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유독 범죄자 얼굴 공개에 집착할까?

입력 2019.04.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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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신상 공개가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독일 기자 안톤 숄츠)

"흉악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해야 한다"(개그맨 노정렬)

진주 방화 살인범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이 자택에 불을 질렀다. 이 남성은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다짜고짜 흉기까지 휘둘렀다. 5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범행을 두고 정신 이상자가 벌인 사건이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사건 하루만인 지난 18일 방화 살인범 안인득의 신상을 공개했다.

조현병 때문에 살인?.."관습적 갖다 붙이기"


범인 안 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언론은 특히 사건 초기, 이 정신병을 유력한 범행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이웃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게 제정신으로 가능했겠느냐는 이야기다.

경찰 조사 결과 안 씨는 지난 2년 8개월간 조현병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관할 보건소에도 정신질환 관리자로 등록돼 있지 않았다. 조현병 자체가 참극을 불렀다기 보다, 정신질환을 개인과 공동체가 관리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었다.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고정 출연하는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진주 방화 살인의 원인을 조현병으로 몰아가는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관습적 갖다 붙이기"라고 판단했다.

"기사의 육하원칙 중 '왜'가 가장 끝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왜'를 넣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왜'를 제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지나친 언론의 관습이다. 결국, 선정주의다. 이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이슈다'라고 판단하면, 원인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리적 비약의 과정에서 무리한 보도들이 생긴다. 물론 외국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신질환 등 병력을 사건 원인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나왔고, 꾸준히 이런 보도가 줄어드는 추세다"

J에 출연한 범죄전문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현병 몰아가기' 보도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더 격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언론에 드러나는 정신질환자는 심각한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력범죄와 정신질환이 연결되면 개인은 일단 겁부터 내게 된다. 정서적 문제나 기분장애, 대인관계 문제를 겪으면서도 상담받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저하게 된다. 병원에 가는 것조차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히고 예비 강력범죄자로 보일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사건 초기에 정신질환을 범행 원인으로 언급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안인득 신상 공개, 알 권리냐 분풀이냐?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사전에 준비한 흉기로 5명을 살해하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했고, 범죄 예방 등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 안인득의 이름과 얼굴, 나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범죄 하루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안 씨 신상 공개에 대해 '저널리즘토크쇼J' 출연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개그맨 노정렬 씨는 "'왜 안 씨 같은 사람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하느냐', '사형제도 되살리라'는 네티즌들 요구가 많다. 진주 방화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신상 공개 결정은 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J 고정 패널인 독일 출신 안톤 숄츠 기자는 "흉악범 신상 공개가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신상 공개라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범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 신상 공개는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이지 알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범죄 예방에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준희 교수는 언론들이 흉악범 신상 공개로 독자와 시청자의 이목을 매체에 집중시켜 이득을 취한다고 분석한다.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안 씨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인권침해 등) 책임은 없고, 이득은 훨씬 더 큰 상태, 대중들의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상태, 더 많은 클릭 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기 때문에 흉악범을 실명 보도한다고 본다. 시민들 역시 사법적 단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공개되고, 망신당하고, 욕먹고, 완전히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당해야 그나마라도 분노가 풀리는 측면들이 있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명예형벌적' 요소들을 줄여나가는 것이 근대적 진화의 과정이라고 (언론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표 의원은 참사가 대중의 분노로만 끝나지 않고, 공익적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언론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왜 대중은 분노해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첫째로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모든 것은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보상할 방법이 없으니, 가해자를 비난하는 방법만 남은 것이다. 시민들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을 그냥 두면 안 된다. 그것이 시민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흉악범 신상 공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 언론에서도 '가해자가 누구냐', '사이코패스냐, 조현병이냐' 등에만 관심이 있지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원인이나 대응법, 범죄자에 대한 합리적인 대우와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일본 사례를 통해 국내 언론도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에 대해 보도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언론은 원칙적으로 (흉악범 신상을) 공개한다. 익명보도 할지, 실명보도 할지는 경찰이 아니라 '언론사 스스로 판단한다'고 NHK는 지침으로 정하고 있다. TV도쿄도 '정신장애자가 저지른 범죄라고 판명되거나 추정이 되는 경우는 익명 보도를 한다'고 돼 있다. 간사이 TV도 실명 보도를 하다가도 정신장애에 의한 범죄라고 판단이 내려지면 익명 보도로 전환한다. 일본은 정신질환에 의해 범죄가 저질러졌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무죄가 나온다. 법정에서 무죄가 나올 것인데 실명 보도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에 이 같은 기준을 갖게 됐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28일(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41회는 <범죄자 신상 공개, '알 권리'인가, '인권침해'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독일 출신 안톤 숄츠 기자,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교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그맨 노정렬, 김덕훈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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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왜 유독 범죄자 얼굴 공개에 집착할까?
    • 입력 2019-04-27 07:16:59
    저널리즘 토크쇼 J
"흉악범 신상 공개가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독일 기자 안톤 숄츠)

"흉악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해야 한다"(개그맨 노정렬)

진주 방화 살인범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이 자택에 불을 질렀다. 이 남성은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다짜고짜 흉기까지 휘둘렀다. 5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범행을 두고 정신 이상자가 벌인 사건이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사건 하루만인 지난 18일 방화 살인범 안인득의 신상을 공개했다.

