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ADHD였다?

입력 2019.05.28 (10:10) 수정 2019.05.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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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로 삼성전자 최연소 전무급 타이틀(SVP, Senior Vice President)을 달아 화제가 된 인도 출신의 '천재' 과학자 프라나브 미스트리(Pranav Mistry)는 인생의 롤모델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꼽았다.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죽은 지 500년이나 지난 인물을 꼽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동경하며 공부했어요.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주저 없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가지 분야만 섭렵한 게 아니라 이 분야 저 분야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으니까요. 생물학, 물리학, 수학, 해부학에서부터 건축, 조각과 미술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쉽게 정의하기 힘든) 그야말로 '창조적인 천재'였어요. 그래서 저도 항상 다빈치같이 사고하려 노력했습니다."

지난 2013년 독일 베를린에서 삼성 갤럭시 기어를 공개하고 있는 프라나브 미스트리지난 2013년 독일 베를린에서 삼성 갤럭시 기어를 공개하고 있는 프라나브 미스트리

이 시대의 '천재'로서 인정받는 인물이 인류 역사상 '천재'라고 단언한 다빈치의 천재성은 그가 남긴 회화작품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뜻밖에 그가 직접 그리거나 주도한 그림은 20여 점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서도 진품으로 공인된 작품은 더 적은 수인 15점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빈치의 그림들은 이전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알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수태고지 受胎告知 The Annunciation>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졌지만 오로지 다빈치의 그림만이, 그전까지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실제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단 천사'를 그리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1470-7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1470-7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1438-4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박물관 소장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1438-4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박물관 소장

평론가들은 다빈치가 그린 가브리엘 대천사의 날개 모양에 주목하면서 천사의 날개가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은 '방금 지상에 도착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는 살아 있는 새를 잡아 '어떻게 날 수 있는지' 날개를 실제로 수도 없이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한다.

즉, 다른 화가들은 천사의 날개를 지나치게 꾸며 형식적으로만 달아두었지만 다빈치는 인체와 동물의 몸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날개가 어깨에서 자라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냈으며 따라서 공상적인 날개가 아니라 실제 새의 깃털 하나하나가 그대로 재현된, 사실을 반영한 현실적 날개라는 것이다.

다빈치의 천재성이 다방면으로 표현된 걸작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화다빈치의 천재성이 다방면으로 표현된 걸작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화

이 밖에도 <최후의 만찬(위)>이나 <모나리자-역시 해부를 통해 입술의 미소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와 같은 '인류의 걸작'을 남겨 '호모 우니베르살리스(Homo Universalis 만능인간)'라고까지 칭송받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환자에 해당했을 수 있다-ADHD가 질환으로 인식된 것은 미국에서조차 1957년 이후이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최근 제기되었다.

사실 다빈치가 ADHD 환자였을 수 있다는 주장은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마르코 카타니 정신의학·심리학 교수는 국제학술지 '브레인(BRAIN)'에 발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설(The paradox of Leonardo da Vinci)'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500년 전 인물을 사후 진단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가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고 과학적 개연성 있게 설명하는 가설은 ADHD라고 확신한다"고 이전보다 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다빈치는 역사 기록으로 볼 때 계획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인 데 반해 인내심은 부족한 사람"이었으며 "다빈치의 이 같은 성격과 변덕스러운 천재성은 ADHD로 봐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대기(국내에는 지난 3월 번역·출간)를 펴낸 전기 전문 작가 월터 아이작슨도 "그가 21세기 초 학생이었다면 감정 기복과 ADHD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 처방을 받았을 것"이라고까지 밝히기도 했다. 그 자신도 노트에 '무엇이라도 완성된 것이 있는지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라고 되풀이해 쓸 정도로 중도 포기가 잦았고 유독 미완성 작품이 많은 이유도 그런 까닭에서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광장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념상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광장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념상

