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세계 경찰’ 아니라더니…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 이유는?

입력 2019.05.03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남미 국가 베네수엘라는 우리에게는 먼 나라죠. 그런데, 이 나라의 이름이 요즘 국제 뉴스 통해 자주 들려 옵니다. 시작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에서...." 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에 대통령이 둘이라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 나라는 하나, '대통령은 둘'...혼돈의 베네수엘라

지난달 30일 베네수엘라 시위 [사진 출처 : 연합뉴스]지난달 30일 베네수엘라 시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먼저 베네수엘라에서 현지 시간 30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스크에서 촬영된 사진을 같이 보시죠. 시위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건 군 장갑차입니다. 베네수엘라 두 명의 대통령 중 한 명인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선 것입니다. BBC는 이 시위에서 최소 백 명이 다쳤다고 전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비영리단체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한 명이 숨졌다고 전했습니다. 시위는 이튿날에도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특별합니다. 이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사람이 또 한명의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35세의 '과이도' 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 야권 국회의장 출신인 과이도는 지난 1월 23일,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석 달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사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반정부 시위는 '두 대통령' 사태를 끝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입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과이도는 자신이 베네수엘라 군부를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시위를 독려했지만, 군부는 아직 현 대통령, '마두로'의 편으로 보입니다. AP통신은 "과이도의 반란은 제한적인 지지만 얻은 듯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마두로 대통령은 국영 방송에 나와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과이도' VS '마두로'....둘로 갈라진 나라들

자, 여기까지는 베네수엘라 내부의 정치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대하는 이웃 국가들, 그 중에서도 미국의 반응입니다. 미국은 '과이도'가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서자마자 아낌없는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반정부 세력에 대한 지지는 그냥 말로 하는 '지지' 수준을 넘어섰는데요. 미 재무부는 지난 1월 28일,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PDVSA)의 미국 내 자산 동결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베네수엘라 입장에서는 연간 1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조 3백억 원의 수입을 막는 조치에 해당합니다. 베네수엘라 최대 국영 석유 회사인 PDVAS에는 '마두로'의 핵심 지지층인 군부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줄을 죄서 마두로의 지지층을 흔들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끊임없이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는데요.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매파'에 속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 제재 발표 기자회견을 하면서 '콜롬비아에 병력 5000명(troops to Colombia)' 라고 쓴 메모를 기자들 보란 듯이 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남미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요. 우회적으로 군사 행동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이번 대규모 시위 이후에 미국의 '군사 옵션' 압박은 더 뚜렷해지는 추세입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과 캐나다, 또, 브라질과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같은 상당수 남미 국가들은 반정부 세력인 '과이도' 지지를 선언한 상탭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나라들을 보면, 이 혼란이 베네수엘라 내부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의심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됩니다.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선언 이후 러시아와 중국 등의 나라는 미국의 과도한 내정 간섭을 비판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편에 섰습니다.


'세계 경찰' 아니라더니... 미국은 왜 '과이도'를 지지할까?

"미국이 언제까지나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 미국은 호구(sucker)가 아니다."

누가 한 말일까요? 네, 지난해 12월 이라크 공군기지를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한 깜짝 선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우리의 군대를 이용하는 국가들에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죠.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는 왜 '예외'인 걸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위해 쿠바까지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마두로 정권을 돕고 있는 쿠바를 겨냥해, "쿠바 군대와 민병대가 베네수엘라 헌법의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려는 목적의 군사 작전을 즉시 중단하지 않는다면, 최고 수준의 제재와 철저한 금수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고 나섰습니다. 어째서 미국은 이렇게까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압박하는 걸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마두로가 베네수엘라 경제가 거덜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갈등의 뿌리는 훨씬 더 깊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998년 차베스 정권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겐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는데요. 차베스 대통령은 '고유가'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빈부격차, 의료, 복지 향상을 내걸면서 높은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부했었는데요, 미국의 '뒷마당'에 들어선 좌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차베스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계승자가 바로 '마두로' 현 대통령입니다. '차베스'식 복지 정책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유가 하락에 주요 산업 국유화로 인한 부패까지 겹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끝을 모를 추락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1,300%나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베네수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차베스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문제 속에서도 농촌 지역과 빈민층 중심으로 '마두로'의 지지가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마두로'인가, '러시아' 인가?

