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위 가자” vs “어림없다”…‘강제징용’ 2라운드, 일본의 속내는?

입력 2019.05.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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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어제(20일)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중재위원회를 통해 강제징용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겠죠. 계속해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일본, 과연 그 속내는 뭘까요?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강제로 노역에 동원됐던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남아있다는게 소송 시작 13년여 만에 내려진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반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등에 따른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이미 사라졌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취해왔던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즉각 반발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다". 아베 총리가 대법 판결을 비판하고 나선데 이어, 일본 주재 우리 대사를 불러 항의한 일본은 올해 들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일본은 지난 1월, '정부간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30일 안에 답을 달라며 일방적으로 시한까지 못박았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바로 그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른 요청입니다. 잠시 협정 내용을 한 번 볼까요?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타방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중의 어느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된다.


일본이 지난 1월에 요청한 정부간 협의는 위 3조 1항에 명시된 외교적 경로를 통한 협의를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기에 대해 대화를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원하는 답을 얻어내지 못한 셈이죠. 그러자 이번엔 2항에 명시된 중재위 회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겁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같은 내용들이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1월 일본이 요구한 정부간 협의가 강제되지 않았듯, 중재위 회부도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의문이 따라옵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압박 메시지'를 보내는 일본, 이유는 뭘까요?


일본의 1차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는 국제 사회에서의 여론전을 위한 명분 쌓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합리적인 분쟁 해결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 라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는 겁니다. 추후 강제징용을 둘러싼 양국 사이 분쟁이 더욱 격화됐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일본 국내의 정치적 요인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있습니다. 아베 총리 역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고 납치자 문제를 이슈화하는 등 선거를 대비한 표심 얻기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과거에 비해 북한에 비교적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목표로 북한과의 회담을 성사시킨다면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또 지난해 '일본 소외론'이 나올 만큼 한반도 문제에 있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에 자국 입지를 넓힐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달에는 <외교청서>에서 그동안 북한에 대해 줄곧 사용하던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 등의 강한 표현을 삭제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는 유화적 자세를 취하는 반면, 한국과의 긴장은 더 높여가는 모양새입니다. 한국과의 대립 구도를 강화해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목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의 최은미 교수는 "강제징용 등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 스스로 입장을 번복하거나 선회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한층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효과를 거두려 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여러 차례 전해진 바 있고, 관세 부과 등 경제보복 조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의 경우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재판이 열리지 않고, 경제 보복 조치 역시 일본이 당장 단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21일) "문재인 대통령이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발언까지 나온만큼 일본의 강경 일변도 전략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지시간으로 오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립니다. 외교부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OECD 연례 각료이사회 참석을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오늘(21일) 밝혔습니다.

회담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중재위 개최를 요청하는 일본의 공한을 접수한 뒤 "일본 측의 조치에 대해 제반 요소를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외교적 대화를 통해 일본과 계속해서 협의해나간다는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 같은 입장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당장 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렵다는게 외교가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과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의 전략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최은미 교수는 이 같은 우리 외교부의 대응에 대해 "현상 유지 쪽에 더 가까울 것 같다"며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메시지는 보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습니다.

오늘 일본 매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다음달 G20 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미끼로 중재위 개최를 압박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각기 다른 외교 전략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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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재위 가자” vs “어림없다”…‘강제징용’ 2라운드, 일본의 속내는?
    • 입력 2019-05-21 18:16:43
    취재K
일본이 어제(20일)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중재위원회를 통해 강제징용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겠죠. 계속해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일본, 과연 그 속내는 뭘까요?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강제로 노역에 동원됐던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남아있다는게 소송 시작 13년여 만에 내려진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반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등에 따른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이미 사라졌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취해왔던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즉각 반발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다". 아베 총리가 대법 판결을 비판하고 나선데 이어, 일본 주재 우리 대사를 불러 항의한 일본은 올해 들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일본은 지난 1월, '정부간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30일 안에 답을 달라며 일방적으로 시한까지 못박았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바로 그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른 요청입니다. 잠시 협정 내용을 한 번 볼까요?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타방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중의 어느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된다.


일본이 지난 1월에 요청한 정부간 협의는 위 3조 1항에 명시된 외교적 경로를 통한 협의를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기에 대해 대화를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원하는 답을 얻어내지 못한 셈이죠. 그러자 이번엔 2항에 명시된 중재위 회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겁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같은 내용들이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1월 일본이 요구한 정부간 협의가 강제되지 않았듯, 중재위 회부도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의문이 따라옵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압박 메시지'를 보내는 일본, 이유는 뭘까요?


일본의 1차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는 국제 사회에서의 여론전을 위한 명분 쌓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합리적인 분쟁 해결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 라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는 겁니다. 추후 강제징용을 둘러싼 양국 사이 분쟁이 더욱 격화됐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일본 국내의 정치적 요인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있습니다. 아베 총리 역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고 납치자 문제를 이슈화하는 등 선거를 대비한 표심 얻기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과거에 비해 북한에 비교적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목표로 북한과의 회담을 성사시킨다면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또 지난해 '일본 소외론'이 나올 만큼 한반도 문제에 있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에 자국 입지를 넓힐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달에는 <외교청서>에서 그동안 북한에 대해 줄곧 사용하던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 등의 강한 표현을 삭제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는 유화적 자세를 취하는 반면, 한국과의 긴장은 더 높여가는 모양새입니다. 한국과의 대립 구도를 강화해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목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의 최은미 교수는 "강제징용 등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 스스로 입장을 번복하거나 선회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한층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효과를 거두려 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여러 차례 전해진 바 있고, 관세 부과 등 경제보복 조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의 경우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재판이 열리지 않고, 경제 보복 조치 역시 일본이 당장 단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21일) "문재인 대통령이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발언까지 나온만큼 일본의 강경 일변도 전략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지시간으로 오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립니다. 외교부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OECD 연례 각료이사회 참석을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오늘(21일) 밝혔습니다.

회담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중재위 개최를 요청하는 일본의 공한을 접수한 뒤 "일본 측의 조치에 대해 제반 요소를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외교적 대화를 통해 일본과 계속해서 협의해나간다는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 같은 입장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당장 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렵다는게 외교가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과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의 전략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최은미 교수는 이 같은 우리 외교부의 대응에 대해 "현상 유지 쪽에 더 가까울 것 같다"며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메시지는 보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습니다.

오늘 일본 매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다음달 G20 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미끼로 중재위 개최를 압박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각기 다른 외교 전략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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