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괴롭힘②] “매일 지옥으로 출근”…직장갑질119가 마지막 비상구?

입력 2019.05.08 (0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 자르겠다

(팀장이)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고 말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너 실수 한 번 했더라? 새끼손가락 하나 자르자, 응?' 이라며 농담을 던졌는데, 저는 매우 기분 나빴습니다. 샤프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XX, 네가 그만두는지 내가 그만두는지 한번 해볼래? 이게 진짜 돌았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상사는 네 웃음소리 역겹다 웃지 마라, 네 주제껏 행동해라, 네 얼굴만 봐도 화가 난다'라며 카톡으로 괴롭혔습니다. '네 주제껏 행동해, 물 흐리지 말라고, 너에게 사과할 생각 없어' 등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민간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등 노동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민간기구입니다. 2017년 11월 출범한 이후 어느새 모르는 직장인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명패 하나 없는 사무실에서 일궈가는 '즐겁게 일할 권리'

서울 정동길 초입에 자리 잡은 한 신문사 건물, 10층 좁은 복도에 '직장갑질119' 사무실이 있습니다. 정식 명패 대신 스티커 한 장 붙은 게 전부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컴퓨터 메신저로 쉴 새 없이 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상근직원 4명을 포함해 노동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 등 150명이 바쁜 일정을 쪼개 무료로 활동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만 오픈 카톡과 이메일 등을 통해 들어온 제보가 22,810건. 하루 평균 62건에 달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계속 상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지시하더군요. 애써 무시하며 앉아있었는데 팀장님께서 팔을 채고 목 뒷덜미를 잡고 흔들면서 죽고 싶냐고 하더군요. 너무 비참하고 살기가 느껴져 밥도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제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어떠한 업무, 연락, 소속 없이 사실상 혼자 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제 노트북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출근해보니 정말 덩그러니 책상 하나만 있었습니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눈치 보는 게 습관이 돼버렸나 싶어 바보 같고, 두통·긴장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공공기관은 뭔가 어려워...직장갑질로 몰리는 상담·제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연히 구제받고 싶습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사내에 고충처리부서나 상담기관이 있겠죠.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고용노동부나 전국에 있는 지방노동청을 직접 찾아가 진정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 신고 역시 가능합니다. 전국의 근로감독관들, 바쁘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접수가 될만한 사안인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괜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앞선 기사의 렌터카 회사 직원 B씨처럼 노동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노무사는 물론이고 노동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합니다.

고용형태 불안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

직장갑질119는 그런 문턱을 모두 없앴습니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연 노무사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처럼 본인의 고용형태가 좀 열악해서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대표이사가 밤 9시 이후 그리고 주말 가리지 않고 사내 메신저를 통해서 업무를 지시합니다. 새벽에도 보낼 때가 있고요. 본인 말로는 자기 메시지를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는데, 그 메시지에 바로 대답을 안 하면 다음날 왜 소통이 안 되냐고 짜증을 냅니다.

대표가 이사한다고 토요일에 직원들을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부려놓고 수당 및 대체휴가는 없었습니다. 임원들은 직원들에게 하루하루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면서 '제시간에 퇴근을 못 하는 것은 너희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일을 일삼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직장갑질119는 일종의 코치 역할을 해줍니다. 앞으로 어떠한 행정절차를 통해서 본인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지 안내해줍니다. 본인이 끝까지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직장갑질119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7월 16일 시행에 들어갑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강요된 사항의 일부입니다. 출퇴근 시에 소장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출퇴근 사실을 알려라. 휴게시간에 쉬지 말고 대기하라는 내용을 서류화하여 사인을 요구합니다. 휴게시간에 전화 안 받으면 아파트 관리사무소 어떻게 돌아가겠냐고 호통치는 게 사무실 가득 들렸습니다.

언론사 인턴기자로 입사한 저는 직속 상사로부터 상습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회사 고충위에 얘기했더니 회사는 그 후 한 달간 가해 상사의 지시에 따라 표출되지도 않을 기사를 매일 작성하도록 하고,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까지 메신저로 보고하게 했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형법 등도 직장 내 폭행이나 모욕, 협박, 성희롱 등을 규율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분산된 법률로는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을 다 커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법률로 들어온 것은 획기적인 발전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내용은 무엇이고 정말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직장갑질119
카톡 오픈채팅 '직장갑질119' 검색
인터넷 주소창 gabjil119.com
후원 농협 010-119-119-1199


[연관 기사] [직장 괴롭힘①] “일 못하면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마” 직장 괴롭힘에 피눈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직장 괴롭힘②] “매일 지옥으로 출근”…직장갑질119가 마지막 비상구?
    • 입력 2019-05-08 08:00:46
    취재K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 자르겠다

