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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재조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① ‘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입력 2019.05.21 (18:16) 수정 2019.05.22 (15:41) 취재K
[장자연 재조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① ‘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2009년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 씨. 9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 뒷편에 있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4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 씨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고, 13개월이 지난 5월 20일 드디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장 씨와 관련된 의혹 중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습니다.
2009년 '장자연 문건'을 처음 보도했던 KBS는 그동안의 취재를 종합해, 과거사위의 발표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②"일부러도 이렇게는 못한다"...10년 전 총체적 부실 수사
③"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시킬 수도 있는" 조선일보


"반쪽짜리 조사, "힘 빠진 결론", 어제 장자연 사건의 최종 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각 언론들이 헤드라인과 신문에서 쏟아낸 제목들입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한 사건들 중 가장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던 만큼, 이런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왜 이런 실망스러운 조사 결과를 내놓은 걸까요?

검찰 과거사위원회검찰 과거사위원회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 입장에서 가장 '맥 빠지는' 결론이 있다면,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일 겁니다. '리스트'가 있다고 해서 다 범죄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단순히 이름과 직책을 나열한 수준이라면, '장 씨가 '리스트' 속 인물들에게 접대했다'는 단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세간의 관심은 '리스트'에 집중됐습니다. 사건의 본질, 즉 돈과 권력을 이용해 신인배우를 유린했다는 의혹이 해소되길 바랐기 때문일 겁니다.

왜 '리스트'가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는데도 과거사위는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장자연 사건' 관련 연재 시리즈에서는 첫 의혹 검증 대상으로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을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 "진상규명 못한다"는 '장자연 리스트', 과연 있었나?

지금부터 KBS가 취재한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리스트'가 만약 있다면, 해당 내용을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3명입니다. 하나하나의 진술을 검증해보겠습니다.

1. 유장호 : 장자연 전 매니저
장 씨가 쓴 자필 문건의 A부터 Z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장 씨의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 씨입니다. 장 씨가 문건을 작성할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이자, 장 씨가 사망한 이후 "자연이가 자필로 쓴 글이 있다"며 문건의 존재를 내비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KBS가 최초로 확보해 보도한 장 씨의 자필 문건 4장(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문건입니다)도 유장호 씨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됐습니다.


2. 윤지오
장 씨의 동료였던 윤지오 씨는 '리스트' 논란에 불을 붙인 장본인입니다. 윤 씨의 발언으로 리스트에 누가 있는지가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윤 씨가 집필한 책에 '리스트'에 대한 가장 설명이 잘 나와 있지만, 객관성을 위해 윤 씨 책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당시 법정 증언과 진상조사단 진술만을 검증해보겠습니다.


3. 장자연 씨 유족
장 씨가 사망한 뒤, 유족들은 유장호 씨, 윤지오 씨와 봉은사에서 만나 문건을 태웠습니다. 장 씨가 사망한 뒤 경찰 조사에서 '명단'과 관련된 언급을 한 사실이 수사기록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사람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장 씨 유족의 진술

그런데 장 씨 유족의 바뀐 진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장 씨 유족은 2009년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본 문건에 등장하는 이름들에 대해 진술했습니다. 어디 회사의 누구, 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 중에는 세간에 공개된 장자연 씨의 자필 문건 4장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문건에는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최근 조사단과의 전화 면담에서 장 씨 유족은 자신이 2009년 경찰 조사에서 해당 이름들을 언급했던 사실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름만 써있었던 건 아니고, 서술식으로 쓰여있었다'고 했습니다. 현재 '장자연 리스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장 씨 유족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또 있다'는 사실은 번복하지 않은 셈입니다.

