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K] 41년 전 미군이 한탄강서 주운 돌, 역사책을 바꾸다

입력 2019.05.04 (14:00) 수정 2019.05.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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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41년 전, 주한 미군 병사의 산책은 역사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78년 4월 어느 날, 당시 경기도 동두천 미군 기지 기상예보대에 근무하던 그렉 보웬(Greg L.Bowen) 상병.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경기도 연천 전곡리 한탄강 변 유원지를 걷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는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 없었던 이 돌은, 한국에 오기 전 미국 대학(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고고학을 2학년까지 마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는 둘레를 더 뒤졌다. 그리고 이상한 돌 3~4개를 더 찾았다. 그가 찾은 돌은 당시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김원룡 교수에게 보냈다. 놀랍게도 이 돌은 구석기들의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hand axe)였다.

대표적인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대표적인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

전기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

돌의 양쪽 면을 모두 쳐서 만든 주먹도끼는 구석기인들에게는 만능 기구였다. 이것으로 자르고, 두들기고, 땅을 파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한쪽은 둥글게, 반대쪽은 뾰족하게 날을 세운 좌우 대칭의 획기적인 뗀석기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란 이름은 프랑스의 생뜨 아슐(St. Acheul)유적지에서 주먹도끼가 많이 발견돼 붙여진 이름)

주먹도끼는 인류가 최초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석기로, 고(古) 인류 발달의 정도를 문화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연천 전곡리의 주먹도끼연천 전곡리의 주먹도끼

그런데 1970년대만 해도 세계 고고학계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모비우스의 학설이 정통이었다. 모비우스는 이 주먹도끼가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것에 착안해 전기 구석기 문화를 주먹도끼 문화권과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즉 인도를 기준으로 인도 서쪽인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를 아슐리안 문화권이라 불렀다. 반면, 인도 동쪽인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는 찍개 문화권이라고 했다. 전기 구석기 시대에 구석기 문화다운 문화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의미를 이 학설은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에 의해 구석기의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학계는 놀랐다. 그렉 보웬이 발견한 5점의 주먹 도끼는 프랑스의 구석기 시대 고고학자인 프랑수와 보르도 교수에게 전해졌고, 이후 서울대(1~6차)와 한양대(7~11차)의 발굴을 통해 전곡리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인정받게 된다.

보웬의 발견은 세계 고고학계의 학설을 뒤엎은 큰 사건이었다. 연천 전곡리 유적 발굴에서는 석기 6,000여 점이 나왔는데 대부분 근처 하천에서 발견되는 강 자갈인 규암과 석영으로 만들어졌고, 편마암이나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런 발굴을 통해 현재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적인 전기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 자리 잡게 된다.

연천 전곡기 유적 발굴 당시 신문기사연천 전곡기 유적 발굴 당시 신문기사

동아시아에서도 있었던 주먹도끼

역사에서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250만 년 전부터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1만 년 전까지를 일컫는다. 그리고 다시 석기를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250만~10만 년 전), 중기(10만~4만 년 전), 후기(4만~1만 년 전)로 나눈다. 이 주먹도끼는 150만 년 전 무렵부터 구석기인들이 써온 석기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 문화는 30만 년 전 이전의 전기 구석기 문화로 보는 견해가 많다.

주먹도끼주먹도끼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로 세계 구석기 문화 연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후 전곡리뿐 아니라 여러 구석기 유적에서 이 주먹도끼가 발굴됐고,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많은 양의 주먹도끼가 출토되면서 모비우스 이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렉 보웬 "돌을 보는 순간 직감"

이런 위대한 발견의 당사자인 미국인 그렉 보웬씨는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인 부인, 딸과 함께 방한했다.

