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당70’ 정신건강 전문요원들 “업무가 깔때기처럼…”

입력 2019.05.28 (07:00) 수정 2019.05.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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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환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김향희 씨의 모습. 김 씨의 전담 환자는 70명이 넘는다.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환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김향희 씨의 모습. 김 씨의 전담 환자는 70명이 넘는다.

"지금 기분은 어떤데요? 응, 괜찮아요? 최근에 죽고 싶은 생각을 하거나 그런 적 있어요?"

민감한 질문을 건넬 때에도 정신건강간호사 김향희 씨의 목소리는 다정했습니다. 8년째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며 환자의 상태와 고민을 속속들이 아는 김 씨지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김 씨의 생각입니다. "자살 시도에 대한 생각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잖아요. 현재 생각이 어떤 상태인지도 확인을 해야 하니까…." 김 씨는 기자가 센터를 방문한 내내 쉴 새 없이 환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 7만 6천여 명… "개인 사명감에 맡길 문제 아냐"

김 씨는 환자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걸 느낄 때 가장 보람차다고 말했습니다. 이사를 가 담당 센터가 바뀐 뒤에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찾아와 직원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한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김 씨의 큰 눈이 더욱 반짝였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만난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하나같이 환자들의 상태가 나아지는 걸 보면서 사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습니다.

김 씨의 자리에 놓인 카네이션. 환자에게 받은 선물을 모아두었다.김 씨의 자리에 놓인 카네이션. 환자에게 받은 선물을 모아두었다.

하지만 전남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김성완 센터장은 전국 7만 6천여 명의 정신질환자 관리를 개인의 사명감에만 맡겨둘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개개인에 맡겨두기보다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거죠. 광주처럼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서, 다른 지역에도 '광주처럼 하라'고 말하는 건 땜질식 처방을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니까요."

실제로 광주는 정부가 인증한 모범 사례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던 광주시 내 센터직원들도 '그래도 광주는 굉장히 잘 되어 있는 편'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평균적인 현실은 대체 어떻다는 걸까요?

'깔때기'처럼 정신 질환 관련 업무 몰려…열악한 처우에 평균 근속 연수는 3년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서울에서 일하다 그만둔 한 전직 복지사는 이곳의 상황을 '깔때기'에 빗댔습니다. 안인득 사건처럼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강력 사건이 터지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마치 깔때기를 꽂은 것처럼 모든 업무가 센터로 몰린다는 겁니다. 전국에 243개 센터가 운영 중인데, 업무 부담은 시·군·구마다 있는 기초 센터가 더 큽니다. 정신질환자 대면 업무의 최전선이라고 할까요? 질환자의 사례관리, 자살·중독 예방 사업, 아동·청소년 검사 및 상담, 정신질환 인식 개선사업 등이 기본 업무인데, 흥분한 정신 질환자가 남을 해치려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밤낮으로 현장에 출동하는 일까지 모두 센터 직원들이 도맡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직업치료사 등 13명이 일한다.지난 21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직업치료사 등 13명이 일한다.

이들을 부르는 정식 명칭은 정신건강 전문요원입니다. 전국에 2천 4백여 명이 근무하는데,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임상심리사 가운데 수련을 거쳐 정부가 인증하는 전문 자격을 취득하면 요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의 2/3가 민간 위탁 기관이다 보니, 요원들의 74%는 비정규직입니다. 간혹 보건소 직영 센터에서 일하더라도, 대부분 정년 보장 없이 연 단위로 계약하는 '시간 선택 임기제 공무원'이라 사정이 더 나은 건 아닙니다.

