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법부, 외도한 배우자나 마찬가지”…변호사 이탄희의 첫 강의

입력 2019.05.22 (12:18) 수정 2019.05.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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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법농단'이라고 불리게 된 사법부의 비밀. 그 비밀을 덮고 있던 장막을 걷어낸 이탄희 전 판사가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이달 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변호사로 합류한 뒤 첫 활동으로 어제(21일)저녁 공개 강연을 연 겁니다. 강연 주제는 '사법농단'이었습니다. 그는 올 1월부터 이미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주제에 대해 말해왔습니다.

JTBC(2019.1.30.) 드러난 사법농단…'두 번째 사직서' 이탄희 판사
경향신문(2019.2.11.) 이탄희 판사 “판사 뒷조사는 동료들에 총구 겨누라는 것…사직서 낼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2019.2.11.) 이탄희 판사 “판사들 압도적 다수는 사법농단 진상 밝혀야 한다는 진실의 편”
서울신문(2019.5.13.) 대한민국 사법부가 동문회인가.. 고작 10명 징계 문제 더 키워

어제 이탄희 변호사는 인터뷰에 나선 한 명의 기자가 아닌,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내용을 중심으로 어제 이 변호사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맥락과 느낌을 살리기 위해, 되도록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재판보다 윗선 눈치보기를 잘해야"…'사법농단'의 전조

"미국 유학을 갔다가 2015년 9월에 복귀를 했어요. 근데 제가 복귀해서 본 한국 법원은 (이전과) 많이 달랐어요. 사실은 이게 한꺼번에 변한 건 아니고요. 2011년 9월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을 하고 2012년 2월달에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 사건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국회의원도 하셨고 방송활동을 하고 계셔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는데 사실은 되게 얌전한 분이셨거든요. 되게 평범한 분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재임용에서 탈락한 거예요. 이게 판사들한테 굉장히 잔잔한 충격을 줬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서 대한민국 사법부에 '재임용 포비아'라는 게 생겼어요. 그래서 평범한 판사들이 밥 먹고 술 먹으면서 일상적으로 얘기하게 됐어요. '너 그러다 재임용 탈락한다.' '법원장님이 쳐다보는 눈빛이 다른 거 같아'. 이렇게 해서 2012년 2월에 시작이 됐고 2015년 9월이 되면 훨씬 심각해진 거예요."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 아팠던 건, 친한 후배 판사 중 일부가 술 마시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가 옆구리를 찌르면서 '형, 지금은 재판 열심히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야. 술자리에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고 체육대회도 열심히 나가야 하고 그래서 기획법관도 돼야 한다. 기획법관이 되면 심의관이 될 수 있고, 그럼 나중에 고등부장이 될 수 있고, 솔직히 대법관 되어야 하지 않겠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행정'하는 판사들의 경고…"비밀을 지켜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좀 저어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열심히 하기로 처음엔 마음을 먹었어요. 왜냐하면, 축하 전화도 너무 많이 왔어요. 심의관 자리가 뭐랄까, 주목을 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리고 저도 항상 하는 방식이 그거거든요. 뭔가 이상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몰입하는 거죠. 저어되는 마음을 열심히 해서 극복해보려 했어요. 그래서 행정처에 근무했던 심의관들, 현재 근무하고 있던 심의관들 중에 제가 친분이 있던 분들을 그 주에 쭉 만났어요. "내가 이런 상황인데, 조언을 좀 해주세요"라고.

근데 너무 이상했던 게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그때 심의관분들이 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 "비밀을 지켜라". "같은 방에 근무를 하지만, 옆 책상에 있는 판사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근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분들이 제가 모르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판사로 제가 벌써 10년을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만났던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대학 동기도 있어요. 20년 동안 알고 지냈던. 그런 사람들이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제가 심의관 발령을 받고 가서 이야기를 하니 그제서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본인들이 한 2~3년 겪은 것들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날벼락 같았던 인수인계 내용…"모든 부정적 감정 다 느껴"

"(법원행정처 심의관) 전임자를 만나서 인수인계를 받고, 양형실장을 만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됐죠.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고 그걸 제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걸 와해시키기로 결정이 돼 있고, 판사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논리들을 전파해야 한다… 제가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느껴봤던 부정적인 감정은, 그때 제가 다 느낀 것 같아요. 일단은 참담한 느낌. 참담하다는 말이 진짜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참담하다는 느낌이 정말 어두운 느낌. 캄캄한 느낌. 너무 절망적이고. 그리고 이제 분노. 이걸 이렇게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공허함. 내가 지금 뭐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외로움, 약간의 불안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결정해야 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다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내가 이대로 가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인격.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법재판소에 양심의 자유와 관련한 판례 중에 그런 표현이 있어요. 양심이 뭐냐. 이 소리대로 하지 않고서는 내 인격이 깨질 것만 같은, 그런 소리가 '양심의 소리'라고 하거든요. 전 너무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겪어보니까 그 말이 맞아요. …(중략)… 제가 판단하기에 이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직서 제출도 빨리했어요."

