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청와대 홍위병’ 만드는 제도일까?

입력 2019.04.30 (15:38) 수정 2019.04.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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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에게 홍위병까지 선사할 공수처법은 부패척결의 칼이 아닌 정치보복의 칼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어제(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날 국회 긴급기자회견에서도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의 홍위병을 만드는 제도"라며 "공수처 검사와 공수처장은 누가 지명하나? 거기서 답이 나온다. 청와대가 하명하는 (또 다른) 검찰을 만들어서 검경과 모든 정치인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법을 "대통령 마음대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법"으로 규정했다.

오늘(30일) 새벽 여야 4당의 공수처 법안이 선거제 개편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전격 지정되자 황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좌파독재의 길이 열렸다. 국민을 위한 정의의 횃불을 들자."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밝혔다.
(▶관련 기사 보기: 패스트트랙 올라탄 선거법·공수처법)

한국당 주장처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도입되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홍위병'으로 전락하고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큰 것일까? 여당이 제출한 공수처 법안과 최근 여야 4당이 합의한 안, 바른미래당이 별도로 낸 법안 내용을 통해 따져봤다.


`반쪽'으로 쪼그라든 공수처 원안

공수처 설립의 목적은 독립된 기관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그 친인척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히 수사해 기소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불편부당한 수사와 기소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반복된 데 따른 것이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1996년 15대 국회 때 처음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동안 여야 간 이견이 팽팽해 매번 좌절됐다. 공수처 설치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께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핵심으로 꼽힌다.

민주당이 낸 원안은 `고위공직자'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과 대법원장, 대법관, 각 부처 장·차관, 군 장성, 국정원 고위간부, 검찰총장 등 행정·사법·입법부의 고위공직자가 두루 포함됐다. 고위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도 직무 관련 부정부패 수사의 대상으로 적시됐다. 대통령의 경우에는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까지 확대돼 적용된다. 전체 수사 대상은 대략 7천 명 정도다.

3년 임기의 공수처장 임명은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공수처 검사(3년 임기)는 공수처 인사위원회(이하 인사위)의 추천을 통해야 한다.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추천위는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3명을 당연직으로 하고 국회에서 추천한 4명을 합쳐 7명으로 구성된다.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추천위가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하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최종 1인을 선정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공수처 검사는 5년 이상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에서 인사위 추천을 거쳐 처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인사위는 처장과 차장, 법무부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국회의장과 각 교섭단체대표 의원이 협의해 추천한 3명 등 7명으로 구성한다. 인사위 의결 역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지난 22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지난 22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협의 과정에서 수사 대상을 대폭 축소하고 공수처의 기소권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공수처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는 야당의 반발에 따른 조치였다.

합의된 안에 따르면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이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7천 명에 달했던 수사대상은 5천 명 수준으로 좁혀졌다.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고위층 권력자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으로서의 본래 기능에서 상당 부분 후퇴한 것이다.

더불어 공수처는 수사 중인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제한적인 기소권을 주는 대신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재정신청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재정신청은 검찰 결정에 불복해 법원을 통해 재차 기소 여부를 묻는 절차로, 공수처가 검찰의 기소권을 간접적으로 견제하는 장치로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공수처장을 추천하는 과정도 더욱 엄격하게 했다. 당연직 3명을 제외하면 국회에서 4명을 추천하기로 했던 모호한 규정을 여야가 각각 두 명씩 배정하는 것으로 구체화했고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은 위원 5분의 4이상(6명 이상)이 동의를 얻는 조건으로 대폭 강화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당연직 3명과 여당 몫 2명 등 5명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채워진다 해도 야당 몫 위원 2명이 반대하면 처장 추천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공수처', `누더기 공수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선거법과 수사권 조정이라는 연계된 입법 과제의 실현을 위해 한 발짝 물러서는 전략을 택했다.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합의했지만 한국당은 현 정권이 '옥상옥'인 공수처를 통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려 한다는 논리로 '절대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국회에서 여야 간 몸싸움이 진행되던 중 부상자가 119구급대에 실려 나가고 있다.국회에서 여야 간 몸싸움이 진행되던 중 부상자가 119구급대에 실려 나가고 있다.