예산은 어떨까요. 광역·기초 센터 운영비를 대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사업 예산에는 올해 505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많아 보이시나요? 경기 평택시가 3년 동안 나무 30만 그루를 심는 데 쓰기로 한 예산과 같은 수준입니다. 240여 개 센터가 한 해 동안 나눠 쓰기엔 빠듯하겠죠. 특히 인건비와 사업비가 따로 편성돼 있지 않다 보니, 일이 많아도 사람을 더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차가 쌓여 상대적으로 높은 호봉을 받는 팀장급 요원들은 '나 하나 그만두면 2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데…'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안인득은 범행 전 2년 9개월 동안 조현병 치료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안인득은 범행 전 2년 9개월 동안 조현병 치료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예산이 이른바 '매칭 예산'이라는 겁니다. 서울시 센터는 예산 절반을 시가, 나머지 절반을 자치구가 부담합니다. 서울 외 지역은 국비와 지자체 재정이 5:5로 투입됩니다.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많이 내려 줘도, 나머지 절반을 지자체가 부담할 여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재정 자립도가 낮은, '가난한' 지역일수록 인력 충원이 쉽지 않습니다. 안인득 사건이 일어난 경남 진주에서는 지난 3월까지 직원 1명이 185명의 환자를 맡았다는 보도가 나온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인력과 예산 부족 같은 구조적 한계가 진짜 문제가 되는 순간은 흥분한 정신질환자가 자·타해 위협을 하는 것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밤이건 낮이건, 경찰이나 시민들의 요청이 들어오면 요원들은 보호장구 없이 맨몸으로 환자를 설득하러 가야 합니다. 센터 전용 차량이 없어서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요원 2명이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모든 상담 전화와 출동 요청을 받는데, 현장에 있는 동안에도 센터로 들어온 전화는 계속 착신해 받아야 합니다. 한 요원은 출동 요청이 몰려 다소 늦게 도착했더니, 경찰관이 '걸어왔어요?'라며 핀잔을 준 적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정신 질환을 잘 모르니, 전문성 있는 선생님이 앞장서시라'면서 경찰관이 센터 요원을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복수의 전·현직 요원들은 말했습니다.

그나마 야간 출동을 전담하는 응급 개입팀이 운영 중인 5개 시·도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기초 센터 직원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출동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며 흥분한 정신질환자를 가까스로 병원에 입원시킨 뒤 새벽 3시에 센터로 돌아왔더라도, 몇 시간 뒤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겁니다. 추가 노동에 대한 대가나 위험수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인득 사건 뒤로는 서울 지역 센터에 들어오는 출동 요청이 평소의 4배나 늘어났다고 하니, 그 업무 강도가 상상이 가시나요? 이러다 보니 요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몇 년째 3년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센터·경찰·병원·주민센터 등 지역 사회 협력이 중요…'광주 모델' 핵심은 재정 투자"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중증 정신질환자 관련 대책을 내놓으면서 센터에 인력 충원을 약속했고, 재정이 어려운 지역을 위해서 국고 지원 부담을 조금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광주 모델'인 통합 정신건강증진사업을 2022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김성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 ‘광주식 모델’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김성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 ‘광주식 모델’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른바 '광주 모델'의 핵심이 투자와 협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광주에서는 매일 밤 정신질환자를 응급 입원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겨도 경찰이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집중진단]① 조현병 범죄 일상화…경찰은 ‘병원 찾아 삼만리’

