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저는 복제로 만들어진 개, 다솔입니다

입력 2019.04.27 (13:35) 수정 2019.04.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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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인 복제견 다솔이가 실종자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저는 스패니얼 '다솔'입니다. 2013년 6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태어났죠. 엄마 배에서 태어났지만, 정자를 준 아빠는 없어요. 복제견이기 때문이죠. 대신 저에게 DNA를 준 엄마(공여견)와 길러준 엄마(대리모견), 이렇게 엄마가 둘이나 있답니다. 공여견의 DNA를 심은 난자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서 제가 태어났대요.

제가 태어난 날 '동해'도 태어났어요. 역시 복제견이죠. 우리는 산에서 실종자를 구조하는 인명구조견이 되기 위해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로 보내졌어요. 인명구조견이 되려면 약 2년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데, 연구원 사람들은 우리가 뛰어난 엄마의 DNA를 가졌으니 훌륭하게 훈련에 통과할 거라고 했어요.

이곳 중앙119구조본부엔 저와 '동해' 이전에 우리와 같은 복제견이 4마리 왔었대요. 모두 6마리가 온 셈이네요. 두 마리는 2012년 11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저를 포함한 4마리는 2013년 수암 연구원에서 만들어졌어요.

농촌진흥청은 2012년 11월 인명구조견 ‘백두’의 복제견 두 마리를 탄생시켜 소방청에 이관했다.농촌진흥청은 2012년 11월 인명구조견 ‘백두’의 복제견 두 마리를 탄생시켜 소방청에 이관했다.

처음 농진청에서 온 '천지'와 '비룡'이는 인명구조견 훈련에 통과하지 못했대요. '고관절 이형성'이라는 질환이 나타나 다리를 절뚝거렸기 때문에요. 이 병은 '천지'와 '비룡'이의 공여견인 '백두'에게선 나타나지 않았지만 '백두'의 선대에 질환이 있었을 거라고 해요.

그리곤 저처럼 수암 연구원에서 태어난 '나라'와 '누리'가 왔다고 해요. '나라'는 훈련에 통과했지만 역시 '고관절 이형성'이 드러나 일반 가정에 분양됐고, '누리'는 급성 장출혈 패혈증으로 폐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6마리 중 4마리가 떠나고 제 곁엔 '동해'만 남았는데, '동해'가 급성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동해'는 연구원으로 보내졌지만 결국 폐사했다고 해요. 이곳의 복제견 이제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를 어엿한 인명구조견으로 만들어준 훈련관은 저를 끝으로 더이상 복제견을 받지 않았어요. 훈련관이 "복제견이 일반견보다 특별히 우수한 점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이제 제 동료들은 모두 엄마 개와 아빠 개가 교배해 태어난 개들입니다.

복제견에서 우수성을 찾지 못한 건 저의 훈련관 뿐만이 아닙니다. 경찰견 핸들러(운용 요원)들도 똑같이 말했다고 하네요. 경찰은 폭발물 탐지 등에 특수목적견을 운용하는데, 제가 태어난 수암 연구원과 농촌진흥청에서 2016년까지 복제견을 받았어요. 그런데 핸들러들은 복제견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평가했어요.


저로 말하자면, 늠름한 인명구조견이랍니다. 이제 6살인데 능력을 인정받아 조만간 중앙119구조본부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현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은 2년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곳 중앙119구조본부에선 인명구조견이 8살이 되면 무조건 은퇴를 시키고 반려견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분양하거든요. 국가에 사역한 개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죠.


그런데 최근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어요. 저처럼 복제된 '메이'가 실험을 받다 죽었다는 소식이에요. 서울대학교와 농림축산식품부의 특수목적견 복제 사업의 일환이라죠. 정부 사업을 위해서 복제되고, 일하다, 결국 실험까지 받고 죽었네요.

