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돌다리도 두드렸지만…신혼부부 울린 사기꾼

입력 2019.05.11 (13:25) 수정 2019.05.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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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인 소개로 신혼여행 계약
의심스러워 항공권 먼저 받아
여행비 완납 일주일 만에 폐업 통보
업체 대표, 2016년에도 같은 사기

'뭔가 부주의했겠지….'
사기 범죄를 접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이득을 취한 사기꾼이 나쁜 사람이지만, 피해자도 너무 쉽게 사람을 믿었다던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던가, 뭔가 부주의하게 행동한 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수현(가명·여) 씨는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는데도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평생 한 번뿐인 수백만 원짜리 신혼여행 사기였다.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사기를 당한 수현 씨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항공권 재촉
이번 달 말 결혼을 하는 수현 씨가 신혼여행을 알아본 건 지난해 11월이다. 올해 1월 결혼한 친한 언니가 신혼여행을 같이 계약하면 할인과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며 같이 하자고 해서 소개받았다. 이 업체는 36살 김 모 씨가 실제로 운영하면서 명의는 김 씨의 동생 명의로 돼 있는 업체였고, 규모가 크진 않았다.

수현 씨는 언니에게 업체 연락처를 받아 담당자와 연락했다. 업체는 서울이고 수현 씨 집은 수원이라 직접 만나진 않고 전화와 이메일을 활용했다. 수현 씨는 김 씨 업체에서 견적을 받고 다른 대형 업체에서도 견적을 받아서 비교한 뒤 김 씨 업체를 택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4박 6일 동안 여행하는 상품이었다. 비용은 항공권과 숙박비 등을 합쳐 380만 원이었다.

이수현(가명) 씨가 받은 신혼여행 일정표이수현(가명) 씨가 받은 신혼여행 일정표

업체에서는 항공료 86만 원과 계약금 60만 원을 합쳐 146만 원을 먼저 보내달라고 했다. 수현 씨가 돈을 입금한 당일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항공료만 146만 원인데 잘못 알려줬다며, 계약금 60만 원을 추가로 보내달라고 했다.

수현 씨는 이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금을 3개월에 걸쳐서 나눠서 내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계약금을 20만 원씩 나눠서 입금했다. 돈을 먼저 보낸 항공권도 빨리 달라고 업체에 여러 번 얘기해서 받았다.

그러는 사이 올해 1월 결혼한 언니는 신혼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 같은 업체에서 계약한 언니가 여행을 다녀오는 걸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러나 미심쩍은 일이 또 일어났다. 계약금과 항공료를 내고 남은 174만 원은 3월 말에 한꺼번에 입금하기로 했는데, 업체에서 빨리 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다. 수현 씨는 불안한 마음에 이 제안 역시 거절하고 약속한 날짜에 돈을 보냈다.

이수현(가명) 씨가 여러 번 나눠서 보낸 신혼여행비 입금증이수현(가명) 씨가 여러 번 나눠서 보낸 신혼여행비 입금증

돈 보낸 지 일주일 만에 폐업 통보
여행 경비 380만 원을 다 보내고 일주일쯤 흐른 지난달 2일.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수현 씨는 황당한 문자를 받았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이 문자는 수현 씨가 계약한 업체가 보낸 것이었다. 업체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갑작스럽게 폐업을 하게 됐다며, 다른 여행사와 계약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받은 돈은 여행보증보험을 활용해 돌려주겠다고 했다.

수현 씨의 신혼여행은 졸지에 없던 일이 됐다. 업체가 미심쩍어 일찌감치 항공권을 받아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항공권은 건졌지만, 숙박비 등 240여만 원은 당장 돌려받을 길이 없게 됐다. 수현 씨는 업체에서 소개해주는 다른 업체를 마다하고 직접 업체를 골라서 항공권을 뺀 신혼여행을 새로 예약했다. 당장 돈이 없어서 5년간 들었던 보험을 해지해야 했다.

피해자 중에는 수현 씨보다 사정이 딱한 사람들이 많았다. 수현 씨는 "신혼여행지를 유럽으로 정한 사람은 여행비가 900만 원이 넘었다"며 "신혼여행 출발 직전에 폐업 통지를 받은 사람도 있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숙소가 예약이 안 돼 있는 사실을 안 부부도 있었다"고 전했다.

업체는 피해자들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업체는 이곳에서 여행보증보험 신청 방법을 알려줬지만, 돈을 당장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음 달 중순까지 신청을 받은 후에 심사를 거쳐 돌려주는 구조였다.

업체가 정해놓은 보상한도는 2억 원이었다. 피해액이 2억 원이 넘으면 전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52쌍, 금액은 1억5000만 원이다. 경찰이 추가 피해자들을 찾고 있어서 피해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폐업 안내문여행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폐업 안내문

동종 전과도 있었던 사기꾼
경찰 조사결과 업체 대표 김 씨는 예비부부들에게 받은 신혼여행비를 2017년부터 가상화폐 투자에 썼다. 조금씩 투자를 하다가 계속 손실이 나자 김 씨는 '여행비 돌려막기'까지 했다. 새 고객을 유치해서 돈을 받아서 기존 고객의 여행비로 쓴 것이다.

김 씨는 2016년에도 여행사를 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쳐서 6,000만 원을 빼돌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당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한 번 덜미를 잡혔으면서도 반성의 기미 없이 곧바로 같은 사기를 친 셈이다.

