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와해’ 재판 정말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까?

입력 2019.04.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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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 준비 절차만 10차례 … 재판부조차 "(재판) 해를 넘기는 일 없어야 해"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김경수 지사,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재판까지. 굵직굵직한 피고인들의 재판이 이어지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진 재판이 있습니다. 이른바 '삼성 노조 와해' 재판입니다. 1심이 진행 중인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은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 담당 전무 등 관련 피고인만 30명이 넘는 대규모 재판입니다.

지난해 11월, 무려 10차례의 공판 준비 절차를 거친 끝에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재판부가 바뀌는 등 곡절을 겪으면서, 최 전무가 기소된 지 10개월이 지난 오늘(30일) 14번째 공판까지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단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해를 넘기고 재판부가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보고, (재판부가 바뀌게 되면 ) 판결을 쓰기도 어려워지고 맞지도 않는다"며 "적어도 가을에는 이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삼성 측 "검찰 제출 증거 효력 없어" … 재판부 "증거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선고 때 내릴 것"

이렇게까지 재판이 길어진 이유는 삼성 측이 검찰의 증거 능력 자체를 문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MB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다, 삼성의 '노사 전략 문건'이 담긴 하드디스크 여러 개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습니다.

'MB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삼성의 '노사 전략'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검찰이 영장주의를 위반했단 겁니다. 핵심 증거에 대한 논박이 이어지다 보니 공판 준비 기일이 10차례나 열리게 됐고 실제 공판에서도 '재탕 논의'되면서 재판이 늘어지게 된 겁니다. 다만 최근 재판부가 "증거 수집 여부를 가지고 (논하면) 판결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증거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선고 때 함께 내리겠다"고 밝혀 관련 논란은 우선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 "그룹 차원 노조 와해" VS 삼성 측, "경영적 차원 대응"

검찰은 공판 내내 삼성 측이 작성한 노사 전략 문건을 통해, 맹공에 나서고 있습니다. '초기 대응 미흡으로 조기 안정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행동 감염'이 발생해 확산 가능성이 높음' '노조 설립 시 파급 연쇄 효과로 그룹 전체가 위기' 등 삼성 측이 작성한 문건의 내용으로 봤을 때, 삼성 미래전략실 등 그룹 차원에서 노조 설립을 막아왔단 겁니다. 또 노조를 설립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직원들을 사찰하고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 임직원들에게 인사 가점을 주는 것은 물론, 친사(親社)노조를 설립해 무력화하는 방안을 세우는 등 구체적인 노조 와해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나아가 최근 공판에서 삼성 측이 협력사 등에도 노조가 생기지 못하도록 위장 폐업 등을 강요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였다는 내용의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검찰이 비노조 경영 방식 자체를 위법으로 보고 있다'는 취지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삼성 그룹은 '노조 없는 경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고 해당 문건 작성 등은 그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겁니다. 또 "(서비스 업무 특성상) 노조 문제는 서비스가 망가지면 전자 (사업)까지 망가져 경영적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했다"며 통상적인 업무 과정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판에서도 "보고서의 성질상 다소 과격한 표현이 쓰일 수 있지만, 보고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합법적인 범위'내에서라는 표현이 있다"며 "(문건의 일부 표현만으로) 위법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맞섰습니다.


"사찰 대상이 어디까지였는 지 당사자도 몰라"

검찰 수사 당시만 해도,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학을 위해 전·현직 임직원은 물론 노동부, 경찰, 경총이 힘을 모았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 세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삼성이 실제로 노조 설립을 막았는지, 그랬다면 어떤 방법까지 동원했는지에 대한 진실이 처음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단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혐의가 방대하고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다 보니,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구속됐던 주요 피고인들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최 전무는 물론, 목 전 전무, 삼성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노조와의 교섭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경찰 정보관 김 모 씨, 자문계약을 맺고 삼성 측 관련 계획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전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송 모 씨 등이 모두 보석을 통해 석방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삼성 측의 '노조 와해 의혹'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배제당하고 있단 겁니다. 부당노동행위는 법리상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고소인 조사 이외에는 피해자들이 의견이나 진술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최근 공판에서 삼성 측의 사찰 대상이 광범위했음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누가 어디까지 사찰당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재판 기록 열람 등사조차 거부당한 상황이라, 삼성 측 혐의는 피해자가 아닌 검찰과 법원만 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의 다짐처럼 '삼성 노조 와해' 재판은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지, 재판을 통해 피해자들은 진실과 마주하게 될지 여러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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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노조 와해’ 재판 정말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까?
    • 입력 2019-04-30 17:41:25
    취재K
공판 준비 절차만 10차례 … 재판부조차 "(재판) 해를 넘기는 일 없어야 해"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김경수 지사,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재판까지. 굵직굵직한 피고인들의 재판이 이어지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진 재판이 있습니다. 이른바 '삼성 노조 와해' 재판입니다. 1심이 진행 중인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은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 담당 전무 등 관련 피고인만 30명이 넘는 대규모 재판입니다.