행정처 판사들은 어떻게 버텼을까?…들키지 않은 '명예훼손'

"근본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본다면, 안 들켰잖아요. 아무도. 제가 사실 살짝 그 생각을 했었거든요. 사직서 낼 때, 저는 정말 그 '명예'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했거든요. 내가 이 일(행정처 업무)에 관여가 되면 내가 지금까지 쌓은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말하는 명예가 뭐냐. 안 들키면, 아무도 모르면, 그럼 제 명예가 훼손되나요? 어때요? 로스쿨 다니시는 분들. 형법 각론에 보면 나오지 않나요, 명예에 대해서? (웃음)

명예도 분명히 감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헌법에서 인격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표현을 하거든요.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게 저는 명예 감정인 것 같아요. 근데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만약 불일치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약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그림과 세상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그림. 그것의 일체감. 그 일체감이 깨지는 건 싫었다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은가 봐요. 안 들키면 훨씬 덜 괴로운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겠죠."

"사법농단 사건 본 국민, 배우자 외도 장면 목격한 셈"

"(법원 자체) 진상조사 기구에서 총 3차례에 걸쳐서 진상조사를 했는데요. …(중략)… 여기서 제가 딱 하나만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2차 조사를 마쳤을 때 문건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관심이 있으신 분은 벌써 여러 번 보셨을 텐데요. '대외비.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이 문건에서 제일 핵심이 뭔 거 같아요? 아니면 제일 충격적 부분이 뭔가요? 저는 이 문건을 작성한 게 판사라는 것.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이 문건 자체가 존재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요, 판사가 이걸 썼어요. 판사가. 판사가 이걸 쓰고 재판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이 내용들을 보세요. 우리도 알고 있던 판사는 법정에서 재판하는 사람이잖아요. 당사자들 이야기 듣고, 서로 두 개의 진실이 부딪힐 때 혼자 고민해서 이게 진실이다라고 선언하는 게 판사가 하는 일이잖아요."

"요즘 우리 국민들이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면 너무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판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심하다라는 이런 비판이 있잖아요, 지식인들 사이에서. 근데 내용적으로 전 틀린 말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주사회에서 대중들한테 얘기할 때는 설교를 할 게 아니라 일단은 대중이 왜 그런 기분 갖게됐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근데, 이 문건 본 대한민국 국민이 그 전과 같을 수가 있습니까? 비유를 하자면, 다른 분이 먼저 얘기를 해주셨는데. 배우자가 외도를 한 그 장면을 목격을 했어요. 근데 그것에 대해서 해결이 안 됐어요. 대화가 안 됐어요. 그 상태에서 그냥 살고 있는 거죠.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 … 저는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고요, 이 문제는 이 일에 관여한 판사들이 직을 유지하고 있는 한 계속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일부 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을 훈계하고 있어요. '문명국가에선 있을 수 없다.' 저는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 느낌을 최소한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요. 배우자의 외도에 비유하자면, 외도한 배우자가 갑자기 '나에 대한 너의 존경심이 예전 같지 않구나'하고 화를 내는 상황인 거죠."


사법개혁의 길은 있다…"법관 탄핵, 재판 녹음·녹화, 행정처 탈판사화 등 필요"

"사법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1. 법관 탄핵. 잘못한 판사들은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미워서가 아니고요, 그분들이 사실 법대에서 내려와도 잘 사실 분들이예요. 국회의원들이 걱정하시는데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잘 사실 분들이고, 학벌 좋으시고 변호사 못해도 대기업 가서 잘 사실 분들이기 때문에. … 형사처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직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 공직이라고 하는 걸 우리가 사적인 소유물처럼 취급하지 말자. 이런 취지고요."