조사단은 이 같은 기록 등을 토대로 '장자연 리스트'에 있다고 진술된 13명의 이름을 추려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문건 관련 녹음파일, 유족 작성 문건 모두 없어졌다

경찰 조사에서 유족이 진술한 부분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당시 유족이 문건의 내용에 대해 진술하자, 수사관은 종이와 펜을 주면서 "봤다는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사기록에는 유족이 작성한 '장자연 문건의 내용 및 형식'이 첨부돼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봉은사에서 문건을 태울 당시 유족은 전 과정을 녹음했고, 이를 경찰에 건넸습니다. 녹음기를 건네면서 "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녹음기를 가지고 갔는데 당시 상황이 다 녹음돼 있으니 수사에 참고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녹음파일이나 녹취록은 역시 수사기록에서 빠져 있습니다.

다음 편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만, 장자연 사건에서 관련 자료가 수사기록에서 누락된 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장자연 문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 두 개가 누락된 것을 과연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까요?

■ 외부단원 4명 "리스트 존재했을 것" VS 내부단원 2명 "리스트, 무슨 의미 있나"

이 사건의 조사 실무를 맡았던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갈등 과정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이른바 '내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변호사들과 교수들로 구성된 외부단원 4명은 '장자연 리스트는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검사들로 구성된 내부단원 2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들은 "문건을 본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려 리스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건이 총 몇 장인지, 리스트는 있었는지를 지금에 와서 밝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수 의견에 따라 조사단의 의견은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로 명시됐습니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제(20일) 검찰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의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 '진상규명 불가능' 과거사위의 판단 이유는?

과거사위의 결론은, 비록 다수 의견이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의혹을 밝힐 수 없다면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일견 수긍 가는 대목은 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명단들을 공개하는 것이 맞느냐, 이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에 언급된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명예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조사단 역시 리스트에 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장 씨와 어떤 관계인지 입증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사위는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신중하지만 보수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수사 증거들이 잇따라 누락되고, 중요한 진술들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를 그냥 묻어두는 것 역시 능사는 아닙니다.

국민적 의혹이 증폭된 사건,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과거사위원회가 좀 더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사안을 밝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3개월 동안 재조사를 벌였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장자연 재조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① ‘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 입력 2019.05.21 (18:16)
    • 수정 2019.05.22 (15:41)
    취재K
[장자연 재조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① ‘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2009년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 씨. 9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 뒷편에 있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4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 씨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고, 13개월이 지난 5월 20일 드디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장 씨와 관련된 의혹 중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습니다.
2009년 '장자연 문건'을 처음 보도했던 KBS는 그동안의 취재를 종합해, 과거사위의 발표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장자연 리스트' 그래서 있나 없나?
②"일부러도 이렇게는 못한다"...10년 전 총체적 부실 수사
③"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시킬 수도 있는" 조선일보


"반쪽짜리 조사, "힘 빠진 결론", 어제 장자연 사건의 최종 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각 언론들이 헤드라인과 신문에서 쏟아낸 제목들입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한 사건들 중 가장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던 만큼, 이런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왜 이런 실망스러운 조사 결과를 내놓은 걸까요?

검찰 과거사위원회검찰 과거사위원회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 입장에서 가장 '맥 빠지는' 결론이 있다면,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일 겁니다. '리스트'가 있다고 해서 다 범죄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단순히 이름과 직책을 나열한 수준이라면, '장 씨가 '리스트' 속 인물들에게 접대했다'는 단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세간의 관심은 '리스트'에 집중됐습니다. 사건의 본질, 즉 돈과 권력을 이용해 신인배우를 유린했다는 의혹이 해소되길 바랐기 때문일 겁니다.

왜 '리스트'가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는데도 과거사위는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장자연 사건' 관련 연재 시리즈에서는 첫 의혹 검증 대상으로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을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 "진상규명 못한다"는 '장자연 리스트', 과연 있었나?

지금부터 KBS가 취재한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리스트'가 만약 있다면, 해당 내용을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3명입니다. 하나하나의 진술을 검증해보겠습니다.

