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문제다” 재판부 지적한 피고인 임종헌…역시 ‘법잘알’?

입력 2019.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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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구속영장은 그 방식이 형사소송법 75조 1항에 위반하여 부적법하다는 피고인의 의견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역시 남달랐습니다. '법잘알'(법을 잘 알고 있는) 피고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얘기입니다. 그는 어제(20일) 재판에 나와 "재판부가 발부한 구속영장이 부적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구속영장의 효력에는 토를 달지 않겠다면서도 영장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요?


"공소사실, 심리에선 2개였는데 영장엔 왜 1개뿐?"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 전 차장은, 당초 구속 만기일이었던 지난 13일 추가로 구속됐습니다. 재판부가 구속 만기를 앞두고 구속영장을 새로 발부한 겁니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은 이로부터 최장 6개월, 오는 11월 중순까지 수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구속 사유로 임 전 차장의 2차 기소 범죄 혐의, 즉 국회의원들로부터 '재판 민원'을 받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새로 발부한 영장에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임 전 차장이 문제 제기의 근거로 삼은 건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열렸던 심문과 그 결과 발부된 영장 사이의 차이였습니다. 심문 당일 재판부는 2차 기소, 3차 기소 범죄 혐의(임 전 차장은 모두 3번 기소됐습니다)에 대해 구속 요건 사유를 놓고 심리했는데, 정작 구속영장에는 2차 기소 건에 대한 판단만 적고 3차 기소 건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임 전 차장은 형사소송법 75조 1항을 인용했습니다. '구속영장의 방식'을 규정하는 조항인데요. "구속영장에는 피고인의 성명, 주거, 죄명, 공소사실의 요지, 인치 구금할 장소 … 를 기재하고 재판장 또는 수명법관이 서명날인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구속영장에는 재판부가 영장 발부 전 심리했던 2개의 공소사실(2차, 3차 기소 범죄혐의)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재판부가 그중 1건을 누락시켜서 형사소송법상 부적법하다는 주장입니다.

좀 형식론적이죠.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임 전 차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일부' 공소사실에 대한 영장 발부를 허용하게 되면, 향후 또다시 '2019고합176호'(임 전 차장 3차 기소 사건)의 공소사실을 영장 기재 범죄사실로 하는 3차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게 되어서, 그동안 부당한 장기구속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 구속 기간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취지를 몰각하게 됩니다." (피고인 임종헌 전 차장)

재판부가 다음번 추가 구속을 염두에 두고, 이번 구속영장은 2차 기소 건을 근거로만 발부하고 3차 기소 건은 아껴놨다는 주장입니다. 기존에 영장이 발부된 범죄사실과 구별되는 별도의 범죄사실이 남아 있어야 나중에 '이중 구속' 논란 없이 추가 영장 발부가 가능하니까요. '재판부가 나를 나중에 또 구속하기 위해서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불만으로도 읽힙니다.


"임종헌 주장, 택도 없는 얘기는 아니다"

임 전 차장의 문제 제기는 과연 타당한 걸까요? 또 다른 재판지연 전략은 아닐까요?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 3명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A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말이 형사소송법의 원칙론에 비춰보면 적절한 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추가 기소로) 범죄사실이 여러 개 남아 있는 경우, 이것을 합쳐서 하나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헌법, 형사소송법의 취지에는 맞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임종헌 전 차장이 정확히 파악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A 변호사는 이어 "재판부가 실수로, 혹은 귀찮아서 영장에 범죄사실을 하나만 적었을 가능성은 거의 미미하다"면서 "이 재판이 꽤나 길게 갈 거라고 보고, 나중에 가서 제3의 공소사실로 구속영장 추가로 발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을 가능성이 큰 걸로 추측된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반면 B 변호사는 "(구속영장의 방식은) 판사 재량권 안에 드는 것"이라며, "임 전 차장의 주장이 그다지 일리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임 전 차장이 추가 영장 발부를 경계하면서, 사소한 거라도 다 걸고넘어지고 싶은 심정인 것 같다"라고 평가했습니다.

C 변호사는 "심문에서는 두 가지 범죄사실을 심리해놓고 하나만 갖고 영장을 발부했다면 피고인이 그런 항변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특히 임 전 차장은 최고의 전문가다. 택도 없는 소리가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피고인 입장에서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소사실 10개가 있다면 공소장은 하나인데도 10번 구속해도 되냐'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형사소송법에서 구속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면탈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거라는 불만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구금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니 말입니다.

