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두 정상 뒤를 ‘쓱’ 지나간 이 사람은?

입력 2019.04.27 (07:25) 수정 2019.04.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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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두 정상이 첫 악수를 하기 약 7초 전 사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쪽에서 내려오고, 문재인 대통령은 남쪽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숨죽이고 주목한 이 순간, 마치 '옥에 티'처럼 두 정상의 동선에 걸린 딱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입니다.

시청자들은 무심코 지나갔을 이 장면을 보면서 "어, 어, 큰일 났다" 하면서 마음을 졸였던 사람.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보도 실무를 총괄했던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함께 일 년 전 그날, 몇 장면을 되짚어봤습니다.

판문점에서 남측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맨 왼쪽이 권혁기 당시 춘추관장판문점에서 남측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맨 왼쪽이 권혁기 당시 춘추관장

남쪽으로 직진하던 김영철…"큰일 났다!"

"어, 큰일 났다, 어떡하지. 나라도 뛰어 올라가야 하나. 그 짧은 찰나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정상회담을 어떻게 생중계할 것이냐를 두고 수차례 협의를 했던 남북 실무진들이 가장 신경 쓴 건 역시 두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 악수 장면이었습니다.

보통 정상이 동선을 확정하면 경호실장, 안보실장, 비서실장 등 최소 근접수행원들도 함께 움직이는데, 그렇게 되면 생중계 화면에 여러 명이 등장하게 되죠. 그래서 첫 만남엔 두 정상의 표정, 몸짓까지 생생히 전달될 수 있게 양측 수행원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 있기로 했습니다.

최소한의 근접 경호도 없이 두 정상만 군사분계선에 서 있는 거라, 북측은 물론 우리 측 관계자들도 설득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약속대로 남측 수행원들은 멀찌감치 '자유의 집' 앞에 서 있었고, 문 대통령만 군사분계선 앞에 서서 김정은 위원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북측 판문각 문이 열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만 쭉 직진으로 내려오고 나머지 북측 수행원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와야 하는데, 수행원 중 딱 한 사람, 김영철 부위원장은 군사분계선 근처까지 김 위원장 옆에서 같이 걸어왔습니다. 잠시 사전 조율된 동선을 잊었는지, 두 정상의 동선에 딱 걸려버린 거죠.

그러나 잠시 당황한 듯 보였던 김영철 부위원장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안내를 받고, 원래 약속한 오른쪽 방향으로 황급히 돌아갔고, 오로지 두 정상만 서서 악수를 나누는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두 정상, 벌에 쏘이면 '대형 사고'…해충까지 점검

두 정상의 첫 만남, 의장대 사열, '자유의 집' 정상회담까지는 남북이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이 가능한 일정이었다면, 도보다리 산책 일정은 오로지 두 정상에게 맡긴 일정이었다고 합니다.

오후 단독 회담을 시작하기 전 편하게 산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잡아놓은 일정인데, 두 정상이 얼마나 길게 산책을 할지, 준비해놓은 테이블에 앉아서 실제 대화를 할지,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땐 걸어서 갈지, 이동 카트를 타고 갈지 사전 준비 단계에선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도보다리 쪽이 사람 왕래가 거의 없는 지대기 때문에 혹시 있을 수 있는 벌이라든가 해충 이런 것까지 다 점검했죠. 거긴 사람이 거의 왕래하지 않아서 '준 정글'같은 곳이에요. 혹시라도 두 정상 중 한 명이 벌에 쏘이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니까요."

두 정상이 야외에서 오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실무진은 벌, 해충까지도 점검했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진단을 맡겨서 점검했는데 "벌에 쏘일 가능성이 제로라고 볼 순 없지만, 사람을 공격할만한 개체 수는 아닌 것 같다"는 전문가의 진단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세심한 준비 덕분인지, 새 소리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던 도보다리 회담에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고요, 해충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베테랑 외교관' 김창선, "냉면 맛 안타깝다."

그날, 화기애애했던 만찬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 대통령이 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을 제안하자 북측은 판문점에 제면기를 공수하고, 옥류관 수석 요리사까지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는데요.

문 대통령과 남측 수행원들은 냉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데, 정작 북측 김창선 부장은 성에 안 찼나 봅니다. '제대로 맛을 냈을까' 직접 냉면을 시식해보더니 "평양 옥류관에서 만든 맛이 백 퍼센트 재현 안 된 것 같아서 안타깝고 아쉽다"고 했다니 말이죠.

권 전 관장은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김창선 부장을 '베테랑 외교관' '준비된 의전 외교관'으로 표현하며 "매우 꼼꼼한 분"이라고 기억했습니다. 남측이 준비한 의전, 경호, 보도 준비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을 하면, 김 부장은 논의를 거쳐 90%를 수용하는 형태로 실무 회담이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합니다.


뜨거웠던 4.27…4번째 정상회담은 언제?

이렇게 '뜨거웠던' 4.27 판문점 회담은 벌써 일 년 전 일입니다. 한반도 상황은 그 사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북 정상은 그 뒤로도 2번이나 더 만났고, 북미 회담도 2차례 열렸죠. 그러나 비핵화 협상은 다시 안갯속이고, 대화 동력을 만들기 위해 문 대통령이 제안한 4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는 상황. 두 정상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북한 사회 특성상 빠르다, 이르다를 우리 남한의 속도로 재면 안 돼요. 북한은 북한대로의 시간 관리, 속도가 있거든요. 북한도 4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시기, 장소 구분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믿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3차례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맡았던 권 전 관장의 진단대로, 더 늦지 않은 시기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린 일 년 전 판문점에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 아직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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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7 07:25:45
    • 수정2019-04-27 08: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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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두 정상이 첫 악수를 하기 약 7초 전 사진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쪽에서 내려오고, 문재인 대통령은 남쪽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숨죽이고 주목한 이 순간, 마치 '옥에 티'처럼 두 정상의 동선에 걸린 딱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입니다.

