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해피벌룬’ 세트 판매까지…찰나의 쾌락 뒤 영원한 후유증

입력 2019.05.18 (11:59) 수정 2019.05.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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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화질소 캡슐, 속칭 ‘해피벌룬’

경찰이 아산화질소, 속칭 '해피벌룬'을 불법유통하고 판매해 온 업자 35살 김 모 씨 등 12명을 검거했습니다. 해피벌룬이 강남 일대 클럽과 유흥업소 등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가운데 사망자까지 발생하자 집중 단속에 나선 건데요. 2년 전 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해 '해피벌룬' 흡입을 금지한 뒤로 최대 규모의 적발입니다.

"이거 사업 되겠는데?" 해피벌룬 세트메뉴까지...

경찰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해피벌룬경찰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해피벌룬

경찰 조사에 따르면, 주범 김 씨는 베트남 여행 중 놀러 간 클럽에서 사람들이 해피벌룬 하는 모습을 보고 '이거 사업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 씨는 커피 관련 용품 판매 업체로 위장해 사업자등록을 하고 아산화질소 캡슐을 대량으로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산화질소 캡슐이 카페에서 커피에 올리는 휘핑크림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김 씨 일당은 8g짜리 캡슐을 300원에 정도에 들여와 600원, 800원까지 올려 팔면서 '세트메뉴'까지 만들었습니다.

"8g짜리 캡슐 100개에 1세트, 8만 원"

지난 2017년 8월부터 1년 반 정도 되는 동안 거래된 금액만 25억 원에 달합니다. 경찰은 일당이 취한 부당이득이 13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흡입 외 용도로 사용하면 처벌받습니다. 그런데 한 세트에 8만 원이에요"

업체에서 발송한 광고문자업체에서 발송한 광고문자

일당은 클럽과 유흥업소 등 관계자들로부터 고객 명단을 받은 뒤 광고문자를 보냈습니다. 해피벌룬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알쏭달쏭한 이 수상한 문자의 단서는 바로 '흡입'.

호기심을 갖고 연락을 해오거나 의도를 알아차리고 연락해 오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가격 흥정을 하며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 해피벌룬 구매한 흡입자들 대부분 20대 남녀로 직업은 다양

이름이 아닌 주소로 정리된 고객 명단이름이 아닌 주소로 정리된 고객 명단

주범 김 씨는 홀로 사업을 해 오다 장사가 잘 되자 '24시간 직접 배송'을 위해 사업을 확장합니다. 1일 3교대 24시간 근무. 김 씨 일당은 수사망을 피하고자 주문을 받는 즉시 약속된 장소로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24시간 영업했습니다.

단골 고객들과는 '약속된 주소'를 주고받아 명단을 만들었습니다. '신속 배달'을 표방하며, 강남권에 사는 구매자들에게는 15분 정도면 배달이 완료되도록 했습니다. 김 씨와 함께 일하다 독립해 자신의 업장을 차린 또 다른 김 모 씨 2명 역시 마찬가지로 호황을 이어갔다는 게 경찰의 말입니다.

■ "6개월 만에 204회, 캡슐 3만2천3백 개, 1,990만 원"

휘핑크림 만드는 것처럼…휘핑크림 만드는 것처럼…

이번에 적발된 해피벌룬 구매자들은 무려 83명. 대부분이 20대 남녀로 클럽 DJ와 MD 등 유흥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포함됐습니다. 상근직 군인과 방송 BJ, 모델과 대학생, 은퇴한 축구선수와 발레리나까지 있었습니다. 특히 10대 미성년자까지 포함돼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강남 클럽이나 인터넷에서 해피벌룬 광고를 보고 호기심을 느껴 흡입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특히 83명 가운데 가장 많이 해피벌룬을 구입한 사람은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24살 여성 박 모 씨였습니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 만에 모두 204회에 걸쳐 해피벌룬을 구입했습니다. 캡슐 개수는 무려 3만 2천3백 개, 금액으로 따지면 1천 990만 원어치나 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해피벌룬에 빠져들었을까요?

구매자들 대부분은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온 몸이 저리고 마비되는 등 하반신부터 마비 증상이 나타나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됐지만, 병원을 찾아도 뾰족한 치료 방법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원인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병원이 클럽인 줄 알고 디제잉 흉내 내기도"

천영훈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천영훈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취재진은 약물 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우선 일부 흡입자들이 하는 말처럼 "해피벌룬을 끊으면 몸이 회복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뇌 손상의 증후가 나타났기 때문에 회복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게 되면 저산소증을 유발하게 되고 뇌가 손상돼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보행 장애를 포함해 다양한 증후가 나타난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보통 하반신에서 시작되는 마비는 상반신까지 타고 올라가고,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는 데다 기억력과 지능까지도 현저히 떨어지는 후유증까지 관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과거 해피벌룬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던 어떤 환자는 병원이 클럽인 줄 착각해 디제잉을 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30대 여성 환자는 원래 IQ가 100~110 정도의 평균적인 수준이었는데, 해피벌룬에 중독된 이후에는 IQ가 73까지 떨어진 경우도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해피벌룬. 자신의 몸 속으로 화학 물질을 집어넣어 얻는 '찰나의 쾌락' 뒤에 따라오는 '영원한 후유증'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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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해피벌룬’ 세트 판매까지…찰나의 쾌락 뒤 영원한 후유증
    • 입력 2019-05-18 11:59:03
    • 수정2019-05-18 12:13:22
    취재후·사건후
아산화질소 캡슐, 속칭 ‘해피벌룬’

경찰이 아산화질소, 속칭 '해피벌룬'을 불법유통하고 판매해 온 업자 35살 김 모 씨 등 12명을 검거했습니다. 해피벌룬이 강남 일대 클럽과 유흥업소 등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가운데 사망자까지 발생하자 집중 단속에 나선 건데요. 2년 전 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해 '해피벌룬' 흡입을 금지한 뒤로 최대 규모의 적발입니다.

