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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후의 궁중화가가 그린 경복궁은?
입력 2019.05.20 (09:03) 수정 2019.05.20 (11:25) 취재K
조선 최후의 궁중화가가 그린 경복궁은?
최근 몇 년 사이 '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제법 열리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근대'라는 말이 들어가는 전시회는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근대'라는 시기 자체가 관람객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근대'는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고 무려 35년 동안이나 일제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은 '강점'의 시기와 겹쳐 있죠. 때문에 좋든 싫든 그 시기에 대한 일차적인 거부감이 존재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굉장히 좋은 전시여서 더 그렇습니다. 전시 기획자가 작품 구성과 배치에 상당한 정성을 쏟았더군요. 더 중요한 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준 높은 근대미술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언제 이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까요.

안중식 초상 사진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안중식 초상 사진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 전시의 주인공은 안중식(1861∼1919)이란 화가입니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최후의 천재 화가로 이름을 날린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하지요. 스승이었던 장승업과 마찬가지로 안중식 또한 화원(畵員), 즉 왕실에 소속된 화가였습니다. 연보를 보면, 안중식은 이미 21살 때부터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당시로써는 상당한 해외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42살이던 1902년 고종 황제의 어진(御眞), 즉 초상화 제작에 참여합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만이 누릴 수 있는 영예였죠.

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년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 197.5×63.6cm, 202.0×65.3cm, 등록문화재 4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년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 197.5×63.6cm, 202.0×65.3cm, 등록문화재 4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중식의 대표작은 <백악춘효>라는 이름의 그림 두 점입니다. 이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들이죠. 안중식이 1915년에 완성한 <백악춘효>는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세부 묘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구도로 그린 그림입니다. 두 점이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관람객들도 이 두 작품 앞에서 가장 오래 머뭅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백악춘효(白岳春曉)라는 글씨가 그림의 제목입니다. 풀이하면 '백악의 봄날 새벽'입니다. 왼쪽이 여름본, 오른쪽이 가을본입니다. 제목 옆에 을묘년(1915년) 여름(夏日)과 가을(秋日)에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그림을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시 <춘효 春曉>와 연관 지어서 해석합니다. 이 시의 첫 줄에 담긴 의미에 주목한 겁니다.

春眠不覺曉 봄 잠에 날 밝는 줄 몰랐는데
夜來風雨聲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렸으니
處處聞啼鳥 여기저기서 새 소리 들려온다
花落知多少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봄 잠에 빠져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는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하늘 아래 백악, 즉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아래로 새벽 안개가 펼쳐져 있고, 경복궁의 전각들과 광화문, 어도, 육조거리의 해태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산과 전각의 배치와 묘사에서 다소 차이가 보이고, 여름본에는 두 점인 해태상이 가을본엔 왼쪽에 하나만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915년 당시의 경복궁은 이런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에 경복궁에서 대규모 박람회를 열기로 합니다. 조선을 식민지배 아래 둔 지 5년이 된 해를 기념해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기로 한 거죠. 행사를 위해 일제는 경복궁의 많은 전각을 부수고 신식 가건물과 서양식 건축물들을 지었습니다. 경복궁은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훼손됩니다. 끔찍한 비극의 역사였죠.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그러니 안중식이 본 경복궁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화가가 완성한 그림에는 보시다시피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화원 출신의 대화가가 일제가 망가뜨린 경복궁을 일부러 그릴 이유는 없었겠죠. 안중식은 마구잡이로 헐리고 훼손되기 전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으로 경복궁을 그립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하여 언젠가는 봄이 오고 새벽이 올 것을 믿고 염원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은 것일까요.


이 그림은 보고 그린 것이 아님에도 사실 묘사에 비교적 충실합니다. 화면 상단의 백악산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S자로 굽어 돌아가는 한양 성곽 일부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림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수가 없죠. 그래서 그림은 전시장에서 실물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광화문 앞 어도와 해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태상이 서 있던 자리는 본래 저곳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해보아야 할 부분은 광화문 현판입니다. 현판 색깔을 자세히 볼까요. 광화문이라는 세 글자는 없습니다만 바탕은 분명 검정입니다. 기와 색깔과 비교하면 짙은 색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죠.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의 색이 잘못됐다는 사실은 이미 사진과 문헌 자료를 통해 거듭 입증된 바 있습니다. 화가가 현판 색깔을 잘못 그렸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그림이야말로 현판의 원래 색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서 그림을 요모조모 자세하게 뜯어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그림 앞에 머물렀습니다. 안중식의 <백악춘효>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특별전 《코리안 랩소디》에서였습니다. 그때는 한 점만 전시장에 걸렸는데, 작품이 주는 짙은 여운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군요. 이미 망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최후의 궁중화가는 어떤 심정으로 빼앗긴 나라의 상징 경복궁을 그렸을까.

안중식은 3·1 만세 함성이 터져 나온 191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스물하고도 대여섯 해가 더 지나 감격의 해방을 맞기까지 경복궁을 주인공으로 묘사한 그림은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광화문이 지금처럼 제 자리를 찾아 어엿한 모습으로 복원된 것은 2010년. 그로부터 2년 뒤, 안중식의 <백악춘효> 두 점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485호로 지정됩니다.

