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인생시험’ 수능 전학가서 보면 불법?…中 ‘가오카오 이민’

입력 2019.05.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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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안 남은 중국 수능 '가오카오(高考)'

중국의 대학 수능시험 가오카오(高考)가 다음 달 7일, 8일 실시된다. 중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입시 사육장(高考牛校), 입시 공장(高考工場)이라 불리는 스파르타식 기숙 입시학교도 성행한다. 가오카오가 끝나면 명문대학마다 각 성·시(省·市) 1등을 모시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지방정부는 고향의 명예를 더 높인 수험생들을 불러 모아 성대한 축하잔치를 벌이고, 장학금을 주며 치하한다.

사실 돈도 배경도 없는 서민들에겐 명문대학 진학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나 다름없다. 가오카오(高考)를 '인생시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한판 대결, 그 가오카오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모의고사 10등 안 6명이 한 학교…. 난리법석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난리가 났다. 선전은 덩샤오핑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펴며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첫 도시다. 인구 300여만 명의 이 도시에서 가오카오를 앞두고 4월 말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한 학교에서 성적 우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이 학교는 선전 전체 이과 계열 1등에서 10등 가운데 6명을 배출했다. 100등 안에도 10여 명이나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 때 450점 만점에 300점 정도면 들어갈 수 있는 평범한 학교에서 갑자기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쏟아졌으니 난리가 날 법도 하다.

그런데 시험에 부정(不正)이 있을 거라며 교육 당국의 조사를 촉구하는 민원도 쏟아졌다. 이를테면 모의고사 전 허베이성(河北) 수험생 수십 명이 학교로 와서 시험을 치고는 돌아갔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제보도 들어왔다. 말하자면 학교 측이 공부 잘하는 다른 지역 수험생을 투입했다는 거다.


알고 봤더니 가오카오(高考) 이민

광둥성 교육청까지 나서 결국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10여 일 만인 지난 13일 결과가 나왔다. 학부모들의 제보대로 다른 지역 수험생들이 선전에서 시험을 본 이른바 '가오카오 이민'이었다.

'가오카오 이민'... 우리에겐 생소한 말인데, 한마디로 하면 입시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곳으로 학적을 옮겨 응시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허베이성의 한 입시공장 수재급 수험생 32명이 선전의 이 학교로 학적을 옮기고 시험을 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의 시험성적과 학적은 취소됐고, 학교에는 내년 신입생 모집 정원 50% 감축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중국 입시제도는 우리와 좀 다르다. 우리로 하면 정시, 즉 가오카오로 선발하는 신입생이 수시보다 훨씬 많다. 신입생 정원도 각 성·시(省·市)별로 배분해 놓고 있다. 또 각 성·시(省·市)의 합격 점수도 다르다.

중국 최고 명문대학 베이징대학의 2018학년도 합격 점수를 보면 베이징지역 수험생은 750점 만점에 이과 686/문과 679, 허베이성 707/691, 랴오닝성 690/646점이다. 그런데 광둥성은 679/654, 간쑤성 674/623, 헤이룽장성 682/633 시장(티베트)은 한족 685/657, 소수 민족 585/576점이다.

고향 대학에 지원하면 더 유리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개발이 더딘 시골 지역이 대도시보다 합격점수가 낮은 게 특징이다. 간쑤성이나 시장자치구 수험생이 대도시 베이징이나 상하이 수험생보다 합격 점수가 더 낮은 것이다. 대도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방 '성(省)'지역 수험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입시제도 때문이다.

만약 합격 점수가 낮은 성(省)으로 학적을 옮겨 시험을 보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 광둥성의 경우로 보면 부모와 학생이 그곳에 3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부모가 그곳에 안정적인 직업과 주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대학입시를 노린 이른바 '가오카오 이민'으로 모두 불법이다.


중국 대학 '가오카오 이민' 땐 퇴학

입시 후 합격 하더라도 '가오카오 이민'으로 부정 입학한 사실이 적발되면 가차 없이 퇴학 처분이 내려진다. 중국의 한 매체에 지난 7일 난 기사를 보면, 칭화대학은 올해 신입생 쿠 모 씨의 학적을 취소했다. 또 상하이 푸단대학도 모 씨의 학적을 취소했고, 베이징외국어대학은 유 모 씨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모두 실제 구이저우성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가짜로 학적 서류를 꾸며 그곳에서 가오카오를 보고 합격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수험생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고등학교는 빠르게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 보니 불법 '가오카오 이민'은 끊이질 않고 있다. 성(省)별로도 입시 경쟁이 벌어져 심지어 알고도 눈을 감는 교육 당국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2017년 푸젠성에서 적발된 63명의 가오카오 이민은 중개업자와 고위 공직자, 학부모가 함께 작당해 단체로 부정 등록을 한 경우였다.


다음 달 가오카오를 치르는 중국 수험생은 천만 명이 넘는다. 2010년 957만 명으로 떨어진 이후 다시 천만 명 선을 회복했다. 우리나라도 수능을 치를 때 교육 당국이 바짝 긴장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도 초긴장이다. 지난 8일에는 각 성시 교육당국자 화상회의도 개최했다. 혹시라도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거나, 가뜩이나 뜨거운 교육열을 더 자극해 예기치 않는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조심 또 조심이다.

