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상공에 뜬 대통령 헬기…盧의 꿈, 文의 과제

입력 2019.05.23 (18:17) 수정 2019.05.2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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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상공에 대통령 전용 헬기가 왜?

2017년 8월 31일. 봉하 마을 상공에 뜬 헬기 사진입니다. '대한민국' 네 글자가 선명하죠. 대통령 전용 헬기입니다. 헬기는 그냥 봉하 마을을 지나간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을 몇 번 돌다 지나갔습니다.

그날 문 대통령은 부산 APEC 누리마루에서 열린 동아시아-라틴라메리카 협력 포럼에 참석했는데, 가는 길에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잠시 둘러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땅에서 대통령 헬기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봉하마을' 블로그에 올라와있습니다.

출처=‘봉하마을’ 블로그출처=‘봉하마을’ 블로그

https://bonghatown.tistory.com/m/1163?category=404631 ('봉하마을' 블로그)

그런데 이 사진 말고, 헬기 안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을 촬영한 사진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같이 있었던 참모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인데,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진을 본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마치 제사상 앞에 무릎 꿇고 조심스럽게 술잔을 돌리듯, 헬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을 몇 번씩 돌았다고 한다. 얼마나 그리우면 그랬겠나...그런데 내릴 순 없으니 헬기 안에서나마 잠시 바라보고 간 거지. 그 사진엔 문 대통령의 애틋함과 회한과 분노,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다 담겨 있었다."

마침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일 (9월 1일)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당시 헬기를 목격한 네티즌은 "주변에 오셨다가 친구가 보고 싶어 들리셨구나 싶어 가슴이 찡한 게 여운이 오래갔다"고 적었습니다.


■ 盧 서거 10주기…추도식 참석 안 한 文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정상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추도식을 방문하기 위해 방한한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게 유일한 공식 일정입니다.

"대통령께서 손수 그린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유족들에게 전달하실 계획이라고 하니 유족들과 또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시 전 美 대통령 면담 中)

정치권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낸 추모 메시지에 비하면,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매우 짧고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죠. 별도로 메시지를 낸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5월 23일은 스스로 고백했듯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날'입니다. 평생의 동지를 황망하게 잃은 날이자, 현실 정치 참여를 거부해왔던 자신을 결국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날이니까요. 청와대에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마음만은 봉하마을에 가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입니다.

사진 출처: 문재인 대통령사진 출처: 문재인 대통령

■ 盧의 문재인, 文의 노무현 "정치적 동지·삶의 동지"

"한마디로, 동지라는 말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정치적, 삶의 동지이기도 하고. 스타일은 굉장히 다르지만, 생각은 일치하는 실질적인 동지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유세 당시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문 대통령을 '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죠.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아주 믿음직한 문재인이를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2002년 대선 유세 中)

이런 노무현 대통령이 "혼자 외로울까봐" 참여정부 청와대로 들어온 문재인 변호사는 현실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완강히 거부해왔지만, 결국 자신의 '정치적 동지' 노무현의 죽음 이후 현실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자서전 '운명' 中)


■ 盧가 꿈꾼 세상, 文의 과제…남은 기간은 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 문 대통령은 아직 다 풀지 못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구상했던 △지역주의 타파 △균형 발전 △권력 기관 개혁은 일부 성과는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지역 구도를 깰 수 있는 선거 제도 개혁(권역별 부분연동형 비례대표제)은 가까스로 국회 신속처리안건, 패스트트랙에 태워졌지만, 향후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고요.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 관여를 막는 국정원법 개정안, 또 검찰 개혁을 위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역시 같은 처지입니다. 지역 균형 발전의 꿈도 세종시 출범으로 첫발은 겨우 뗐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여전히 견고한 철옹성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문대통령/ 2017년 5월 23일 추도식 中)

문 대통령이 2017년 당선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한 약속은 '노무현 정신'에만 머물지 않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 이제 3년 남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그 누구보다 애통했을 문 대통령이 절절한 추모 메시지를 아직은 아껴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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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하마을 상공에 뜬 대통령 헬기…盧의 꿈, 文의 과제
    • 입력 2019-05-23 18:17:07
    • 수정2019-05-24 00:37:43
    취재K
■ 봉하마을 상공에 대통령 전용 헬기가 왜?

