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블박 형사’의 대활약

입력 2019.05.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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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연쇄 절도 행각 블랙박스에 잡혀
뺑소니·도둑 잡는 '블박 형사'
수사에 도움 준 블랙박스 차주엔 보상금
귀찮음 넘어선 시민 협조 절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일대 주택가는 지난 3월부터 비상이 걸렸다. 집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침입 절도가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범행을 한 건지, 다른 사람이 한 번씩 범행을 한 건지도 알기 어려웠다. 피해 지역 인근 CCTV를 샅샅이 뒤지고, 목격자를 찾았지만,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연쇄 절도범'의 흔적은 블랙박스에

지난달 6일 새벽에도 중원구 주택가에서는 침입 절도가 발생했다. 범행 현장을 확인하던 형사의 눈에 골목에 세워놓은 차량이 눈에 띄었다.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달려 있었다.

차량 주인인 53살 송 모 씨에게 협조를 부탁하자 송 씨는 흔쾌히 블랙박스 저장 칩을 내주었다. 블랙박스에는 한 남성이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3초 정도 담겨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이 남성이 용의자라고 보고 동선을 추적했다. 용의자가 나타날 걸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야간 잠복을 통해 58살 정 모 씨를 붙잡았다.

정 씨는 중원구 일대 연쇄 침입 절도의 범인이었다. 모두 6차례에 걸쳐 67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정 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

송 씨의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연쇄 절도는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다.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는 "주변에 CCTV가 없는 동네였는데 블랙박스를 통해 도주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평소 다른 수사에서도 블랙박스를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블랙박스가 형사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는 셈이다.

결정적 장면 포착 '블박 형사'의 대활약

'블박 형사'는 특히 교통사고에서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뿐만이 아니라 목격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블랙박스에 찍힌 차량 충돌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블랙박스에 찍힌 차량 충돌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지난해 10월 성남시 분당구 장안사거리에서는 신호위반을 한 36살 김 모 씨의 차량이 다른 차량을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뒤범퍼가 날아갈 정도로 꽤 큰 충격이었지만, 김 씨는 차도 한 번 세우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김 씨 차량이 다른 차량을 치고 달아나는 장면은 신호대기 중이었던 55살 윤 모 씨의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다. 신호대기 중일 때 충돌이 일어났고, 이후 윤 씨 차량이 가는 방향으로 김 씨 차량이 달아나 뒤따라가던 윤 씨 차량 블랙박스에 김 씨의 차량의 번호 등이 잡혔다. 이 사건에서도 윤 씨 차량의 블랙박스는 범행 증거가 됐다.

블랙박스에 찍힌 교통사고 후 도주 차량(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블랙박스에 찍힌 교통사고 후 도주 차량(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지난해 5월 성남시 분당구에서는 대리기사의 절도 행각이 블랙박스 덕분에 해결됐다. 손님이 차에 떨어뜨린 지갑을 대리기사인 35살 정 모 씨가 훔쳐갔는데, 훔친 지갑을 차량 밑에 숨기는 장면이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에 담겼다. 손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블랙박스를 확인해 단번에 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검거했다.

대리기사(빨간 원)이 손님의 차량 밑에 지갑을 숨기는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대리기사(빨간 원)이 손님의 차량 밑에 지갑을 숨기는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내 차 지키는 블랙박스, 치안까지 책임

블랙박스의 원래 용도는 설치된 차량을 지키는 일이다. 주행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과실 비율을 따지는 데 유용하고, 주차 중일 때 누군가가 차를 치고 간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매년 200만대 이상이 팔린다는 게 블랙박스 업계의 추산이다.

리서치 업체 '엠브레인'이 2017년 운전자들을 표본 조사한 결과 운전자의 약 80%가 자신의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한 걸로 나타났다. 골목길에 차량 10대가 있다면, CCTV 10대가 설치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블랙박스가 널리 퍼지면서 차량을 지키는 것은 물론 치안까지 책임지게 됐다.

