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시작됐다?…사실은

입력 2019.05.22 (11:17) 수정 2019.05.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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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뜨거운(?) 재난 영화 <판도라>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나고, 사태 수습에 나선 정부는 우왕좌왕한다.'
2016년 12월 개봉해 관객 450만여 명을 동원한 영화 <판도라>의 내용입니다. 국내 최초로 원전 재난을 다룬 영화인데요. 개봉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자주 회자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본 뒤 탈원전 정책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단 이달 초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2주기를 맞아 발간한 '경제 실정 징비록'에도 등장합니다.

‘문 정권 경제 실정 징비록’ (지난 5월 9일, 자유한국당 발간)‘문 정권 경제 실정 징비록’ (지난 5월 9일, 자유한국당 발간)


근거 없는 영화에서 시작

2016년 12월 22일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판도라'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이를 관람한 문재인 전 대표는 원전의 추가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은 탈원전과 탈핵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영화와 함께 탈원전 정책은 감성적 정치 프레임으로 추진됐다.


정치인들도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지난 5월 15일, 탈원전 대국민 토론회)
"전혀 말도 되지 않는 탈원전 정책 영화 한 편 보고 대한민국의 수십 년짜리 정책 이렇게 망가뜨리고..."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지난 2월 22일, '4대강 보 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입장문)
"문재인 대통령은 <판도라>라는 영화 한 편 보고, 가동 중인 원전과 원전 산업을 다 폐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지난해 12월 17일, 유튜브 방송 '홍카콜라')
"대통령이라는 분이 '판도라'라는 영화 하나 보고 난 뒤에 탈원전 정책을 했다. 나는 참 걱정스럽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지난해 11월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일국의 최고 통치자가 영화 한 편 보고 감동한 나머지 탈원전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영화 <판도라> 보고 탈원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18일,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분으로 부산 서면 한 영화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판도라>를 관람했습니다. 당시에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다"면서 "탈핵ㆍ탈원전 국가로 만들어나가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임 한 달여 뒤인 이듬해 6월 19일,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발표하면서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포합니다. 앞뒤 관계를 보면 대통령이 <판도라> 관람을 하고 6개월여 뒤에 탈원전을 선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말한 건 2016년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12년 18대 대선 공약에도 탈원전이 등장합니다. 내용은 신규원전 백지화, 수명종료 원전 가동 중단, 안전에 문제가 있는 원자로 조기 폐쇄 등으로, 19대 대선 탈원전 공약과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18·19대 탈원전 공약은 간단히 아래 표로 정리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떨어진 후에도 꾸준히 탈원전을 외쳤습니다. 2013년 11월, '한국사회의 탈원전, 불가능한 얘기인가' 토론회를 주최했고, 2014년 7월엔 새정치민주연합 원전대책특위를 구성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14년 9월엔 폭우로 배수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가동이 전면 중단됐던 고리 1호기를 방문해 "고리 원전 1호기는 이른 시일 내에 가동을 중단하고, 가동 32년째인 고리 2호기 등 30년 넘은 원전 가동에 대해선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 지진 이후에는 정부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취소 등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두 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기 전의 발언입니다.

'<판도라> 가짜뉴스' 어떻게 시작됐나?

문재인 정부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정지를 선언한 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습니다. 이 무렵 나온 조선일보 칼럼 <대통령의 엉터리 탈원전 연설, 나라가 답답하다(2017년 6월 29일)>의 내용이 이른바 '<판도라> 가짜뉴스'가 시작된 주요 근거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 대통령이 그해(2012년) 대선에 낙선하면서 탈원전 얘기도 없어졌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다시 탈원전 얘기를 하는 걸 들은 것은 작년 겨울 영화 <판도라> 시사회장이었다. (중략) 그런데 대통령이 판도라를 보고 울었던 그 심정으로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이후 2017년 7월 12일엔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10월 9일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원전을 중단했다"고 말합니다. 언론 기사가 정치권으로도 확대된 겁니다.

