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시진핑 건강 이상설 제기하는 미국 언론의 속내

입력 2019.04.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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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방문 시 의자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시 주석의 모습.

시진핑의 불안정한 걸음에 주목한 美 월스트리트 저널(WSJ)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언론 중 하나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판단 근거로 지난달 25일 프랑스 방문 당시 걷는 모습 동영상을 유료 기사에 링크해 놨는데 유난히 절룩이는 모습이 부각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시 주석은 월스트리트 기사가 보도된 날 진행 중인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해상 열병식에서도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살도 좀 더 찐 것 같고, 몸도 기우뚱해 보인다. 진짜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한 나라 정상의 건강 상태는 국가 기밀에 해당한다. 국가 원수의 해외 순방 시 경호원들이 용변까지 거둬 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물며 시 주석의 건강상태를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취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과거 모습과 비교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시 주석의 걸음걸이와 자세는 예전부터 그랬다?

당장 시 주석의 지난해 공식 행사 모습 동영상을 살펴봤더니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약간 절룩이는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파나마 방문 당시를 보면 특히 오른발이 밖으로 벌어져 더 불편해 보인다. 2016년 11월 칠레 방문 당시도 그랬고, 2013년 7월 국가 주석이 얼마 되지 않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최소한 지난달 유럽 방문 때부터 걸음걸이가 갑자기 불편해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 주석을 가까이서 여러 차례 본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출신 한 인사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시 주석의 걸음걸이는 원래 좀 절룩이는 모양입니다. 머리도 좀 삐딱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머리를 조금씩 흔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왜, 이 시점에 걸음걸이 하나만 갖고 시진핑 주석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것일까?

2012년 9월 당시 시 주석 건강 이상설 보도 기사2012년 9월 당시 시 주석 건강 이상설 보도 기사

미국 언론들, 7년 전에도 시진핑 건강 이상설 제기

비슷한 일이 7년 전에도 있었다. 2012년 9월 5일, 차기 중국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대관식 격인 18차 당 대회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시진핑 부주석이 당시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의 면담을 갑자기 취소했다. 그러자 월스트리트 저널이 가장 먼저 '시진핑 부주석 부상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후 뉴욕 타임즈는 '심장 발작설'을 보도했고, 로이터는 '운동 중 부상설'을 보도했으며, 급기야 일부 홍콩 매체들은 미국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해 상하이방과의 권력 암투로 인한 '총격설', '교통사고설'까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 외신 기자가 "시진핑 부주석이 도대체 살아 있기는 한 겁니까?"라는 질문까지 했을 정도였다.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2주 만에 공식 석상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건강 이상설'은 진화됐지만, 그로 인해 중국 권력 교체기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계파 간 권력다툼이 부각됐다. 부패와의 전쟁 명분으로 이뤄진 정적들에 대한 숙청과 이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장쩌민 전 주석을 위시한 상하이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중국 인민들 모르게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공산당 권력 교체의 실체를 드러내는 부수 효과를 거둔 것이다.

WSJ은 과거 지도자들에 비해 시 주석의 직함이 훨씬 더 많아진 점을 지적했다.WSJ은 과거 지도자들에 비해 시 주석의 직함이 훨씬 더 많아진 점을 지적했다.

결국, 시진핑 1인 독재 비판이 목적

이번에 제기된 건강 이상설도 마찬가지다. 미국 언론이 시 주석의 건강을 진짜로 염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끌어들인 소재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의 부제가 "중국 지도자의 건강이 1인 지배체제에 대한 우려에 기름을 붓고 있다."라고 돼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링크된 "시진핑이 어떻게 십 년 만에 최고 강력한 지도자가 됐는가?"하는 동영상은 그야말로 시 주석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여러 요인을 들었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 주석이 모든 자리를 다 차지했다는 비판이다. 중국 정치학자 윌리 램은 아주 재치 있는 표현을 했다. "He(President Xi) is also known as chairman of everything." 이처럼 미국 언론이 제기하는 시진핑 건강 이상설은 늘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왜 하필 이때냐는 의문은 남는다.

창정(長征)10호 핵 잠수함에 탑재된 쥐랑-2A 미사일은 사거리가 미국 본토에 미친다.창정(長征)10호 핵 잠수함에 탑재된 쥐랑-2A 미사일은 사거리가 미국 본토에 미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 성격도

중국은 지금 미국과 무역전쟁이라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 것처럼 보였던 중국이 버티고 있다. 이미 미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의 선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가 보도된 날은 공교롭게도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일이었다. 시 주석은 이날 60개 나라 대표단을 초청해 대규모 해상 열병식을 열어 해군력을 과시했는데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장착한 핵잠수함을 선두에 내세웠다. 시 주석은 오늘부터 '신(新)실크로드' 일대일로 회의를 주재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37개 나라 정상이 베이징으로 모였는데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을 배제한 중국 중심의 경제 공동체를 추진 중이다. 시 주석이 집권한 뒤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미국에겐 불편하기만 하다. 시진핑 건강 이상설은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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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5 10:17:53
    특파원 리포트
프랑스 방문 시 의자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시 주석의 모습.