조현병 때문에 살인?.."관습적 갖다 붙이기"


범인 안 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언론은 특히 사건 초기, 이 정신병을 유력한 범행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이웃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게 제정신으로 가능했겠느냐는 이야기다.

경찰 조사 결과 안 씨는 지난 2년 8개월간 조현병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관할 보건소에도 정신질환 관리자로 등록돼 있지 않았다. 조현병 자체가 참극을 불렀다기 보다, 정신질환을 개인과 공동체가 관리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었다.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고정 출연하는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진주 방화 살인의 원인을 조현병으로 몰아가는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관습적 갖다 붙이기"라고 판단했다.

"기사의 육하원칙 중 '왜'가 가장 끝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왜'를 넣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왜'를 제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지나친 언론의 관습이다. 결국, 선정주의다. 이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이슈다'라고 판단하면, 원인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리적 비약의 과정에서 무리한 보도들이 생긴다. 물론 외국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신질환 등 병력을 사건 원인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나왔고, 꾸준히 이런 보도가 줄어드는 추세다"

J에 출연한 범죄전문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현병 몰아가기' 보도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더 격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언론에 드러나는 정신질환자는 심각한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력범죄와 정신질환이 연결되면 개인은 일단 겁부터 내게 된다. 정서적 문제나 기분장애, 대인관계 문제를 겪으면서도 상담받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저하게 된다. 병원에 가는 것조차 정신질환자로 낙인 찍히고 예비 강력범죄자로 보일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사건 초기에 정신질환을 범행 원인으로 언급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안인득 신상 공개, 알 권리냐 분풀이냐?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사전에 준비한 흉기로 5명을 살해하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했고, 범죄 예방 등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 안인득의 이름과 얼굴, 나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범죄 하루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안 씨 신상 공개에 대해 '저널리즘토크쇼J' 출연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개그맨 노정렬 씨는 "'왜 안 씨 같은 사람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하느냐', '사형제도 되살리라'는 네티즌들 요구가 많다. 진주 방화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신상 공개 결정은 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J 고정 패널인 독일 출신 안톤 숄츠 기자는 "흉악범 신상 공개가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신상 공개라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범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 신상 공개는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이지 알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범죄 예방에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준희 교수는 언론들이 흉악범 신상 공개로 독자와 시청자의 이목을 매체에 집중시켜 이득을 취한다고 분석한다.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안 씨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인권침해 등) 책임은 없고, 이득은 훨씬 더 큰 상태, 대중들의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상태, 더 많은 클릭 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기 때문에 흉악범을 실명 보도한다고 본다. 시민들 역시 사법적 단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공개되고, 망신당하고, 욕먹고, 완전히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당해야 그나마라도 분노가 풀리는 측면들이 있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명예형벌적' 요소들을 줄여나가는 것이 근대적 진화의 과정이라고 (언론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표 의원은 참사가 대중의 분노로만 끝나지 않고, 공익적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언론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왜 대중은 분노해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첫째로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모든 것은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보상할 방법이 없으니, 가해자를 비난하는 방법만 남은 것이다. 시민들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을 그냥 두면 안 된다. 그것이 시민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흉악범 신상 공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 언론에서도 '가해자가 누구냐', '사이코패스냐, 조현병이냐' 등에만 관심이 있지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원인이나 대응법, 범죄자에 대한 합리적인 대우와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일본 사례를 통해 국내 언론도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에 대해 보도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언론은 원칙적으로 (흉악범 신상을) 공개한다. 익명보도 할지, 실명보도 할지는 경찰이 아니라 '언론사 스스로 판단한다'고 NHK는 지침으로 정하고 있다. TV도쿄도 '정신장애자가 저지른 범죄라고 판명되거나 추정이 되는 경우는 익명 보도를 한다'고 돼 있다. 간사이 TV도 실명 보도를 하다가도 정신장애에 의한 범죄라고 판단이 내려지면 익명 보도로 전환한다. 일본은 정신질환에 의해 범죄가 저질러졌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무죄가 나온다. 법정에서 무죄가 나올 것인데 실명 보도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에 이 같은 기준을 갖게 됐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28일(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41회는 <범죄자 신상 공개, '알 권리'인가, '인권침해'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독일 출신 안톤 숄츠 기자,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교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그맨 노정렬, 김덕훈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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