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리아오픈 테니스 무산위기…테니스계 부끄러운 민낯

입력 2019.05.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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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테니스 투어 대회인 코리아오픈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의 어처구니없는 행정으로 인해 16년째를 맞는 코리아오픈의 명맥이 끊기게 될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국내 테니스계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오는 9월 코리아오픈 기간에 대한테니스협회가 전한국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로 해 올림픽 테니스 코트 사용 대관을 신청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코리아오픈은 올림픽 공원에서 열 수 없고 다른 곳에서 개최하거나 아니면 대회 자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테니스협회는 지난 1월 대의원총회에서 돌연, 9월 셋째 주에 전한국선수권대회를 올림픽 공원 테니스장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전한국선수권대회는 국내 남녀 테니스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데, 보통 시즌이 다 끝난 뒤 혹은 연초에 개최한다. 최근에는 국제 대회에 가려 유명무실해졌고 상금도 턱없이 낮아 국내 톱랭커들이 외면하고 있다.

협회는 전한국선수권대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개최 시기를 주목도가 높은 9월, 올림픽 공원에서 치른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대한테니스협회와 코리아오픈 주최 측 간의 오랜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테니스협회는 지난 수년간 공공연히 코리아오픈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 왔다. 지난 2014년 개정된 테니스협회 규정에 따르면 협회가 승인하는 모든 테니스 대회는 총상금의 3%를 협회에 개최비로 반납하게 되어 있는데, 코리아오픈 주최 측은 단 한 번도 이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대회를 협회는 인정할 수 없다. 코리아오픈은 국고 지원까지 받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개최비를 낸 적 없고, 협회가 승인한 공인구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코리아오픈 개최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코리아오픈을 16년째 주관하고 있는 이진수 토너먼트 디렉터(TD)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테니스협회가 의도적으로 코리아오픈이 열리는 기간에 전한국선수권을 개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는 설명이다.

이진수 TD는 "테니스협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테니스 축제를 방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일인가"라면서 "개최비와 공인구 문제는 협의해서 풀 문제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테니스협회에서는 9월 전한국선수권 개최를 추진하면서 내게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16년째 대회가 그 기간, 그 장소에서 열리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대회를 방해하는 것은 테니스계와 테니스팬들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테니스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협회의 무리한 행정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다.

박용국 KBSN 테니스 해설위원은 "테니스협회는 테니스와 테니스 팬들을 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물론 그동안 코리아오픈 TD가 협회를 등지고 운영한 것은 잘못이지만, 협회가 이렇게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주원홍 전 테니스협회장은 "코리아오픈 이진수 디렉터와는 그 전 집행부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많았지만 적어도 협회라면 대회 자체의 성공을 바라고, 방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곽용운 협회장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코리아오픈 주최 측도 책임은 면키 어렵다는 반응이다. 테니스 전문지 <테니스피플>의 박원식 편집장은 "국고 지원금까지 투입되는 코리아오픈이 협회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면서 수년간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은 문제이며, 협회가 이번 기회에 이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꼬집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진수 디렉터와 곽용운 회장은 지난주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진수 디렉터는 올해 대회 개최비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곽 회장은 지난 수년간 밀린 개최비까지 모두 반납하라는 요구를 내놨다. 만일 원만한 타결이 되지 않는다면 코리아오픈은 사실상 올해 개최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이진수 디렉터는 "서울 올림픽 공원 외에 다른 곳에서 개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WTA 측이 이를 허용키 어렵고 또 허용한다 하더라도 경기장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면서 "올림픽 공원에서 대회를 열지 못하면 코리아오픈은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리아오픈은 지난 2004년부터 서울에서 개최된 국내 유일의 여자프로테니스(WTA) 정규 투어 대회다. 해마다 9월 3번째 주에 열리는 이 대회는 마리아 샤라포바, 비너스 윌리엄스, 옐레나 오스타펜코 등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들이 참가해 '가을의 테니스 클래식'으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테니스 이벤트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국제 대회로 꼽힌다. 지난 15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올림픽 공원 테니스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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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코리아오픈 테니스 무산위기…테니스계 부끄러운 민낯
    • 입력 2019-05-13 13: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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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테니스 투어 대회인 코리아오픈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의 어처구니없는 행정으로 인해 16년째를 맞는 코리아오픈의 명맥이 끊기게 될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국내 테니스계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오는 9월 코리아오픈 기간에 대한테니스협회가 전한국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로 해 올림픽 테니스 코트 사용 대관을 신청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코리아오픈은 올림픽 공원에서 열 수 없고 다른 곳에서 개최하거나 아니면 대회 자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테니스협회는 지난 1월 대의원총회에서 돌연, 9월 셋째 주에 전한국선수권대회를 올림픽 공원 테니스장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전한국선수권대회는 국내 남녀 테니스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데, 보통 시즌이 다 끝난 뒤 혹은 연초에 개최한다. 최근에는 국제 대회에 가려 유명무실해졌고 상금도 턱없이 낮아 국내 톱랭커들이 외면하고 있다.