"국회의 권한은 탄핵 소추에 불과해요. 탄핵 소추를 하면 그게 해당 판사에게 엄청나게 큰 불이익이 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형사재판으로 치면 기소하는 거예요. 기소하면 재판을 하잖아요. 탄핵소추하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을 해요. 저는 지금 문제되고 있는 판사들이 헌법재판소 재판을 받아서 차라리 깨끗하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단 게 확인되면 더 좋을 거 같아요. 본인들한테도 좋고, 국민들 입장에서도 덜 불안하다. …(중략)… 법관 탄핵은 다른 나라에선 빈번하게 있는 일이에요. 이 부분 너무 공포심 갖지 말자."

"2. 재판 절차를 투명화하자. 구체적으로는 재판을 녹음하고 녹화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중계하자는 것과는 다른 거예요. 자료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됐을 때 다시 꺼내보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판사가 대법관으로 제청이 된다. 그럼 맨날 재산 문제 이런 것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재판 어떻게 했는지 보자. 정말 잘했는지."

"3. 법원행정처 폐지. 이건 대법원장이 약속을 했습니다. 근데 약속을 하고 나서 법률안에 대한 의견에서 살짝 뺀 게 있어요. 탈판사화입니다. 법원행정처에 더이상 판사 보내지 말자. 이 부분 꼭 이뤄져야 하고요."

"4. 대법원장 인사권 줄여야 합니다. 저는 대표적인 게 고등부장 승진제, 대법관 제청권입니다. 대법관 제청권은 헌법 개정 사안이에요. 그래서 당장은 쉽지 않을 거고 고등부장은 실질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얘기를 했으니까 법률로 확실해졌으면 좋겠어요."

"5. 이런 절차들을 법원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국민들이 직접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법행정회의. 현 대법원이 설치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지금 싸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내부, 외부위원 숫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 현 대법원장은 7대 4로 하자는 것이고요, 대법원에 설치됐던 사법발전위원회의 추진단에서 권고한 의견은 6대 5로 만들자는 거예요. 5까지 늘리라는 거예요.

이것만 해도 전 혁명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걸 누가 해야 할까요? 법관 탄핵, 재판절차 녹음 녹화, 탈판사화, 사법행정회의 설치. 이거 다 법률로 하는 거거든요. 국회. 국회에서 사법개혁에 대해서 좀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을 우리가 좀 더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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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농단’ 사법부, 외도한 배우자나 마찬가지”…변호사 이탄희의 첫 강의
    • 입력 2019-05-22 12:18:42
    • 수정2019-05-22 15:31:46
    취재K
지금은 '사법농단'이라고 불리게 된 사법부의 비밀. 그 비밀을 덮고 있던 장막을 걷어낸 이탄희 전 판사가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이달 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변호사로 합류한 뒤 첫 활동으로 어제(21일)저녁 공개 강연을 연 겁니다. 강연 주제는 '사법농단'이었습니다. 그는 올 1월부터 이미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주제에 대해 말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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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19.2.11.) 이탄희 판사 “판사 뒷조사는 동료들에 총구 겨누라는 것…사직서 낼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2019.2.11.) 이탄희 판사 “판사들 압도적 다수는 사법농단 진상 밝혀야 한다는 진실의 편”
서울신문(2019.5.13.) 대한민국 사법부가 동문회인가.. 고작 10명 징계 문제 더 키워

어제 이탄희 변호사는 인터뷰에 나선 한 명의 기자가 아닌,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내용을 중심으로 어제 이 변호사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맥락과 느낌을 살리기 위해, 되도록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재판보다 윗선 눈치보기를 잘해야"…'사법농단'의 전조