(팀장이)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고 말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너 실수 한 번 했더라? 새끼손가락 하나 자르자, 응?' 이라며 농담을 던졌는데, 저는 매우 기분 나빴습니다. 샤프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XX, 네가 그만두는지 내가 그만두는지 한번 해볼래? 이게 진짜 돌았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상사는 네 웃음소리 역겹다 웃지 마라, 네 주제껏 행동해라, 네 얼굴만 봐도 화가 난다'라며 카톡으로 괴롭혔습니다. '네 주제껏 행동해, 물 흐리지 말라고, 너에게 사과할 생각 없어' 등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민간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등 노동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민간기구입니다. 2017년 11월 출범한 이후 어느새 모르는 직장인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명패 하나 없는 사무실에서 일궈가는 '즐겁게 일할 권리'

서울 정동길 초입에 자리 잡은 한 신문사 건물, 10층 좁은 복도에 '직장갑질119' 사무실이 있습니다. 정식 명패 대신 스티커 한 장 붙은 게 전부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컴퓨터 메신저로 쉴 새 없이 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상근직원 4명을 포함해 노동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 등 150명이 바쁜 일정을 쪼개 무료로 활동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만 오픈 카톡과 이메일 등을 통해 들어온 제보가 22,810건. 하루 평균 62건에 달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계속 상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지시하더군요. 애써 무시하며 앉아있었는데 팀장님께서 팔을 채고 목 뒷덜미를 잡고 흔들면서 죽고 싶냐고 하더군요. 너무 비참하고 살기가 느껴져 밥도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제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어떠한 업무, 연락, 소속 없이 사실상 혼자 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제 노트북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출근해보니 정말 덩그러니 책상 하나만 있었습니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눈치 보는 게 습관이 돼버렸나 싶어 바보 같고, 두통·긴장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공공기관은 뭔가 어려워...직장갑질로 몰리는 상담·제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연히 구제받고 싶습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사내에 고충처리부서나 상담기관이 있겠죠.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고용노동부나 전국에 있는 지방노동청을 직접 찾아가 진정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 신고 역시 가능합니다. 전국의 근로감독관들, 바쁘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접수가 될만한 사안인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괜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앞선 기사의 렌터카 회사 직원 B씨처럼 노동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노무사는 물론이고 노동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합니다.

고용형태 불안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

직장갑질119는 그런 문턱을 모두 없앴습니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연 노무사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처럼 본인의 고용형태가 좀 열악해서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대표이사가 밤 9시 이후 그리고 주말 가리지 않고 사내 메신저를 통해서 업무를 지시합니다. 새벽에도 보낼 때가 있고요. 본인 말로는 자기 메시지를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는데, 그 메시지에 바로 대답을 안 하면 다음날 왜 소통이 안 되냐고 짜증을 냅니다.

대표가 이사한다고 토요일에 직원들을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부려놓고 수당 및 대체휴가는 없었습니다. 임원들은 직원들에게 하루하루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면서 '제시간에 퇴근을 못 하는 것은 너희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일을 일삼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직장갑질119는 일종의 코치 역할을 해줍니다. 앞으로 어떠한 행정절차를 통해서 본인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지 안내해줍니다. 본인이 끝까지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직장갑질119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7월 16일 시행에 들어갑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강요된 사항의 일부입니다. 출퇴근 시에 소장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출퇴근 사실을 알려라. 휴게시간에 쉬지 말고 대기하라는 내용을 서류화하여 사인을 요구합니다. 휴게시간에 전화 안 받으면 아파트 관리사무소 어떻게 돌아가겠냐고 호통치는 게 사무실 가득 들렸습니다.

언론사 인턴기자로 입사한 저는 직속 상사로부터 상습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회사 고충위에 얘기했더니 회사는 그 후 한 달간 가해 상사의 지시에 따라 표출되지도 않을 기사를 매일 작성하도록 하고,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까지 메신저로 보고하게 했습니다.

- 직장갑질119 선정 2019년 갑질 40사례 중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형법 등도 직장 내 폭행이나 모욕, 협박, 성희롱 등을 규율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분산된 법률로는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을 다 커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법률로 들어온 것은 획기적인 발전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내용은 무엇이고 정말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직장갑질119
카톡 오픈채팅 '직장갑질119' 검색
인터넷 주소창 gabjil119.com
후원 농협 010-119-119-1199


[연관 기사] [직장 괴롭힘①] “일 못하면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마” 직장 괴롭힘에 피눈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