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집값, 나만 이런 생각해?

입력 2019.05.13 (09:02) 수정 2019.05.13 (09: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이런 말이 가장 무색하다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바로 집입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맹신, 사두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진 적이 없죠. 떨어져도 곧 다시 올랐으니까요. 웬만한 월급쟁이가 1년 꼬박 모아도 만질 수 없는 큰돈을 똘똘한 집 한 채로 손쉽게 재산 불리는 걸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죠. 그런데 천정부지로 이렇게 자꾸만 집값이 오르면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세대들은 어떻게 집을 마련해야 할까요? 자기 힘만으로 그럴듯한 집 장만 할 수 있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요? 누군가는 집을 사고팔아 큰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미래의 꿈을 잃어버리는 현실. 이런데도 우리 사회가 ‘땅’이 아닌 ‘땀’이 대우받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동산이 들썩인다 싶으면 정부는 항상 집값 안정을 외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별 효과가 없었죠. 뭔가 정부에 다른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 저만 하고 있나요? 이제부터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 대해 두 가지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신도시 개발’이고, 또 하나는 ‘재개발, 재건축’입니다.


3기 신도시 vs 부동산 불패신화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 후보지 선정을 마쳤습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수도권에 3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은 데 따른 후속 조치였죠. 주택 공급을 늘려서 집값을 잡겠다고 한 건데, 한 가지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를 건설하고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은 적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서울에서 집 사는 사람, 누구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 원리죠. 그런데 집값은 다릅니다. 특수재화라고 할까요. 투기적인 수요가 붙습니다. 2기 판교 신도시의 사례가 그랬죠. 판교에 개발 붐이 불면서 분당이 올라가고 강남이 올랐습니다. 주택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져야 되는데 오히려 정부가 판교에 집을 지어 주택 공급에 나선다고 하니까 더 뛴 겁니다. 판교 신도시가 집값 상승의 방아쇠 역할을 한 셈입니다. 결국, 부족한 집을 더 공급했을지언정 집값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투기적 가수요가 가세한 거죠. 실제로 이규희 의원실에서 낸 자료를 보면 신규 주택이 공급되면 이 집을 사는 사람들은 무주택자가 아니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의 신규 주택을 매입한 사람은 10채 중 7~8채꼴로 집이 있는 유주택자였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이 또 집을 사는 겁니다.



“여러 주택을 소유하는 이유가 뭐 하루는 이 집에서 자고 하루는 저 집에서 자고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뭐 기대하는 게 있는데 매매차익이나 임대소득이죠. 보유하고 있을 때는 임대소득. 팔았을 때는 매매차익. 그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어떤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많은 이익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니까 들어오는 거죠.”

집값, 나만 이런 생각해?

집값은 크게 건물비와 토지비로 이뤄지죠. 그런데 만약에 정부가 공공택지를 조성한 뒤 팔지 말고 건물만 분양하면 어떨까요. 땅은 살다가 이사가면서 가져가는 게 아니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요. 민간 건설업체는 적정 이윤만 붙여 건물만 짓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집값은 건물만 분양하니 낮아질 겁니다. LH 등 공기업이 농지를 강제수용해 택지를 조성하면서 든 비용은 주택을 분양한 뒤 토지 임대료로 충당하는 겁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고, 땅은 임대를 하니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다시 말해 투기 수요를 막고, 민간 건설사의 과도한 폭리 논쟁도 없앨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죠.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주택을 건물만 분양한다는 생각이 낯설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냐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가운데 이런 생각을 딱 현실로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반값 아파트’를 아시나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면 자주 쓴소리 하는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인데요. 여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친서민 정책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정책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렸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입니다. 정부가 공공택지에 주택을 공급하면서 땅은 놔두고 건물만 분양한 겁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서울 자곡동과 우면동에 건설돼 2014년 10월 첫 입주가 이뤄집니다.