"미국 유학을 갔다가 2015년 9월에 복귀를 했어요. 근데 제가 복귀해서 본 한국 법원은 (이전과) 많이 달랐어요. 사실은 이게 한꺼번에 변한 건 아니고요. 2011년 9월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을 하고 2012년 2월달에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 사건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국회의원도 하셨고 방송활동을 하고 계셔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는데 사실은 되게 얌전한 분이셨거든요. 되게 평범한 분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재임용에서 탈락한 거예요. 이게 판사들한테 굉장히 잔잔한 충격을 줬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서 대한민국 사법부에 '재임용 포비아'라는 게 생겼어요. 그래서 평범한 판사들이 밥 먹고 술 먹으면서 일상적으로 얘기하게 됐어요. '너 그러다 재임용 탈락한다.' '법원장님이 쳐다보는 눈빛이 다른 거 같아'. 이렇게 해서 2012년 2월에 시작이 됐고 2015년 9월이 되면 훨씬 심각해진 거예요."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 아팠던 건, 친한 후배 판사 중 일부가 술 마시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가 옆구리를 찌르면서 '형, 지금은 재판 열심히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야. 술자리에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고 체육대회도 열심히 나가야 하고 그래서 기획법관도 돼야 한다. 기획법관이 되면 심의관이 될 수 있고, 그럼 나중에 고등부장이 될 수 있고, 솔직히 대법관 되어야 하지 않겠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행정'하는 판사들의 경고…"비밀을 지켜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좀 저어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열심히 하기로 처음엔 마음을 먹었어요. 왜냐하면, 축하 전화도 너무 많이 왔어요. 심의관 자리가 뭐랄까, 주목을 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리고 저도 항상 하는 방식이 그거거든요. 뭔가 이상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몰입하는 거죠. 저어되는 마음을 열심히 해서 극복해보려 했어요. 그래서 행정처에 근무했던 심의관들, 현재 근무하고 있던 심의관들 중에 제가 친분이 있던 분들을 그 주에 쭉 만났어요. "내가 이런 상황인데, 조언을 좀 해주세요"라고.

근데 너무 이상했던 게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그때 심의관분들이 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 "비밀을 지켜라". "같은 방에 근무를 하지만, 옆 책상에 있는 판사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근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분들이 제가 모르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판사로 제가 벌써 10년을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만났던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대학 동기도 있어요. 20년 동안 알고 지냈던. 그런 사람들이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제가 심의관 발령을 받고 가서 이야기를 하니 그제서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본인들이 한 2~3년 겪은 것들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날벼락 같았던 인수인계 내용…"모든 부정적 감정 다 느껴"

"(법원행정처 심의관) 전임자를 만나서 인수인계를 받고, 양형실장을 만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됐죠.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고 그걸 제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걸 와해시키기로 결정이 돼 있고, 판사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논리들을 전파해야 한다… 제가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느껴봤던 부정적인 감정은, 그때 제가 다 느낀 것 같아요. 일단은 참담한 느낌. 참담하다는 말이 진짜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참담하다는 느낌이 정말 어두운 느낌. 캄캄한 느낌. 너무 절망적이고. 그리고 이제 분노. 이걸 이렇게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공허함. 내가 지금 뭐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외로움, 약간의 불안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결정해야 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다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내가 이대로 가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인격.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법재판소에 양심의 자유와 관련한 판례 중에 그런 표현이 있어요. 양심이 뭐냐. 이 소리대로 하지 않고서는 내 인격이 깨질 것만 같은, 그런 소리가 '양심의 소리'라고 하거든요. 전 너무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겪어보니까 그 말이 맞아요. …(중략)… 제가 판단하기에 이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직서 제출도 빨리했어요."

행정처 판사들은 어떻게 버텼을까?…들키지 않은 '명예훼손'

"근본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본다면, 안 들켰잖아요. 아무도. 제가 사실 살짝 그 생각을 했었거든요. 사직서 낼 때, 저는 정말 그 '명예'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했거든요. 내가 이 일(행정처 업무)에 관여가 되면 내가 지금까지 쌓은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말하는 명예가 뭐냐. 안 들키면, 아무도 모르면, 그럼 제 명예가 훼손되나요? 어때요? 로스쿨 다니시는 분들. 형법 각론에 보면 나오지 않나요, 명예에 대해서? (웃음)

명예도 분명히 감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헌법에서 인격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표현을 하거든요.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게 저는 명예 감정인 것 같아요. 근데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만약 불일치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약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그림과 세상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그림. 그것의 일체감. 그 일체감이 깨지는 건 싫었다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은가 봐요. 안 들키면 훨씬 덜 괴로운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겠죠."

"사법농단 사건 본 국민, 배우자 외도 장면 목격한 셈"

"(법원 자체) 진상조사 기구에서 총 3차례에 걸쳐서 진상조사를 했는데요. …(중략)… 여기서 제가 딱 하나만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2차 조사를 마쳤을 때 문건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관심이 있으신 분은 벌써 여러 번 보셨을 텐데요. '대외비.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이 문건에서 제일 핵심이 뭔 거 같아요? 아니면 제일 충격적 부분이 뭔가요? 저는 이 문건을 작성한 게 판사라는 것.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이 문건 자체가 존재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요, 판사가 이걸 썼어요. 판사가. 판사가 이걸 쓰고 재판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이 내용들을 보세요. 우리도 알고 있던 판사는 법정에서 재판하는 사람이잖아요. 당사자들 이야기 듣고, 서로 두 개의 진실이 부딪힐 때 혼자 고민해서 이게 진실이다라고 선언하는 게 판사가 하는 일이잖아요."

