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달콤한 ‘헤이즐넛’ 뒤에는 ‘시리아 난민’의 피와 땀

입력 2019.05.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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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들 때 달콤한 향과 식감을 더하기 위해 헤이즐넛을 넣은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에서 헤이즐넛을 주력으로 재배해 수출하는 나라는 터키입니다.

터키는 올해 상반기, 넉 달 동안 9만 3,437톤의 헤이즐넛을 해외로 수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5억 7,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천7백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동부 흑해 수출업자 협회(Eastern Black Sea Exporter's Association)가 집계한 것으로 데일리 사바(Daily Sabah)가 13일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터키의 헤이즐넛 수출량은 4% 증가했으며, 금액으로는 2% 늘었습니다.

터키의 헤이즐넛은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들이 주로 사갔습니다. 이탈리아가 가장 많이 수입해 1억 4,700만 달러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독일은 1억 500만 달러, 프랑스가 5,140만 달러로 뒤를 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www.dailysabah.com사진 출처 : www.dailysabah.com

헤이즐넛 수출량 터키 세계 1위…실제 생산자는?

터키는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 말까지 28만 7,000톤의 헤이즐넛을 수출해 17억 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수출 물량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1.6%가 증가했습니다.

이번 시즌 터키의 헤이즐넛 수출의 75%는 EU 국가에 수출됐습니다.

그런데 이 헤이즐넛을 실제로 누가 생산하고 있을까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 터키 헤이즐넛 생산의 이면을 보도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

NYT "시리아 난민이 헤이즐넛 생산에 착취되고 있다"

흑해 지역은 충분한 햇빛과 비, 그리고 질 좋은 토양을 갖고 있어 헤이즐넛 생산에 최적입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터키 정부는 지역 농부들에게 헤이즐넛 나무를 심는 것을 권장해 왔습니다. 소득도 늘리고, 산사태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헤이즐넛은 터키 경제의 6%를 차지하는 농업에서 주요 작물이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 헤이즐넛의 70%를 생산하는 터키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한 대가로 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당을 받고 있다며 그 실상을 전했습니다.

수천 명의 다른 시리아 난민들처럼 57살의 샤카 루다니(Shakar Rudani)는 터키 흑해 주변의 헤이즐넛 농장에 고용됐습니다. 6명의 아들과 고되고 위험한 환경에서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대부분 경사진 곳에서 추락 위험을 무릅쓰고 몸에 줄까지 묶고 일을 했음에도 손에 쥐어진 돈은 하루에 고작 10불. 생활비로 쓰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고 루다니는 털어놨습니다.

헤이즐넛 농장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수집과 운반입니다. 헤이즐넛을 손으로 따서 자루에 담거나, 110파운드, 약 50kg에 달하는 자루를 산 아래위로 트럭까지 옮기는 일입니다.

일부 농장에서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합니다. 가혹한 노동조건에도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들은, 터키의 빈곤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중개인들이 10%의 수수료를 떼가고 있습니다. 워낙 받는 돈이 적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은 결국 어린 자녀들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

손을 놓은 터키 정부… 보호받지 못하는 시리아 난민

사정이 이런데도 터키 정부는 사실상 헤이즐넛 농장에 대한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리차 미탈(Richa Mittal) 공정 노동 협회 혁신연구소장은 "지난 6년 동안 모니터링을 해왔는데, 노동 조건에 대한 규정을 준수하는 헤이즐넛 농장을 단 한 곳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헤이즐넛 수확 기간, 늘어나는 노동자는 시리아 난민들뿐입니다. 근로 허가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터키의 노동법은 50인 미만의 농업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데, 대부분의 헤이즐넛 농장은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터키에는 60만 개의 작은 농장들이 북부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은 20만 명에 달합니다.

"페레로, 근로 기준 준수 노력하고 있다"

헤이즐넛은 빵 등에 발라먹는 초콜릿인 '누텔라'와 '페레로 로셰'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기업 페레로나, 고디바의 모 기업인 터키 일디즈, 네슬레 등이 사가고 있습니다.

비상장 기업인 페레로는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개인 재산이 223억 달러에 달하는 조반니 페레로(Giovanni Ferrero)가 이끄는 세계 3위의 초콜릿 제조업체입니다. 터키가 생산하는 헤이즐넛의 3분의 1을 구매해가는 큰손입니다.

초콜릿 기업들은 시리아 난민들의 고통을 알고 있을까요? 뉴욕타임스는 터키산 헤이즐넛을 사는 것만으로도 인도주의의 결함을 부추기는 행위일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페레로 측은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고, 임금과 안전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헤이즐넛을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매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루디니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공격해오자 12명의 가족과 함께 2014년 1월 국경을 넘어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고향에는 그 후 3년 동안 IS 깃발이 걸려 있었고, 지금은 쿠르드족 민병대가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루디니는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아크카칼레(Akcakale)에 정착했습니다. 그가 살던 고향 시리아의 집이 눈에 보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루디니씨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헤이즐넛의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피와 땀을 뒤로하고 말입니다.

