히 고릅니다.

[최대식/91세 : "할머니 간식거리. 입가심이나 하라고 간식을 좀 사는 거야. 뭐가 있나 보자, 보자…. 이거 괜찮네. 이것만 사서 가야 되겠네."]

할머니를 위한 간식을 사 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데요.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간 사이 종일 혼자 있었을 아내와 만나자마자 수다 삼매경에 빠진 어르신, 주변에선 잉꼬 부부로 통한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이거 먹을만한지 모르겠지만 먹어 봐요. 조금만 먹어 봐요. (꼭 아기 같네.)"]

60년 동안 함께 해 온 아내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건 6개월 전.

가족이라곤 부부 둘뿐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엉뚱한 걸 자꾸 얘기하지. 그땐 뭐를 자기가 두고도 자기는 모르고 자꾸 물어 보고 그리고 나보고 했다 그러고. (의사에게) ‘어떻습니까?’ 했더니 치매 초기라고."]

그때 문득 어르신은 아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최대식/91세 : "할머니 때문에 시작을 한 거예요. 나이 먹어서 죽는 날까지 누가 살든 죽든 간에 그 때까진 내가 가족을 보호해야겠다. 그래서 이걸 배운 거예요."]

보건소에 수소문해, 요양보호사 학원을 찾아낸 할아버지.

[최대식/91세 : "원장님이 그야말로 어르신 나이 먹었어도 충분합니다. 여기는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하더라고."]

치매 초기엔 아내의 행동을 이해 못해 싸움도 많이 했었지만 요양사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아내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데요.

[최대식/91세 : "치매에 대해서 몰랐던 걸 배운 거지. 치매 환자한테는 이렇게 이렇게 관여를 해야 된다.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걸 집에서 써 먹는 거야. 환자한테 써 먹는 거야."]

합격한 뒤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신데요.

하나라도 잊어버릴까, 책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합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합격의 비결은 뭘까요?

6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모두 암기했다는데요.

선생님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이렇게 잊을까 봐 줄쳐 놨다고 합니다.

[최대식/91세 : "중요한 대목은 두 줄. 그렇게 체크가 돼 있고, 알아만 둘 것은 그냥 하나."]

마음과 집중력만큼은 아직도 10대라는 어르신.

지난 두 달간 400여 쪽의 문제집도 모두 풀어낼 정도로 공부 벌레였다고 합니다.

할머니 얘기 한번 들어 보시죠.

[김현정/82세/아내 : "그렇게 앉아서 공부를 새벽까지 하더라고. 원래 머리가 좀 좋기는 했어요. 평상시에도. 그 전에 회사 다닐 때도 괜찮더라고."]

이렇게 남편 자랑을 하시는 할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가 합격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는데요.

[김현정/82세/아내 : "학원에 원장님 만난다고 나갔는데 아저씨가 전화가 왔더라고. '나 됐대. 합격했대. ''아이고 정말요?' 그랬더니 '정말이야.' 부원장님이 합격했다고 축하한다고 그러더래."]

어르신의 합격 소식을 들은 이웃들의 축하도 이어졌는데요.

그동안 남편의 고생이 빛을 보는 것 같아 아내는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김현정/82세/아내 : "그 나이에 이렇게 도전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게 참 감사해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도 싶고 노력을 하면 뭔가가 이루어지는구나 이런 것도 생각이 들고."]

오로지 아내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뤄낸 결실.

어르신은 이제 남편이자, 자격증 있는 요양사로 할머니 간호할 생각이 벅찹니다.

[최대식/91세 : "내가 보호하고 간호해 주면 자연적으로 나을 거 같고 나을 거 같아요. 꾸준히 옆에서 간호는 해야지. 내가 자격증 따고 내가 능력이 있잖아. 배운 게 있고 자격증도 있고 간호하는 게 어렵지 않은 얘기지 뭐."]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준 90대 최대식 할아버지의 합격 스토리.

여기에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60년이 훌쩍 넘은 오늘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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