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으로 3조 호반건설 장악한 회장님 아들의 비결은?

입력 2019.05.09 (16:26) 수정 2019.05.0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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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9년 설립된 호반건설은 순 자산만 3조 2천억 원대인 중견 건설사입니다. 우리에게는 '호반 베르디움'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죠.

호반건설은 지난해 11월 계열사인 (주)호반을 흡수합병함으로써 2018년 7월 기준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에 진입했습니다.

이 합병 이후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는 호반건설 회장이자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이 아니라 김 회장의 큰아들인 김대헌 씨가 됐습니다. 또 합병 직전 호반건설 미래전략실 전무였던 김 씨는 합병 이후 부사장으로 승진합니다.

김대헌 부사장, 지난해 합병 뒤 지분 54%로 호반건설 장악

김대헌 부사장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호반건설 지분의 54.7%로 부친인 김 회장(10.5%)과 모친인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10.8%)의 지분을 다 합친 거보다도 두 배 이상 많습니다. 회사 주식 절반 이상이 회장 장남 주식이니 누가 봐도 창업주에서 2세로 승계가 완료된 모양샙니다.

그런데 김 부사장의 나이는 올해 32살에 불과합니다. 더 놀라운 건 김 부사장은 지난해 3조 원대 자산의 호반건설을 차지하면서 증여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합병 당시 31살이었던 김 부사장이 증여나 상속이 아닌 방법으로 국내 10대 건설사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던 놀라운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008년 자본금 5억짜리 분양대행회사 최대주주로 등장

지난 2003년 12월 분양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비오토라는 회사가 설립됐습니다.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가 처음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2008년입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감사보고서 공개의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본금 5억 원인 비오토의 감사보고서에 지분율 100%를 가진 최대주주로 김대헌 부사장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김 부사장의 나이는 대학교 2학년 나이인 21살에 불과했습니다.

3년 후인 2011년 24살의 김 부사장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3억 원의 개인 돈을 회사에 더 넣었고, 비오토의 자본금은 8억 원이 됩니다.

비오토의 자본금 5억 원을 당시 21살이었던 김 부사장이 실제로 자신의 돈으로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비오토 설립 과정에서 김 부사장이 투자한 돈은 이 8억 원이 전부입니다. 취재진은 이 돈의 출처는 무엇이었는지 호반건설 측에 문의했지만, 알려 줄 수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후 비오토는 2013년에는 김 부사장의 모친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호반씨엠 등과 합병하며 김 부사장의 지분율이 85.7%로 낮아지기도 합니다. 나머지 14.3%는 우 이사장이 가졌고요. 합병 직후 사명도 호반비오토로 바꿨습니다.


호반비오토는 2015년 사명을 호반건설주택으로 바꾸고, 호반리빙, 호반주택, 호반토건 등 계열사를 흡수합병해 다시금 덩치를 불렸습니다.

지난해에는 호반하우징, 에이치비토건을 흡수합병하고, 사명도 호반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렇게 사명도 여러 번 바꾸고, 합병도 많이 하면서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10년 만에 매출액 100배 늘어…2017년 순익만 6,000억

2008년 호반의 매출액은 1,166억 원, 순이익은 169억 원이었습니다. 이후 매년 순이익을 내며 성장해 9년 만인 2017년 매출액 1조 6,000억, 순이익 6,100억여 원의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순이익이 36배 이상 늘었고, 매출액은 100배 가까이 급증한 겁니다.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김상열 회장의 '호반건설'도 꾸준히 성장했지만, '호반'은 더욱 놀라운 성장세로 호반건설을 제친 겁니다. 순이익만 보면 2017년 기준 호반건설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성장 비결은 일감 몰아주기…2010년엔 99%가 내부거래

2003년 설립된 자본금 5억 원짜리 회사의 이 같은 놀라운 성장 배경에는 재벌가에서 흔히 벌이지는 일감 몰아주기라고도 불리는 계열사 내부거래가 있었습니다.


