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이재웅? vs ‘출마하는’ 최종구?…걸림돌은 누구일까

입력 2019.05.24 (16:20) 수정 2019.05.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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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의 설전

공개적인 말싸움을 삼가는 우리 문화에서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정부의 각료와 벤처업체 대표가 설전을 벌였습니다. 제 기억에 기업하는 사람과 경제부처의 장관이 이런 식으로 체면 제쳐놓고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체면 깎였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연이틀 이어간 것도 그렇습니다.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고 표현해야 하나요?

공유차량 서비스에 대한 택시업계의 반발을 놓고 이재웅 '타다'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연이틀 벌인 설전. 최 위원장은 22일 혁신사업자의 거친 언사가 "너무 이기적이고 무례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다음날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라며 "혁신의 그늘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포문은 이 대표가 열었죠. 택시기사들의 잇따른 분신에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마라"고 한 이 대표는 22일 최 위원장 발언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갑자기 이 분은 왜 이러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고 언급합니다. 다음날 최 위원장 추가발언에 "혁신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며 "우리 사회 전체가 승자가 되고 그 과정에 피해자가 있을 뿐"이라고 재응수합니다.


좌절한 혁신의 기수?

지난해까지 민관합동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이었던 이 대표는 정부에 많이 화가 난 것 같습니다. 2017년 김동연 전 부총리의 요청으로 기재부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을 맡았다가 지난 연말 사의를 표시합니다. 카카오의 전신인 포털 '다음' 창업자인 이 대표는 대표적 혁신기업가입니다. 차량공유서비스 '쏘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신성장본부에 참여했는데 그 열매가 시원치 않았던 겁니다.

사의를 내비치며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공유경제는 소득주도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성장 정책인데 아무런 진전도 만들지 못해서 아쉽다"고 씁니다. 혁신성장본부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다는 겁니다. 올 2월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비판으로도 이어집니다.

당시 홍 부총리는 공유경제를 두고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가 먼저라고 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혁신을 하겠다고 하는 이해관계자와 혁신을 저지하겠다고 하는 이해관계자를 모아놓고 어떤 대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냐”고 했습니다. 대안으로 “어떻게 택시기사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까를 논의하고 그 대책을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과연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하느냐,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협이 아니라 피해에 대한 보상책이 필요하단 것이죠.

정부가 말로는 혁신을 추진한다지만, 실제로는 의지가 없다는 비판입니다. 한국에선 혁신할 수 없겠다는 좌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혁신의 그늘을 보살피는 경제장관?

금융관료인 금융위원장과 차량공유서비스는 언뜻 별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핀테크'에서 그 접점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규제 샌드박스' 업무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가능성 있는 금융 핀테크 서비스를 대상으로 심사해서, 통과된 서비스를 '금융규제 샌드박스' 대상에 선정합니다. 규제가 있더라도 일정 기간 적용하지 않습니다.

심사대상에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제4차산업 혁명 신기술 관련 서비스들이 포함돼, 장관은 자연스럽게 '혁신'에 관심을 두게 된 거로 보입니다. 또, 채무 불이행 경감 대책이나 자영업자 부담 경감방안 등 최근 금융위 중점 업무 상당 부분이 시장의 낙오자를 보듬는 정책인 점도 영향이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 위원장 개인의 기질도 한몫했을 겁니다. 최 위원장은 관료답지 않게 거침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아시아나 항공을 매각할 당시, 최 위원장은 "아시아나의 어려움은 지배구조 탓"이라며 박삼구 회장과 일가를 공식 석상에서 정조준했습니다. "(박삼구 회장이 물러나도) 아들이 경영하면 그게 뭐가 다른 건가?"라 거나 "자구안의 진정성이 의문이다, 3년을 더 달란 건 무슨 의미냐"며 아시아나 항공 매각을 압박합니다.

나중에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들기 싫어하는 보통의 관료들과는 좀 다릅니다. 기자회견 때 기자 '압박'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다"거나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거 같다"며 질문한 기자를 면박을 주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직설적이고 적극적입니다.


혁신과 생존 사이, 엄연한 간극

성장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선 혁신이 필수적이지만, 어떤 혁신은 파괴적입니다. 택시기사들이 반발하는 차량공유 혁신이 대표적입니다. 결과적으로 또 사회 전체적으론 성장한다 해도, 택시기사들은, 특히 개인택시 기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혁신은 파괴적입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미국의 혁신기업 ‘우버’나 ‘에어비앤비’의 예에서 보듯, 그렇게 생산된 가치는 대부분 해당 특정 기업이나 특정 개인에만 귀속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낡은 기술과 새로운 기술은 거의 언제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차지입니다. 기술에 대한 적대감은 단지 편견이나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진보의 혜택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혁신이 드리운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더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이 간극을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위원장의 발언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혁신의 그늘’ 강조하기 전에 성과부터...