응급 환자가 생기든 안 생기든, 평일 18만 원에서 주말 38만 원까지 수당을 주고 밤마다 일정 수의 병상은 응급 입원용으로 비워두도록 지역 병원 4곳과 합의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무슨 병원으로 가면 되는지, 한 달 치 계획표가 미리 짜여 있습니다. 의사들에게도 일반 종합 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는 것과 비슷한 급여를 주다 보니, 센터에 나가는 광주지역 정신과 전문의 수가 60명에 이릅니다. 응급 입원을 시킬지 말지, 센터 측과 의견이 충돌하기 마련인 경찰과도 수년간 꾸준히 협력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에 선정돼 예산과 인력이 늘어난 게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하다 이제는 센터에서 일한 지 3년 째라는 최다은 씨는 이 일을 택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지역 사회가 궁금했다'는 말을 들려줬습니다. 왜 치료를 마치고 상태가 좋아져 퇴원해도 환자들은 다시 돌아오는 걸까. 퇴원하고 나서 지역 사회에서는 어떤 돌봄을 받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치료를 거부하고 병원을 찾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최 씨를 센터로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최 씨의 말에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느껴졌습니다. 정신질환자를 귀찮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이웃'으로 느끼고, 제대로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광주에서 제가 받은 인상은 그러했습니다. 환자들이 머무를 곳은 궁극적으로 병원이 아닌 사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광주에서 배울 점 또한 이런 공동체 정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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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당70’ 정신건강 전문요원들 “업무가 깔때기처럼…”
    • 입력 2019-05-28 07:00:37
    • 수정2019-05-28 13:21:39
    취재후·사건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환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김향희 씨의 모습. 김 씨의 전담 환자는 70명이 넘는다. "지금 기분은 어떤데요? 응, 괜찮아요? 최근에 죽고 싶은 생각을 하거나 그런 적 있어요?" 민감한 질문을 건넬 때에도 정신건강간호사 김향희 씨의 목소리는 다정했습니다. 8년째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며 환자의 상태와 고민을 속속들이 아는 김 씨지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김 씨의 생각입니다. "자살 시도에 대한 생각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잖아요. 현재 생각이 어떤 상태인지도 확인을 해야 하니까…." 김 씨는 기자가 센터를 방문한 내내 쉴 새 없이 환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 7만 6천여 명… "개인 사명감에 맡길 문제 아냐" 김 씨는 환자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걸 느낄 때 가장 보람차다고 말했습니다. 이사를 가 담당 센터가 바뀐 뒤에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찾아와 직원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한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김 씨의 큰 눈이 더욱 반짝였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만난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하나같이 환자들의 상태가 나아지는 걸 보면서 사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습니다. 김 씨의 자리에 놓인 카네이션. 환자에게 받은 선물을 모아두었다. 하지만 전남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김성완 센터장은 전국 7만 6천여 명의 정신질환자 관리를 개인의 사명감에만 맡겨둘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개개인에 맡겨두기보다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거죠. 광주처럼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서, 다른 지역에도 '광주처럼 하라'고 말하는 건 땜질식 처방을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니까요." 실제로 광주는 정부가 인증한 모범 사례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던 광주시 내 센터직원들도 '그래도 광주는 굉장히 잘 되어 있는 편'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평균적인 현실은 대체 어떻다는 걸까요? '깔때기'처럼 정신 질환 관련 업무 몰려…열악한 처우에 평균 근속 연수는 3년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서울에서 일하다 그만둔 한 전직 복지사는 이곳의 상황을 '깔때기'에 빗댔습니다. 안인득 사건처럼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강력 사건이 터지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마치 깔때기를 꽂은 것처럼 모든 업무가 센터로 몰린다는 겁니다. 전국에 243개 센터가 운영 중인데, 업무 부담은 시·군·구마다 있는 기초 센터가 더 큽니다. 정신질환자 대면 업무의 최전선이라고 할까요? 질환자의 사례관리, 자살·중독 예방 사업, 아동·청소년 검사 및 상담, 정신질환 인식 개선사업 등이 기본 업무인데, 흥분한 정신 질환자가 남을 해치려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밤낮으로 현장에 출동하는 일까지 모두 센터 직원들이 도맡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직업치료사 등 13명이 일한다. 이들을 부르는 정식 명칭은 정신건강 전문요원입니다. 전국에 2천 4백여 명이 근무하는데,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임상심리사 가운데 수련을 거쳐 정부가 인증하는 전문 자격을 취득하면 요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의 2/3가 민간 위탁 기관이다 보니, 요원들의 74%는 비정규직입니다. 간혹 보건소 직영 센터에서 일하더라도, 대부분 정년 보장 없이 연 단위로 계약하는 '시간 선택 임기제 공무원'이라 사정이 더 나은 건 아닙니다. 예산은 어떨까요. 