반값 아파트가 강남 한복판에 공급되면서 불러온 변화는 바로 ‘집값 안정’이었죠. MB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3.2% 하락했습니다. 이전 참여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56.6% 상승했던 걸 감안하면 극적인 변화였죠. 당시가 국제금융 위기 여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은 시기 지방에서는 집값이 뛰면서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40%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이제 저소득층은 임대주택 형태로 정부가 분류를 해서 공급을 하고 있고요.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사실은 정책적인 부분은 자율 형태로 맡겨두는 편입니다. 문제는 이 중간층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부분인데요. 중간층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형태 중에 한 형태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좌초하고 말죠. 당초 계획 물량의 5% 정도인 760채만 공급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정부 정책의 중심이 ‘주거안정’보다는 ‘경기부양’에 있었던 거죠.



“강남과 서초에 평당 550만 원, 600만 원도 안 되는 아파트가 분양이 되니까 민간 아파트 분양이 10%도 계약이 안 되고 미분양 아파트가 50만 개, 100만 개, 150만 개로 늘어나면서 건설업계가 아파트 분양을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되고 안 팔리게 되니까 경기가 죽게 되고 성장률이 떨어지고 그러니까 정부는 건설업계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 돼버린 거죠.”

취재:유승영 기자/2019년 5월 14일(화) KBS 1TV 시사기획 창 <집값, 이런 생각 나만 해?>

이번엔 도심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도심에 직장이나 문화시설이 몰려있다 보니 사실 돈만 있으면 서울과 같은 도심지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신도시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보니 그린벨트나 농경지, 임야 같은 남는 땅(?)을 싼값에 수용해서 아파트를 짓는다지만 서울 같은 대도심 지역엔 남는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낡은 집 허물어 새집 짓는 재건축, 재개발이 거의 유일한 주택 공급 수단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많이 보셨을 겁니다. 동네에 낡은 아파트 재건축 시작되면 일단 그 아파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 시작하고 다음엔 그 주변 집값까지 다 같이 올라가잖아요? 낡은 아파트 100채가 재건축으로 300채, 400채로 늘어나는데 집값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뛰거든요. 뭔가 크게 잘못됐죠. 이유는 건설사들에 재건축, 재개발의 전 과정을 모두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건설에 문외한인데 그거 건설사에 맡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제2의 강남이라 불리는 서울 흑석동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과정을 한번 예로 들어 볼게요. 공사비 약 2700억 원을 써낸 A 건설업체가 조합원 투표로 선정됐는데, 문제는 설계를 변경하면서 공사비가 약 4000억 원까지 올라갑니다. 당초 공사비의 절반 정도나 올라간 데다 공사비가 증액된 이유가 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면 조합원들은 시공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손해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니 공사비 증액되더라도 빨리 아파트나 지어달라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조합원들 입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비 올라가면 분담금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이때 건설사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A 건설사 임원이 조합원 설명회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결국, 여러분들 재개발하면서 좋은 아파트 이런 것들 다 생각하시지만 결국은 돈이잖아요. 아무리 시끄러운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가격이 올라가면 조용해집니다. 결국, 동작구 최고 시세, 강남 빼고는 여기를 제일 비싸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건설사가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올리다보니 재건축, 재개발 분양가가 뛰게 되는 거고,
조합원들 역시 나쁠 것 없죠. 공사비 증액되더라도 집값이 올라가니 손해 볼 것 없거든요. 또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값이 올라가면 이게 신호탄이 돼서 주변 집값도 덩달아 같이 뛰는 일종의 공식이 돼 버렸습니다. 건설사가 시공만 하는 게 아니라 분양까지 맡겨 버리면서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시사기획 창, ‘땅은 정의로운가’ 편에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건설사는 본연의 업무인 건설만 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분양은 건설사가 하지 못하게 말이죠.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위 사진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재래시장 재개발 예정지구입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1,300여 채가 지어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여기 재개발 구역의 분양은 공기업인 SH공사가 맡아서 대행해줍니다. 여기 역시 조합원이나 조합장이 건설엔 까막눈이라 어딘가에 분양을 맡겨야 했지만, 건설사에 맡기려다 보니 공사비만 올라가고 조합원들 손해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공기업인 ‘SH 서울주택도시공사’에 아파트 분양을 맡아달라고 한 겁니다. 조합장의 얘깁니다.