하지만 최 위원장은 정부 정책을 대표하는 장관입니다.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만들어내야 할 사람입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정부 주도로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 차량공유 분야는 혁신의 지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차량공유서비스는 정부 출범 이후 계속 강조됐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자체가 비판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가 충분히 노력하고, 잘 중재해왔는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대표가 민관협의회를 그만둘 때, 홍 부총리는 "혁신성장본부는 기재부 공무원이 겸임하는 구조라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거버넌스 문제를 검토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규모를 좀 줄이더라도 별도로 일할 공무원을 확보하는 것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담하는 정부 인력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책임지고 지시하는 사람,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을 때 공무원 조직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 민관합동기구에 참여하며 성과를 내보려던 혁신기업가는 좌절하고 정부에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불안감이 커진 택시기사들은 수차례 분신하며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카카오와 택시업계는 절반의 합의를 했지만, 기사 월급제와 같은 합의는 지켜지지 못하고 있고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업계에 진출하거나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혁신 기업가들은 카카오 형태의 합의는 혁신과 거리가 멀다며 반발합니다. 그렇게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성과로 말해야 할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 겁니다. 혁신 기업가들의 좌절과 독설은 어쩌면 바로 그런 정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부처 장관이 갑자기 혁신기업가의 일부 발언을 트집 잡아 ‘이기적’이라거나 ‘무례하다’고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책임감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회와 유리된 혁신은 없다

택시기사들의 반대를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대안 제시 역시 아쉽습니다. 혁신이 ‘선’이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 사회문제를 경제적 관계로 단순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택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지만, 그건 불확실한 문제입니다. 승차거부나 불친절, 난폭운전 문제는 단순히 택시기사들의 품성이 나빠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80년대만 해도 꽤 괜찮은 직업이던 택시기사는 더는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실질임금은 급격히 추락했고, 상대 근로시간은 현저히 늘어났습니다.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처우가 누적돼 신규유입 근로자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은 손님을, 더 오랜 시간 실어 날라야 하는 택시기사들의 처지가 지금의 택시 시장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물론 경쟁의 문제도 있지만, 선심성으로 택시 증차를 하고 요금은 묶어두고, 제때 감차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큽니다. 차량공유 서비스가 도입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요? 저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왜곡된 시장에 아직 남아있는 고령화 된 운전자들의 하나 남은 희망은 ‘개인택시 면허’입니다. 박봉이더라도 노후에 오래 일할 수 있으니 참고 일해온 것이지요. ‘일 할 권리’를 뺏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리금’을 보상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준다는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존할 권리’을 빼앗긴다는 공포가 과연 '금전적 보상’만으로 해결될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대표의 페이스북 글에는 (물론 시대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엿보이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본질에서 동떨어진 '이기적'이라는, 혹은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 아닐까요. 혁신은 우리가 갈 길이지만, 혁신 선도자의 그런 언행은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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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4 16:20:45
    • 수정2019-05-24 17:03:52
    취재K
이틀의 설전

공개적인 말싸움을 삼가는 우리 문화에서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정부의 각료와 벤처업체 대표가 설전을 벌였습니다. 제 기억에 기업하는 사람과 경제부처의 장관이 이런 식으로 체면 제쳐놓고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체면 깎였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연이틀 이어간 것도 그렇습니다.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고 표현해야 하나요?

공유차량 서비스에 대한 택시업계의 반발을 놓고 이재웅 '타다'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연이틀 벌인 설전. 최 위원장은 22일 혁신사업자의 거친 언사가 "너무 이기적이고 무례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다음날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라며 "혁신의 그늘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포문은 이 대표가 열었죠. 택시기사들의 잇따른 분신에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마라"고 한 이 대표는 22일 최 위원장 발언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갑자기 이 분은 왜 이러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고 언급합니다. 다음날 최 위원장 추가발언에 "혁신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며 "우리 사회 전체가 승자가 되고 그 과정에 피해자가 있을 뿐"이라고 재응수합니다.


좌절한 혁신의 기수?

지난해까지 민관합동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이었던 이 대표는 정부에 많이 화가 난 것 같습니다. 2017년 김동연 전 부총리의 요청으로 기재부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을 맡았다가 지난 연말 사의를 표시합니다. 카카오의 전신인 포털 '다음' 창업자인 이 대표는 대표적 혁신기업가입니다. 차량공유서비스 '쏘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신성장본부에 참여했는데 그 열매가 시원치 않았던 겁니다.

사의를 내비치며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공유경제는 소득주도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성장 정책인데 아무런 진전도 만들지 못해서 아쉽다"고 씁니다. 혁신성장본부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다는 겁니다. 올 2월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비판으로도 이어집니다.

당시 홍 부총리는 공유경제를 두고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가 먼저라고 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혁신을 하겠다고 하는 이해관계자와 혁신을 저지하겠다고 하는 이해관계자를 모아놓고 어떤 대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냐”고 했습니다. 대안으로 “어떻게 택시기사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까를 논의하고 그 대책을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과연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하느냐,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협이 아니라 피해에 대한 보상책이 필요하단 것이죠.

정부가 말로는 혁신을 추진한다지만, 실제로는 의지가 없다는 비판입니다. 한국에선 혁신할 수 없겠다는 좌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혁신의 그늘을 보살피는 경제장관?

