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이인영 “엉뚱한 짓 한다” 추적하니 국토부 부글부글

입력 2019.05.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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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진 마이크'로 전해진 여권 핵심인사들의 속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출범 6주년을 맞아 당·정·청 협업을 모색하는 자리에서였다.

정부와 여권 핵심인 두 인물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남겼다. 이른바 '마이크 사고'였다. 회의 시작 전 방송사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른 채 여과 없이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

김수현 정책실장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집권)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

이인영 원내대표
"단적으로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

김수현 정책실장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 걱정이에요."

이인영 원내대표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


한 언론사의 보도로 알려진 이 대화는 큰 파문을 낳았다.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의 대결구도가 아니냐. 정권의 정부조직 장악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재발한 것 아니냐 등 각가지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인영 원내대표가 말한 '엉뚱한 짓'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0대 후반기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를 맡았던 터라 국토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버스 파업과 관련된 국토부의 안이한 대응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측은 나왔다.


'이상한, 엉뚱한 짓'은 이인영 의원 지역구 사안일까?

국토교통부 등 관가와 국회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보면 이인영 의원이 언급한 국토부의 '이상한 짓, 엉뚱한 짓'의 정체는 이 의원의 지역구 사안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구에서는 '서울~광명 민자고속도로' 사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익산~문산 고속도로의 일부인 이 건설 사업은 총연장 20.2km로, 완공되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와 경기 광명시 소하지구를 잇게 된다. 모두 1조 8천억 원이 투입되는 큰 토목 사업이다.

문제는 서울 구로구 항동지구를 통과하는 지하구간이다. 지역 주민들은 5천여 세대의 아파트와 초등학교 등의 지하 40m 아래에 터널이 들어서면 주거 안전을 위협받는다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광명 민자고속도로'는 지난해 2월 실시계획이 승인됐지만 이같은 이유로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실시계획 승인 이후 사업시행자인 서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가 지난해 두 차례 착수계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지만 두 번 연기되고 한 번 반려됐다. 이 과정에서 이인영 의원 측이 주민 반발 등 지역구 민원을 국토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사업이 강행될 기미가 보이자 반대 주민들이 몰려간 곳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인영 의원의 사무실이었다. 지난 2월에도 항동지구에 입주를 앞둔 주민 4백여 명은 구로구 개봉역 근처 이인영 의원 사무실 앞에서 고속도로 지하구간 건설을 막아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실시계획 승인 이후에 착공이 계속 지연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비용 등 손해는 귀책 사유가 있는 측에서 배상하는 조항이 실시협약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 간의 지연이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하지만 국토부 입장에서도 공사의 장기 지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현미 장관 한 달 없는 사이' 시작된 고속도로 공사

해당 사업의 제안서가 처음 제출된 건 2003년. 10년 넘게 정체된 공사에 속도를 내려는 국토부의 의지가 반영되어서일까. 사업 시행자인 서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는 3월 27일 착수계를 제출했다.

공교롭게도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3월 25일 열리고 이틀 뒤였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라고 언급한 바로 그 시기이다.

자진 철회와 반려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의 착수계와 달리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 제출된 착수계는 20일만인 4월 17일 접수가 완료됐다. 착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접수가 완료된 지 13일 만인 4월 30일 국토부는 돌연 시행사에 '일시중지' 공문을 내려보냈다. 착수계가 정식으로 접수되면 시행사는 바로 시공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착수계'의 효력을 일시중지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은 국책공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공청회 등 주민들의 여론을 더 수렴하고, 공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더 전달하기 위해서 공사를 일시중지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의원 측에서 주민들의 여론을 더 수렴해 달라는 요구를 국토부에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이 의원이 직접 담당 부서의 책임자와 실무자를 만난 것도 확인됐다. 다만, '엉뚱한 짓' 발언이 이 사안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인영 의원은 해당 발언이 지역구 사안과 관련이 있냐는 문의에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인영 의원의 보좌진은 "문제의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알고 있다"면서 "해당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국토부 "쏟아지는 정치인 민원, 솔직히 피곤하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번 이인영 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을 두고 격앙된 분위기가 형성됐다.

국토교통부노동조합은 14일 "공무원을 한낱 하등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묘사하는 등 여당과 청와대의 공무원에 대한 평소 인식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고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 최근의 정책 실패는 "여당과 청와대의 실패임에도 이를 공무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다른 정부 부처보다 더 남다르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각종 대형 토목‧건설사업을 총괄하는 국토부에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한 국토부 공무원은 "국토부가 다루는 다양한 국책 사업에 대해 많은 국회의원이 접촉을 해오기 때문에 솔직히 피곤하다"면서 "이런 피곤함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국토부 공무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열린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증에 날을 세워야 할 국토교통위 상임위원들이 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GTX, 제2 경인선, 동남권 공항, 재건축 문제 등 지역구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상한 짓', '엉뚱한 짓'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인영 의원은 결국 직접적인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크가 꺼진 무대의 뒷편에서 국토부와 국회의원들 사이의 신경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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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9 07:00:05
    취재K
'켜진 마이크'로 전해진 여권 핵심인사들의 속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출범 6주년을 맞아 당·정·청 협업을 모색하는 자리에서였다.