광역·기초 센터 운영비를 대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사업 예산에는 올해 505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많아 보이시나요? 경기 평택시가 3년 동안 나무 30만 그루를 심는 데 쓰기로 한 예산과 같은 수준입니다. 240여 개 센터가 한 해 동안 나눠 쓰기엔 빠듯하겠죠. 특히 인건비와 사업비가 따로 편성돼 있지 않다 보니, 일이 많아도 사람을 더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차가 쌓여 상대적으로 높은 호봉을 받는 팀장급 요원들은 '나 하나 그만두면 2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데…'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안인득은 범행 전 2년 9개월 동안 조현병 치료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예산이 이른바 '매칭 예산'이라는 겁니다. 서울시 센터는 예산 절반을 시가, 나머지 절반을 자치구가 부담합니다. 서울 외 지역은 국비와 지자체 재정이 5:5로 투입됩니다.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많이 내려 줘도, 나머지 절반을 지자체가 부담할 여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재정 자립도가 낮은, '가난한' 지역일수록 인력 충원이 쉽지 않습니다. 안인득 사건이 일어난 경남 진주에서는 지난 3월까지 직원 1명이 185명의 환자를 맡았다는 보도가 나온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인력과 예산 부족 같은 구조적 한계가 진짜 문제가 되는 순간은 흥분한 정신질환자가 자·타해 위협을 하는 것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밤이건 낮이건, 경찰이나 시민들의 요청이 들어오면 요원들은 보호장구 없이 맨몸으로 환자를 설득하러 가야 합니다. 센터 전용 차량이 없어서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요원 2명이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모든 상담 전화와 출동 요청을 받는데, 현장에 있는 동안에도 센터로 들어온 전화는 계속 착신해 받아야 합니다. 한 요원은 출동 요청이 몰려 다소 늦게 도착했더니, 경찰관이 '걸어왔어요?'라며 핀잔을 준 적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정신 질환을 잘 모르니, 전문성 있는 선생님이 앞장서시라'면서 경찰관이 센터 요원을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복수의 전·현직 요원들은 말했습니다. 그나마 야간 출동을 전담하는 응급 개입팀이 운영 중인 5개 시·도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기초 센터 직원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출동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며 흥분한 정신질환자를 가까스로 병원에 입원시킨 뒤 새벽 3시에 센터로 돌아왔더라도, 몇 시간 뒤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겁니다. 추가 노동에 대한 대가나 위험수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인득 사건 뒤로는 서울 지역 센터에 들어오는 출동 요청이 평소의 4배나 늘어났다고 하니, 그 업무 강도가 상상이 가시나요? 이러다 보니 요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몇 년째 3년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센터·경찰·병원·주민센터 등 지역 사회 협력이 중요…'광주 모델' 핵심은 재정 투자"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중증 정신질환자 관련 대책을 내놓으면서 센터에 인력 충원을 약속했고, 재정이 어려운 지역을 위해서 국고 지원 부담을 조금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광주 모델'인 통합 정신건강증진사업을 2022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김성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 ‘광주식 모델’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른바 '광주 모델'의 핵심이 투자와 협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광주에서는 매일 밤 정신질환자를 응급 입원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겨도 경찰이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집중진단]① 조현병 범죄 일상화…경찰은 ‘병원 찾아 삼만리’ 응급 환자가 생기든 안 생기든, 평일 18만 원에서 주말 38만 원까지 수당을 주고 밤마다 일정 수의 병상은 응급 입원용으로 비워두도록 지역 병원 4곳과 합의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무슨 병원으로 가면 되는지, 한 달 치 계획표가 미리 짜여 있습니다. 의사들에게도 일반 종합 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는 것과 비슷한 급여를 주다 보니, 센터에 나가는 광주지역 정신과 전문의 수가 60명에 이릅니다. 응급 입원을 시킬지 말지, 센터 측과 의견이 충돌하기 마련인 경찰과도 수년간 꾸준히 협력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에 선정돼 예산과 인력이 늘어난 게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하다 이제는 센터에서 일한 지 3년 째라는 최다은 씨는 이 일을 택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지역 사회가 궁금했다'는 말을 들려줬습니다. 왜 치료를 마치고 상태가 좋아져 퇴원해도 환자들은 다시 돌아오는 걸까. 퇴원하고 나서 지역 사회에서는 어떤 돌봄을 받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치료를 거부하고 병원을 찾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최 씨를 센터로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최 씨의 말에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느껴졌습니다. 정신질환자를 귀찮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이웃'으로 느끼고, 제대로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광주에서 제가 받은 인상은 그러했습니다. 환자들이 머무를 곳은 궁극적으로 병원이 아닌 사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광주에서 배울 점 또한 이런 공동체 정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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