금융관료인 금융위원장과 차량공유서비스는 언뜻 별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핀테크'에서 그 접점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규제 샌드박스' 업무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가능성 있는 금융 핀테크 서비스를 대상으로 심사해서, 통과된 서비스를 '금융규제 샌드박스' 대상에 선정합니다. 규제가 있더라도 일정 기간 적용하지 않습니다.

심사대상에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제4차산업 혁명 신기술 관련 서비스들이 포함돼, 장관은 자연스럽게 '혁신'에 관심을 두게 된 거로 보입니다. 또, 채무 불이행 경감 대책이나 자영업자 부담 경감방안 등 최근 금융위 중점 업무 상당 부분이 시장의 낙오자를 보듬는 정책인 점도 영향이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 위원장 개인의 기질도 한몫했을 겁니다. 최 위원장은 관료답지 않게 거침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아시아나 항공을 매각할 당시, 최 위원장은 "아시아나의 어려움은 지배구조 탓"이라며 박삼구 회장과 일가를 공식 석상에서 정조준했습니다. "(박삼구 회장이 물러나도) 아들이 경영하면 그게 뭐가 다른 건가?"라 거나 "자구안의 진정성이 의문이다, 3년을 더 달란 건 무슨 의미냐"며 아시아나 항공 매각을 압박합니다.

나중에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들기 싫어하는 보통의 관료들과는 좀 다릅니다. 기자회견 때 기자 '압박'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다"거나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거 같다"며 질문한 기자를 면박을 주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직설적이고 적극적입니다.


혁신과 생존 사이, 엄연한 간극

성장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선 혁신이 필수적이지만, 어떤 혁신은 파괴적입니다. 택시기사들이 반발하는 차량공유 혁신이 대표적입니다. 결과적으로 또 사회 전체적으론 성장한다 해도, 택시기사들은, 특히 개인택시 기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혁신은 파괴적입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미국의 혁신기업 ‘우버’나 ‘에어비앤비’의 예에서 보듯, 그렇게 생산된 가치는 대부분 해당 특정 기업이나 특정 개인에만 귀속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낡은 기술과 새로운 기술은 거의 언제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차지입니다. 기술에 대한 적대감은 단지 편견이나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진보의 혜택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혁신이 드리운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더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이 간극을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위원장의 발언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혁신의 그늘’ 강조하기 전에 성과부터...

하지만 최 위원장은 정부 정책을 대표하는 장관입니다.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만들어내야 할 사람입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정부 주도로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 차량공유 분야는 혁신의 지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차량공유서비스는 정부 출범 이후 계속 강조됐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자체가 비판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가 충분히 노력하고, 잘 중재해왔는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대표가 민관협의회를 그만둘 때, 홍 부총리는 "혁신성장본부는 기재부 공무원이 겸임하는 구조라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거버넌스 문제를 검토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규모를 좀 줄이더라도 별도로 일할 공무원을 확보하는 것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담하는 정부 인력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책임지고 지시하는 사람,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을 때 공무원 조직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 민관합동기구에 참여하며 성과를 내보려던 혁신기업가는 좌절하고 정부에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불안감이 커진 택시기사들은 수차례 분신하며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카카오와 택시업계는 절반의 합의를 했지만, 기사 월급제와 같은 합의는 지켜지지 못하고 있고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업계에 진출하거나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혁신 기업가들은 카카오 형태의 합의는 혁신과 거리가 멀다며 반발합니다. 그렇게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성과로 말해야 할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 겁니다. 혁신 기업가들의 좌절과 독설은 어쩌면 바로 그런 정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부처 장관이 갑자기 혁신기업가의 일부 발언을 트집 잡아 ‘이기적’이라거나 ‘무례하다’고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책임감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회와 유리된 혁신은 없다

택시기사들의 반대를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대안 제시 역시 아쉽습니다. 혁신이 ‘선’이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 사회문제를 경제적 관계로 단순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택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지만, 그건 불확실한 문제입니다. 승차거부나 불친절, 난폭운전 문제는 단순히 택시기사들의 품성이 나빠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80년대만 해도 꽤 괜찮은 직업이던 택시기사는 더는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실질임금은 급격히 추락했고, 상대 근로시간은 현저히 늘어났습니다.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처우가 누적돼 신규유입 근로자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은 손님을, 더 오랜 시간 실어 날라야 하는 택시기사들의 처지가 지금의 택시 시장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물론 경쟁의 문제도 있지만, 선심성으로 택시 증차를 하고 요금은 묶어두고, 제때 감차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큽니다. 차량공유 서비스가 도입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요? 저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왜곡된 시장에 아직 남아있는 고령화 된 운전자들의 하나 남은 희망은 ‘개인택시 면허’입니다. 박봉이더라도 노후에 오래 일할 수 있으니 참고 일해온 것이지요. ‘일 할 권리’를 뺏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리금’을 보상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준다는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존할 권리’을 빼앗긴다는 공포가 과연 '금전적 보상’만으로 해결될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대표의 페이스북 글에는 (물론 시대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엿보이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본질에서 동떨어진 '이기적'이라는, 혹은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 아닐까요. 혁신은 우리가 갈 길이지만, 혁신 선도자의 그런 언행은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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