조합장이나 조합원들이 공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봤을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공기업이거든요. 아파트 짓는 거로만 따지면 SH공사가 훨씬 많이 지었겠죠, 그러니까 공사원가나 이런 걸 SH가 다 아니까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 아니냐?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는 말 그대로 아파트 건설만 합니다.

“건설사는 공사만 하는 거예요. 공사하고 거기 맞춰서 돈만 받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분양에 대해서는 건설사는 터치하지 마라.
건설사가 공사하러 들어온 거지. 그거 뭐 금융장사하고, 여기저기 다 개입해서
조합 재산 탈탈 털어서 다 가져가는 그렇게 할 순 없는 거잖아요?“
- 김종광 천호재개발 조합장-

천호 재개발 지구는 3.3제곱미터당 분양가를 인근 지역보다 500만 원 정도 낮춰 책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득이라는 거죠. 도심지 재개발, 재건축을 진행할 때 분양을 포함한 전 과정에 경험이 풍부한 공기업인 SH공사나 LH 토지공사가 무조건 개입하게 하면 어떨까요? 물론 선정된 시공사에 따라 ‘래미안’이나 ‘푸르지오’ 같은 아파트 브랜드는 그대로 쓰면서 말이죠. 건설사들이 재개발, 재건축 분양을 통해 일으키는 거품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천호동 재개발이 그랬듯이 말이죠. 특히 재개발, 재건축은 행정법인으로 인정해주면서 엄청난 혜택까지 주고 있잖아요? 조합원 70%만 동의하면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고 있거든요. 이것만 봐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공공성이 강한 공익사업으로 과도한 이익을 취해 그 부담을 사회 전체가 떠안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물론 앞서 살펴본 신도시 공공주택의 ‘토지임대부’ 방식 분양이나 도심지 재개발, 재건축에 공공기관 참여를 의무화시키는 방법이 매우 과격하고 이게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책이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하겠나, 하는 의문 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이 그 정도 충격적인 방법 아니면 잡힐 수 있을까요?

취재:홍사훈 기자/2018년 12월 11일(화) KBS 1TV 시사기획 창 〈땅은 정의로운가〉다시보기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시사기획 창] 집값, 나만 이런 생각해?
    • 입력 2019-05-13 09:02:19
    • 수정2019-05-13 09:08:00
    취재K
'누구나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이런 말이 가장 무색하다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바로 집입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맹신, 사두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진 적이 없죠. 떨어져도 곧 다시 올랐으니까요. 웬만한 월급쟁이가 1년 꼬박 모아도 만질 수 없는 큰돈을 똘똘한 집 한 채로 손쉽게 재산 불리는 걸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죠. 그런데 천정부지로 이렇게 자꾸만 집값이 오르면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세대들은 어떻게 집을 마련해야 할까요? 자기 힘만으로 그럴듯한 집 장만 할 수 있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요? 누군가는 집을 사고팔아 큰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미래의 꿈을 잃어버리는 현실. 이런데도 우리 사회가 ‘땅’이 아닌 ‘땀’이 대우받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동산이 들썩인다 싶으면 정부는 항상 집값 안정을 외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별 효과가 없었죠. 뭔가 정부에 다른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 저만 하고 있나요? 이제부터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 대해 두 가지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신도시 개발’이고, 또 하나는 ‘재개발, 재건축’입니다.


3기 신도시 vs 부동산 불패신화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 후보지 선정을 마쳤습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수도권에 3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은 데 따른 후속 조치였죠. 주택 공급을 늘려서 집값을 잡겠다고 한 건데, 한 가지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를 건설하고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은 적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서울에서 집 사는 사람, 누구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 원리죠. 그런데 집값은 다릅니다. 특수재화라고 할까요. 투기적인 수요가 붙습니다. 2기 판교 신도시의 사례가 그랬죠. 판교에 개발 붐이 불면서 분당이 올라가고 강남이 올랐습니다. 주택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져야 되는데 오히려 정부가 판교에 집을 지어 주택 공급에 나선다고 하니까 더 뛴 겁니다. 판교 신도시가 집값 상승의 방아쇠 역할을 한 셈입니다. 결국, 부족한 집을 더 공급했을지언정 집값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투기적 가수요가 가세한 거죠. 실제로 이규희 의원실에서 낸 자료를 보면 신규 주택이 공급되면 이 집을 사는 사람들은 무주택자가 아니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의 신규 주택을 매입한 사람은 10채 중 7~8채꼴로 집이 있는 유주택자였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이 또 집을 사는 겁니다.