2005년 방한 당시 그렉 보웬(오른쪽) [사진 출처 : 연합뉴스]2005년 방한 당시 그렉 보웬(오른쪽)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발견 당시에도 강변의 돌조각을 살피다 주먹도끼를 발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먹도끼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다듬은 흔적이 있는 돌멩이가 발견돼 즉각 유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고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처럼 된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는 이런 사연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천군은 역사적인 발굴을 기념해 매년 봄에 '연천 구석기 축제'를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열고 있다. 올해 27회인 연천 구석기 축제가 3일부터 오는 6일까지 4일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천군 블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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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4 14:00:50
    • 수정2019-05-05 15:27:29
    지식K
지금부터 41년 전, 주한 미군 병사의 산책은 역사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78년 4월 어느 날, 당시 경기도 동두천 미군 기지 기상예보대에 근무하던 그렉 보웬(Greg L.Bowen) 상병.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경기도 연천 전곡리 한탄강 변 유원지를 걷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는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 없었던 이 돌은, 한국에 오기 전 미국 대학(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고고학을 2학년까지 마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는 둘레를 더 뒤졌다. 그리고 이상한 돌 3~4개를 더 찾았다. 그가 찾은 돌은 당시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김원룡 교수에게 보냈다. 놀랍게도 이 돌은 구석기들의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hand axe)였다. 대표적인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 전기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 돌의 양쪽 면을 모두 쳐서 만든 주먹도끼는 구석기인들에게는 만능 기구였다. 이것으로 자르고, 두들기고, 땅을 파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한쪽은 둥글게, 반대쪽은 뾰족하게 날을 세운 좌우 대칭의 획기적인 뗀석기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란 이름은 프랑스의 생뜨 아슐(St. Acheul)유적지에서 주먹도끼가 많이 발견돼 붙여진 이름) 주먹도끼는 인류가 최초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석기로, 고(古) 인류 발달의 정도를 문화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연천 전곡리의 주먹도끼 그런데 1970년대만 해도 세계 고고학계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모비우스의 학설이 정통이었다. 모비우스는 이 주먹도끼가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것에 착안해 전기 구석기 문화를 주먹도끼 문화권과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즉 인도를 기준으로 인도 서쪽인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를 아슐리안 문화권이라 불렀다. 반면, 인도 동쪽인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는 찍개 문화권이라고 했다. 전기 구석기 시대에 구석기 문화다운 문화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의미를 이 학설은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에 의해 구석기의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학계는 놀랐다. 그렉 보웬이 발견한 5점의 주먹 도끼는 프랑스의 구석기 시대 고고학자인 프랑수와 보르도 교수에게 전해졌고, 이후 서울대(1~6차)와 한양대(7~11차)의 발굴을 통해 전곡리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인정받게 된다. 보웬의 발견은 세계 고고학계의 학설을 뒤엎은 큰 사건이었다. 연천 전곡리 유적 발굴에서는 석기 6,000여 점이 나왔는데 대부분 근처 하천에서 발견되는 강 자갈인 규암과 석영으로 만들어졌고, 편마암이나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런 발굴을 통해 현재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적인 전기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 자리 잡게 된다. 연천 전곡기 유적 발굴 당시 신문기사 동아시아에서도 있었던 주먹도끼 역사에서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250만 년 전부터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1만 년 전까지를 일컫는다. 그리고 다시 석기를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250만~10만 년 전), 중기(10만~4만 년 전), 후기(4만~1만 년 전)로 나눈다. 이 주먹도끼는 150만 년 전 무렵부터 구석기인들이 써온 석기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 문화는 30만 년 전 이전의 전기 구석기 문화로 보는 견해가 많다. 주먹도끼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로 세계 구석기 문화 연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후 전곡리뿐 아니라 여러 구석기 유적에서 이 주먹도끼가 발굴됐고,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많은 양의 주먹도끼가 출토되면서 모비우스 이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렉 보웬 "돌을 보는 순간 직감" 이런 위대한 발견의 당사자인 미국인 그렉 보웬씨는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인 부인, 딸과 함께 방한했다. 2005년 방한 당시 그렉 보웬(오른쪽)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발견 당시에도 강변의 돌조각을 살피다 주먹도끼를 발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먹도끼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다듬은 흔적이 있는 돌멩이가 발견돼 즉각 유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고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처럼 된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는 이런 사연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천군은 역사적인 발굴을 기념해 매년 봄에 '연천 구석기 축제'를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열고 있다. 올해 27회인 연천 구석기 축제가 3일부터 오는 6일까지 4일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천군 블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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