5일간의 `동물국회'…더 엄격해진 공수처법 등장

하지만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을 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이 4박 5일 동안 법안 접수를 막으면서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고 국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기 때문이다.

극심한 진통 끝에 바른미래당은 더욱 엄격해진 공수처 법안을 별도로 내놨다. 바른미래당은 여야가 해당 안을 수용해야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고 배수진을 쳤고, 결국 여야 3당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은 앞서 여야 4당이 합의한 안과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공수처의 구체적인 명칭을 기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아닌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부패 범죄에 초점을 맞췄고, 공수처의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기소심의원회를 두고, 국회 동의를 통해 공수처장을 임명하는 내용이 담겨 차이를 보였다.

기소심의위원회는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해 처장이 위촉한 7~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하려면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법정에서 유무죄 여부를 배심원이 판단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기소심의위에 재판에 넘길지 말지 여부를 묻는 건데 검사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공수처장 임명 방식도 한층 강화됐다. 기존 안은 추천위가 추천한 2명의 후보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수 있게 했지만, 권 의원 발의안은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청문회를 거친 후 국회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했다. 국회동의가 없어도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현 인사청문회 시스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공수처 검사 임명도 기존 합의안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지만, 권 의원 안에서는 공수처장이 직접 임명하도록 했다. 그만큼 인사 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을 최대한 덜어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패스트트랙에는 여야 4당이 합의한 안과 권은희 의원 안이 모두 올라갔다. 여야 4당은 본회의 상정 때까지 두 법안을 함께 심사해 단일안을 도출해 의결할 수도 있지만, 끝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두 개 법안이 동시에 올라가 의원들의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전격 지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이 격하게 항의하고 있다.국회 정개특위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전격 지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이 격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국당 "청와대 홍위병" 주장은 설득력 떨어져

한국당은 공수처가 결국 청와대 홍위병 노릇을 해 독재의 수단으로 쓰일 것을 염려하고 있지만, 본회의 표결에 올려질 법안 내용들을 살펴보면 과도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이 발의한 원안은 여야 4당 원내대표 간 합의 과정에서 `반쪽짜리 공수처'라는 비판을 얻을 정도로 그 내용면에서 상당 부분 후퇴했다. 공수처장의 임명 조건과 기소권한이 대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여야 4당 합의안을 따를 경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악의 경우를 산정해도 추천위 7명 중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처장 추천을 할 수 없다. 야당 추천위원 2명 중 1명이 친여 성향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추천위원 6명이 여론을 무시하고 야합해 결정할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는 게 여야 4당의 입장이다. 만약 국회 동의를 필수로 하는 권은희 의원 안이 최종 선택될 경우 공수처장 임명 과정은 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도 원안에서 상당 부분 축소됐다.

한국당은 공수처법이 "모든 정치인을 통제하려는 법", "대통령 마음대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법",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려는 법"이라며 경계하고 있지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됐고, 권 의원 안에 따르면 기소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야 해서 기소권 행사는 한층 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만 공수처가 정치인에 대해 기소는 하지 못하더라도 고위공직자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되거나 인지했을 때 수사를 개시할 수는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면 최장 330일에 달하는 패스트트랙 기간 중에 여야 간 합의를 통해 관련 보완책이나 견제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공수처장 임명 방식이나 전반적인 운용 방식에서 제기될 수 있는 다른 우려점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최종 본회의 표결 단계에서 실제로 공수처법이 통과될지 여부도 장담할 순 없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는 합의했지만,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개별 의원들이 있고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배에 따라 표심도 충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공수처는 청와대 홍위병을 만드는 제도"라는 한국당 주장이 폭넓은 설득력을 얻기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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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수처는 ‘청와대 홍위병’ 만드는 제도일까?
    • 입력 2019-04-30 15:38:05
    • 수정2019-04-30 17:09:15
    취재K
"제왕적 대통령에게 홍위병까지 선사할 공수처법은 부패척결의 칼이 아닌 정치보복의 칼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어제(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날 국회 긴급기자회견에서도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의 홍위병을 만드는 제도"라며 "공수처 검사와 공수처장은 누가 지명하나? 거기서 답이 나온다. 청와대가 하명하는 (또 다른) 검찰을 만들어서 검경과 모든 정치인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법을 "대통령 마음대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법"으로 규정했다.