"요즘 우리 국민들이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면 너무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판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심하다라는 이런 비판이 있잖아요, 지식인들 사이에서. 근데 내용적으로 전 틀린 말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주사회에서 대중들한테 얘기할 때는 설교를 할 게 아니라 일단은 대중이 왜 그런 기분 갖게됐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근데, 이 문건 본 대한민국 국민이 그 전과 같을 수가 있습니까? 비유를 하자면, 다른 분이 먼저 얘기를 해주셨는데. 배우자가 외도를 한 그 장면을 목격을 했어요. 근데 그것에 대해서 해결이 안 됐어요. 대화가 안 됐어요. 그 상태에서 그냥 살고 있는 거죠.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 … 저는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고요, 이 문제는 이 일에 관여한 판사들이 직을 유지하고 있는 한 계속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일부 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을 훈계하고 있어요. '문명국가에선 있을 수 없다.' 저는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 느낌을 최소한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요. 배우자의 외도에 비유하자면, 외도한 배우자가 갑자기 '나에 대한 너의 존경심이 예전 같지 않구나'하고 화를 내는 상황인 거죠."


사법개혁의 길은 있다…"법관 탄핵, 재판 녹음·녹화, 행정처 탈판사화 등 필요"

"사법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1. 법관 탄핵. 잘못한 판사들은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미워서가 아니고요, 그분들이 사실 법대에서 내려와도 잘 사실 분들이예요. 국회의원들이 걱정하시는데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잘 사실 분들이고, 학벌 좋으시고 변호사 못해도 대기업 가서 잘 사실 분들이기 때문에. … 형사처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직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 공직이라고 하는 걸 우리가 사적인 소유물처럼 취급하지 말자. 이런 취지고요."

"국회의 권한은 탄핵 소추에 불과해요. 탄핵 소추를 하면 그게 해당 판사에게 엄청나게 큰 불이익이 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형사재판으로 치면 기소하는 거예요. 기소하면 재판을 하잖아요. 탄핵소추하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을 해요. 저는 지금 문제되고 있는 판사들이 헌법재판소 재판을 받아서 차라리 깨끗하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단 게 확인되면 더 좋을 거 같아요. 본인들한테도 좋고, 국민들 입장에서도 덜 불안하다. …(중략)… 법관 탄핵은 다른 나라에선 빈번하게 있는 일이에요. 이 부분 너무 공포심 갖지 말자."

"2. 재판 절차를 투명화하자. 구체적으로는 재판을 녹음하고 녹화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중계하자는 것과는 다른 거예요. 자료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됐을 때 다시 꺼내보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판사가 대법관으로 제청이 된다. 그럼 맨날 재산 문제 이런 것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재판 어떻게 했는지 보자. 정말 잘했는지."

"3. 법원행정처 폐지. 이건 대법원장이 약속을 했습니다. 근데 약속을 하고 나서 법률안에 대한 의견에서 살짝 뺀 게 있어요. 탈판사화입니다. 법원행정처에 더이상 판사 보내지 말자. 이 부분 꼭 이뤄져야 하고요."

"4. 대법원장 인사권 줄여야 합니다. 저는 대표적인 게 고등부장 승진제, 대법관 제청권입니다. 대법관 제청권은 헌법 개정 사안이에요. 그래서 당장은 쉽지 않을 거고 고등부장은 실질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얘기를 했으니까 법률로 확실해졌으면 좋겠어요."

"5. 이런 절차들을 법원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국민들이 직접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법행정회의. 현 대법원이 설치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지금 싸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내부, 외부위원 숫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 현 대법원장은 7대 4로 하자는 것이고요, 대법원에 설치됐던 사법발전위원회의 추진단에서 권고한 의견은 6대 5로 만들자는 거예요. 5까지 늘리라는 거예요.

이것만 해도 전 혁명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걸 누가 해야 할까요? 법관 탄핵, 재판절차 녹음 녹화, 탈판사화, 사법행정회의 설치. 이거 다 법률로 하는 거거든요. 국회. 국회에서 사법개혁에 대해서 좀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을 우리가 좀 더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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