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장진호 전투 미화하며 파로호 이름 바꿔달라는 중국의 이중성

입력 2019.05.24 (13:54) 수정 2019.05.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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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써 나라를 지킨 역사의 현장 '파로호(破虜湖)'

-중략-
마침내 발전소 부근까지 온 29일 새벽 3시 30분, 2연대는 3대대를 선두로 발전소를 포위, 공격해 들어갔다. 중공군은 올 것이 왔다고 포기했는지 큰 저항 없이 포로로 잡혔다. 아군은 퇴각하는 중공군을 계속 압박했고, 지휘체계가 붕괴한 중공군은 퇴각 도중 미 공군의 폭격으로 죽고, 화천호를 건너가려다 2만 3000명이 익사했다. 이 작전으로 6사단은 4월 공세 때 당한 사창리 치욕을 완전히 갚아주는 대승을 거두었고, 방어선이 60㎞나 전방으로 북상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병들을 치하했고, 화천호 이름도 '오랑캐를 물리친 곳’이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바꿨다.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이어지는 13일 동안 중공군은 총 4만 1,300여 명이 전사했다. 중공군은 이 참패의 순간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고 모두 숨겼다. 다만 공식 기록인'중공군의 한국전쟁사'에서 '9병단의 주력은 화천 산양리에서 김화의 동쪽 지구로 철수, 휴식에 들어가 정비한다'라고만 돼 있었다. - 배영복 전 육군 정훈감(2017. 02. 15 국방일보 中)


'파로호' 이름 바꿔 달라는 중국 요구에 고민해온 정부

지난해 겨울 중국 베이징의 한정식집에서 당시 노영민 주중대사가 기자에게 "'파로호'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중국 외교부에서 요구를 하는데, 당장 판단이 잘 서지 않는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보고 가서 중국 정부에 민원을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사드 배치로 멀어진 중국과 관계를 좀 개선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상호주의 측면에서 중국에 뭘 요구할 것이 있는지 확인도 해봐야 하고 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고민의 시간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았다. 최근 우리 정부가 강원도와 화천군에 파로호(破虜湖) 이름을 대붕호(大鵬湖)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당시 노영민 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일이 빠르게 진행됐던 것 같다. 하지만 명칭 변경을 놓고 지역 사회에서는 이미 찬반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빙혈 장진호라는 이름으로 특별편성돼 황금시간대 방송된 다큐멘터리빙혈 장진호라는 이름으로 특별편성돼 황금시간대 방송된 다큐멘터리

중국은 정작 '장진호' 전투 미화 방송

냉전 시대를 극복하고 한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상호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과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들은 얘기가 없다. 주중한국대사관의 관계자는 "상호주의 관련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대응은 늘 이런 식이다.

중국은 오히려 무역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6·25 전쟁을 소재로 반미, 민족주의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미국에 대항해 조선 즉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관영 CCTV에서 이와 관련 7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다. 이미 방영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빙혈 장진호(氷血 長津湖)' 내용을 보자. "미군 포로를 잡아 심문했더니 미군 사령관이 죽고 한 개 부대가 포위돼 전멸했다고 말했다." "항미원조 전쟁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단위 부대를 전멸시킨 대승이었다."

상호주의적인 조치는커녕 중국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포위돼 유엔군 만 7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우리 입장에서 가장 상처가 컸던 패전 중 하나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하는 중이다.

중국은 러시아판 사드라 불리는 S-400을 지난해 도입했다.중국은 러시아판 사드라 불리는 S-400을 지난해 도입했다.

계속되는 중국의 한국 무시…. 무엇이 문제인가?

중국의 이중적인 모습은 점점 노골화돼가고 있다. 한국 땅에 미군 사드 배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러시아에서 미사일 요격 무기 S-400을 수입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성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향해 사드 보복 조치들을 이어가면서 미국을 상대로는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라고 외친다. 급기야 이제는 장진호 전투를 미화하는 방송을 하면서 파로호 이름을 바꾸라고 한다.