'<판도라> 가짜뉴스'는 앞서 보신 것처럼 2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하게 확산 중입니다.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 시작됐다"? 검증 결과 사실이 아닙니다.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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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시작됐다?…사실은
    • 입력 2019-05-22 11:17:57
    • 수정2019-05-22 11:28:36
    팩트체크K
아직도 뜨거운(?) 재난 영화 <판도라>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나고, 사태 수습에 나선 정부는 우왕좌왕한다.'
2016년 12월 개봉해 관객 450만여 명을 동원한 영화 <판도라>의 내용입니다. 국내 최초로 원전 재난을 다룬 영화인데요. 개봉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자주 회자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본 뒤 탈원전 정책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단 이달 초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2주기를 맞아 발간한 '경제 실정 징비록'에도 등장합니다.

‘문 정권 경제 실정 징비록’ (지난 5월 9일, 자유한국당 발간)

근거 없는 영화에서 시작

2016년 12월 22일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판도라'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이를 관람한 문재인 전 대표는 원전의 추가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은 탈원전과 탈핵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영화와 함께 탈원전 정책은 감성적 정치 프레임으로 추진됐다.


정치인들도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지난 5월 15일, 탈원전 대국민 토론회)
"전혀 말도 되지 않는 탈원전 정책 영화 한 편 보고 대한민국의 수십 년짜리 정책 이렇게 망가뜨리고..."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지난 2월 22일, '4대강 보 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입장문)
"문재인 대통령은 <판도라>라는 영화 한 편 보고, 가동 중인 원전과 원전 산업을 다 폐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지난해 12월 17일, 유튜브 방송 '홍카콜라')
"대통령이라는 분이 '판도라'라는 영화 하나 보고 난 뒤에 탈원전 정책을 했다. 나는 참 걱정스럽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지난해 11월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일국의 최고 통치자가 영화 한 편 보고 감동한 나머지 탈원전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영화 <판도라> 보고 탈원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18일,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분으로 부산 서면 한 영화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판도라>를 관람했습니다. 당시에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다"면서 "탈핵ㆍ탈원전 국가로 만들어나가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임 한 달여 뒤인 이듬해 6월 19일,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발표하면서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포합니다. 앞뒤 관계를 보면 대통령이 <판도라> 관람을 하고 6개월여 뒤에 탈원전을 선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말한 건 2016년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12년 18대 대선 공약에도 탈원전이 등장합니다. 내용은 신규원전 백지화, 수명종료 원전 가동 중단, 안전에 문제가 있는 원자로 조기 폐쇄 등으로, 19대 대선 탈원전 공약과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18·19대 탈원전 공약은 간단히 아래 표로 정리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떨어진 후에도 꾸준히 탈원전을 외쳤습니다. 2013년 11월, '한국사회의 탈원전, 불가능한 얘기인가' 토론회를 주최했고, 2014년 7월엔 새정치민주연합 원전대책특위를 구성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14년 9월엔 폭우로 배수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가동이 전면 중단됐던 고리 1호기를 방문해 "고리 원전 1호기는 이른 시일 내에 가동을 중단하고, 가동 32년째인 고리 2호기 등 30년 넘은 원전 가동에 대해선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 지진 이후에는 정부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취소 등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두 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기 전의 발언입니다.

'<판도라> 가짜뉴스' 어떻게 시작됐나?

문재인 정부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정지를 선언한 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습니다. 이 무렵 나온 조선일보 칼럼 <대통령의 엉터리 탈원전 연설, 나라가 답답하다(2017년 6월 29일)>의 내용이 이른바 '<판도라> 가짜뉴스'가 시작된 주요 근거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 대통령이 그해(2012년) 대선에 낙선하면서 탈원전 얘기도 없어졌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다시 탈원전 얘기를 하는 걸 들은 것은 작년 겨울 영화 <판도라> 시사회장이었다. (중략) 그런데 대통령이 판도라를 보고 울었던 그 심정으로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이후 2017년 7월 12일엔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10월 9일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원전을 중단했다"고 말합니다. 언론 기사가 정치권으로도 확대된 겁니다.

'<판도라> 가짜뉴스'는 앞서 보신 것처럼 2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하게 확산 중입니다.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 시작됐다"? 검증 결과 사실이 아닙니다.

영화 <판도라> 때문에 '탈원전 정책'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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