“여러 주택을 소유하는 이유가 뭐 하루는 이 집에서 자고 하루는 저 집에서 자고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뭐 기대하는 게 있는데 매매차익이나 임대소득이죠. 보유하고 있을 때는 임대소득. 팔았을 때는 매매차익. 그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어떤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많은 이익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니까 들어오는 거죠.”

집값, 나만 이런 생각해?

집값은 크게 건물비와 토지비로 이뤄지죠. 그런데 만약에 정부가 공공택지를 조성한 뒤 팔지 말고 건물만 분양하면 어떨까요. 땅은 살다가 이사가면서 가져가는 게 아니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요. 민간 건설업체는 적정 이윤만 붙여 건물만 짓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집값은 건물만 분양하니 낮아질 겁니다. LH 등 공기업이 농지를 강제수용해 택지를 조성하면서 든 비용은 주택을 분양한 뒤 토지 임대료로 충당하는 겁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고, 땅은 임대를 하니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다시 말해 투기 수요를 막고, 민간 건설사의 과도한 폭리 논쟁도 없앨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죠.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주택을 건물만 분양한다는 생각이 낯설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냐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가운데 이런 생각을 딱 현실로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반값 아파트’를 아시나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면 자주 쓴소리 하는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인데요. 여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친서민 정책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정책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렸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입니다. 정부가 공공택지에 주택을 공급하면서 땅은 놔두고 건물만 분양한 겁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서울 자곡동과 우면동에 건설돼 2014년 10월 첫 입주가 이뤄집니다.


반값 아파트가 강남 한복판에 공급되면서 불러온 변화는 바로 ‘집값 안정’이었죠. MB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3.2% 하락했습니다. 이전 참여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56.6% 상승했던 걸 감안하면 극적인 변화였죠. 당시가 국제금융 위기 여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은 시기 지방에서는 집값이 뛰면서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40%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이제 저소득층은 임대주택 형태로 정부가 분류를 해서 공급을 하고 있고요.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사실은 정책적인 부분은 자율 형태로 맡겨두는 편입니다. 문제는 이 중간층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부분인데요. 중간층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형태 중에 한 형태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좌초하고 말죠. 당초 계획 물량의 5% 정도인 760채만 공급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정부 정책의 중심이 ‘주거안정’보다는 ‘경기부양’에 있었던 거죠.



“강남과 서초에 평당 550만 원, 600만 원도 안 되는 아파트가 분양이 되니까 민간 아파트 분양이 10%도 계약이 안 되고 미분양 아파트가 50만 개, 100만 개, 150만 개로 늘어나면서 건설업계가 아파트 분양을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되고 안 팔리게 되니까 경기가 죽게 되고 성장률이 떨어지고 그러니까 정부는 건설업계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 돼버린 거죠.”