경찰에서도 블랙박스 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해 성남시 중원구 연쇄 절도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송 씨에게는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을 수여하고 '우리동네 시민경찰'로 선정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블랙박스 영상이 범인 검거에 이바지했을 경우 보상금 지급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신고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상시 녹화가 안 된다는 핑계 등을 대서 블랙박스 영상 협조를 잘 안 해주는 편"이라며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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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블박 형사’의 대활약
    • 입력 2019-05-02 16:07:10
    취재K
연쇄 절도 행각 블랙박스에 잡혀 <br />뺑소니·도둑 잡는 '블박 형사' <br />수사에 도움 준 블랙박스 차주엔 보상금 <br />귀찮음 넘어선 시민 협조 절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일대 주택가는 지난 3월부터 비상이 걸렸다. 집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침입 절도가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범행을 한 건지, 다른 사람이 한 번씩 범행을 한 건지도 알기 어려웠다. 피해 지역 인근 CCTV를 샅샅이 뒤지고, 목격자를 찾았지만,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연쇄 절도범'의 흔적은 블랙박스에

지난달 6일 새벽에도 중원구 주택가에서는 침입 절도가 발생했다. 범행 현장을 확인하던 형사의 눈에 골목에 세워놓은 차량이 눈에 띄었다.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달려 있었다.

차량 주인인 53살 송 모 씨에게 협조를 부탁하자 송 씨는 흔쾌히 블랙박스 저장 칩을 내주었다. 블랙박스에는 한 남성이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3초 정도 담겨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이 남성이 용의자라고 보고 동선을 추적했다. 용의자가 나타날 걸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야간 잠복을 통해 58살 정 모 씨를 붙잡았다.

정 씨는 중원구 일대 연쇄 침입 절도의 범인이었다. 모두 6차례에 걸쳐 67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정 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

송 씨의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연쇄 절도는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다.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는 "주변에 CCTV가 없는 동네였는데 블랙박스를 통해 도주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평소 다른 수사에서도 블랙박스를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블랙박스가 형사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는 셈이다.

결정적 장면 포착 '블박 형사'의 대활약

'블박 형사'는 특히 교통사고에서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뿐만이 아니라 목격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블랙박스에 찍힌 차량 충돌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지난해 10월 성남시 분당구 장안사거리에서는 신호위반을 한 36살 김 모 씨의 차량이 다른 차량을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뒤범퍼가 날아갈 정도로 꽤 큰 충격이었지만, 김 씨는 차도 한 번 세우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김 씨 차량이 다른 차량을 치고 달아나는 장면은 신호대기 중이었던 55살 윤 모 씨의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다. 신호대기 중일 때 충돌이 일어났고, 이후 윤 씨 차량이 가는 방향으로 김 씨 차량이 달아나 뒤따라가던 윤 씨 차량 블랙박스에 김 씨의 차량의 번호 등이 잡혔다. 이 사건에서도 윤 씨 차량의 블랙박스는 범행 증거가 됐다.

블랙박스에 찍힌 교통사고 후 도주 차량(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지난해 5월 성남시 분당구에서는 대리기사의 절도 행각이 블랙박스 덕분에 해결됐다. 손님이 차에 떨어뜨린 지갑을 대리기사인 35살 정 모 씨가 훔쳐갔는데, 훔친 지갑을 차량 밑에 숨기는 장면이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에 담겼다. 손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블랙박스를 확인해 단번에 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검거했다.

대리기사(빨간 원)이 손님의 차량 밑에 지갑을 숨기는 장면(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내 차 지키는 블랙박스, 치안까지 책임

블랙박스의 원래 용도는 설치된 차량을 지키는 일이다. 주행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과실 비율을 따지는 데 유용하고, 주차 중일 때 누군가가 차를 치고 간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매년 200만대 이상이 팔린다는 게 블랙박스 업계의 추산이다.

리서치 업체 '엠브레인'이 2017년 운전자들을 표본 조사한 결과 운전자의 약 80%가 자신의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한 걸로 나타났다. 골목길에 차량 10대가 있다면, CCTV 10대가 설치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블랙박스가 널리 퍼지면서 차량을 지키는 것은 물론 치안까지 책임지게 됐다.

경찰에서도 블랙박스 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해 성남시 중원구 연쇄 절도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송 씨에게는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을 수여하고 '우리동네 시민경찰'로 선정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블랙박스 영상이 범인 검거에 이바지했을 경우 보상금 지급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신고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상시 녹화가 안 된다는 핑계 등을 대서 블랙박스 영상 협조를 잘 안 해주는 편"이라며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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