오늘(30일) 새벽 여야 4당의 공수처 법안이 선거제 개편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전격 지정되자 황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좌파독재의 길이 열렸다. 국민을 위한 정의의 횃불을 들자."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밝혔다.
(▶관련 기사 보기: 패스트트랙 올라탄 선거법·공수처법)

한국당 주장처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도입되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홍위병'으로 전락하고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큰 것일까? 여당이 제출한 공수처 법안과 최근 여야 4당이 합의한 안, 바른미래당이 별도로 낸 법안 내용을 통해 따져봤다.


`반쪽'으로 쪼그라든 공수처 원안

공수처 설립의 목적은 독립된 기관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그 친인척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히 수사해 기소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불편부당한 수사와 기소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반복된 데 따른 것이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1996년 15대 국회 때 처음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동안 여야 간 이견이 팽팽해 매번 좌절됐다. 공수처 설치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께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핵심으로 꼽힌다.

민주당이 낸 원안은 `고위공직자'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과 대법원장, 대법관, 각 부처 장·차관, 군 장성, 국정원 고위간부, 검찰총장 등 행정·사법·입법부의 고위공직자가 두루 포함됐다. 고위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도 직무 관련 부정부패 수사의 대상으로 적시됐다. 대통령의 경우에는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까지 확대돼 적용된다. 전체 수사 대상은 대략 7천 명 정도다.

3년 임기의 공수처장 임명은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공수처 검사(3년 임기)는 공수처 인사위원회(이하 인사위)의 추천을 통해야 한다.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추천위는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3명을 당연직으로 하고 국회에서 추천한 4명을 합쳐 7명으로 구성된다.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추천위가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하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최종 1인을 선정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공수처 검사는 5년 이상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에서 인사위 추천을 거쳐 처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인사위는 처장과 차장, 법무부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국회의장과 각 교섭단체대표 의원이 협의해 추천한 3명 등 7명으로 구성한다. 인사위 의결 역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지난 22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협의 과정에서 수사 대상을 대폭 축소하고 공수처의 기소권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공수처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는 야당의 반발에 따른 조치였다.

합의된 안에 따르면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이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7천 명에 달했던 수사대상은 5천 명 수준으로 좁혀졌다.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고위층 권력자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으로서의 본래 기능에서 상당 부분 후퇴한 것이다.

더불어 공수처는 수사 중인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제한적인 기소권을 주는 대신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재정신청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재정신청은 검찰 결정에 불복해 법원을 통해 재차 기소 여부를 묻는 절차로, 공수처가 검찰의 기소권을 간접적으로 견제하는 장치로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공수처장을 추천하는 과정도 더욱 엄격하게 했다. 당연직 3명을 제외하면 국회에서 4명을 추천하기로 했던 모호한 규정을 여야가 각각 두 명씩 배정하는 것으로 구체화했고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은 위원 5분의 4이상(6명 이상)이 동의를 얻는 조건으로 대폭 강화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당연직 3명과 여당 몫 2명 등 5명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채워진다 해도 야당 몫 위원 2명이 반대하면 처장 추천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공수처', `누더기 공수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선거법과 수사권 조정이라는 연계된 입법 과제의 실현을 위해 한 발짝 물러서는 전략을 택했다.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합의했지만 한국당은 현 정권이 '옥상옥'인 공수처를 통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려 한다는 논리로 '절대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국회에서 여야 간 몸싸움이 진행되던 중 부상자가 119구급대에 실려 나가고 있다.
5일간의 `동물국회'…더 엄격해진 공수처법 등장

하지만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을 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이 4박 5일 동안 법안 접수를 막으면서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고 국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기 때문이다.

