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새 세 명 숨져…집배원들의 ‘비명’

입력 2019.05.15 (08:12) 수정 2019.05.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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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영정 사진 속 이 남성은 이제 겨우 서른 넷, 이은장 씨입니다.

이 씨의 직업은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전날 밤 9시를 넘어 퇴근해 "피곤해서 자겠다"던 이 씨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씨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

어머니는 아들이 몇 달 째 격무에 시달려 왔다며 비통해 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구향모/故이은장 씨 어머니 : "집에 와서도 (우편물을) 챙기는 거 봤죠. 이게 뭐냐 했더니 거기서 시간이 없어서 못해서 집에 와서 정리해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매일 힘들다고 그랬죠. 이건 아니다."]

그의 업무복 조끼 주머니에는 택배 거스름돈으로 쓸 동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작성한 응시 원서엔 이 씨의 서명이 선명합니다.

[이재홍/故이은장 씨 형 : "가서 보니까 몸이 굳어 있을 때 옆에 이게 있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응시원서를) 써놓고 죽었다는게..."]

숨진 집배원은 이 씨 만이 아닙니다.

앞서 지난 12일, 집배원 박모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같은 날 양모 씨도 골수암 투병 중 병세가 악화돼 숨졌습니다.

이렇게 이틀새 3명의 집배원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 가운데 2명이 심정지, 즉 전형적인 과로사 유형을 나타내면서 이들의 혹독한 근무 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보통 집배원 하면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는 장면 떠올리기 쉬운데요, 진짜 일의 시작은 분류 작업부텁니다.

새벽부터 출근해 산더미 같은 물량을 배달지별로 나누고 나면 본격적인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손편지가 귀해진 세상인지라 우편물도 줄었을까 싶지만 사정은 정반댑니다.

복잡해진 사회 탓에 요즘 집배원 가방에는 세금, 휴대전화, 신용카드 온갖 고지서가 가득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온라인 쇼핑 시대, 직접 배달해야 할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노동 강도는 더 세졌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2~3개월에 한 번씩 새 신발을 사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농·어촌의 험한 지리적 여건 속에서 80∼100㎞를 오토바이로 달려야 하고,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는 하루 천 통 이상의 우편물을 날라야 하는 게 2019년 대한민국 집배원들의 현실입니다.

이렇다보니 집배원들의 근로 시간은 임금 노동자 평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745시간 임금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693시간이 많습니다. 날짜로 치면 무려 87일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예비 인력도 없어 한 사람이 빠지면 기존 인원이 일을 분담하는 구조라 휴가 쓰기도 여간 눈치 보이는게 아닙니다.

이런 고강도 장시간 근무 여건 속에 과로사로 추정되는 집배원 사망자가 최근 5년간 19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늘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지난해 8월 31일자 전국우정노동조합이 낸 성명서의 시작 부분입니다.

배달 업무 중 교통 사고로 숨진 집배원 김병국 씨의 추모 성명섭니다.

과로사, 사고사 뿐 아니라 최근엔 분신 사건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후의 절규도 들립니다.

급기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지금보다 집배원2천 명이 더 필요하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실효성 없는 권고에 그쳤습니다.

집배원이 공무원 신분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무원 복무규정을 바꾸고 인력을 확충하면 되지만 정부가 집배원만을 위한 복무규정을 만들 수 없다거나 사업 적자를 이유로 난색을 드러내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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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5 08:18:51
    • 수정2019-05-15 09: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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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영정 사진 속 이 남성은 이제 겨우 서른 넷, 이은장 씨입니다.

이 씨의 직업은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전날 밤 9시를 넘어 퇴근해 "피곤해서 자겠다"던 이 씨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씨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

어머니는 아들이 몇 달 째 격무에 시달려 왔다며 비통해 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구향모/故이은장 씨 어머니 : "집에 와서도 (우편물을) 챙기는 거 봤죠. 이게 뭐냐 했더니 거기서 시간이 없어서 못해서 집에 와서 정리해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매일 힘들다고 그랬죠. 이건 아니다."]

그의 업무복 조끼 주머니에는 택배 거스름돈으로 쓸 동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작성한 응시 원서엔 이 씨의 서명이 선명합니다.

[이재홍/故이은장 씨 형 : "가서 보니까 몸이 굳어 있을 때 옆에 이게 있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응시원서를) 써놓고 죽었다는게..."]

숨진 집배원은 이 씨 만이 아닙니다.

앞서 지난 12일, 집배원 박모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같은 날 양모 씨도 골수암 투병 중 병세가 악화돼 숨졌습니다.

이렇게 이틀새 3명의 집배원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 가운데 2명이 심정지, 즉 전형적인 과로사 유형을 나타내면서 이들의 혹독한 근무 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보통 집배원 하면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는 장면 떠올리기 쉬운데요, 진짜 일의 시작은 분류 작업부텁니다.

새벽부터 출근해 산더미 같은 물량을 배달지별로 나누고 나면 본격적인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손편지가 귀해진 세상인지라 우편물도 줄었을까 싶지만 사정은 정반댑니다.

복잡해진 사회 탓에 요즘 집배원 가방에는 세금, 휴대전화, 신용카드 온갖 고지서가 가득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온라인 쇼핑 시대, 직접 배달해야 할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노동 강도는 더 세졌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2~3개월에 한 번씩 새 신발을 사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농·어촌의 험한 지리적 여건 속에서 80∼100㎞를 오토바이로 달려야 하고,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는 하루 천 통 이상의 우편물을 날라야 하는 게 2019년 대한민국 집배원들의 현실입니다.

이렇다보니 집배원들의 근로 시간은 임금 노동자 평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745시간 임금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693시간이 많습니다. 날짜로 치면 무려 87일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예비 인력도 없어 한 사람이 빠지면 기존 인원이 일을 분담하는 구조라 휴가 쓰기도 여간 눈치 보이는게 아닙니다.

이런 고강도 장시간 근무 여건 속에 과로사로 추정되는 집배원 사망자가 최근 5년간 19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늘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지난해 8월 31일자 전국우정노동조합이 낸 성명서의 시작 부분입니다.

배달 업무 중 교통 사고로 숨진 집배원 김병국 씨의 추모 성명섭니다.

과로사, 사고사 뿐 아니라 최근엔 분신 사건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후의 절규도 들립니다.

급기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지금보다 집배원2천 명이 더 필요하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실효성 없는 권고에 그쳤습니다.

집배원이 공무원 신분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무원 복무규정을 바꾸고 인력을 확충하면 되지만 정부가 집배원만을 위한 복무규정을 만들 수 없다거나 사업 적자를 이유로 난색을 드러내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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