수현 씨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신혼여행을 준비했지만, 사기꾼을 피할 수 없었다. 매사에 '나도 당할 수 있다'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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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1 13:25:29
    • 수정2019-05-11 13:30:30
    취재후·사건후
지인 소개로 신혼여행 계약<br />의심스러워 항공권 먼저 받아<br />여행비 완납 일주일 만에 폐업 통보<br />업체 대표, 2016년에도 같은 사기
'뭔가 부주의했겠지….'
사기 범죄를 접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이득을 취한 사기꾼이 나쁜 사람이지만, 피해자도 너무 쉽게 사람을 믿었다던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던가, 뭔가 부주의하게 행동한 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수현(가명·여) 씨는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는데도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평생 한 번뿐인 수백만 원짜리 신혼여행 사기였다.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사기를 당한 수현 씨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항공권 재촉
이번 달 말 결혼을 하는 수현 씨가 신혼여행을 알아본 건 지난해 11월이다. 올해 1월 결혼한 친한 언니가 신혼여행을 같이 계약하면 할인과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며 같이 하자고 해서 소개받았다. 이 업체는 36살 김 모 씨가 실제로 운영하면서 명의는 김 씨의 동생 명의로 돼 있는 업체였고, 규모가 크진 않았다.

수현 씨는 언니에게 업체 연락처를 받아 담당자와 연락했다. 업체는 서울이고 수현 씨 집은 수원이라 직접 만나진 않고 전화와 이메일을 활용했다. 수현 씨는 김 씨 업체에서 견적을 받고 다른 대형 업체에서도 견적을 받아서 비교한 뒤 김 씨 업체를 택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4박 6일 동안 여행하는 상품이었다. 비용은 항공권과 숙박비 등을 합쳐 380만 원이었다.

이수현(가명) 씨가 받은 신혼여행 일정표
업체에서는 항공료 86만 원과 계약금 60만 원을 합쳐 146만 원을 먼저 보내달라고 했다. 수현 씨가 돈을 입금한 당일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항공료만 146만 원인데 잘못 알려줬다며, 계약금 60만 원을 추가로 보내달라고 했다.

수현 씨는 이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금을 3개월에 걸쳐서 나눠서 내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계약금을 20만 원씩 나눠서 입금했다. 돈을 먼저 보낸 항공권도 빨리 달라고 업체에 여러 번 얘기해서 받았다.

그러는 사이 올해 1월 결혼한 언니는 신혼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 같은 업체에서 계약한 언니가 여행을 다녀오는 걸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러나 미심쩍은 일이 또 일어났다. 계약금과 항공료를 내고 남은 174만 원은 3월 말에 한꺼번에 입금하기로 했는데, 업체에서 빨리 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다. 수현 씨는 불안한 마음에 이 제안 역시 거절하고 약속한 날짜에 돈을 보냈다.

이수현(가명) 씨가 여러 번 나눠서 보낸 신혼여행비 입금증
돈 보낸 지 일주일 만에 폐업 통보
여행 경비 380만 원을 다 보내고 일주일쯤 흐른 지난달 2일.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수현 씨는 황당한 문자를 받았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이 문자는 수현 씨가 계약한 업체가 보낸 것이었다. 업체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갑작스럽게 폐업을 하게 됐다며, 다른 여행사와 계약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받은 돈은 여행보증보험을 활용해 돌려주겠다고 했다.

수현 씨의 신혼여행은 졸지에 없던 일이 됐다. 업체가 미심쩍어 일찌감치 항공권을 받아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항공권은 건졌지만, 숙박비 등 240여만 원은 당장 돌려받을 길이 없게 됐다. 수현 씨는 업체에서 소개해주는 다른 업체를 마다하고 직접 업체를 골라서 항공권을 뺀 신혼여행을 새로 예약했다. 당장 돈이 없어서 5년간 들었던 보험을 해지해야 했다.

피해자 중에는 수현 씨보다 사정이 딱한 사람들이 많았다. 수현 씨는 "신혼여행지를 유럽으로 정한 사람은 여행비가 900만 원이 넘었다"며 "신혼여행 출발 직전에 폐업 통지를 받은 사람도 있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숙소가 예약이 안 돼 있는 사실을 안 부부도 있었다"고 전했다.

업체는 피해자들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업체는 이곳에서 여행보증보험 신청 방법을 알려줬지만, 돈을 당장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음 달 중순까지 신청을 받은 후에 심사를 거쳐 돌려주는 구조였다.

업체가 정해놓은 보상한도는 2억 원이었다. 피해액이 2억 원이 넘으면 전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52쌍, 금액은 1억5000만 원이다. 경찰이 추가 피해자들을 찾고 있어서 피해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폐업 안내문
동종 전과도 있었던 사기꾼
경찰 조사결과 업체 대표 김 씨는 예비부부들에게 받은 신혼여행비를 2017년부터 가상화폐 투자에 썼다. 조금씩 투자를 하다가 계속 손실이 나자 김 씨는 '여행비 돌려막기'까지 했다. 새 고객을 유치해서 돈을 받아서 기존 고객의 여행비로 쓴 것이다.

김 씨는 2016년에도 여행사를 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쳐서 6,000만 원을 빼돌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당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한 번 덜미를 잡혔으면서도 반성의 기미 없이 곧바로 같은 사기를 친 셈이다.

수현 씨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신혼여행을 준비했지만, 사기꾼을 피할 수 없었다. 매사에 '나도 당할 수 있다'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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