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 번의 기회’ 놓친 박유천…스스로 무너뜨린 15년 공든탑

입력 2019.04.30 (09:07) 수정 2019.04.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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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결코 하지 않았다던 가수 박유천 씨가 혐의를 인정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지 19일 만이다.

지난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기자회견, 압수수색, 세 차례 경찰 조사, 구속영장 신청, 구속영장심사 등의 일정이 숨 가쁘게 이어졌고, 그 끝에서 믹키유천은 '마약유천'이 됐다.

마약 의혹이 불거졌을 땐 당당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던 박 씨는 이제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남았다. 돌아보면 '3번의 기회'를 놓친 박 씨 스스로 불러온 일이다.

첫 번째 기회: 기자회견
박 씨가 마약 혐의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10일이다. 그에 앞서 연인이었던 황하나 씨가 지난 4일 마약 혐의로 구속 후에 박 씨를 마약 공범으로 지목하면서 박 씨는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박 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박 씨는 "나는 결코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렇게 마약을 한 사람이 되는 건가 두려움에 휩싸였다"며 기자회견 이유를 밝혔다.

이어 "기사로 (황하나 씨 마약 사건을) 접하고 많이 놀랐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하지만 마약을 한 적도 없고 (황 씨에게) 권유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이 기자회견에서 결별 이후 황 씨에게 협박을 받아왔다면서, 자신을 마약 공범으로 지목한 황 씨를 탓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경찰 조사 전에 이뤄져서 박 씨가 결백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박 씨는 '결백 기자회견'을 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이때 황 씨의 진술을 토대로 박 씨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 씨는 무모한 기자회견을 한 셈이 됐다. 기자회견에서 마약을 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면 그래도 솔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첫 번째 기회는 이렇게 날아갔다.

박유천 씨가 지난 17일 1차 경찰 조사에 앞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박유천 씨가 지난 17일 1차 경찰 조사에 앞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기회: 경찰 조사
경찰 조사는 두 번째 기회였다. 박 씨는 지난 16일 압수수색을 당했고, 17일과 18일, 22일에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를 들이댔다. 황 씨가 마약 구매·투약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서 경찰은 짧은 시간에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증거에는 박 씨가 텔레그램으로 마약 판매상과 접촉한 정황,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고 20여 분 뒤 특정 장소로 가서 물건을 찾는 영상 등이 포함됐다. 마약 판매상과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실제 만남은 없이 마약을 주고받는 전형적인 '던지기 수법'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사 결과 빼고는 증거가 다 나왔다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그럼에도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무슨 물건인지 모르고 황 씨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며 마약 구매는 황 씨에게 넘겼다. 경찰이 마약 투약 흔적으로 판단한 오른손의 상처는 다친 것이라고 버텼다. 경찰 조사 전 다리털을 제외한 털을 모두 제모한 것에 대해선 연예 활동 때는 제모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기회: 구속영장심사
경찰은 3차 조사 다음 날인 지난 2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조사는 5시간 만에 끝났는데, 사실 경찰은 이날 박 씨의 진술을 들어볼 필요가 없었다.

경찰은 지난 16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 씨의 머리카락과 다리털, 소변을 채취했다. 국과수의 소변 간이 검사에서는 마약 음성반응이 나왔고, 머리카락과 다리털은 정밀 검사를 맡겼다.

경찰은 국과수에 긴급 검사 요청을 했고, 검사 결과는 사흘 만인 지난 19일 오후 나왔다. 마약 양성반응이었다. 경찰은 22일 3차 조사 때 박 씨를 서둘러 돌려보내고, 다음 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유천 씨가 지난 26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박유천 씨가 지난 26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박 씨는 마약 양성반응에도 혐의를 부인했다. 구속영장심사에서도 "왜 몸에서 필로폰이 검출됐는지 모르겠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필로폰은 검출됐지만, 마약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몇 해 전 한 가수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조롱거리가 된 일이 떠올랐다.

박 씨는 더는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인 국과수 검사 결과 앞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이 무렵 팬들을 비롯해 대중들은 박 씨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혐의를 인정할 마지막 기회도 박 씨가 스스로 날렸다.

2004년 '동방신기'로 데뷔한 박 씨는 'H.O.T' 등 1세대 아이돌에 이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끈 '2세대 아이돌'이다. 소속사 문제로 그룹이 쪼개졌지만, 몇 년 전부터는 연기자로 변신해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16년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사회복무요원 근무 이후 지난달에도 국내와 일본에서 콘서트를 하며 활발한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마약 혐의에 연루된 이후 진실을 고백할 기회를 잇달아 차버리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가수와 연기자로 쌓은 15년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린 자리엔 연기자로서 마지막 작품은 마약 혐의를 부인한 기자회견이었다는 씁쓸한 냉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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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세 번의 기회’ 놓친 박유천…스스로 무너뜨린 15년 공든탑
    • 입력 2019-04-30 09:07:30
    • 수정2019-04-30 09:08:44
    취재후·사건후
마약을 결코 하지 않았다던 가수 박유천 씨가 혐의를 인정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지 19일 만이다.

