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돈 안되는 고객은 가라”…지점 폐쇄에 밀려나는 노령층

입력 2019.05.18 (10:02) 수정 2019.05.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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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혁신이 오히려 고령층 등 금융소외 계층을 양산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017.12

"장애인이나 고령층, 청소년 등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다 더 각별한 관심을 두고 불편이나 불이익 등 차별받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2018.11

"모바일 뱅킹에서 소외된 60대 이상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은행의 지점과 출장소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점은 우려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2019.2


2년 만에 3백여 곳 줄어든 은행 지점

금융당국 수장들은 수년 전부터 노인 금융 소외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직접 은행 지점 폐쇄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6년 말에 전국적으로 7,097곳이었던 은행 지점은 지난해 말 6,763곳으로 줄었습니다. 2년 만에 334곳이 줄어든 겁니다. 서울에서만 151곳이 문을 닫았고, 경기도와 대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는 4년 동안 1만 대 이상 사라졌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2017년 하반기에 '은행권 점포 통폐합 관련 행정지도'를 시행했습니다. 은행 지점 문을 닫을 경우 폐쇄 2개월 전부터 최소 2회 이상 고객에게 사전고지해야 한다는 등의 절차가 권고됐습니다.

금감원도 지난해 7월에 지점 폐쇄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점 폐쇄 여부는 은행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에 맡겨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결국 흐지부지됐습니다.

은행들의 반론도 일리는 있습니다.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지점을 직접 찾는 고객이 줄어들다 보니 은행들 입장에선 지점을 운영하는 게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적자가 나는 지점이나 가까운 지역에 다른 지점이 중복되어 있는 지점 위주로 없애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꾸준히 지점을 줄이고 있습니다. 대놓고 줄이기에는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가 보이니까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한 공간에 있는 지점을 개인 고객 전용과 기업고객 전용으로 나누는 겁니다.

기업은행의 경우 2018년에만 이런 식으로 20여 개의 지점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런 꼼수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지점 폐쇄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으로도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모바일 뱅킹 사용 못 해요" 노인들의 하소연

은행 지점 폐쇄의 여파는 고스란히 고령층에 전달됩니다. 오는 20일에 폐쇄되는 서울 장충동의 한 은행 지점에 가봤습니다. 이제 이 은행을 다녔던 고객들은 500m 이상 떨어진 다른 지점을 가야만 합니다. 은행을 이용하고 나오는 노인분들께 지점 폐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봤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큰일 났다. 이거. 거리가 멀어진다는데. 건널목도 있고 위험하니까 다리도 아프고"

"은행 직원들 잘 사귀어서 뭐 이렇게 정보 같은 것도 듣고 이래서 참 좋았는데. 굉장히 불편해요. 저는 다리 아픈 사람이라서 어디, 어디 멀리 은행을 안 가고 가까운 은행을 많이 이용하는데. 어떡해야 해."

고령층은 모바일 뱅킹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지점 폐쇄가 현실적으로 큰 불편입니다. 실제로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률을 보면 2, 30대의 이용률은 80% 내외이지만 60대는 18%대, 70대 이상은 6%대로 뚝 떨어집니다. 대부분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다 혹시 틀리면 어떡할지 걱정이 되거나 스마트폰 조작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은행 앱의 경우 메뉴가 많고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이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틀릴까 봐…뭐 잘못 누르면 또 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안 하죠."

"배워볼 생각은 있는데요. 제가 컴퓨터를 가서 하다 하다 배우다가 3개월 못 마치고 제가 그만뒀어요. 너무 그게 받아들이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정보격차가 자산과 소득에도 영향

노인 금융 소외는 단순히 불편만을 가져오는 게 아닙니다. 자산과 소득 격차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에 출시된 예금과 적금은 물론 환전, 보험 등 대부분 금융 상품을 보면 온라인과 모바일에만 수수료나 금리 혜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노인 수수료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른 은행으로 계좌이체를 할 때 모바일로 하면 무료이거나 5백 원이지만 창구를 이용하면 2천 원을 수수료로 내야 합니다. 주로 노인들이 계좌 이체도 창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노인 수수료라고 불립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층이 금융기관에 이익이 되는 계층이라면 디지털로 소외된 계층이라고 하더라도 계속적인 지원과 혜택,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해법은 '교육', 알긴 아는데…

핀테크가 확산할수록 은행 지점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그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간을 벌고, 노인들이 핀테크 흐름에 따라갈 수 있도록 교육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지자체, 주민센터 등 공공영역이나 민간 교육기관에서 교육 기회를 많이 만들고 강사들도 많이 육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강사가 1대1로 달라붙어서 스마트폰 조작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줘야 하지만 강사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한 민간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노인 대상 스마트폰 강의를 가봤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10대 못지않았지만, 수강생 20여 명이 강사 1명의 말만 듣고 따라가기엔 벅차 보였습니다.