C 변호사는 이어 "애초에 변론을 분리시켜서 딱 한 건에 대해서만 심문한다고 잘라버렸으면 모르겠는데, 재판부가 빌미를 줬다"면서 "이번에 재판부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혹시 다음에 영장을 추가 발부하게 됐을 때 임 전 차장이 또다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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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영장 문제다” 재판부 지적한 피고인 임종헌…역시 ‘법잘알’?
    • 입력 2019-05-21 07:00:38
    취재K
"결론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구속영장은 그 방식이 형사소송법 75조 1항에 위반하여 부적법하다는 피고인의 의견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역시 남달랐습니다. '법잘알'(법을 잘 알고 있는) 피고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얘기입니다. 그는 어제(20일) 재판에 나와 "재판부가 발부한 구속영장이 부적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구속영장의 효력에는 토를 달지 않겠다면서도 영장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요?


"공소사실, 심리에선 2개였는데 영장엔 왜 1개뿐?"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 전 차장은, 당초 구속 만기일이었던 지난 13일 추가로 구속됐습니다. 재판부가 구속 만기를 앞두고 구속영장을 새로 발부한 겁니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은 이로부터 최장 6개월, 오는 11월 중순까지 수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구속 사유로 임 전 차장의 2차 기소 범죄 혐의, 즉 국회의원들로부터 '재판 민원'을 받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새로 발부한 영장에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임 전 차장이 문제 제기의 근거로 삼은 건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열렸던 심문과 그 결과 발부된 영장 사이의 차이였습니다. 심문 당일 재판부는 2차 기소, 3차 기소 범죄 혐의(임 전 차장은 모두 3번 기소됐습니다)에 대해 구속 요건 사유를 놓고 심리했는데, 정작 구속영장에는 2차 기소 건에 대한 판단만 적고 3차 기소 건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임 전 차장은 형사소송법 75조 1항을 인용했습니다. '구속영장의 방식'을 규정하는 조항인데요. "구속영장에는 피고인의 성명, 주거, 죄명, 공소사실의 요지, 인치 구금할 장소 … 를 기재하고 재판장 또는 수명법관이 서명날인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구속영장에는 재판부가 영장 발부 전 심리했던 2개의 공소사실(2차, 3차 기소 범죄혐의)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재판부가 그중 1건을 누락시켜서 형사소송법상 부적법하다는 주장입니다.

좀 형식론적이죠.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임 전 차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일부' 공소사실에 대한 영장 발부를 허용하게 되면, 향후 또다시 '2019고합176호'(임 전 차장 3차 기소 사건)의 공소사실을 영장 기재 범죄사실로 하는 3차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게 되어서, 그동안 부당한 장기구속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 구속 기간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취지를 몰각하게 됩니다." (피고인 임종헌 전 차장)

재판부가 다음번 추가 구속을 염두에 두고, 이번 구속영장은 2차 기소 건을 근거로만 발부하고 3차 기소 건은 아껴놨다는 주장입니다. 기존에 영장이 발부된 범죄사실과 구별되는 별도의 범죄사실이 남아 있어야 나중에 '이중 구속' 논란 없이 추가 영장 발부가 가능하니까요. '재판부가 나를 나중에 또 구속하기 위해서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불만으로도 읽힙니다.


"임종헌 주장, 택도 없는 얘기는 아니다"

임 전 차장의 문제 제기는 과연 타당한 걸까요? 또 다른 재판지연 전략은 아닐까요?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 3명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A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말이 형사소송법의 원칙론에 비춰보면 적절한 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추가 기소로) 범죄사실이 여러 개 남아 있는 경우, 이것을 합쳐서 하나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헌법, 형사소송법의 취지에는 맞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임종헌 전 차장이 정확히 파악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A 변호사는 이어 "재판부가 실수로, 혹은 귀찮아서 영장에 범죄사실을 하나만 적었을 가능성은 거의 미미하다"면서 "이 재판이 꽤나 길게 갈 거라고 보고, 나중에 가서 제3의 공소사실로 구속영장 추가로 발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을 가능성이 큰 걸로 추측된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반면 B 변호사는 "(구속영장의 방식은) 판사 재량권 안에 드는 것"이라며, "임 전 차장의 주장이 그다지 일리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임 전 차장이 추가 영장 발부를 경계하면서, 사소한 거라도 다 걸고넘어지고 싶은 심정인 것 같다"라고 평가했습니다.

C 변호사는 "심문에서는 두 가지 범죄사실을 심리해놓고 하나만 갖고 영장을 발부했다면 피고인이 그런 항변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특히 임 전 차장은 최고의 전문가다. 택도 없는 소리가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피고인 입장에서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소사실 10개가 있다면 공소장은 하나인데도 10번 구속해도 되냐'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형사소송법에서 구속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면탈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거라는 불만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구금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니 말입니다.

C 변호사는 이어 "애초에 변론을 분리시켜서 딱 한 건에 대해서만 심문한다고 잘라버렸으면 모르겠는데, 재판부가 빌미를 줬다"면서 "이번에 재판부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혹시 다음에 영장을 추가 발부하게 됐을 때 임 전 차장이 또다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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