지난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기자회견, 압수수색, 세 차례 경찰 조사, 구속영장 신청, 구속영장심사 등의 일정이 숨 가쁘게 이어졌고, 그 끝에서 믹키유천은 '마약유천'이 됐다.

마약 의혹이 불거졌을 땐 당당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던 박 씨는 이제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남았다. 돌아보면 '3번의 기회'를 놓친 박 씨 스스로 불러온 일이다.

첫 번째 기회: 기자회견
박 씨가 마약 혐의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10일이다. 그에 앞서 연인이었던 황하나 씨가 지난 4일 마약 혐의로 구속 후에 박 씨를 마약 공범으로 지목하면서 박 씨는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박 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박 씨는 "나는 결코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렇게 마약을 한 사람이 되는 건가 두려움에 휩싸였다"며 기자회견 이유를 밝혔다.

이어 "기사로 (황하나 씨 마약 사건을) 접하고 많이 놀랐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하지만 마약을 한 적도 없고 (황 씨에게) 권유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이 기자회견에서 결별 이후 황 씨에게 협박을 받아왔다면서, 자신을 마약 공범으로 지목한 황 씨를 탓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경찰 조사 전에 이뤄져서 박 씨가 결백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박 씨는 '결백 기자회견'을 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이때 황 씨의 진술을 토대로 박 씨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 씨는 무모한 기자회견을 한 셈이 됐다. 기자회견에서 마약을 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면 그래도 솔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첫 번째 기회는 이렇게 날아갔다.

박유천 씨가 지난 17일 1차 경찰 조사에 앞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기회: 경찰 조사
경찰 조사는 두 번째 기회였다. 박 씨는 지난 16일 압수수색을 당했고, 17일과 18일, 22일에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를 들이댔다. 황 씨가 마약 구매·투약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서 경찰은 짧은 시간에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증거에는 박 씨가 텔레그램으로 마약 판매상과 접촉한 정황,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고 20여 분 뒤 특정 장소로 가서 물건을 찾는 영상 등이 포함됐다. 마약 판매상과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실제 만남은 없이 마약을 주고받는 전형적인 '던지기 수법'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사 결과 빼고는 증거가 다 나왔다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그럼에도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무슨 물건인지 모르고 황 씨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며 마약 구매는 황 씨에게 넘겼다. 경찰이 마약 투약 흔적으로 판단한 오른손의 상처는 다친 것이라고 버텼다. 경찰 조사 전 다리털을 제외한 털을 모두 제모한 것에 대해선 연예 활동 때는 제모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기회: 구속영장심사
경찰은 3차 조사 다음 날인 지난 2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조사는 5시간 만에 끝났는데, 사실 경찰은 이날 박 씨의 진술을 들어볼 필요가 없었다.

경찰은 지난 16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 씨의 머리카락과 다리털, 소변을 채취했다. 국과수의 소변 간이 검사에서는 마약 음성반응이 나왔고, 머리카락과 다리털은 정밀 검사를 맡겼다.

경찰은 국과수에 긴급 검사 요청을 했고, 검사 결과는 사흘 만인 지난 19일 오후 나왔다. 마약 양성반응이었다. 경찰은 22일 3차 조사 때 박 씨를 서둘러 돌려보내고, 다음 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유천 씨가 지난 26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박 씨는 마약 양성반응에도 혐의를 부인했다. 구속영장심사에서도 "왜 몸에서 필로폰이 검출됐는지 모르겠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필로폰은 검출됐지만, 마약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몇 해 전 한 가수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조롱거리가 된 일이 떠올랐다.

박 씨는 더는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인 국과수 검사 결과 앞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이 무렵 팬들을 비롯해 대중들은 박 씨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혐의를 인정할 마지막 기회도 박 씨가 스스로 날렸다.

2004년 '동방신기'로 데뷔한 박 씨는 'H.O.T' 등 1세대 아이돌에 이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끈 '2세대 아이돌'이다. 소속사 문제로 그룹이 쪼개졌지만, 몇 년 전부터는 연기자로 변신해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16년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사회복무요원 근무 이후 지난달에도 국내와 일본에서 콘서트를 하며 활발한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마약 혐의에 연루된 이후 진실을 고백할 기회를 잇달아 차버리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가수와 연기자로 쌓은 15년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린 자리엔 연기자로서 마지막 작품은 마약 혐의를 부인한 기자회견이었다는 씁쓸한 냉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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