■전시 정보
제목: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기간: 2019년 6월 2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작품: 근대 서화, 사진, 삽화 등 100여 점
  • 조선 최후의 궁중화가가 그린 경복궁은?
    • 입력 2019.05.20 (09:03)
    • 수정 2019.05.20 (11:25)
    취재K
조선 최후의 궁중화가가 그린 경복궁은?
최근 몇 년 사이 '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제법 열리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근대'라는 말이 들어가는 전시회는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근대'라는 시기 자체가 관람객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근대'는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고 무려 35년 동안이나 일제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은 '강점'의 시기와 겹쳐 있죠. 때문에 좋든 싫든 그 시기에 대한 일차적인 거부감이 존재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굉장히 좋은 전시여서 더 그렇습니다. 전시 기획자가 작품 구성과 배치에 상당한 정성을 쏟았더군요. 더 중요한 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준 높은 근대미술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언제 이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까요.

안중식 초상 사진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안중식 초상 사진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 전시의 주인공은 안중식(1861∼1919)이란 화가입니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최후의 천재 화가로 이름을 날린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하지요. 스승이었던 장승업과 마찬가지로 안중식 또한 화원(畵員), 즉 왕실에 소속된 화가였습니다. 연보를 보면, 안중식은 이미 21살 때부터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당시로써는 상당한 해외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42살이던 1902년 고종 황제의 어진(御眞), 즉 초상화 제작에 참여합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만이 누릴 수 있는 영예였죠.

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년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 197.5×63.6cm, 202.0×65.3cm, 등록문화재 4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년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 197.5×63.6cm, 202.0×65.3cm, 등록문화재 4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중식의 대표작은 <백악춘효>라는 이름의 그림 두 점입니다. 이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들이죠. 안중식이 1915년에 완성한 <백악춘효>는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세부 묘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구도로 그린 그림입니다. 두 점이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관람객들도 이 두 작품 앞에서 가장 오래 머뭅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백악춘효(白岳春曉)라는 글씨가 그림의 제목입니다. 풀이하면 '백악의 봄날 새벽'입니다. 왼쪽이 여름본, 오른쪽이 가을본입니다. 제목 옆에 을묘년(1915년) 여름(夏日)과 가을(秋日)에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그림을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시 <춘효 春曉>와 연관 지어서 해석합니다. 이 시의 첫 줄에 담긴 의미에 주목한 겁니다.

春眠不覺曉 봄 잠에 날 밝는 줄 몰랐는데
夜來風雨聲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렸으니
處處聞啼鳥 여기저기서 새 소리 들려온다
花落知多少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봄 잠에 빠져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는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하늘 아래 백악, 즉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아래로 새벽 안개가 펼쳐져 있고, 경복궁의 전각들과 광화문, 어도, 육조거리의 해태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산과 전각의 배치와 묘사에서 다소 차이가 보이고, 여름본에는 두 점인 해태상이 가을본엔 왼쪽에 하나만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915년 당시의 경복궁은 이런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에 경복궁에서 대규모 박람회를 열기로 합니다. 조선을 식민지배 아래 둔 지 5년이 된 해를 기념해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기로 한 거죠. 행사를 위해 일제는 경복궁의 많은 전각을 부수고 신식 가건물과 서양식 건축물들을 지었습니다. 경복궁은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훼손됩니다. 끔찍한 비극의 역사였죠.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그러니 안중식이 본 경복궁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화가가 완성한 그림에는 보시다시피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화원 출신의 대화가가 일제가 망가뜨린 경복궁을 일부러 그릴 이유는 없었겠죠. 안중식은 마구잡이로 헐리고 훼손되기 전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으로 경복궁을 그립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하여 언젠가는 봄이 오고 새벽이 올 것을 믿고 염원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은 것일까요.


이 그림은 보고 그린 것이 아님에도 사실 묘사에 비교적 충실합니다. 화면 상단의 백악산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S자로 굽어 돌아가는 한양 성곽 일부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림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수가 없죠. 그래서 그림은 전시장에서 실물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광화문 앞 어도와 해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태상이 서 있던 자리는 본래 저곳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해보아야 할 부분은 광화문 현판입니다. 현판 색깔을 자세히 볼까요. 광화문이라는 세 글자는 없습니다만 바탕은 분명 검정입니다. 기와 색깔과 비교하면 짙은 색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죠.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의 색이 잘못됐다는 사실은 이미 사진과 문헌 자료를 통해 거듭 입증된 바 있습니다. 화가가 현판 색깔을 잘못 그렸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그림이야말로 현판의 원래 색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서 그림을 요모조모 자세하게 뜯어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그림 앞에 머물렀습니다. 안중식의 <백악춘효>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특별전 《코리안 랩소디》에서였습니다. 그때는 한 점만 전시장에 걸렸는데, 작품이 주는 짙은 여운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군요. 이미 망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최후의 궁중화가는 어떤 심정으로 빼앗긴 나라의 상징 경복궁을 그렸을까.

안중식은 3·1 만세 함성이 터져 나온 191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스물하고도 대여섯 해가 더 지나 감격의 해방을 맞기까지 경복궁을 주인공으로 묘사한 그림은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광화문이 지금처럼 제 자리를 찾아 어엿한 모습으로 복원된 것은 2010년. 그로부터 2년 뒤, 안중식의 <백악춘효> 두 점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485호로 지정됩니다.

■전시 정보
제목: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기간: 2019년 6월 2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작품: 근대 서화, 사진, 삽화 등 100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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