호반의 연도별 내부거래 비중(전체 매출액 대비 관계사 매출액 비중)은 2008년 이후 급증해 2010년에는 매출의 거의 대부분인 99.4%를 기록했습니다. 2011년과 2012년도에도 88.4%, 96.1%로 거의 모든 매출을 관계사에 의존했습니다.

2013년과 2014년에 내부거래 비중이 급감했는데요. 이는 2013년 합병으로 분양수입이 급증한 덕입니다. 주택신축판매업을 하는 에이치비자산관리와 호반씨엠을 합병하면서 이들의 분양수입이 호반의 분양수입이 됐기 때문이죠. 2015년부터는 다시금 꾸준히 내부거래 물량이 늘어 3년간 30~4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회사 제친 후 합병으로 기업승계 완성

계열사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한 김 부사장의 호반은 작년 말 호반건설과 합병을 결정합니다.

양사는 작년 10월 합병 결정 공시를 통해 호반이 호반건설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합병이 진행된다고 밝혔습니다.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비율은 1대 5.89였습니다. 합병이 완료되면 호반이 사라지고, 김 부사장이 가진 호반 주식 1주당 호반건설 주식 5.89주를 새로 받게 된다는 얘깁니다.

합병비율에 따라 김 부사장이 받는 호반건설 지분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 구조인데요. 이 합병비율은 합병 당시 호반과 호반건설의 자산과 수익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 결정하게 됩니다.

2018년 말 합병이 이뤄지니 2017년 실적을 기준으로 두 회사의 수익 가치를 매기게 돼 있었습니다. 2017년은 공교롭게도 김 부사장의 회사인 호반의 순이익이 호반건설보다 3배 이상 많아 호반의 가치가 극대화된 시기입니다.

결국, 이 합병으로 김 부사장은 호반건설의 지분을 55%나 받았습니다. 아들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놀라운 성장세로 가치를 불린 후, 아버지 회사와 합병을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업 승계가 이뤄진 겁니다.

기업 승계는 완성됐지만, 증여세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물려받은 게 아니고, 합병으로 인해 받은 주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김 부사장이 들인 돈은 과거 호반의 지분 100%를 가지는데 들어간 자본금 8억 원뿐입니다. 당시 김 부사장 나이가 21~24이니 저 돈이 정당하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증여세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순 자산 3조 2,000억 원의 호반건설 지분 55%를 확보하는데 기껏해야 8억 원에 대한 증여세만 낸 셈입니다.

김 부사장의 성공의 배후에는 아버지 회사의 일감 몰아주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호반건설 측은 "호반은 부동산 활황과 택지지구 중심의 주택사업을 많이 진행해서 성장하게 됐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또 합병을 통해 세금을 피하면서 2세 승계를 완성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합병은 호반건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양사 사업영역이 충돌되기 때문에 합병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제안을 받아 진행하게 됐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삼성·현대차 판박이 편법 경영권 승계"

호반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호반건설의 2세 승계 과정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동일인 변경(이건희→ 이재용)으로 삼성 총수 자격을 '공인'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도 27살인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60억 원의 종잣돈으로 당시 상장되지 않았던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에스원 주식을 샀고, 결국 삼성그룹을 승계하는 데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마무리한 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서라는 점도 호반건설의 사례와 유사합니다.

또한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30대 초반이던 2000년대 초,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30억 원가량을 물려받아 현대글로비스에 출자한 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업이 성장해 현재 1조 3천억 원대(현대글로비스 시총 5조7천억 원, 정의선 지분율 23.2%)의 자산을 갖게 된 사례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부당한 지원'만 금지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법이 23조1항 7호와 23조2를 통해 규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부당한 지원만 금지하고 있습니다.

100원짜리 물건을 아들 회사에만 50원에 파는 행위처럼 특수관계인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는 금지하지만, 아들 회사와 거래를 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거래가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당한 지원행위여야 불법성이 인정되는 것"이라며 "불법성 여부 판단을 위해선 구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이런 식의 '꼼수 승계'는 정당하게 상속·증여세를 내는 기업인들과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일반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소액으로 그룹을 물려받는 전형적인 편법 경영권승계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방식과 판박이"라며 "이 같은 사례처럼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들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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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억으로 3조 호반건설 장악한 회장님 아들의 비결은?
    • 입력 2019-05-09 16:26:25
    • 수정2019-05-09 16:42:03
    취재K
지난 1989년 설립된 호반건설은 순 자산만 3조 2천억 원대인 중견 건설사입니다. 우리에게는 '호반 베르디움'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죠.