1. 유장호 : 장자연 전 매니저
장 씨가 쓴 자필 문건의 A부터 Z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장 씨의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 씨입니다. 장 씨가 문건을 작성할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이자, 장 씨가 사망한 이후 "자연이가 자필로 쓴 글이 있다"며 문건의 존재를 내비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KBS가 최초로 확보해 보도한 장 씨의 자필 문건 4장(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문건입니다)도 유장호 씨 사무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됐습니다.


2. 윤지오
장 씨의 동료였던 윤지오 씨는 '리스트' 논란에 불을 붙인 장본인입니다. 윤 씨의 발언으로 리스트에 누가 있는지가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윤 씨가 집필한 책에 '리스트'에 대한 가장 설명이 잘 나와 있지만, 객관성을 위해 윤 씨 책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당시 법정 증언과 진상조사단 진술만을 검증해보겠습니다.


3. 장자연 씨 유족
장 씨가 사망한 뒤, 유족들은 유장호 씨, 윤지오 씨와 봉은사에서 만나 문건을 태웠습니다. 장 씨가 사망한 뒤 경찰 조사에서 '명단'과 관련된 언급을 한 사실이 수사기록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사람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장 씨 유족의 진술

그런데 장 씨 유족의 바뀐 진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장 씨 유족은 2009년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본 문건에 등장하는 이름들에 대해 진술했습니다. 어디 회사의 누구, 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 중에는 세간에 공개된 장자연 씨의 자필 문건 4장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문건에는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최근 조사단과의 전화 면담에서 장 씨 유족은 자신이 2009년 경찰 조사에서 해당 이름들을 언급했던 사실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름만 써있었던 건 아니고, 서술식으로 쓰여있었다'고 했습니다. 현재 '장자연 리스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장 씨 유족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또 있다'는 사실은 번복하지 않은 셈입니다.

조사단은 이 같은 기록 등을 토대로 '장자연 리스트'에 있다고 진술된 13명의 이름을 추려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문건 관련 녹음파일, 유족 작성 문건 모두 없어졌다

경찰 조사에서 유족이 진술한 부분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당시 유족이 문건의 내용에 대해 진술하자, 수사관은 종이와 펜을 주면서 "봤다는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사기록에는 유족이 작성한 '장자연 문건의 내용 및 형식'이 첨부돼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봉은사에서 문건을 태울 당시 유족은 전 과정을 녹음했고, 이를 경찰에 건넸습니다. 녹음기를 건네면서 "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녹음기를 가지고 갔는데 당시 상황이 다 녹음돼 있으니 수사에 참고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녹음파일이나 녹취록은 역시 수사기록에서 빠져 있습니다.

다음 편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만, 장자연 사건에서 관련 자료가 수사기록에서 누락된 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장자연 문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 두 개가 누락된 것을 과연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까요?

■ 외부단원 4명 "리스트 존재했을 것" VS 내부단원 2명 "리스트, 무슨 의미 있나"

이 사건의 조사 실무를 맡았던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갈등 과정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이른바 '내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변호사들과 교수들로 구성된 외부단원 4명은 '장자연 리스트는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검사들로 구성된 내부단원 2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들은 "문건을 본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려 리스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건이 총 몇 장인지, 리스트는 있었는지를 지금에 와서 밝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수 의견에 따라 조사단의 의견은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로 명시됐습니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제(20일) 검찰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의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 '진상규명 불가능' 과거사위의 판단 이유는?

과거사위의 결론은, 비록 다수 의견이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의혹을 밝힐 수 없다면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일견 수긍 가는 대목은 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명단들을 공개하는 것이 맞느냐, 이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에 언급된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명예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조사단 역시 리스트에 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장 씨와 어떤 관계인지 입증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사위는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신중하지만 보수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수사 증거들이 잇따라 누락되고, 중요한 진술들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를 그냥 묻어두는 것 역시 능사는 아닙니다.

국민적 의혹이 증폭된 사건,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과거사위원회가 좀 더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사안을 밝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3개월 동안 재조사를 벌였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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