"이거 사업 되겠는데?" 해피벌룬 세트메뉴까지...

경찰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해피벌룬
경찰 조사에 따르면, 주범 김 씨는 베트남 여행 중 놀러 간 클럽에서 사람들이 해피벌룬 하는 모습을 보고 '이거 사업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 씨는 커피 관련 용품 판매 업체로 위장해 사업자등록을 하고 아산화질소 캡슐을 대량으로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산화질소 캡슐이 카페에서 커피에 올리는 휘핑크림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김 씨 일당은 8g짜리 캡슐을 300원에 정도에 들여와 600원, 800원까지 올려 팔면서 '세트메뉴'까지 만들었습니다.

"8g짜리 캡슐 100개에 1세트, 8만 원"

지난 2017년 8월부터 1년 반 정도 되는 동안 거래된 금액만 25억 원에 달합니다. 경찰은 일당이 취한 부당이득이 13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흡입 외 용도로 사용하면 처벌받습니다. 그런데 한 세트에 8만 원이에요"

업체에서 발송한 광고문자
일당은 클럽과 유흥업소 등 관계자들로부터 고객 명단을 받은 뒤 광고문자를 보냈습니다. 해피벌룬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알쏭달쏭한 이 수상한 문자의 단서는 바로 '흡입'.

호기심을 갖고 연락을 해오거나 의도를 알아차리고 연락해 오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가격 흥정을 하며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 해피벌룬 구매한 흡입자들 대부분 20대 남녀로 직업은 다양

이름이 아닌 주소로 정리된 고객 명단

주범 김 씨는 홀로 사업을 해 오다 장사가 잘 되자 '24시간 직접 배송'을 위해 사업을 확장합니다. 1일 3교대 24시간 근무. 김 씨 일당은 수사망을 피하고자 주문을 받는 즉시 약속된 장소로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24시간 영업했습니다.

단골 고객들과는 '약속된 주소'를 주고받아 명단을 만들었습니다. '신속 배달'을 표방하며, 강남권에 사는 구매자들에게는 15분 정도면 배달이 완료되도록 했습니다. 김 씨와 함께 일하다 독립해 자신의 업장을 차린 또 다른 김 모 씨 2명 역시 마찬가지로 호황을 이어갔다는 게 경찰의 말입니다.

■ "6개월 만에 204회, 캡슐 3만2천3백 개, 1,990만 원"

휘핑크림 만드는 것처럼…
이번에 적발된 해피벌룬 구매자들은 무려 83명. 대부분이 20대 남녀로 클럽 DJ와 MD 등 유흥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포함됐습니다. 상근직 군인과 방송 BJ, 모델과 대학생, 은퇴한 축구선수와 발레리나까지 있었습니다. 특히 10대 미성년자까지 포함돼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강남 클럽이나 인터넷에서 해피벌룬 광고를 보고 호기심을 느껴 흡입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특히 83명 가운데 가장 많이 해피벌룬을 구입한 사람은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24살 여성 박 모 씨였습니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 만에 모두 204회에 걸쳐 해피벌룬을 구입했습니다. 캡슐 개수는 무려 3만 2천3백 개, 금액으로 따지면 1천 990만 원어치나 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해피벌룬에 빠져들었을까요?

구매자들 대부분은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온 몸이 저리고 마비되는 등 하반신부터 마비 증상이 나타나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됐지만, 병원을 찾아도 뾰족한 치료 방법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원인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병원이 클럽인 줄 알고 디제잉 흉내 내기도"

천영훈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취재진은 약물 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우선 일부 흡입자들이 하는 말처럼 "해피벌룬을 끊으면 몸이 회복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뇌 손상의 증후가 나타났기 때문에 회복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게 되면 저산소증을 유발하게 되고 뇌가 손상돼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보행 장애를 포함해 다양한 증후가 나타난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보통 하반신에서 시작되는 마비는 상반신까지 타고 올라가고,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는 데다 기억력과 지능까지도 현저히 떨어지는 후유증까지 관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과거 해피벌룬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던 어떤 환자는 병원이 클럽인 줄 착각해 디제잉을 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30대 여성 환자는 원래 IQ가 100~110 정도의 평균적인 수준이었는데, 해피벌룬에 중독된 이후에는 IQ가 73까지 떨어진 경우도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해피벌룬. 자신의 몸 속으로 화학 물질을 집어넣어 얻는 '찰나의 쾌락' 뒤에 따라오는 '영원한 후유증'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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