최근 장하성 주중대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 특파원단과 공식 간담회를 했다. "사드 보복을 어떻게 풀 생각이냐?"는 질문에 장 대사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사드 배치 이후 지난 3년간 우리 외교는 결기 없고 할 말 못하는 외교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장 대사는 '새로운 모델을 서로 모색해야 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대답으로 넘어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보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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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4 13:54:54
    • 수정2019-05-24 13:55:56
    특파원 리포트
피로써 나라를 지킨 역사의 현장 '파로호(破虜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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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발전소 부근까지 온 29일 새벽 3시 30분, 2연대는 3대대를 선두로 발전소를 포위, 공격해 들어갔다. 중공군은 올 것이 왔다고 포기했는지 큰 저항 없이 포로로 잡혔다. 아군은 퇴각하는 중공군을 계속 압박했고, 지휘체계가 붕괴한 중공군은 퇴각 도중 미 공군의 폭격으로 죽고, 화천호를 건너가려다 2만 3000명이 익사했다. 이 작전으로 6사단은 4월 공세 때 당한 사창리 치욕을 완전히 갚아주는 대승을 거두었고, 방어선이 60㎞나 전방으로 북상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병들을 치하했고, 화천호 이름도 '오랑캐를 물리친 곳’이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바꿨다.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이어지는 13일 동안 중공군은 총 4만 1,300여 명이 전사했다. 중공군은 이 참패의 순간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고 모두 숨겼다. 다만 공식 기록인'중공군의 한국전쟁사'에서 '9병단의 주력은 화천 산양리에서 김화의 동쪽 지구로 철수, 휴식에 들어가 정비한다'라고만 돼 있었다. - 배영복 전 육군 정훈감(2017. 02. 15 국방일보 中)


'파로호' 이름 바꿔 달라는 중국 요구에 고민해온 정부

지난해 겨울 중국 베이징의 한정식집에서 당시 노영민 주중대사가 기자에게 "'파로호'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중국 외교부에서 요구를 하는데, 당장 판단이 잘 서지 않는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보고 가서 중국 정부에 민원을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사드 배치로 멀어진 중국과 관계를 좀 개선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상호주의 측면에서 중국에 뭘 요구할 것이 있는지 확인도 해봐야 하고 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고민의 시간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았다. 최근 우리 정부가 강원도와 화천군에 파로호(破虜湖) 이름을 대붕호(大鵬湖)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당시 노영민 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일이 빠르게 진행됐던 것 같다. 하지만 명칭 변경을 놓고 지역 사회에서는 이미 찬반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빙혈 장진호라는 이름으로 특별편성돼 황금시간대 방송된 다큐멘터리
중국은 정작 '장진호' 전투 미화 방송

냉전 시대를 극복하고 한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상호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과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들은 얘기가 없다. 주중한국대사관의 관계자는 "상호주의 관련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대응은 늘 이런 식이다.

중국은 오히려 무역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6·25 전쟁을 소재로 반미, 민족주의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미국에 대항해 조선 즉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관영 CCTV에서 이와 관련 7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다. 이미 방영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빙혈 장진호(氷血 長津湖)' 내용을 보자. "미군 포로를 잡아 심문했더니 미군 사령관이 죽고 한 개 부대가 포위돼 전멸했다고 말했다." "항미원조 전쟁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단위 부대를 전멸시킨 대승이었다."

상호주의적인 조치는커녕 중국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포위돼 유엔군 만 7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우리 입장에서 가장 상처가 컸던 패전 중 하나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하는 중이다.

중국은 러시아판 사드라 불리는 S-400을 지난해 도입했다.
계속되는 중국의 한국 무시…. 무엇이 문제인가?

중국의 이중적인 모습은 점점 노골화돼가고 있다. 한국 땅에 미군 사드 배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러시아에서 미사일 요격 무기 S-400을 수입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성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향해 사드 보복 조치들을 이어가면서 미국을 상대로는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라고 외친다. 급기야 이제는 장진호 전투를 미화하는 방송을 하면서 파로호 이름을 바꾸라고 한다.

최근 장하성 주중대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 특파원단과 공식 간담회를 했다. "사드 보복을 어떻게 풀 생각이냐?"는 질문에 장 대사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사드 배치 이후 지난 3년간 우리 외교는 결기 없고 할 말 못하는 외교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장 대사는 '새로운 모델을 서로 모색해야 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대답으로 넘어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보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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