금융기관에서 노인들이 은행 지점을 찾을 때마다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직원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일이 교육을 하는 게 다소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고령층을 비롯한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금융기관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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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돈 안되는 고객은 가라”…지점 폐쇄에 밀려나는 노령층
    • 입력 2019-05-18 10:02:40
    • 수정2019-05-18 10:02:48
    취재후·사건후
"디지털 기술혁신이 오히려 고령층 등 금융소외 계층을 양산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017.12

"장애인이나 고령층, 청소년 등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다 더 각별한 관심을 두고 불편이나 불이익 등 차별받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2018.11

"모바일 뱅킹에서 소외된 60대 이상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은행의 지점과 출장소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점은 우려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2019.2


2년 만에 3백여 곳 줄어든 은행 지점

금융당국 수장들은 수년 전부터 노인 금융 소외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직접 은행 지점 폐쇄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6년 말에 전국적으로 7,097곳이었던 은행 지점은 지난해 말 6,763곳으로 줄었습니다. 2년 만에 334곳이 줄어든 겁니다. 서울에서만 151곳이 문을 닫았고, 경기도와 대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는 4년 동안 1만 대 이상 사라졌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2017년 하반기에 '은행권 점포 통폐합 관련 행정지도'를 시행했습니다. 은행 지점 문을 닫을 경우 폐쇄 2개월 전부터 최소 2회 이상 고객에게 사전고지해야 한다는 등의 절차가 권고됐습니다.

금감원도 지난해 7월에 지점 폐쇄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점 폐쇄 여부는 은행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에 맡겨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결국 흐지부지됐습니다.

은행들의 반론도 일리는 있습니다.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지점을 직접 찾는 고객이 줄어들다 보니 은행들 입장에선 지점을 운영하는 게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적자가 나는 지점이나 가까운 지역에 다른 지점이 중복되어 있는 지점 위주로 없애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꾸준히 지점을 줄이고 있습니다. 대놓고 줄이기에는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가 보이니까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한 공간에 있는 지점을 개인 고객 전용과 기업고객 전용으로 나누는 겁니다.

기업은행의 경우 2018년에만 이런 식으로 20여 개의 지점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런 꼼수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지점 폐쇄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으로도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모바일 뱅킹 사용 못 해요" 노인들의 하소연

은행 지점 폐쇄의 여파는 고스란히 고령층에 전달됩니다. 오는 20일에 폐쇄되는 서울 장충동의 한 은행 지점에 가봤습니다. 이제 이 은행을 다녔던 고객들은 500m 이상 떨어진 다른 지점을 가야만 합니다. 은행을 이용하고 나오는 노인분들께 지점 폐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봤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큰일 났다. 이거. 거리가 멀어진다는데. 건널목도 있고 위험하니까 다리도 아프고"

"은행 직원들 잘 사귀어서 뭐 이렇게 정보 같은 것도 듣고 이래서 참 좋았는데. 굉장히 불편해요. 저는 다리 아픈 사람이라서 어디, 어디 멀리 은행을 안 가고 가까운 은행을 많이 이용하는데. 어떡해야 해."

고령층은 모바일 뱅킹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지점 폐쇄가 현실적으로 큰 불편입니다. 실제로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률을 보면 2, 30대의 이용률은 80% 내외이지만 60대는 18%대, 70대 이상은 6%대로 뚝 떨어집니다. 대부분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다 혹시 틀리면 어떡할지 걱정이 되거나 스마트폰 조작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은행 앱의 경우 메뉴가 많고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이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틀릴까 봐…뭐 잘못 누르면 또 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안 하죠."

"배워볼 생각은 있는데요. 제가 컴퓨터를 가서 하다 하다 배우다가 3개월 못 마치고 제가 그만뒀어요. 너무 그게 받아들이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정보격차가 자산과 소득에도 영향

노인 금융 소외는 단순히 불편만을 가져오는 게 아닙니다. 자산과 소득 격차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에 출시된 예금과 적금은 물론 환전, 보험 등 대부분 금융 상품을 보면 온라인과 모바일에만 수수료나 금리 혜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노인 수수료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른 은행으로 계좌이체를 할 때 모바일로 하면 무료이거나 5백 원이지만 창구를 이용하면 2천 원을 수수료로 내야 합니다. 주로 노인들이 계좌 이체도 창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노인 수수료라고 불립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층이 금융기관에 이익이 되는 계층이라면 디지털로 소외된 계층이라고 하더라도 계속적인 지원과 혜택,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해법은 '교육', 알긴 아는데…

핀테크가 확산할수록 은행 지점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그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간을 벌고, 노인들이 핀테크 흐름에 따라갈 수 있도록 교육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지자체, 주민센터 등 공공영역이나 민간 교육기관에서 교육 기회를 많이 만들고 강사들도 많이 육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강사가 1대1로 달라붙어서 스마트폰 조작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줘야 하지만 강사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한 민간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노인 대상 스마트폰 강의를 가봤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10대 못지않았지만, 수강생 20여 명이 강사 1명의 말만 듣고 따라가기엔 벅차 보였습니다.

금융기관에서 노인들이 은행 지점을 찾을 때마다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직원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일이 교육을 하는 게 다소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고령층을 비롯한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금융기관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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