각 성에는 가오카오 1등 수험생을 발표하는 것을 금지했다. 좋은 대학에 많이 보냈다고 진학률을 공개했다가는 학교장 자리가 날아간다.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과 기회의 격차가 존재하는 중국에서 유일한 사다리, 인생시험마저 신뢰와 공평성이 의심받는 것을 경계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러나 욕심 앞에 장사 있으랴, 맹모삼천의 고향 중국이 신뢰와 공평의 잣대, 가오카오를 의심받지 않고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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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5 07:00:39
    특파원 리포트
한 달도 안 남은 중국 수능 '가오카오(高考)'

중국의 대학 수능시험 가오카오(高考)가 다음 달 7일, 8일 실시된다. 중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입시 사육장(高考牛校), 입시 공장(高考工場)이라 불리는 스파르타식 기숙 입시학교도 성행한다. 가오카오가 끝나면 명문대학마다 각 성·시(省·市) 1등을 모시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지방정부는 고향의 명예를 더 높인 수험생들을 불러 모아 성대한 축하잔치를 벌이고, 장학금을 주며 치하한다.

사실 돈도 배경도 없는 서민들에겐 명문대학 진학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나 다름없다. 가오카오(高考)를 '인생시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한판 대결, 그 가오카오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모의고사 10등 안 6명이 한 학교…. 난리법석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난리가 났다. 선전은 덩샤오핑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펴며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첫 도시다. 인구 300여만 명의 이 도시에서 가오카오를 앞두고 4월 말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한 학교에서 성적 우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이 학교는 선전 전체 이과 계열 1등에서 10등 가운데 6명을 배출했다. 100등 안에도 10여 명이나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 때 450점 만점에 300점 정도면 들어갈 수 있는 평범한 학교에서 갑자기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쏟아졌으니 난리가 날 법도 하다.

그런데 시험에 부정(不正)이 있을 거라며 교육 당국의 조사를 촉구하는 민원도 쏟아졌다. 이를테면 모의고사 전 허베이성(河北) 수험생 수십 명이 학교로 와서 시험을 치고는 돌아갔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제보도 들어왔다. 말하자면 학교 측이 공부 잘하는 다른 지역 수험생을 투입했다는 거다.


알고 봤더니 가오카오(高考) 이민

광둥성 교육청까지 나서 결국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10여 일 만인 지난 13일 결과가 나왔다. 학부모들의 제보대로 다른 지역 수험생들이 선전에서 시험을 본 이른바 '가오카오 이민'이었다.

'가오카오 이민'... 우리에겐 생소한 말인데, 한마디로 하면 입시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곳으로 학적을 옮겨 응시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허베이성의 한 입시공장 수재급 수험생 32명이 선전의 이 학교로 학적을 옮기고 시험을 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의 시험성적과 학적은 취소됐고, 학교에는 내년 신입생 모집 정원 50% 감축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중국 입시제도는 우리와 좀 다르다. 우리로 하면 정시, 즉 가오카오로 선발하는 신입생이 수시보다 훨씬 많다. 신입생 정원도 각 성·시(省·市)별로 배분해 놓고 있다. 또 각 성·시(省·市)의 합격 점수도 다르다.

중국 최고 명문대학 베이징대학의 2018학년도 합격 점수를 보면 베이징지역 수험생은 750점 만점에 이과 686/문과 679, 허베이성 707/691, 랴오닝성 690/646점이다. 그런데 광둥성은 679/654, 간쑤성 674/623, 헤이룽장성 682/633 시장(티베트)은 한족 685/657, 소수 민족 585/576점이다.

고향 대학에 지원하면 더 유리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개발이 더딘 시골 지역이 대도시보다 합격점수가 낮은 게 특징이다. 간쑤성이나 시장자치구 수험생이 대도시 베이징이나 상하이 수험생보다 합격 점수가 더 낮은 것이다. 대도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방 '성(省)'지역 수험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입시제도 때문이다.

만약 합격 점수가 낮은 성(省)으로 학적을 옮겨 시험을 보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 광둥성의 경우로 보면 부모와 학생이 그곳에 3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부모가 그곳에 안정적인 직업과 주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대학입시를 노린 이른바 '가오카오 이민'으로 모두 불법이다.


중국 대학 '가오카오 이민' 땐 퇴학

입시 후 합격 하더라도 '가오카오 이민'으로 부정 입학한 사실이 적발되면 가차 없이 퇴학 처분이 내려진다. 중국의 한 매체에 지난 7일 난 기사를 보면, 칭화대학은 올해 신입생 쿠 모 씨의 학적을 취소했다. 또 상하이 푸단대학도 모 씨의 학적을 취소했고, 베이징외국어대학은 유 모 씨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모두 실제 구이저우성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가짜로 학적 서류를 꾸며 그곳에서 가오카오를 보고 합격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수험생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고등학교는 빠르게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 보니 불법 '가오카오 이민'은 끊이질 않고 있다. 성(省)별로도 입시 경쟁이 벌어져 심지어 알고도 눈을 감는 교육 당국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2017년 푸젠성에서 적발된 63명의 가오카오 이민은 중개업자와 고위 공직자, 학부모가 함께 작당해 단체로 부정 등록을 한 경우였다.


다음 달 가오카오를 치르는 중국 수험생은 천만 명이 넘는다. 2010년 957만 명으로 떨어진 이후 다시 천만 명 선을 회복했다. 우리나라도 수능을 치를 때 교육 당국이 바짝 긴장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도 초긴장이다. 지난 8일에는 각 성시 교육당국자 화상회의도 개최했다. 혹시라도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거나, 가뜩이나 뜨거운 교육열을 더 자극해 예기치 않는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조심 또 조심이다.

각 성에는 가오카오 1등 수험생을 발표하는 것을 금지했다. 좋은 대학에 많이 보냈다고 진학률을 공개했다가는 학교장 자리가 날아간다.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과 기회의 격차가 존재하는 중국에서 유일한 사다리, 인생시험마저 신뢰와 공평성이 의심받는 것을 경계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러나 욕심 앞에 장사 있으랴, 맹모삼천의 고향 중국이 신뢰와 공평의 잣대, 가오카오를 의심받지 않고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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