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유가족이 이렇게 밥 챙겨 먹는 거 안 이상해요?”

입력 2019.05.09 (07:00) 수정 2019.05.0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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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씨에게 어제(8일)는 참 힘든 날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스물네 살이었던 아들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맞는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도 여느 집 아이들처럼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리운 아들 생각에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들 김용균 씨를 만나러 갔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연관 기사] ‘하청 노동자 또 희생’…태안화력 산재 유족 ‘참담’

"자식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웃으면 사람들이 욕하잖아요"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탄력근로제 폐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탄력근로제 폐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김미숙 씨를 만났습니다. 김 씨는 오는 11일 '비정규직 대행진'을 앞두고 피켓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김 씨가 직접 탄력근로제 폐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피켓에 적었고, '꿀잠' 김소연 운영위원장이 피켓을 든 김 씨를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김 씨가 연신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찍힌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건데, 김 씨 자신의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웃는 모습이 비칠까 봐,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을까 봐 걱정됐다고 합니다. 김 씨에게 사진 한 장, 한 장은 모두 아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김 씨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혹한 질책을 가하곤 했습니다. 김 씨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표정부터 말투까지 스스로 검열하고,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김 씨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준 카네이션 편지, 평생 못 버리죠"


고 김용균 씨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미숙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 지난 어버이날에 아들이 줬던 카네이션 편지를 내려놓았습니다. 보지 않고도 외울 수 있을 만큼 자주 읽었던 편지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평생 버리지 못할 소중한 선물입니다.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 구석이 있었던 외아들이었습니다. 딸 같이 키웠는데, 참 사려 깊고 착했는데… 그런데 글씨 하나는 끝까지 참 못 썼다며, 어머니는 웃었습니다. "제가 원래 글씨를 못 쓰거든요. 절 닮아서 그런지, 노트 사다가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이래요."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故 김용균 씨 묘역에 추모 의미의 노란 조형물이 세워졌다.‘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故 김용균 씨 묘역에 추모 의미의 노란 조형물이 세워졌다.

지난달 28일엔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김용균 씨 묘역에 노란 추모 조형물이 세워졌습니다. 김용균 씨가 자전거를 타고 태안화력발전소로 출근하는 모습을 본떠 조형물로 만든 건데, 노란색은 '안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김미숙 씨는 입사 후 아들이 비쩍 말랐을 때 사진을 바탕으로 조형물이 만들어져서 참 아쉽다고 말합니다. "우리 애 아빠를 갖다 넣은 것 같잖아요. 좀 더 통통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하면서 힘들다 보니 너무 말라서…" 엄마 눈엔 실물에 한참 못 미치는 모양입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다 애한테 미안해요"

어버이날에도 김 씨는 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집회에 힘을 보탠다.어버이날에도 김 씨는 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집회에 힘을 보탠다.

모란공원을 떠나, 오후엔 민주노총 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집회 참석에 앞서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 어떤 메뉴가 좋을지 김미숙 씨에게 물어보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유가족이 이렇게 밥 챙겨 먹는 거 안 이상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족다운' 모습에서 벗어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두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약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제가 죽었더라면 두 분이 저한테 너무 얽매이지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살길 바랄 텐데. 근데 부모 입장은 그게 아니거든요. 먹고 자고 하는 것 자체가 다 애한테 미안해요. 그렇지만 때로는 그 아픔을 잊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발언할 때나 집회에 참석할 때면, 제가 원하는 것, 제가 가진 생각을 잘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아픔에만 빠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도 거리로 나섰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게,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에섭니다. 물론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도, 이 싸움은 계속돼야 합니다. 아들의 목소리를 대신 낼 때에만, 어머니는 잠시나마 깊은 슬픔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우리 아이 희생 헛되지 않게”…끝나지 않은 엄마들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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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9 07:00:51
    • 수정2019-05-09 07:01:04
    취재후·사건후
김미숙 씨에게 어제(8일)는 참 힘든 날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스물네 살이었던 아들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맞는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도 여느 집 아이들처럼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리운 아들 생각에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들 김용균 씨를 만나러 갔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연관 기사] ‘하청 노동자 또 희생’…태안화력 산재 유족 ‘참담’

"자식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웃으면 사람들이 욕하잖아요"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탄력근로제 폐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김미숙 씨를 만났습니다. 김 씨는 오는 11일 '비정규직 대행진'을 앞두고 피켓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김 씨가 직접 탄력근로제 폐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피켓에 적었고, '꿀잠' 김소연 운영위원장이 피켓을 든 김 씨를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김 씨가 연신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찍힌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건데, 김 씨 자신의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웃는 모습이 비칠까 봐,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을까 봐 걱정됐다고 합니다. 김 씨에게 사진 한 장, 한 장은 모두 아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김 씨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혹한 질책을 가하곤 했습니다. 김 씨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표정부터 말투까지 스스로 검열하고,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김 씨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준 카네이션 편지, 평생 못 버리죠"


고 김용균 씨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미숙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 지난 어버이날에 아들이 줬던 카네이션 편지를 내려놓았습니다. 보지 않고도 외울 수 있을 만큼 자주 읽었던 편지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평생 버리지 못할 소중한 선물입니다.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 구석이 있었던 외아들이었습니다. 딸 같이 키웠는데, 참 사려 깊고 착했는데… 그런데 글씨 하나는 끝까지 참 못 썼다며, 어머니는 웃었습니다. "제가 원래 글씨를 못 쓰거든요. 절 닮아서 그런지, 노트 사다가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이래요."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故 김용균 씨 묘역에 추모 의미의 노란 조형물이 세워졌다.
지난달 28일엔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김용균 씨 묘역에 노란 추모 조형물이 세워졌습니다. 김용균 씨가 자전거를 타고 태안화력발전소로 출근하는 모습을 본떠 조형물로 만든 건데, 노란색은 '안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김미숙 씨는 입사 후 아들이 비쩍 말랐을 때 사진을 바탕으로 조형물이 만들어져서 참 아쉽다고 말합니다. "우리 애 아빠를 갖다 넣은 것 같잖아요. 좀 더 통통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하면서 힘들다 보니 너무 말라서…" 엄마 눈엔 실물에 한참 못 미치는 모양입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다 애한테 미안해요"

어버이날에도 김 씨는 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집회에 힘을 보탠다.
모란공원을 떠나, 오후엔 민주노총 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집회 참석에 앞서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 어떤 메뉴가 좋을지 김미숙 씨에게 물어보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유가족이 이렇게 밥 챙겨 먹는 거 안 이상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족다운' 모습에서 벗어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두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약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제가 죽었더라면 두 분이 저한테 너무 얽매이지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살길 바랄 텐데. 근데 부모 입장은 그게 아니거든요. 먹고 자고 하는 것 자체가 다 애한테 미안해요. 그렇지만 때로는 그 아픔을 잊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발언할 때나 집회에 참석할 때면, 제가 원하는 것, 제가 가진 생각을 잘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아픔에만 빠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도 거리로 나섰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게,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에섭니다. 물론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도, 이 싸움은 계속돼야 합니다. 아들의 목소리를 대신 낼 때에만, 어머니는 잠시나마 깊은 슬픔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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