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벨루가 돌고래는 진짜 러시아 스파이였을까?

입력 2019.05.08 (06:04) 수정 2019.05.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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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국 BBC 캡처

무리와 소통하기 위해 내는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 '바다의 카나리아'라고도 불리는 흰 돌고래 벨루가(beluga). 지난달 북극에 인접한 노르웨이 잉고야섬 앞바다에서 사진에서처럼 목과 가슴 부위에 띠를 두른 벨루가 한 마리가 발견됐다.

목격자들이 말한 바로는 이 벨루가는 며칠 동안 노르웨이 선박 주변을 배회했는데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린 채 적극적으로 다가왔으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선박 옆 밧줄을 잡아당기려 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공영방송인 NRK가 보도한 영상을 보면 이런 벨루가의 행동이 잘 나타나 있다.

원래 북극해와 베링해, 그린란드와 캐나다, 러시아에 걸친 추운 바다에 서식하는 하얀 고래 벨루가가 노르웨이 북극 해안에 나타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벨루가는 목과 가슴지느러미 부위에 수상한(?)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띠에는 카메라 거치대가 장착돼 있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유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벨루가 몸에 매여 있던 띠. 왼편 사진에 보면 클립 부분에 EQUIPMENT ST.PETERSBURG(상트페테르부르크 장비)라고 적혀 있다.벨루가 몸에 매여 있던 띠. 왼편 사진에 보면 클립 부분에 EQUIPMENT ST.PETERSBURG(상트페테르부르크 장비)라고 적혀 있다.

벨루가를 처음 발견한 한 노르웨이 어부가 바다에 들어가 벨루가의 몸에 매여있던 띠의 클립을 풀어주었고 그때부터 이 벨루가가 '러시아의 스파이'인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띠에 카메라가 장착돼있거나 무기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벨루가가 러시아에서 스파이 훈련을 받다 탈출한 게 아닌지가 초점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해당 장치가 실제 러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류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중론이지만, 러시아 해군이 수년간 고래들을 군사용으로 훈련시키고 있으며 이 벨루가가 발견된 곳에서 415Km 떨어진 러시아 최북서단 도시 무르만스크(Murmansk)에 러시아 북방 함대 기지가 있다는 점 또한 확인되었다. 벨루가는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거뜬히 헤엄친다는 걸 상기한다면 러시아 해군 기지에서 훈련을 받았을 거라는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달 노르웨이 과학자들과 어부에 의해 발견된 문제의 벨루가(사진 출처 : EPA/NORWEGIAN DIRECTORATE OF FISHERIES)지난달 노르웨이 과학자들과 어부에 의해 발견된 문제의 벨루가(사진 출처 : EPA/NORWEGIAN DIRECTORATE OF FISHERIES)

러시아의 한 예비역 장교(Viktor Baranets)도 러시아 TV 방송에서 이 벨루가에 관해 '만약 러시아가 정말로 스파이로 활용하려 했다면 몸에 그토록 명백한 출처를 표시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투 목적으로 러시아군이 군사용 돌고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아니하였다.

이 벨루가가 러시아에서 군사용 목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단서들은 또 있다. 해양 포유류를 활용한 세계 각국의 정보 탐지나 전투 활동 실제 사례가 그것이다. 미국 해군은 냉전 시기에 돌고래와 바다사자를 훈련시켜 수중 지뢰(기뢰)와 위험한 물체들을 찾게 했으며 2003년 이라크전 때에는 기뢰제거팀을 돕도록 돌고래들을 걸프만에 실전 배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 돌고래 센터를 운영하면서 해저 분석과 외국 잠수부 공격, 외국 선박에 대한 기뢰 공격 등의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3년 걸프만에서 미군을 돕고 있는 돌고래(사진 출처 : 게티 이미지)2003년 걸프만에서 미군을 돕고 있는 돌고래(사진 출처 : 게티 이미지)

현재도 미 해군은 돌고래(bottlenose dolphins)와 바다사자(sea lions)를 군사 목적으로 훈련시키는 특별 프로그램(The U.S. Navy Marine Mammal Program)을 운영 중이다.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센터에서는 이들 해양 동물들의 장점이자 특기인 저조도 시력과 잠수 능력 등을 백분 활용해 동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중 지뢰(기뢰) 탐지나 위험물 수거, 위험인물이나 위험물을 자기편에게 알릴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수중 지뢰(기뢰)의 경우 엄청난 무게의 선박에 반응해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몸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 돌고래나 바다사자는 폭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해저에서 물체를 탐지하고 회수용 선을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바다사자 (사진 출처: 미국 Naval Information Warfare Center(NIWC) Pacific)해저에서 물체를 탐지하고 회수용 선을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바다사자 (사진 출처: 미국 Naval Information Warfare Center(NIWC) Pacific)

역사적으로 동물들이 군사용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가능성을 실험받은 사례는 적지 않다. 벨루가와 돌고래, 범고래나 바다사자 같은 해양 포유류는 물론이고 1960년대에는 도청장치를 단 고양이가, 2차 대전 때는 폭탄을 장착한 박쥐가, 그 이전인 1차 대전 때는 비둘기가 실전용 또는 실험용으로 활용되었고, 2007년에는 핵농축시설 인근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던 다람쥐떼가 이란군에 '체포'되기도 했다. 2013년 이집트 당국은 부리에 수상한 물체를 물고 있던 황새를 붙잡았는데 후에 이것은 황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한 순수 연구용 목적 장치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쉽고 거뜬히 해내는 동물들의 경우 아직은 대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해저용 드론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굳이 동물들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훈련받은 동물들을 군함이나 비행기, 헬리콥터로 실어나르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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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8 06:04:42
    • 수정2019-05-08 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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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국 BBC 캡처

무리와 소통하기 위해 내는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 '바다의 카나리아'라고도 불리는 흰 돌고래 벨루가(beluga). 지난달 북극에 인접한 노르웨이 잉고야섬 앞바다에서 사진에서처럼 목과 가슴 부위에 띠를 두른 벨루가 한 마리가 발견됐다.