시진핑의 불안정한 걸음에 주목한 美 월스트리트 저널(WSJ)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언론 중 하나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판단 근거로 지난달 25일 프랑스 방문 당시 걷는 모습 동영상을 유료 기사에 링크해 놨는데 유난히 절룩이는 모습이 부각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시 주석은 월스트리트 기사가 보도된 날 진행 중인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해상 열병식에서도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살도 좀 더 찐 것 같고, 몸도 기우뚱해 보인다. 진짜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한 나라 정상의 건강 상태는 국가 기밀에 해당한다. 국가 원수의 해외 순방 시 경호원들이 용변까지 거둬 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물며 시 주석의 건강상태를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취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과거 모습과 비교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시 주석의 걸음걸이와 자세는 예전부터 그랬다?

당장 시 주석의 지난해 공식 행사 모습 동영상을 살펴봤더니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약간 절룩이는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파나마 방문 당시를 보면 특히 오른발이 밖으로 벌어져 더 불편해 보인다. 2016년 11월 칠레 방문 당시도 그랬고, 2013년 7월 국가 주석이 얼마 되지 않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최소한 지난달 유럽 방문 때부터 걸음걸이가 갑자기 불편해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 주석을 가까이서 여러 차례 본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출신 한 인사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시 주석의 걸음걸이는 원래 좀 절룩이는 모양입니다. 머리도 좀 삐딱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머리를 조금씩 흔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왜, 이 시점에 걸음걸이 하나만 갖고 시진핑 주석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것일까?

2012년 9월 당시 시 주석 건강 이상설 보도 기사
미국 언론들, 7년 전에도 시진핑 건강 이상설 제기

비슷한 일이 7년 전에도 있었다. 2012년 9월 5일, 차기 중국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대관식 격인 18차 당 대회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시진핑 부주석이 당시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의 면담을 갑자기 취소했다. 그러자 월스트리트 저널이 가장 먼저 '시진핑 부주석 부상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후 뉴욕 타임즈는 '심장 발작설'을 보도했고, 로이터는 '운동 중 부상설'을 보도했으며, 급기야 일부 홍콩 매체들은 미국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해 상하이방과의 권력 암투로 인한 '총격설', '교통사고설'까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 외신 기자가 "시진핑 부주석이 도대체 살아 있기는 한 겁니까?"라는 질문까지 했을 정도였다.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2주 만에 공식 석상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건강 이상설'은 진화됐지만, 그로 인해 중국 권력 교체기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계파 간 권력다툼이 부각됐다. 부패와의 전쟁 명분으로 이뤄진 정적들에 대한 숙청과 이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장쩌민 전 주석을 위시한 상하이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중국 인민들 모르게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공산당 권력 교체의 실체를 드러내는 부수 효과를 거둔 것이다.

WSJ은 과거 지도자들에 비해 시 주석의 직함이 훨씬 더 많아진 점을 지적했다.
결국, 시진핑 1인 독재 비판이 목적

이번에 제기된 건강 이상설도 마찬가지다. 미국 언론이 시 주석의 건강을 진짜로 염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끌어들인 소재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의 부제가 "중국 지도자의 건강이 1인 지배체제에 대한 우려에 기름을 붓고 있다."라고 돼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링크된 "시진핑이 어떻게 십 년 만에 최고 강력한 지도자가 됐는가?"하는 동영상은 그야말로 시 주석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여러 요인을 들었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 주석이 모든 자리를 다 차지했다는 비판이다. 중국 정치학자 윌리 램은 아주 재치 있는 표현을 했다. "He(President Xi) is also known as chairman of everything." 이처럼 미국 언론이 제기하는 시진핑 건강 이상설은 늘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왜 하필 이때냐는 의문은 남는다.

창정(長征)10호 핵 잠수함에 탑재된 쥐랑-2A 미사일은 사거리가 미국 본토에 미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 성격도

중국은 지금 미국과 무역전쟁이라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 것처럼 보였던 중국이 버티고 있다. 이미 미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의 선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가 보도된 날은 공교롭게도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일이었다. 시 주석은 이날 60개 나라 대표단을 초청해 대규모 해상 열병식을 열어 해군력을 과시했는데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장착한 핵잠수함을 선두에 내세웠다. 시 주석은 오늘부터 '신(新)실크로드' 일대일로 회의를 주재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37개 나라 정상이 베이징으로 모였는데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을 배제한 중국 중심의 경제 공동체를 추진 중이다. 시 주석이 집권한 뒤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미국에겐 불편하기만 하다. 시진핑 건강 이상설은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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