정부와 여권 핵심인 두 인물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남겼다. 이른바 '마이크 사고'였다. 회의 시작 전 방송사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른 채 여과 없이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

김수현 정책실장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집권)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

이인영 원내대표
"단적으로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

김수현 정책실장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 걱정이에요."

이인영 원내대표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


한 언론사의 보도로 알려진 이 대화는 큰 파문을 낳았다.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의 대결구도가 아니냐. 정권의 정부조직 장악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재발한 것 아니냐 등 각가지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인영 원내대표가 말한 '엉뚱한 짓'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0대 후반기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를 맡았던 터라 국토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버스 파업과 관련된 국토부의 안이한 대응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측은 나왔다.


'이상한, 엉뚱한 짓'은 이인영 의원 지역구 사안일까?

국토교통부 등 관가와 국회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보면 이인영 의원이 언급한 국토부의 '이상한 짓, 엉뚱한 짓'의 정체는 이 의원의 지역구 사안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구에서는 '서울~광명 민자고속도로' 사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익산~문산 고속도로의 일부인 이 건설 사업은 총연장 20.2km로, 완공되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와 경기 광명시 소하지구를 잇게 된다. 모두 1조 8천억 원이 투입되는 큰 토목 사업이다.

문제는 서울 구로구 항동지구를 통과하는 지하구간이다. 지역 주민들은 5천여 세대의 아파트와 초등학교 등의 지하 40m 아래에 터널이 들어서면 주거 안전을 위협받는다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광명 민자고속도로'는 지난해 2월 실시계획이 승인됐지만 이같은 이유로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실시계획 승인 이후 사업시행자인 서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가 지난해 두 차례 착수계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지만 두 번 연기되고 한 번 반려됐다. 이 과정에서 이인영 의원 측이 주민 반발 등 지역구 민원을 국토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사업이 강행될 기미가 보이자 반대 주민들이 몰려간 곳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인영 의원의 사무실이었다. 지난 2월에도 항동지구에 입주를 앞둔 주민 4백여 명은 구로구 개봉역 근처 이인영 의원 사무실 앞에서 고속도로 지하구간 건설을 막아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실시계획 승인 이후에 착공이 계속 지연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비용 등 손해는 귀책 사유가 있는 측에서 배상하는 조항이 실시협약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 간의 지연이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하지만 국토부 입장에서도 공사의 장기 지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현미 장관 한 달 없는 사이' 시작된 고속도로 공사

해당 사업의 제안서가 처음 제출된 건 2003년. 10년 넘게 정체된 공사에 속도를 내려는 국토부의 의지가 반영되어서일까. 사업 시행자인 서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는 3월 27일 착수계를 제출했다.

공교롭게도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3월 25일 열리고 이틀 뒤였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라고 언급한 바로 그 시기이다.

자진 철회와 반려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의 착수계와 달리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 제출된 착수계는 20일만인 4월 17일 접수가 완료됐다. 착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접수가 완료된 지 13일 만인 4월 30일 국토부는 돌연 시행사에 '일시중지' 공문을 내려보냈다. 착수계가 정식으로 접수되면 시행사는 바로 시공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착수계'의 효력을 일시중지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은 국책공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공청회 등 주민들의 여론을 더 수렴하고, 공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더 전달하기 위해서 공사를 일시중지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의원 측에서 주민들의 여론을 더 수렴해 달라는 요구를 국토부에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이 의원이 직접 담당 부서의 책임자와 실무자를 만난 것도 확인됐다. 다만, '엉뚱한 짓' 발언이 이 사안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인영 의원은 해당 발언이 지역구 사안과 관련이 있냐는 문의에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인영 의원의 보좌진은 "문제의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알고 있다"면서 "해당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국토부 "쏟아지는 정치인 민원, 솔직히 피곤하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번 이인영 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을 두고 격앙된 분위기가 형성됐다.

국토교통부노동조합은 14일 "공무원을 한낱 하등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묘사하는 등 여당과 청와대의 공무원에 대한 평소 인식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고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 최근의 정책 실패는 "여당과 청와대의 실패임에도 이를 공무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다른 정부 부처보다 더 남다르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각종 대형 토목‧건설사업을 총괄하는 국토부에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한 국토부 공무원은 "국토부가 다루는 다양한 국책 사업에 대해 많은 국회의원이 접촉을 해오기 때문에 솔직히 피곤하다"면서 "이런 피곤함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국토부 공무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열린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증에 날을 세워야 할 국토교통위 상임위원들이 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GTX, 제2 경인선, 동남권 공항, 재건축 문제 등 지역구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상한 짓', '엉뚱한 짓'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인영 의원은 결국 직접적인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크가 꺼진 무대의 뒷편에서 국토부와 국회의원들 사이의 신경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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