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더 아프다가 5년 일찍 숨진다

입력 2019.05.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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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먹는 약만 8~9알"…늙어서 서럽고, 아파서 서럽고.

할아버지는 혼자 살았습니다. 20여 년 전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자식들의 발길은 조금씩 뜸해졌습니다. 자주는 못 들르더라도 어버이날이나 생일 때는 찾아왔는데, 언제부턴가 명절에도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1년, 2년 지나면서 외로움은 잦아들었는데 혼자 먹고, 입고, 잠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전화 통화 한두 번이 전부였지만, 취재진의 방문은 할아버지의 닫혀있던 말문을 열었습니다. 신세 한탄은 "앞으로 어찌 살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입니다. 앞이 잘 안 보여서 바깥 활동을 자제하니 운동에 소홀해졌습니다. 몸이 약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거실 한쪽엔 약병이 수두룩했습니다.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많아서 하나둘 더해진 약이 하루 8~9알입니다. 걱정이 많아져 잠이 잘 안 오고, 이제는 수면제를 드셔야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은 각종 질병에 더 쉽게 노출됩니다. 불편한 몸으로 제때 치료를 받는 게 힘들고, 적정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질병이 더 악화되거나 합병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의료이용·노화·사망 등 10년간 추이를 비교 분석했는데,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서 더 많이 아프고, 더 오래 입원하고, 그래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다가 더 일찍 숨졌습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입원 기간 2.1배↑…1인당 입원진료비 735만 원

'동반상병지수'라는 전문용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는 질환이 얼마나 중증인지를 나타내는 지수입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질환이 더 악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동반상병지수'를 분석했더니, 2016년 기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각각 0.93점, 0.66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1.4배 높았습니다.

입원진료율은 어땠을까요? 장애인의 27%, 41만 명이 입원한 경험이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역시 1.4배 높은 수준입니다. 입원한 기간도 비장애인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2016년 기준 장애인은 한 해 평균 67.7일 동안 입원했습니다. 비장애인 32.5일에 비해 2.1배나 높았습니다. 2016년 한 해에만 특징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10년 전인 2006년에도 장애인은 평균 55.6일 동안 입원해 비장애인의 입원일수인 20.2배보다 2.8배 더 오랫동안 진료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비용의 부담이 커집니다. 2006년 장애인 1인당 489만 원이었던 입원진료비는 2016년 735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비장애인의 입원진료비 487만 원과 비교해도 1.5배 높은 수준입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이 그래프는 생애 주기별 사망률을 한눈에 보기 쉽게 만든 것입니다. 영유아기부터 초고령기까지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가 사망하는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장애인은, 안타깝지만 숨질 확률도 훨씬 높았습니다. 모든 생애주기에서 장애인의 사망률이 비장애인보다 높습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까지…비장애인보다 5년 일찍 사망

'노화'와 함께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 장애인도 많았습니다. 65세 이상 장애인의 66%가 고혈압이 있고, 당뇨(33%), 고지혈증(37%)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65세 미만 장애인(고혈압 26%, 당뇨 16%. 고지혈증 22%)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비율입니다.

사망 연령을 비교했더니, 역시 장애인이 더 빨리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의 사망 시 평균 연령은 71.82세로, 비장애인 76.68세와 비교해 5세 이상 빨랐습니다.

국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전 생애 건강 특성을 비교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애와 더불어 노화와 함께 나타나는 각종 질병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령화의 흐름 속에 장애 노인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6년 187만 명에서 2016년 251만 명으로, 30% 이상 크게 늘었습니다. 이로 인한 의료비 부담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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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더 아프다가 5년 일찍 숨진다
    • 입력 2019-05-02 11:45:54
    취재K
"하루 먹는 약만 8~9알"…늙어서 서럽고, 아파서 서럽고.

할아버지는 혼자 살았습니다. 20여 년 전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자식들의 발길은 조금씩 뜸해졌습니다. 자주는 못 들르더라도 어버이날이나 생일 때는 찾아왔는데, 언제부턴가 명절에도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1년, 2년 지나면서 외로움은 잦아들었는데 혼자 먹고, 입고, 잠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전화 통화 한두 번이 전부였지만, 취재진의 방문은 할아버지의 닫혀있던 말문을 열었습니다. 신세 한탄은 "앞으로 어찌 살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입니다. 앞이 잘 안 보여서 바깥 활동을 자제하니 운동에 소홀해졌습니다. 몸이 약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거실 한쪽엔 약병이 수두룩했습니다.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많아서 하나둘 더해진 약이 하루 8~9알입니다. 걱정이 많아져 잠이 잘 안 오고, 이제는 수면제를 드셔야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은 각종 질병에 더 쉽게 노출됩니다. 불편한 몸으로 제때 치료를 받는 게 힘들고, 적정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질병이 더 악화되거나 합병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의료이용·노화·사망 등 10년간 추이를 비교 분석했는데,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서 더 많이 아프고, 더 오래 입원하고, 그래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다가 더 일찍 숨졌습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입원 기간 2.1배↑…1인당 입원진료비 735만 원

'동반상병지수'라는 전문용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는 질환이 얼마나 중증인지를 나타내는 지수입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질환이 더 악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동반상병지수'를 분석했더니, 2016년 기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각각 0.93점, 0.66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1.4배 높았습니다.

입원진료율은 어땠을까요? 장애인의 27%, 41만 명이 입원한 경험이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역시 1.4배 높은 수준입니다. 입원한 기간도 비장애인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2016년 기준 장애인은 한 해 평균 67.7일 동안 입원했습니다. 비장애인 32.5일에 비해 2.1배나 높았습니다. 2016년 한 해에만 특징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10년 전인 2006년에도 장애인은 평균 55.6일 동안 입원해 비장애인의 입원일수인 20.2배보다 2.8배 더 오랫동안 진료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비용의 부담이 커집니다. 2006년 장애인 1인당 489만 원이었던 입원진료비는 2016년 735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비장애인의 입원진료비 487만 원과 비교해도 1.5배 높은 수준입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이 그래프는 생애 주기별 사망률을 한눈에 보기 쉽게 만든 것입니다. 영유아기부터 초고령기까지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가 사망하는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장애인은, 안타깝지만 숨질 확률도 훨씬 높았습니다. 모든 생애주기에서 장애인의 사망률이 비장애인보다 높습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까지…비장애인보다 5년 일찍 사망

'노화'와 함께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 장애인도 많았습니다. 65세 이상 장애인의 66%가 고혈압이 있고, 당뇨(33%), 고지혈증(37%)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65세 미만 장애인(고혈압 26%, 당뇨 16%. 고지혈증 22%)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비율입니다.

사망 연령을 비교했더니, 역시 장애인이 더 빨리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의 사망 시 평균 연령은 71.82세로, 비장애인 76.68세와 비교해 5세 이상 빨랐습니다.

국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전 생애 건강 특성을 비교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애와 더불어 노화와 함께 나타나는 각종 질병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령화의 흐름 속에 장애 노인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6년 187만 명에서 2016년 251만 명으로, 30% 이상 크게 늘었습니다. 이로 인한 의료비 부담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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