극심한 진통 끝에 바른미래당은 더욱 엄격해진 공수처 법안을 별도로 내놨다. 바른미래당은 여야가 해당 안을 수용해야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고 배수진을 쳤고, 결국 여야 3당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은 앞서 여야 4당이 합의한 안과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공수처의 구체적인 명칭을 기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아닌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부패 범죄에 초점을 맞췄고, 공수처의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기소심의원회를 두고, 국회 동의를 통해 공수처장을 임명하는 내용이 담겨 차이를 보였다.

기소심의위원회는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해 처장이 위촉한 7~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하려면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법정에서 유무죄 여부를 배심원이 판단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기소심의위에 재판에 넘길지 말지 여부를 묻는 건데 검사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공수처장 임명 방식도 한층 강화됐다. 기존 안은 추천위가 추천한 2명의 후보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수 있게 했지만, 권 의원 발의안은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청문회를 거친 후 국회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했다. 국회동의가 없어도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현 인사청문회 시스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공수처 검사 임명도 기존 합의안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지만, 권 의원 안에서는 공수처장이 직접 임명하도록 했다. 그만큼 인사 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을 최대한 덜어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패스트트랙에는 여야 4당이 합의한 안과 권은희 의원 안이 모두 올라갔다. 여야 4당은 본회의 상정 때까지 두 법안을 함께 심사해 단일안을 도출해 의결할 수도 있지만, 끝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두 개 법안이 동시에 올라가 의원들의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전격 지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이 격하게 항의하고 있다.
한국당 "청와대 홍위병" 주장은 설득력 떨어져

한국당은 공수처가 결국 청와대 홍위병 노릇을 해 독재의 수단으로 쓰일 것을 염려하고 있지만, 본회의 표결에 올려질 법안 내용들을 살펴보면 과도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이 발의한 원안은 여야 4당 원내대표 간 합의 과정에서 `반쪽짜리 공수처'라는 비판을 얻을 정도로 그 내용면에서 상당 부분 후퇴했다. 공수처장의 임명 조건과 기소권한이 대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여야 4당 합의안을 따를 경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악의 경우를 산정해도 추천위 7명 중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처장 추천을 할 수 없다. 야당 추천위원 2명 중 1명이 친여 성향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추천위원 6명이 여론을 무시하고 야합해 결정할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는 게 여야 4당의 입장이다. 만약 국회 동의를 필수로 하는 권은희 의원 안이 최종 선택될 경우 공수처장 임명 과정은 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도 원안에서 상당 부분 축소됐다.

한국당은 공수처법이 "모든 정치인을 통제하려는 법", "대통령 마음대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법",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려는 법"이라며 경계하고 있지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됐고, 권 의원 안에 따르면 기소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야 해서 기소권 행사는 한층 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만 공수처가 정치인에 대해 기소는 하지 못하더라도 고위공직자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되거나 인지했을 때 수사를 개시할 수는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면 최장 330일에 달하는 패스트트랙 기간 중에 여야 간 합의를 통해 관련 보완책이나 견제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공수처장 임명 방식이나 전반적인 운용 방식에서 제기될 수 있는 다른 우려점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최종 본회의 표결 단계에서 실제로 공수처법이 통과될지 여부도 장담할 순 없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는 합의했지만,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개별 의원들이 있고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배에 따라 표심도 충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공수처는 청와대 홍위병을 만드는 제도"라는 한국당 주장이 폭넓은 설득력을 얻기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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