'마두로'의 든든한 배경은 차베스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러시아도 해당됩니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마두로를 돕기 위해 백 명 정도 되는 군사 자문관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군이 사용하는 장비의 대부분도 러시아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러시아는 미국에 기반을 둔 베네수엘라 정유회사인 '시트고'의 지분을 절반 가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트고'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주요 세수로 꼽힙니다.

'과이도' 임시 대통령 지지자들의 이번 시위를 두고도, 러시아 외교부는 "베네수엘라의 급진적인 야권이 다시 한 번 폭력적인 대립 수단으로 회귀했다" 고 비판했습니다.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도 높였습니다. 군사 개입 가능성을 비친 미국에 '내정 간섭' 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폴리티코'는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몰리 맥큐(Molly McKew) 말을 인용해서,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자원 부국이며,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장받기를 원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뒷마당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의 '뒷마당' 이라니! 미국 입장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러시아의 태도는 유럽이나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입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소련이 미국의 코앞에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남미 지역은 전통적으로 '국내 문제'에 준해서 다뤄진 지역입니다. 베네수엘라 문제에 강경 메시지를 보내온 볼튼 보좌관은 베네수엘라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 중요성 강조 하면서, '먼로 독트린'을 언급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 미국이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로 독트린'은 1823년 미국의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밝힌 외교 방침입니다. 핵심은 당시 유럽 열강에게 미 대륙 문제에서 손을 떼고, 더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미국도 유럽 문제에 간섭 안 하겠다고 했는데요. 미 대륙을 유럽 열강 세력권에서 떼어내서, 미국의 세력권에 두겠다는 외교정책으로도 해석됩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의 세력이 강화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그렇다면, 각각 다른 열강의 지지를 받는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사실, 일부에서는'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한 이번 시위가 장기화 돼 가는 베네수엘라 사태의 변곡점이 돼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부가 돌아섰다"던 과이도 측의 주장은 힘을 받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미국이 군사 옵션을 거론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경제 제재와 외교적 수단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와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섣불리 자극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레이스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계의 표심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변수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개입의 강도를 높인다면, '스윙 스테이트', 경합주로 분류되는 플로리다의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계 미국인들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도 분명 미국의 개입 수위를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 나라 두 대통령' 체제로는 경제적 고통에 신음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고통을 덜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세계 경찰’ 아니라더니…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 이유는?
    • 입력 2019-05-03 07:00:03
    글로벌 돋보기
남미 국가 베네수엘라는 우리에게는 먼 나라죠. 그런데, 이 나라의 이름이 요즘 국제 뉴스 통해 자주 들려 옵니다. 시작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에서...." 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에 대통령이 둘이라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 나라는 하나, '대통령은 둘'...혼돈의 베네수엘라

지난달 30일 베네수엘라 시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먼저 베네수엘라에서 현지 시간 30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스크에서 촬영된 사진을 같이 보시죠. 시위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건 군 장갑차입니다. 베네수엘라 두 명의 대통령 중 한 명인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선 것입니다. BBC는 이 시위에서 최소 백 명이 다쳤다고 전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비영리단체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한 명이 숨졌다고 전했습니다. 시위는 이튿날에도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특별합니다. 이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사람이 또 한명의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35세의 '과이도' 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 야권 국회의장 출신인 과이도는 지난 1월 23일,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석 달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사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반정부 시위는 '두 대통령' 사태를 끝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입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과이도는 자신이 베네수엘라 군부를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시위를 독려했지만, 군부는 아직 현 대통령, '마두로'의 편으로 보입니다. AP통신은 "과이도의 반란은 제한적인 지지만 얻은 듯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마두로 대통령은 국영 방송에 나와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과이도' VS '마두로'....둘로 갈라진 나라들

자, 여기까지는 베네수엘라 내부의 정치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대하는 이웃 국가들, 그 중에서도 미국의 반응입니다. 미국은 '과이도'가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서자마자 아낌없는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반정부 세력에 대한 지지는 그냥 말로 하는 '지지' 수준을 넘어섰는데요. 미 재무부는 지난 1월 28일,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PDVSA)의 미국 내 자산 동결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베네수엘라 입장에서는 연간 1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조 3백억 원의 수입을 막는 조치에 해당합니다. 베네수엘라 최대 국영 석유 회사인 PDVAS에는 '마두로'의 핵심 지지층인 군부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줄을 죄서 마두로의 지지층을 흔들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끊임없이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는데요.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매파'에 속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 제재 발표 기자회견을 하면서 '콜롬비아에 병력 5000명(troops to Colombia)' 라고 쓴 메모를 기자들 보란 듯이 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남미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요. 우회적으로 군사 행동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이번 대규모 시위 이후에 미국의 '군사 옵션' 압박은 더 뚜렷해지는 추세입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과 캐나다, 또, 브라질과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같은 상당수 남미 국가들은 반정부 세력인 '과이도' 지지를 선언한 상탭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나라들을 보면, 이 혼란이 베네수엘라 내부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의심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됩니다.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선언 이후 러시아와 중국 등의 나라는 미국의 과도한 내정 간섭을 비판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편에 섰습니다.