협회는 전한국선수권대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개최 시기를 주목도가 높은 9월, 올림픽 공원에서 치른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대한테니스협회와 코리아오픈 주최 측 간의 오랜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테니스협회는 지난 수년간 공공연히 코리아오픈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 왔다. 지난 2014년 개정된 테니스협회 규정에 따르면 협회가 승인하는 모든 테니스 대회는 총상금의 3%를 협회에 개최비로 반납하게 되어 있는데, 코리아오픈 주최 측은 단 한 번도 이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대회를 협회는 인정할 수 없다. 코리아오픈은 국고 지원까지 받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개최비를 낸 적 없고, 협회가 승인한 공인구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코리아오픈 개최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코리아오픈을 16년째 주관하고 있는 이진수 토너먼트 디렉터(TD)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테니스협회가 의도적으로 코리아오픈이 열리는 기간에 전한국선수권을 개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는 설명이다.

이진수 TD는 "테니스협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테니스 축제를 방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일인가"라면서 "개최비와 공인구 문제는 협의해서 풀 문제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테니스협회에서는 9월 전한국선수권 개최를 추진하면서 내게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16년째 대회가 그 기간, 그 장소에서 열리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대회를 방해하는 것은 테니스계와 테니스팬들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테니스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협회의 무리한 행정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다.

박용국 KBSN 테니스 해설위원은 "테니스협회는 테니스와 테니스 팬들을 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물론 그동안 코리아오픈 TD가 협회를 등지고 운영한 것은 잘못이지만, 협회가 이렇게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주원홍 전 테니스협회장은 "코리아오픈 이진수 디렉터와는 그 전 집행부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많았지만 적어도 협회라면 대회 자체의 성공을 바라고, 방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곽용운 협회장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코리아오픈 주최 측도 책임은 면키 어렵다는 반응이다. 테니스 전문지 <테니스피플>의 박원식 편집장은 "국고 지원금까지 투입되는 코리아오픈이 협회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면서 수년간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은 문제이며, 협회가 이번 기회에 이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꼬집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진수 디렉터와 곽용운 회장은 지난주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진수 디렉터는 올해 대회 개최비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곽 회장은 지난 수년간 밀린 개최비까지 모두 반납하라는 요구를 내놨다. 만일 원만한 타결이 되지 않는다면 코리아오픈은 사실상 올해 개최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이진수 디렉터는 "서울 올림픽 공원 외에 다른 곳에서 개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WTA 측이 이를 허용키 어렵고 또 허용한다 하더라도 경기장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면서 "올림픽 공원에서 대회를 열지 못하면 코리아오픈은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리아오픈은 지난 2004년부터 서울에서 개최된 국내 유일의 여자프로테니스(WTA) 정규 투어 대회다. 해마다 9월 3번째 주에 열리는 이 대회는 마리아 샤라포바, 비너스 윌리엄스, 옐레나 오스타펜코 등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들이 참가해 '가을의 테니스 클래식'으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테니스 이벤트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국제 대회로 꼽힌다. 지난 15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올림픽 공원 테니스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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