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K] 900년 전 비밀을 품고 있는 충남의 작은 섬 ‘마도’

입력 2019.05.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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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충남 태안 마도(馬島) 앞바다에서 길이 11.5m, 폭 6m의 고선박이 발견됐다. 마도 북동쪽 지역의 수심 9~15m에 뱃머리가 묻혀 있는 것을 해저 탐사 로봇이 투입돼 탐사 작업을 벌였다. '마도 4호선'으로 명명(命名)된 배다.

마도 4호선에서는 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배에서 발굴된 목간(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 죽간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에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란 한자가 적혀 있었다. 이는 배의 출발지가 전남 나주, 도착지는 광흥창이란 뜻이다. 전남 나주 조창에서 출발해 조선 시대 녹봉을 관장하든 기관인 광흥창(현재 서울 마포구)으로 오던 배였다.

배에서 나온 분청사기를 통해서는 이 배가 중앙관청에 바칠 물품을 실어 나르던 1410~20년(조선 태종~세종) 무렵의 조운선(수운을 이용하여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을 운송하는 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도에서는 이에 앞서 3척의 고선박이 나왔다. 2011년에는 마도 1, 2, 3호선 등 고려시대 고선박 3천과 3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목간, 도기, 곡물, 생활용품 등 전 고려시대의 생활상을 전해주는 유물 3천여 점이 발견됐다. 900년 전 거친 물살을 헤친 고려시대 뱃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생활 유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고려시대 침몰선박 마도 3호선에서 나온 도기호(陶器壺)와 말린 홍합, 젓갈 등 먹거리고려시대 침몰선박 마도 3호선에서 나온 도기호(陶器壺)와 말린 홍합, 젓갈 등 먹거리

지난해 있었던 마도 해역 발굴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청자, 분청사기를 비롯해 중국 푸젠성(福建省)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송·원 시대 도자기, 북송 때 동전인 원풍통보까지 나왔다.

마도 해역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을마도 해역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을

그렇다면 왜 마도 해역에서 이렇게 수많은 유물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마도 해역은 강한 물살과 암초, 짙은 안개로 인해 난파 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동력을 갖추지 못한 당시의 돛단배는 바람에 의지해 가다가 풍향이 바뀌거나 물살이 세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난행량(難行梁·물길이 험해 다니기 힘든 바닷길)으로 불렸다.

게다가 이곳은 고려 시대 국제항인 벽란도(예성강 하구에 있었던 고려 시대 국제항구)와 조선 시대 한양으로 가기 위한 중착기착지였다. 배를 정박할 때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도구인 닻돌 15점이 발견된 것도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안흥정이라는 외국 사신들의 숙소가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기록돼 있다.


신안 못지않은 가치 가진 태안 유물

지금까지 해저 유물 발굴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신안 앞바다 해저 유물 발굴이 꼽힌다.

1975년 8월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 6점은 신안 해저선 발굴 작업의 시초였다. 발견된 도자기들은 1300년대 중국 원나라의 용천요라는 가마에서 만든 청자들이다.

도자기 발견을 계기로 이듬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이때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으로 송·원대 도자기 등 2만7000여 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유물이 발견됐다.

이 유물들은 1323년 중국 경원항(지금의 닝보)을 떠난 일본 하카타로 가던 중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에 실려 있던 것들이었다.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

다시 시작된 마도 해저 발굴

그러나 태안 앞바다의 보물도 그 의미와 가치를 놓고 보면 신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바닷속 문화재 보고’로 평가받는 충남 태안 마도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 작업이 다시 시작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연구소는 10일 오후 개최하는 개수제(開水祭)를 시작으로 다음 달 말까지 수중 발굴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조사 지역과 범위는 지난해 유물이 나온 지점에서 남서쪽에 있는 약 4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난파선의 유물들이 서해 펄 속에 거의 진공 상태로 묻혀 있었기 때문에 유물들의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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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K] 900년 전 비밀을 품고 있는 충남의 작은 섬 ‘마도’
    • 입력 2019-05-12 12:00:40
    지식K
2015년 4월, 충남 태안 마도(馬島) 앞바다에서 길이 11.5m, 폭 6m의 고선박이 발견됐다. 마도 북동쪽 지역의 수심 9~15m에 뱃머리가 묻혀 있는 것을 해저 탐사 로봇이 투입돼 탐사 작업을 벌였다. '마도 4호선'으로 명명(命名)된 배다.

마도 4호선에서는 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배에서 발굴된 목간(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 죽간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에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란 한자가 적혀 있었다. 이는 배의 출발지가 전남 나주, 도착지는 광흥창이란 뜻이다. 전남 나주 조창에서 출발해 조선 시대 녹봉을 관장하든 기관인 광흥창(현재 서울 마포구)으로 오던 배였다.

배에서 나온 분청사기를 통해서는 이 배가 중앙관청에 바칠 물품을 실어 나르던 1410~20년(조선 태종~세종) 무렵의 조운선(수운을 이용하여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을 운송하는 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도에서는 이에 앞서 3척의 고선박이 나왔다. 2011년에는 마도 1, 2, 3호선 등 고려시대 고선박 3천과 3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목간, 도기, 곡물, 생활용품 등 전 고려시대의 생활상을 전해주는 유물 3천여 점이 발견됐다. 900년 전 거친 물살을 헤친 고려시대 뱃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생활 유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고려시대 침몰선박 마도 3호선에서 나온 도기호(陶器壺)와 말린 홍합, 젓갈 등 먹거리
지난해 있었던 마도 해역 발굴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청자, 분청사기를 비롯해 중국 푸젠성(福建省)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송·원 시대 도자기, 북송 때 동전인 원풍통보까지 나왔다.

마도 해역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을
그렇다면 왜 마도 해역에서 이렇게 수많은 유물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마도 해역은 강한 물살과 암초, 짙은 안개로 인해 난파 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동력을 갖추지 못한 당시의 돛단배는 바람에 의지해 가다가 풍향이 바뀌거나 물살이 세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난행량(難行梁·물길이 험해 다니기 힘든 바닷길)으로 불렸다.

게다가 이곳은 고려 시대 국제항인 벽란도(예성강 하구에 있었던 고려 시대 국제항구)와 조선 시대 한양으로 가기 위한 중착기착지였다. 배를 정박할 때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도구인 닻돌 15점이 발견된 것도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안흥정이라는 외국 사신들의 숙소가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기록돼 있다.


신안 못지않은 가치 가진 태안 유물

지금까지 해저 유물 발굴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신안 앞바다 해저 유물 발굴이 꼽힌다.

1975년 8월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 6점은 신안 해저선 발굴 작업의 시초였다. 발견된 도자기들은 1300년대 중국 원나라의 용천요라는 가마에서 만든 청자들이다.

도자기 발견을 계기로 이듬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이때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으로 송·원대 도자기 등 2만7000여 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유물이 발견됐다.

이 유물들은 1323년 중국 경원항(지금의 닝보)을 떠난 일본 하카타로 가던 중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에 실려 있던 것들이었다.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
다시 시작된 마도 해저 발굴

그러나 태안 앞바다의 보물도 그 의미와 가치를 놓고 보면 신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바닷속 문화재 보고’로 평가받는 충남 태안 마도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 작업이 다시 시작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연구소는 10일 오후 개최하는 개수제(開水祭)를 시작으로 다음 달 말까지 수중 발굴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조사 지역과 범위는 지난해 유물이 나온 지점에서 남서쪽에 있는 약 4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난파선의 유물들이 서해 펄 속에 거의 진공 상태로 묻혀 있었기 때문에 유물들의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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