'세계 경찰' 아니라더니... 미국은 왜 '과이도'를 지지할까?

"미국이 언제까지나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 미국은 호구(sucker)가 아니다."

누가 한 말일까요? 네, 지난해 12월 이라크 공군기지를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한 깜짝 선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우리의 군대를 이용하는 국가들에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죠.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는 왜 '예외'인 걸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위해 쿠바까지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마두로 정권을 돕고 있는 쿠바를 겨냥해, "쿠바 군대와 민병대가 베네수엘라 헌법의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려는 목적의 군사 작전을 즉시 중단하지 않는다면, 최고 수준의 제재와 철저한 금수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고 나섰습니다. 어째서 미국은 이렇게까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압박하는 걸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마두로가 베네수엘라 경제가 거덜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갈등의 뿌리는 훨씬 더 깊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998년 차베스 정권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겐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는데요. 차베스 대통령은 '고유가'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빈부격차, 의료, 복지 향상을 내걸면서 높은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부했었는데요, 미국의 '뒷마당'에 들어선 좌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차베스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계승자가 바로 '마두로' 현 대통령입니다. '차베스'식 복지 정책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유가 하락에 주요 산업 국유화로 인한 부패까지 겹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끝을 모를 추락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1,300%나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베네수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차베스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문제 속에서도 농촌 지역과 빈민층 중심으로 '마두로'의 지지가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마두로'인가, '러시아' 인가?

'마두로'의 든든한 배경은 차베스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러시아도 해당됩니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마두로를 돕기 위해 백 명 정도 되는 군사 자문관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군이 사용하는 장비의 대부분도 러시아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러시아는 미국에 기반을 둔 베네수엘라 정유회사인 '시트고'의 지분을 절반 가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트고'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주요 세수로 꼽힙니다.

'과이도' 임시 대통령 지지자들의 이번 시위를 두고도, 러시아 외교부는 "베네수엘라의 급진적인 야권이 다시 한 번 폭력적인 대립 수단으로 회귀했다" 고 비판했습니다.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도 높였습니다. 군사 개입 가능성을 비친 미국에 '내정 간섭' 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폴리티코'는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몰리 맥큐(Molly McKew) 말을 인용해서,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자원 부국이며,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장받기를 원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뒷마당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의 '뒷마당' 이라니! 미국 입장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러시아의 태도는 유럽이나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입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소련이 미국의 코앞에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남미 지역은 전통적으로 '국내 문제'에 준해서 다뤄진 지역입니다. 베네수엘라 문제에 강경 메시지를 보내온 볼튼 보좌관은 베네수엘라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 중요성 강조 하면서, '먼로 독트린'을 언급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 미국이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로 독트린'은 1823년 미국의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밝힌 외교 방침입니다. 핵심은 당시 유럽 열강에게 미 대륙 문제에서 손을 떼고, 더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미국도 유럽 문제에 간섭 안 하겠다고 했는데요. 미 대륙을 유럽 열강 세력권에서 떼어내서, 미국의 세력권에 두겠다는 외교정책으로도 해석됩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의 세력이 강화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그렇다면, 각각 다른 열강의 지지를 받는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사실, 일부에서는'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한 이번 시위가 장기화 돼 가는 베네수엘라 사태의 변곡점이 돼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부가 돌아섰다"던 과이도 측의 주장은 힘을 받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미국이 군사 옵션을 거론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경제 제재와 외교적 수단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와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섣불리 자극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레이스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계의 표심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변수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개입의 강도를 높인다면, '스윙 스테이트', 경합주로 분류되는 플로리다의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계 미국인들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도 분명 미국의 개입 수위를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 나라 두 대통령' 체제로는 경제적 고통에 신음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고통을 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