목격자들이 말한 바로는 이 벨루가는 며칠 동안 노르웨이 선박 주변을 배회했는데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린 채 적극적으로 다가왔으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선박 옆 밧줄을 잡아당기려 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공영방송인 NRK가 보도한 영상을 보면 이런 벨루가의 행동이 잘 나타나 있다.

원래 북극해와 베링해, 그린란드와 캐나다, 러시아에 걸친 추운 바다에 서식하는 하얀 고래 벨루가가 노르웨이 북극 해안에 나타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벨루가는 목과 가슴지느러미 부위에 수상한(?)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띠에는 카메라 거치대가 장착돼 있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유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벨루가 몸에 매여 있던 띠. 왼편 사진에 보면 클립 부분에 EQUIPMENT ST.PETERSBURG(상트페테르부르크 장비)라고 적혀 있다.
벨루가를 처음 발견한 한 노르웨이 어부가 바다에 들어가 벨루가의 몸에 매여있던 띠의 클립을 풀어주었고 그때부터 이 벨루가가 '러시아의 스파이'인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띠에 카메라가 장착돼있거나 무기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벨루가가 러시아에서 스파이 훈련을 받다 탈출한 게 아닌지가 초점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해당 장치가 실제 러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류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중론이지만, 러시아 해군이 수년간 고래들을 군사용으로 훈련시키고 있으며 이 벨루가가 발견된 곳에서 415Km 떨어진 러시아 최북서단 도시 무르만스크(Murmansk)에 러시아 북방 함대 기지가 있다는 점 또한 확인되었다. 벨루가는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거뜬히 헤엄친다는 걸 상기한다면 러시아 해군 기지에서 훈련을 받았을 거라는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달 노르웨이 과학자들과 어부에 의해 발견된 문제의 벨루가(사진 출처 : EPA/NORWEGIAN DIRECTORATE OF FISHERIES)
러시아의 한 예비역 장교(Viktor Baranets)도 러시아 TV 방송에서 이 벨루가에 관해 '만약 러시아가 정말로 스파이로 활용하려 했다면 몸에 그토록 명백한 출처를 표시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투 목적으로 러시아군이 군사용 돌고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아니하였다.

이 벨루가가 러시아에서 군사용 목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단서들은 또 있다. 해양 포유류를 활용한 세계 각국의 정보 탐지나 전투 활동 실제 사례가 그것이다. 미국 해군은 냉전 시기에 돌고래와 바다사자를 훈련시켜 수중 지뢰(기뢰)와 위험한 물체들을 찾게 했으며 2003년 이라크전 때에는 기뢰제거팀을 돕도록 돌고래들을 걸프만에 실전 배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 돌고래 센터를 운영하면서 해저 분석과 외국 잠수부 공격, 외국 선박에 대한 기뢰 공격 등의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3년 걸프만에서 미군을 돕고 있는 돌고래(사진 출처 : 게티 이미지)
현재도 미 해군은 돌고래(bottlenose dolphins)와 바다사자(sea lions)를 군사 목적으로 훈련시키는 특별 프로그램(The U.S. Navy Marine Mammal Program)을 운영 중이다.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센터에서는 이들 해양 동물들의 장점이자 특기인 저조도 시력과 잠수 능력 등을 백분 활용해 동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중 지뢰(기뢰) 탐지나 위험물 수거, 위험인물이나 위험물을 자기편에게 알릴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수중 지뢰(기뢰)의 경우 엄청난 무게의 선박에 반응해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몸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 돌고래나 바다사자는 폭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해저에서 물체를 탐지하고 회수용 선을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바다사자 (사진 출처: 미국 Naval Information Warfare Center(NIWC) Pacific)
역사적으로 동물들이 군사용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가능성을 실험받은 사례는 적지 않다. 벨루가와 돌고래, 범고래나 바다사자 같은 해양 포유류는 물론이고 1960년대에는 도청장치를 단 고양이가, 2차 대전 때는 폭탄을 장착한 박쥐가, 그 이전인 1차 대전 때는 비둘기가 실전용 또는 실험용으로 활용되었고, 2007년에는 핵농축시설 인근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던 다람쥐떼가 이란군에 '체포'되기도 했다. 2013년 이집트 당국은 부리에 수상한 물체를 물고 있던 황새를 붙잡았는데 후에 이것은 황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한 순수 연구용 목적 장치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쉽고 거뜬히 해내는 동물들의 경우 아직은 대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해저용 드론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굳이 동물들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훈련받은 동물들을 군함이나 비행기, 헬리콥터로 실어나르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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