[참고 자료]
1. Syrian Refugees Toil on Turkey’s Hazelnut Farms With Little to Show for It,
2. Turkey earns over $570m in hazelnut exports in first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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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달콤한 ‘헤이즐넛’ 뒤에는 ‘시리아 난민’의 피와 땀
    • 입력 2019-05-19 09:00:27
    글로벌 돋보기
초콜릿을 만들 때 달콤한 향과 식감을 더하기 위해 헤이즐넛을 넣은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에서 헤이즐넛을 주력으로 재배해 수출하는 나라는 터키입니다.

터키는 올해 상반기, 넉 달 동안 9만 3,437톤의 헤이즐넛을 해외로 수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5억 7,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천7백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동부 흑해 수출업자 협회(Eastern Black Sea Exporter's Association)가 집계한 것으로 데일리 사바(Daily Sabah)가 13일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터키의 헤이즐넛 수출량은 4% 증가했으며, 금액으로는 2% 늘었습니다.

터키의 헤이즐넛은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들이 주로 사갔습니다. 이탈리아가 가장 많이 수입해 1억 4,700만 달러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독일은 1억 500만 달러, 프랑스가 5,140만 달러로 뒤를 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www.dailysabah.com
헤이즐넛 수출량 터키 세계 1위…실제 생산자는?

터키는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 말까지 28만 7,000톤의 헤이즐넛을 수출해 17억 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수출 물량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1.6%가 증가했습니다.

이번 시즌 터키의 헤이즐넛 수출의 75%는 EU 국가에 수출됐습니다.

그런데 이 헤이즐넛을 실제로 누가 생산하고 있을까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 터키 헤이즐넛 생산의 이면을 보도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
NYT "시리아 난민이 헤이즐넛 생산에 착취되고 있다"

흑해 지역은 충분한 햇빛과 비, 그리고 질 좋은 토양을 갖고 있어 헤이즐넛 생산에 최적입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터키 정부는 지역 농부들에게 헤이즐넛 나무를 심는 것을 권장해 왔습니다. 소득도 늘리고, 산사태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헤이즐넛은 터키 경제의 6%를 차지하는 농업에서 주요 작물이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 헤이즐넛의 70%를 생산하는 터키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한 대가로 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당을 받고 있다며 그 실상을 전했습니다.

수천 명의 다른 시리아 난민들처럼 57살의 샤카 루다니(Shakar Rudani)는 터키 흑해 주변의 헤이즐넛 농장에 고용됐습니다. 6명의 아들과 고되고 위험한 환경에서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대부분 경사진 곳에서 추락 위험을 무릅쓰고 몸에 줄까지 묶고 일을 했음에도 손에 쥐어진 돈은 하루에 고작 10불. 생활비로 쓰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고 루다니는 털어놨습니다.

헤이즐넛 농장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수집과 운반입니다. 헤이즐넛을 손으로 따서 자루에 담거나, 110파운드, 약 50kg에 달하는 자루를 산 아래위로 트럭까지 옮기는 일입니다.

일부 농장에서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합니다. 가혹한 노동조건에도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들은, 터키의 빈곤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중개인들이 10%의 수수료를 떼가고 있습니다. 워낙 받는 돈이 적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은 결국 어린 자녀들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nytimes.com
손을 놓은 터키 정부… 보호받지 못하는 시리아 난민

사정이 이런데도 터키 정부는 사실상 헤이즐넛 농장에 대한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리차 미탈(Richa Mittal) 공정 노동 협회 혁신연구소장은 "지난 6년 동안 모니터링을 해왔는데, 노동 조건에 대한 규정을 준수하는 헤이즐넛 농장을 단 한 곳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헤이즐넛 수확 기간, 늘어나는 노동자는 시리아 난민들뿐입니다. 근로 허가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터키의 노동법은 50인 미만의 농업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데, 대부분의 헤이즐넛 농장은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터키에는 60만 개의 작은 농장들이 북부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은 20만 명에 달합니다.

"페레로, 근로 기준 준수 노력하고 있다"

헤이즐넛은 빵 등에 발라먹는 초콜릿인 '누텔라'와 '페레로 로셰'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기업 페레로나, 고디바의 모 기업인 터키 일디즈, 네슬레 등이 사가고 있습니다.

비상장 기업인 페레로는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개인 재산이 223억 달러에 달하는 조반니 페레로(Giovanni Ferrero)가 이끄는 세계 3위의 초콜릿 제조업체입니다. 터키가 생산하는 헤이즐넛의 3분의 1을 구매해가는 큰손입니다.

초콜릿 기업들은 시리아 난민들의 고통을 알고 있을까요? 뉴욕타임스는 터키산 헤이즐넛을 사는 것만으로도 인도주의의 결함을 부추기는 행위일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페레로 측은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고, 임금과 안전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헤이즐넛을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매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루디니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공격해오자 12명의 가족과 함께 2014년 1월 국경을 넘어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고향에는 그 후 3년 동안 IS 깃발이 걸려 있었고, 지금은 쿠르드족 민병대가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루디니는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아크카칼레(Akcakale)에 정착했습니다. 그가 살던 고향 시리아의 집이 눈에 보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루디니씨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헤이즐넛의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피와 땀을 뒤로하고 말입니다.

[참고 자료]
1. Syrian Refugees Toil on Turkey’s Hazelnut Farms With Little to Show for It,
2. Turkey earns over $570m in hazelnut exports in first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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