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나요?”…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입력 2019.05.25 (10:54) 수정 2019.05.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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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524 청소년 기후행동’ 집회가 열렸다.

어제(5월 24일) 오후 3시, 청소년 100여 명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였습니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도 멨습니다. 오전까지는 학교 수업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그늘도 없는 계단에 앉아 헌 종이상자를 찢어 만든 팻말이 들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퇴까지 하고 이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가 뭔지 들어봤습니다.

참가자 등에 ‘멸종위기 1급’이라는 소개말이 붙어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참가자 등에 ‘멸종위기 1급’이라는 소개말이 붙어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우리의 미래는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어른들 뭐하나요?"

"안녕하세요? 10년 후 자취를 감추게 될 지도 모를 청소년입니다" (김서경/문현고 2)

서울 문현고등학교 2학년 김서경 양의 자기소개입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이제 겨우 18살인데 사라진다니요? 서경 양의 위기의식은 기후변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고, 추가 상승 폭을 0.5도 이내로 제한하지 않으면 지구가 자연적 균형을 회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산불도 초기에는 옷가지로만 덮어도 진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헬기를 동원해도 빨리 진화하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가 예외일 수 있을까요?" (김서경/문현고2)

서경 양을 비롯한 청소년들은 공룡처럼 멸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른들은 이 문제에 무관심합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2019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28.53점으로 조사대상 60개 국가 중 57위를 차지했습니다. 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를 4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입니다.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도박을 하지 말아주세요." (김서경/문현고 2)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우리에겐 기후변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곧 줄지어 걷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서울시교육청입니다. 수업도 빠지고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이 교육청엔 왜 갔을까요?

"저는 교육청에 외치고 싶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환경교육은 필수입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고, 모두가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푸른나무미디어학교 2학년/이효서)

"배우고 싶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방정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꿀 기후변화에 대해 교육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미산학교 2학년/오연재)

청소년들은 환경교육을 필수로 하고,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한 환경교사도 늘려 달라고 말합니다. 기후변화를 가르치는 환경교육이야말로 입시교육보다 중요한 '생존교육'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환경교육도 '멸종위기'입니다. 2017년 기준 전국에 환경 과목을 채택한 중·고교는 9%에 불과합니다. 환경교육을 전공한 전담 교사도 50여 명뿐입니다.

기후변화 시위를 시작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국내 집회에서는 미세먼지가 주요 이슈다.기후변화 시위를 시작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국내 집회에서는 미세먼지가 주요 이슈다.

■"기후변화 막는 게 확실한 미세먼지 대책"

청소년의 기후변화 시위는 이미 유럽 등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등교 거부 시위를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국내 시위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미세먼지'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최서연 양에게 기후변화란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미세먼지가 나빠져서 언젠가 놀이터에서 놀 때는 마스크를 쓰고 놀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그런 것을 엄마가 얘기해 주셨어요." (최서연/김포 장기초 5학년)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세먼지의 고통에서도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초등학생 서연이도,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도 잘 압니다.

"날씨가 화창해 축구하기 정말 좋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체육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었죠. 그것은 마치 맛있는 라면을 끓여놓고 나서 유리 상자 안에 넣어두어 먹지 못하게 하는 고문을 당하는 심정과도 같았습니다." (예성준/민사고2)

거리 행진을 하며 누군가 외칩니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 공기청정기를 틀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도록 기후변화에 대응하자고 외치는, 이런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청소년들의 말 하나하나가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의 외침에 어른들이 행동으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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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나요?”…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 입력 2019-05-25 10:54:06
    • 수정2019-05-25 10:55:13
    취재K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524 청소년 기후행동’ 집회가 열렸다.

어제(5월 24일) 오후 3시, 청소년 100여 명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였습니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도 멨습니다. 오전까지는 학교 수업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그늘도 없는 계단에 앉아 헌 종이상자를 찢어 만든 팻말이 들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퇴까지 하고 이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가 뭔지 들어봤습니다.

참가자 등에 ‘멸종위기 1급’이라는 소개말이 붙어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우리의 미래는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어른들 뭐하나요?"

"안녕하세요? 10년 후 자취를 감추게 될 지도 모를 청소년입니다" (김서경/문현고 2)

서울 문현고등학교 2학년 김서경 양의 자기소개입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이제 겨우 18살인데 사라진다니요? 서경 양의 위기의식은 기후변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고, 추가 상승 폭을 0.5도 이내로 제한하지 않으면 지구가 자연적 균형을 회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산불도 초기에는 옷가지로만 덮어도 진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헬기를 동원해도 빨리 진화하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가 예외일 수 있을까요?" (김서경/문현고2)

서경 양을 비롯한 청소년들은 공룡처럼 멸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른들은 이 문제에 무관심합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2019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28.53점으로 조사대상 60개 국가 중 57위를 차지했습니다. 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를 4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입니다.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도박을 하지 말아주세요." (김서경/문현고 2)

청소년들이 서울시교육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우리에겐 기후변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곧 줄지어 걷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서울시교육청입니다. 수업도 빠지고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이 교육청엔 왜 갔을까요?

"저는 교육청에 외치고 싶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환경교육은 필수입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고, 모두가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푸른나무미디어학교 2학년/이효서)

"배우고 싶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방정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꿀 기후변화에 대해 교육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미산학교 2학년/오연재)

청소년들은 환경교육을 필수로 하고,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한 환경교사도 늘려 달라고 말합니다. 기후변화를 가르치는 환경교육이야말로 입시교육보다 중요한 '생존교육'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환경교육도 '멸종위기'입니다. 2017년 기준 전국에 환경 과목을 채택한 중·고교는 9%에 불과합니다. 환경교육을 전공한 전담 교사도 50여 명뿐입니다.

기후변화 시위를 시작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국내 집회에서는 미세먼지가 주요 이슈다.
■"기후변화 막는 게 확실한 미세먼지 대책"

청소년의 기후변화 시위는 이미 유럽 등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등교 거부 시위를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국내 시위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미세먼지'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최서연 양에게 기후변화란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미세먼지가 나빠져서 언젠가 놀이터에서 놀 때는 마스크를 쓰고 놀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그런 것을 엄마가 얘기해 주셨어요." (최서연/김포 장기초 5학년)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세먼지의 고통에서도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초등학생 서연이도,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도 잘 압니다.

"날씨가 화창해 축구하기 정말 좋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체육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었죠. 그것은 마치 맛있는 라면을 끓여놓고 나서 유리 상자 안에 넣어두어 먹지 못하게 하는 고문을 당하는 심정과도 같았습니다." (예성준/민사고2)

거리 행진을 하며 누군가 외칩니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 공기청정기를 틀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도록 기후변화에 대응하자고 외치는, 이런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청소년들의 말 하나하나가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의 외침에 어른들이 행동으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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