호반건설은 지난해 11월 계열사인 (주)호반을 흡수합병함으로써 2018년 7월 기준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에 진입했습니다.

이 합병 이후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는 호반건설 회장이자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이 아니라 김 회장의 큰아들인 김대헌 씨가 됐습니다. 또 합병 직전 호반건설 미래전략실 전무였던 김 씨는 합병 이후 부사장으로 승진합니다.

김대헌 부사장, 지난해 합병 뒤 지분 54%로 호반건설 장악

김대헌 부사장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호반건설 지분의 54.7%로 부친인 김 회장(10.5%)과 모친인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10.8%)의 지분을 다 합친 거보다도 두 배 이상 많습니다. 회사 주식 절반 이상이 회장 장남 주식이니 누가 봐도 창업주에서 2세로 승계가 완료된 모양샙니다.

그런데 김 부사장의 나이는 올해 32살에 불과합니다. 더 놀라운 건 김 부사장은 지난해 3조 원대 자산의 호반건설을 차지하면서 증여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합병 당시 31살이었던 김 부사장이 증여나 상속이 아닌 방법으로 국내 10대 건설사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던 놀라운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008년 자본금 5억짜리 분양대행회사 최대주주로 등장

지난 2003년 12월 분양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비오토라는 회사가 설립됐습니다.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가 처음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2008년입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감사보고서 공개의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본금 5억 원인 비오토의 감사보고서에 지분율 100%를 가진 최대주주로 김대헌 부사장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김 부사장의 나이는 대학교 2학년 나이인 21살에 불과했습니다.

3년 후인 2011년 24살의 김 부사장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3억 원의 개인 돈을 회사에 더 넣었고, 비오토의 자본금은 8억 원이 됩니다.

비오토의 자본금 5억 원을 당시 21살이었던 김 부사장이 실제로 자신의 돈으로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비오토 설립 과정에서 김 부사장이 투자한 돈은 이 8억 원이 전부입니다. 취재진은 이 돈의 출처는 무엇이었는지 호반건설 측에 문의했지만, 알려 줄 수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후 비오토는 2013년에는 김 부사장의 모친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호반씨엠 등과 합병하며 김 부사장의 지분율이 85.7%로 낮아지기도 합니다. 나머지 14.3%는 우 이사장이 가졌고요. 합병 직후 사명도 호반비오토로 바꿨습니다.


호반비오토는 2015년 사명을 호반건설주택으로 바꾸고, 호반리빙, 호반주택, 호반토건 등 계열사를 흡수합병해 다시금 덩치를 불렸습니다.

지난해에는 호반하우징, 에이치비토건을 흡수합병하고, 사명도 호반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렇게 사명도 여러 번 바꾸고, 합병도 많이 하면서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10년 만에 매출액 100배 늘어…2017년 순익만 6,000억

2008년 호반의 매출액은 1,166억 원, 순이익은 169억 원이었습니다. 이후 매년 순이익을 내며 성장해 9년 만인 2017년 매출액 1조 6,000억, 순이익 6,100억여 원의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순이익이 36배 이상 늘었고, 매출액은 100배 가까이 급증한 겁니다.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김상열 회장의 '호반건설'도 꾸준히 성장했지만, '호반'은 더욱 놀라운 성장세로 호반건설을 제친 겁니다. 순이익만 보면 2017년 기준 호반건설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성장 비결은 일감 몰아주기…2010년엔 99%가 내부거래

2003년 설립된 자본금 5억 원짜리 회사의 이 같은 놀라운 성장 배경에는 재벌가에서 흔히 벌이지는 일감 몰아주기라고도 불리는 계열사 내부거래가 있었습니다.