2017년 8월 31일. 봉하 마을 상공에 뜬 헬기 사진입니다. '대한민국' 네 글자가 선명하죠. 대통령 전용 헬기입니다. 헬기는 그냥 봉하 마을을 지나간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을 몇 번 돌다 지나갔습니다.

그날 문 대통령은 부산 APEC 누리마루에서 열린 동아시아-라틴라메리카 협력 포럼에 참석했는데, 가는 길에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잠시 둘러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땅에서 대통령 헬기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봉하마을' 블로그에 올라와있습니다.

출처=‘봉하마을’ 블로그
https://bonghatown.tistory.com/m/1163?category=404631 ('봉하마을' 블로그)

그런데 이 사진 말고, 헬기 안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을 촬영한 사진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같이 있었던 참모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인데,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진을 본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마치 제사상 앞에 무릎 꿇고 조심스럽게 술잔을 돌리듯, 헬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을 몇 번씩 돌았다고 한다. 얼마나 그리우면 그랬겠나...그런데 내릴 순 없으니 헬기 안에서나마 잠시 바라보고 간 거지. 그 사진엔 문 대통령의 애틋함과 회한과 분노,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다 담겨 있었다."

마침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일 (9월 1일)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당시 헬기를 목격한 네티즌은 "주변에 오셨다가 친구가 보고 싶어 들리셨구나 싶어 가슴이 찡한 게 여운이 오래갔다"고 적었습니다.


■ 盧 서거 10주기…추도식 참석 안 한 文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정상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추도식을 방문하기 위해 방한한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게 유일한 공식 일정입니다.

"대통령께서 손수 그린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유족들에게 전달하실 계획이라고 하니 유족들과 또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시 전 美 대통령 면담 中)

정치권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낸 추모 메시지에 비하면,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매우 짧고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죠. 별도로 메시지를 낸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5월 23일은 스스로 고백했듯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날'입니다. 평생의 동지를 황망하게 잃은 날이자, 현실 정치 참여를 거부해왔던 자신을 결국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날이니까요. 청와대에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마음만은 봉하마을에 가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입니다.

사진 출처: 문재인 대통령
■ 盧의 문재인, 文의 노무현 "정치적 동지·삶의 동지"

"한마디로, 동지라는 말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정치적, 삶의 동지이기도 하고. 스타일은 굉장히 다르지만, 생각은 일치하는 실질적인 동지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유세 당시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문 대통령을 '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죠.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아주 믿음직한 문재인이를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2002년 대선 유세 中)

이런 노무현 대통령이 "혼자 외로울까봐" 참여정부 청와대로 들어온 문재인 변호사는 현실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완강히 거부해왔지만, 결국 자신의 '정치적 동지' 노무현의 죽음 이후 현실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자서전 '운명' 中)


■ 盧가 꿈꾼 세상, 文의 과제…남은 기간은 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 문 대통령은 아직 다 풀지 못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구상했던 △지역주의 타파 △균형 발전 △권력 기관 개혁은 일부 성과는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지역 구도를 깰 수 있는 선거 제도 개혁(권역별 부분연동형 비례대표제)은 가까스로 국회 신속처리안건, 패스트트랙에 태워졌지만, 향후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고요.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 관여를 막는 국정원법 개정안, 또 검찰 개혁을 위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역시 같은 처지입니다. 지역 균형 발전의 꿈도 세종시 출범으로 첫발은 겨우 뗐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여전히 견고한 철옹성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문대통령/ 2017년 5월 23일 추도식 中)

문 대통령이 2017년 당선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한 약속은 '노무현 정신'에만 머물지 않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 이제 3년 남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그 누구보다 애통했을 문 대통령이 절절한 추모 메시지를 아직은 아껴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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