취재:유승영 기자/2019년 5월 14일(화) KBS 1TV 시사기획 창 <집값, 이런 생각 나만 해?>

이번엔 도심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도심에 직장이나 문화시설이 몰려있다 보니 사실 돈만 있으면 서울과 같은 도심지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신도시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보니 그린벨트나 농경지, 임야 같은 남는 땅(?)을 싼값에 수용해서 아파트를 짓는다지만 서울 같은 대도심 지역엔 남는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낡은 집 허물어 새집 짓는 재건축, 재개발이 거의 유일한 주택 공급 수단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많이 보셨을 겁니다. 동네에 낡은 아파트 재건축 시작되면 일단 그 아파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 시작하고 다음엔 그 주변 집값까지 다 같이 올라가잖아요? 낡은 아파트 100채가 재건축으로 300채, 400채로 늘어나는데 집값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뛰거든요. 뭔가 크게 잘못됐죠. 이유는 건설사들에 재건축, 재개발의 전 과정을 모두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건설에 문외한인데 그거 건설사에 맡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제2의 강남이라 불리는 서울 흑석동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과정을 한번 예로 들어 볼게요. 공사비 약 2700억 원을 써낸 A 건설업체가 조합원 투표로 선정됐는데, 문제는 설계를 변경하면서 공사비가 약 4000억 원까지 올라갑니다. 당초 공사비의 절반 정도나 올라간 데다 공사비가 증액된 이유가 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면 조합원들은 시공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손해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니 공사비 증액되더라도 빨리 아파트나 지어달라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조합원들 입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비 올라가면 분담금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이때 건설사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A 건설사 임원이 조합원 설명회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결국, 여러분들 재개발하면서 좋은 아파트 이런 것들 다 생각하시지만 결국은 돈이잖아요. 아무리 시끄러운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가격이 올라가면 조용해집니다. 결국, 동작구 최고 시세, 강남 빼고는 여기를 제일 비싸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건설사가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올리다보니 재건축, 재개발 분양가가 뛰게 되는 거고,
조합원들 역시 나쁠 것 없죠. 공사비 증액되더라도 집값이 올라가니 손해 볼 것 없거든요. 또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값이 올라가면 이게 신호탄이 돼서 주변 집값도 덩달아 같이 뛰는 일종의 공식이 돼 버렸습니다. 건설사가 시공만 하는 게 아니라 분양까지 맡겨 버리면서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시사기획 창, ‘땅은 정의로운가’ 편에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건설사는 본연의 업무인 건설만 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분양은 건설사가 하지 못하게 말이죠.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위 사진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재래시장 재개발 예정지구입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1,300여 채가 지어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여기 재개발 구역의 분양은 공기업인 SH공사가 맡아서 대행해줍니다. 여기 역시 조합원이나 조합장이 건설엔 까막눈이라 어딘가에 분양을 맡겨야 했지만, 건설사에 맡기려다 보니 공사비만 올라가고 조합원들 손해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공기업인 ‘SH 서울주택도시공사’에 아파트 분양을 맡아달라고 한 겁니다. 조합장의 얘깁니다.


조합장이나 조합원들이 공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봤을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공기업이거든요. 아파트 짓는 거로만 따지면 SH공사가 훨씬 많이 지었겠죠, 그러니까 공사원가나 이런 걸 SH가 다 아니까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 아니냐?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는 말 그대로 아파트 건설만 합니다.

“건설사는 공사만 하는 거예요. 공사하고 거기 맞춰서 돈만 받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분양에 대해서는 건설사는 터치하지 마라.
건설사가 공사하러 들어온 거지. 그거 뭐 금융장사하고, 여기저기 다 개입해서
조합 재산 탈탈 털어서 다 가져가는 그렇게 할 순 없는 거잖아요?“
- 김종광 천호재개발 조합장-

천호 재개발 지구는 3.3제곱미터당 분양가를 인근 지역보다 500만 원 정도 낮춰 책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득이라는 거죠. 도심지 재개발, 재건축을 진행할 때 분양을 포함한 전 과정에 경험이 풍부한 공기업인 SH공사나 LH 토지공사가 무조건 개입하게 하면 어떨까요? 물론 선정된 시공사에 따라 ‘래미안’이나 ‘푸르지오’ 같은 아파트 브랜드는 그대로 쓰면서 말이죠. 건설사들이 재개발, 재건축 분양을 통해 일으키는 거품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천호동 재개발이 그랬듯이 말이죠. 특히 재개발, 재건축은 행정법인으로 인정해주면서 엄청난 혜택까지 주고 있잖아요? 조합원 70%만 동의하면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고 있거든요. 이것만 봐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공공성이 강한 공익사업으로 과도한 이익을 취해 그 부담을 사회 전체가 떠안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물론 앞서 살펴본 신도시 공공주택의 ‘토지임대부’ 방식 분양이나 도심지 재개발, 재건축에 공공기관 참여를 의무화시키는 방법이 매우 과격하고 이게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책이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하겠나, 하는 의문 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이 그 정도 충격적인 방법 아니면 잡힐 수 있을까요?

취재:홍사훈 기자/2018년 12월 11일(화) KBS 1TV 시사기획 창 〈땅은 정의로운가〉다시보기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