시청자들은 무심코 지나갔을 이 장면을 보면서 "어, 어, 큰일 났다" 하면서 마음을 졸였던 사람.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보도 실무를 총괄했던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함께 일 년 전 그날, 몇 장면을 되짚어봤습니다.

판문점에서 남측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맨 왼쪽이 권혁기 당시 춘추관장
남쪽으로 직진하던 김영철…"큰일 났다!"

"어, 큰일 났다, 어떡하지. 나라도 뛰어 올라가야 하나. 그 짧은 찰나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정상회담을 어떻게 생중계할 것이냐를 두고 수차례 협의를 했던 남북 실무진들이 가장 신경 쓴 건 역시 두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 악수 장면이었습니다.

보통 정상이 동선을 확정하면 경호실장, 안보실장, 비서실장 등 최소 근접수행원들도 함께 움직이는데, 그렇게 되면 생중계 화면에 여러 명이 등장하게 되죠. 그래서 첫 만남엔 두 정상의 표정, 몸짓까지 생생히 전달될 수 있게 양측 수행원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 있기로 했습니다.

최소한의 근접 경호도 없이 두 정상만 군사분계선에 서 있는 거라, 북측은 물론 우리 측 관계자들도 설득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약속대로 남측 수행원들은 멀찌감치 '자유의 집' 앞에 서 있었고, 문 대통령만 군사분계선 앞에 서서 김정은 위원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북측 판문각 문이 열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만 쭉 직진으로 내려오고 나머지 북측 수행원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와야 하는데, 수행원 중 딱 한 사람, 김영철 부위원장은 군사분계선 근처까지 김 위원장 옆에서 같이 걸어왔습니다. 잠시 사전 조율된 동선을 잊었는지, 두 정상의 동선에 딱 걸려버린 거죠.

그러나 잠시 당황한 듯 보였던 김영철 부위원장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안내를 받고, 원래 약속한 오른쪽 방향으로 황급히 돌아갔고, 오로지 두 정상만 서서 악수를 나누는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두 정상, 벌에 쏘이면 '대형 사고'…해충까지 점검

두 정상의 첫 만남, 의장대 사열, '자유의 집' 정상회담까지는 남북이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이 가능한 일정이었다면, 도보다리 산책 일정은 오로지 두 정상에게 맡긴 일정이었다고 합니다.

오후 단독 회담을 시작하기 전 편하게 산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잡아놓은 일정인데, 두 정상이 얼마나 길게 산책을 할지, 준비해놓은 테이블에 앉아서 실제 대화를 할지,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땐 걸어서 갈지, 이동 카트를 타고 갈지 사전 준비 단계에선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도보다리 쪽이 사람 왕래가 거의 없는 지대기 때문에 혹시 있을 수 있는 벌이라든가 해충 이런 것까지 다 점검했죠. 거긴 사람이 거의 왕래하지 않아서 '준 정글'같은 곳이에요. 혹시라도 두 정상 중 한 명이 벌에 쏘이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니까요."

두 정상이 야외에서 오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실무진은 벌, 해충까지도 점검했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진단을 맡겨서 점검했는데 "벌에 쏘일 가능성이 제로라고 볼 순 없지만, 사람을 공격할만한 개체 수는 아닌 것 같다"는 전문가의 진단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세심한 준비 덕분인지, 새 소리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던 도보다리 회담에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고요, 해충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베테랑 외교관' 김창선, "냉면 맛 안타깝다."

그날, 화기애애했던 만찬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 대통령이 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을 제안하자 북측은 판문점에 제면기를 공수하고, 옥류관 수석 요리사까지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는데요.

문 대통령과 남측 수행원들은 냉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데, 정작 북측 김창선 부장은 성에 안 찼나 봅니다. '제대로 맛을 냈을까' 직접 냉면을 시식해보더니 "평양 옥류관에서 만든 맛이 백 퍼센트 재현 안 된 것 같아서 안타깝고 아쉽다"고 했다니 말이죠.

권 전 관장은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김창선 부장을 '베테랑 외교관' '준비된 의전 외교관'으로 표현하며 "매우 꼼꼼한 분"이라고 기억했습니다. 남측이 준비한 의전, 경호, 보도 준비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을 하면, 김 부장은 논의를 거쳐 90%를 수용하는 형태로 실무 회담이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합니다.


뜨거웠던 4.27…4번째 정상회담은 언제?

이렇게 '뜨거웠던' 4.27 판문점 회담은 벌써 일 년 전 일입니다. 한반도 상황은 그 사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북 정상은 그 뒤로도 2번이나 더 만났고, 북미 회담도 2차례 열렸죠. 그러나 비핵화 협상은 다시 안갯속이고, 대화 동력을 만들기 위해 문 대통령이 제안한 4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는 상황. 두 정상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북한 사회 특성상 빠르다, 이르다를 우리 남한의 속도로 재면 안 돼요. 북한은 북한대로의 시간 관리, 속도가 있거든요. 북한도 4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시기, 장소 구분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믿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3차례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맡았던 권 전 관장의 진단대로, 더 늦지 않은 시기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린 일 년 전 판문점에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 아직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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