지난해 11월, 무려 10차례의 공판 준비 절차를 거친 끝에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재판부가 바뀌는 등 곡절을 겪으면서, 최 전무가 기소된 지 10개월이 지난 오늘(30일) 14번째 공판까지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단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해를 넘기고 재판부가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보고, (재판부가 바뀌게 되면 ) 판결을 쓰기도 어려워지고 맞지도 않는다"며 "적어도 가을에는 이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삼성 측 "검찰 제출 증거 효력 없어" … 재판부 "증거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선고 때 내릴 것"

이렇게까지 재판이 길어진 이유는 삼성 측이 검찰의 증거 능력 자체를 문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MB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다, 삼성의 '노사 전략 문건'이 담긴 하드디스크 여러 개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습니다.

'MB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삼성의 '노사 전략'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검찰이 영장주의를 위반했단 겁니다. 핵심 증거에 대한 논박이 이어지다 보니 공판 준비 기일이 10차례나 열리게 됐고 실제 공판에서도 '재탕 논의'되면서 재판이 늘어지게 된 겁니다. 다만 최근 재판부가 "증거 수집 여부를 가지고 (논하면) 판결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증거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선고 때 함께 내리겠다"고 밝혀 관련 논란은 우선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 "그룹 차원 노조 와해" VS 삼성 측, "경영적 차원 대응"

검찰은 공판 내내 삼성 측이 작성한 노사 전략 문건을 통해, 맹공에 나서고 있습니다. '초기 대응 미흡으로 조기 안정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행동 감염'이 발생해 확산 가능성이 높음' '노조 설립 시 파급 연쇄 효과로 그룹 전체가 위기' 등 삼성 측이 작성한 문건의 내용으로 봤을 때, 삼성 미래전략실 등 그룹 차원에서 노조 설립을 막아왔단 겁니다. 또 노조를 설립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직원들을 사찰하고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 임직원들에게 인사 가점을 주는 것은 물론, 친사(親社)노조를 설립해 무력화하는 방안을 세우는 등 구체적인 노조 와해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나아가 최근 공판에서 삼성 측이 협력사 등에도 노조가 생기지 못하도록 위장 폐업 등을 강요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였다는 내용의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검찰이 비노조 경영 방식 자체를 위법으로 보고 있다'는 취지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삼성 그룹은 '노조 없는 경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고 해당 문건 작성 등은 그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겁니다. 또 "(서비스 업무 특성상) 노조 문제는 서비스가 망가지면 전자 (사업)까지 망가져 경영적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했다"며 통상적인 업무 과정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판에서도 "보고서의 성질상 다소 과격한 표현이 쓰일 수 있지만, 보고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합법적인 범위'내에서라는 표현이 있다"며 "(문건의 일부 표현만으로) 위법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맞섰습니다.


"사찰 대상이 어디까지였는 지 당사자도 몰라"

검찰 수사 당시만 해도,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학을 위해 전·현직 임직원은 물론 노동부, 경찰, 경총이 힘을 모았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 세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삼성이 실제로 노조 설립을 막았는지, 그랬다면 어떤 방법까지 동원했는지에 대한 진실이 처음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단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혐의가 방대하고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다 보니,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구속됐던 주요 피고인들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최 전무는 물론, 목 전 전무, 삼성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노조와의 교섭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경찰 정보관 김 모 씨, 자문계약을 맺고 삼성 측 관련 계획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전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송 모 씨 등이 모두 보석을 통해 석방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삼성 측의 '노조 와해 의혹'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배제당하고 있단 겁니다. 부당노동행위는 법리상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고소인 조사 이외에는 피해자들이 의견이나 진술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최근 공판에서 삼성 측의 사찰 대상이 광범위했음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누가 어디까지 사찰당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재판 기록 열람 등사조차 거부당한 상황이라, 삼성 측 혐의는 피해자가 아닌 검찰과 법원만 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의 다짐처럼 '삼성 노조 와해' 재판은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지, 재판을 통해 피해자들은 진실과 마주하게 될지 여러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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