다행인 건 서울대와 농식품부가 조사에 착수했다는 거예요. '메이'의 죽음에 학대는 없었는지, 우리처럼 국가에 사역하는 동물을 실험하는 데 적절한 절차를 지킨 것인지 조사한다는 거겠죠. 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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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저는 복제로 만들어진 개, 다솔입니다
    • 입력 2019-04-27 13:35:47
    • 수정2019-04-27 13:54:20
    취재후·사건후
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인 복제견 다솔이가 실종자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저는 스패니얼 '다솔'입니다. 2013년 6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태어났죠. 엄마 배에서 태어났지만, 정자를 준 아빠는 없어요. 복제견이기 때문이죠. 대신 저에게 DNA를 준 엄마(공여견)와 길러준 엄마(대리모견), 이렇게 엄마가 둘이나 있답니다. 공여견의 DNA를 심은 난자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서 제가 태어났대요.

제가 태어난 날 '동해'도 태어났어요. 역시 복제견이죠. 우리는 산에서 실종자를 구조하는 인명구조견이 되기 위해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로 보내졌어요. 인명구조견이 되려면 약 2년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데, 연구원 사람들은 우리가 뛰어난 엄마의 DNA를 가졌으니 훌륭하게 훈련에 통과할 거라고 했어요.

이곳 중앙119구조본부엔 저와 '동해' 이전에 우리와 같은 복제견이 4마리 왔었대요. 모두 6마리가 온 셈이네요. 두 마리는 2012년 11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저를 포함한 4마리는 2013년 수암 연구원에서 만들어졌어요.

농촌진흥청은 2012년 11월 인명구조견 ‘백두’의 복제견 두 마리를 탄생시켜 소방청에 이관했다.
처음 농진청에서 온 '천지'와 '비룡'이는 인명구조견 훈련에 통과하지 못했대요. '고관절 이형성'이라는 질환이 나타나 다리를 절뚝거렸기 때문에요. 이 병은 '천지'와 '비룡'이의 공여견인 '백두'에게선 나타나지 않았지만 '백두'의 선대에 질환이 있었을 거라고 해요.

그리곤 저처럼 수암 연구원에서 태어난 '나라'와 '누리'가 왔다고 해요. '나라'는 훈련에 통과했지만 역시 '고관절 이형성'이 드러나 일반 가정에 분양됐고, '누리'는 급성 장출혈 패혈증으로 폐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6마리 중 4마리가 떠나고 제 곁엔 '동해'만 남았는데, '동해'가 급성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동해'는 연구원으로 보내졌지만 결국 폐사했다고 해요. 이곳의 복제견 이제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를 어엿한 인명구조견으로 만들어준 훈련관은 저를 끝으로 더이상 복제견을 받지 않았어요. 훈련관이 "복제견이 일반견보다 특별히 우수한 점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이제 제 동료들은 모두 엄마 개와 아빠 개가 교배해 태어난 개들입니다.

복제견에서 우수성을 찾지 못한 건 저의 훈련관 뿐만이 아닙니다. 경찰견 핸들러(운용 요원)들도 똑같이 말했다고 하네요. 경찰은 폭발물 탐지 등에 특수목적견을 운용하는데, 제가 태어난 수암 연구원과 농촌진흥청에서 2016년까지 복제견을 받았어요. 그런데 핸들러들은 복제견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평가했어요.


저로 말하자면, 늠름한 인명구조견이랍니다. 이제 6살인데 능력을 인정받아 조만간 중앙119구조본부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현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은 2년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곳 중앙119구조본부에선 인명구조견이 8살이 되면 무조건 은퇴를 시키고 반려견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분양하거든요. 국가에 사역한 개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죠.


그런데 최근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어요. 저처럼 복제된 '메이'가 실험을 받다 죽었다는 소식이에요. 서울대학교와 농림축산식품부의 특수목적견 복제 사업의 일환이라죠. 정부 사업을 위해서 복제되고, 일하다, 결국 실험까지 받고 죽었네요.

다행인 건 서울대와 농식품부가 조사에 착수했다는 거예요. '메이'의 죽음에 학대는 없었는지, 우리처럼 국가에 사역하는 동물을 실험하는 데 적절한 절차를 지킨 것인지 조사한다는 거겠죠. 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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