호반의 연도별 내부거래 비중(전체 매출액 대비 관계사 매출액 비중)은 2008년 이후 급증해 2010년에는 매출의 거의 대부분인 99.4%를 기록했습니다. 2011년과 2012년도에도 88.4%, 96.1%로 거의 모든 매출을 관계사에 의존했습니다.

2013년과 2014년에 내부거래 비중이 급감했는데요. 이는 2013년 합병으로 분양수입이 급증한 덕입니다. 주택신축판매업을 하는 에이치비자산관리와 호반씨엠을 합병하면서 이들의 분양수입이 호반의 분양수입이 됐기 때문이죠. 2015년부터는 다시금 꾸준히 내부거래 물량이 늘어 3년간 30~4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회사 제친 후 합병으로 기업승계 완성

계열사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한 김 부사장의 호반은 작년 말 호반건설과 합병을 결정합니다.

양사는 작년 10월 합병 결정 공시를 통해 호반이 호반건설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합병이 진행된다고 밝혔습니다.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비율은 1대 5.89였습니다. 합병이 완료되면 호반이 사라지고, 김 부사장이 가진 호반 주식 1주당 호반건설 주식 5.89주를 새로 받게 된다는 얘깁니다.

합병비율에 따라 김 부사장이 받는 호반건설 지분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 구조인데요. 이 합병비율은 합병 당시 호반과 호반건설의 자산과 수익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 결정하게 됩니다.

2018년 말 합병이 이뤄지니 2017년 실적을 기준으로 두 회사의 수익 가치를 매기게 돼 있었습니다. 2017년은 공교롭게도 김 부사장의 회사인 호반의 순이익이 호반건설보다 3배 이상 많아 호반의 가치가 극대화된 시기입니다.

결국, 이 합병으로 김 부사장은 호반건설의 지분을 55%나 받았습니다. 아들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놀라운 성장세로 가치를 불린 후, 아버지 회사와 합병을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업 승계가 이뤄진 겁니다.

기업 승계는 완성됐지만, 증여세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물려받은 게 아니고, 합병으로 인해 받은 주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김 부사장이 들인 돈은 과거 호반의 지분 100%를 가지는데 들어간 자본금 8억 원뿐입니다. 당시 김 부사장 나이가 21~24이니 저 돈이 정당하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증여세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순 자산 3조 2,000억 원의 호반건설 지분 55%를 확보하는데 기껏해야 8억 원에 대한 증여세만 낸 셈입니다.

김 부사장의 성공의 배후에는 아버지 회사의 일감 몰아주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호반건설 측은 "호반은 부동산 활황과 택지지구 중심의 주택사업을 많이 진행해서 성장하게 됐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또 합병을 통해 세금을 피하면서 2세 승계를 완성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합병은 호반건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양사 사업영역이 충돌되기 때문에 합병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제안을 받아 진행하게 됐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삼성·현대차 판박이 편법 경영권 승계"

호반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호반건설의 2세 승계 과정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동일인 변경(이건희→ 이재용)으로 삼성 총수 자격을 '공인'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도 27살인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60억 원의 종잣돈으로 당시 상장되지 않았던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에스원 주식을 샀고, 결국 삼성그룹을 승계하는 데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마무리한 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서라는 점도 호반건설의 사례와 유사합니다.

또한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30대 초반이던 2000년대 초,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30억 원가량을 물려받아 현대글로비스에 출자한 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업이 성장해 현재 1조 3천억 원대(현대글로비스 시총 5조7천억 원, 정의선 지분율 23.2%)의 자산을 갖게 된 사례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부당한 지원'만 금지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법이 23조1항 7호와 23조2를 통해 규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부당한 지원만 금지하고 있습니다.

100원짜리 물건을 아들 회사에만 50원에 파는 행위처럼 특수관계인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는 금지하지만, 아들 회사와 거래를 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거래가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당한 지원행위여야 불법성이 인정되는 것"이라며 "불법성 여부 판단을 위해선 구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이런 식의 '꼼수 승계'는 정당하게 상속·증여세를 내는 기업인들과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일반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소액으로 그룹을 물려받는 전형적인 편법 경영권승계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방식과 판박이"라며 "이 같은 사례처럼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들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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