카타니 교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ADHD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ADHD와 관련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바뀌길 바란다"며 "이번 결과를 계기로 ADHD가 낮은 지능지수나 창의력 결핍과 연관된다기보다는 (사회의 시선과 선입견 등으로 인해 ADHD환자들의 경우)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자신이 치료차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에는 똑똑하고 직관력이 발달한 아이들이었으나 크면서 잠재력과 재능을 계발하지 못해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스스로 낙오자이자 실패자라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카타니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사실은 다빈치가 ADHD였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남겼을지 모른다고 시사하고, 다만 ADHD 환자 아이들을 다빈치 같은 '천재'로 키워내려면 이들의 눈높이와 상황을 배려한 특별한 관심과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참고자료>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5/kcl-dld052219.php
Marco Catani et al, "Leonardo da Vinci: a genius driven to distraction", Brain Published Online(2019)
https://academic.oup.com/brain/advance-article/doi/10.1093/brain/awz131/54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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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ADHD였다?
    • 입력 2019-05-28 10:10:44
    • 수정2019-05-29 09:40:30
    취재K
몇 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로 삼성전자 최연소 전무급 타이틀(SVP, Senior Vice President)을 달아 화제가 된 인도 출신의 '천재' 과학자 프라나브 미스트리(Pranav Mistry)는 인생의 롤모델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꼽았다.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죽은 지 500년이나 지난 인물을 꼽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동경하며 공부했어요.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주저 없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가지 분야만 섭렵한 게 아니라 이 분야 저 분야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으니까요. 생물학, 물리학, 수학, 해부학에서부터 건축, 조각과 미술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쉽게 정의하기 힘든) 그야말로 '창조적인 천재'였어요. 그래서 저도 항상 다빈치같이 사고하려 노력했습니다."

지난 2013년 독일 베를린에서 삼성 갤럭시 기어를 공개하고 있는 프라나브 미스트리
이 시대의 '천재'로서 인정받는 인물이 인류 역사상 '천재'라고 단언한 다빈치의 천재성은 그가 남긴 회화작품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뜻밖에 그가 직접 그리거나 주도한 그림은 20여 점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서도 진품으로 공인된 작품은 더 적은 수인 15점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빈치의 그림들은 이전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알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수태고지 受胎告知 The Annunciation>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졌지만 오로지 다빈치의 그림만이, 그전까지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실제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단 천사'를 그리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1470-7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1438-45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박물관 소장
평론가들은 다빈치가 그린 가브리엘 대천사의 날개 모양에 주목하면서 천사의 날개가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은 '방금 지상에 도착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는 살아 있는 새를 잡아 '어떻게 날 수 있는지' 날개를 실제로 수도 없이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한다.

즉, 다른 화가들은 천사의 날개를 지나치게 꾸며 형식적으로만 달아두었지만 다빈치는 인체와 동물의 몸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날개가 어깨에서 자라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냈으며 따라서 공상적인 날개가 아니라 실제 새의 깃털 하나하나가 그대로 재현된, 사실을 반영한 현실적 날개라는 것이다.

다빈치의 천재성이 다방면으로 표현된 걸작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화
이 밖에도 <최후의 만찬(위)>이나 <모나리자-역시 해부를 통해 입술의 미소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와 같은 '인류의 걸작'을 남겨 '호모 우니베르살리스(Homo Universalis 만능인간)'라고까지 칭송받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환자에 해당했을 수 있다-ADHD가 질환으로 인식된 것은 미국에서조차 1957년 이후이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최근 제기되었다.

사실 다빈치가 ADHD 환자였을 수 있다는 주장은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마르코 카타니 정신의학·심리학 교수는 국제학술지 '브레인(BRAIN)'에 발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설(The paradox of Leonardo da Vinci)'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500년 전 인물을 사후 진단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가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고 과학적 개연성 있게 설명하는 가설은 ADHD라고 확신한다"고 이전보다 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다빈치는 역사 기록으로 볼 때 계획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인 데 반해 인내심은 부족한 사람"이었으며 "다빈치의 이 같은 성격과 변덕스러운 천재성은 ADHD로 봐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대기(국내에는 지난 3월 번역·출간)를 펴낸 전기 전문 작가 월터 아이작슨도 "그가 21세기 초 학생이었다면 감정 기복과 ADHD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 처방을 받았을 것"이라고까지 밝히기도 했다. 그 자신도 노트에 '무엇이라도 완성된 것이 있는지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라고 되풀이해 쓸 정도로 중도 포기가 잦았고 유독 미완성 작품이 많은 이유도 그런 까닭에서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광장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념상
카타니 교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ADHD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ADHD와 관련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바뀌길 바란다"며 "이번 결과를 계기로 ADHD가 낮은 지능지수나 창의력 결핍과 연관된다기보다는 (사회의 시선과 선입견 등으로 인해 ADHD환자들의 경우)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자신이 치료차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에는 똑똑하고 직관력이 발달한 아이들이었으나 크면서 잠재력과 재능을 계발하지 못해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스스로 낙오자이자 실패자라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카타니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사실은 다빈치가 ADHD였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남겼을지 모른다고 시사하고, 다만 ADHD 환자 아이들을 다빈치 같은 '천재'로 키워내려면 이들의 눈높이와 상황을 배려한 특별한 관심과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참고자료>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5/kcl-dld052219.php
Marco Catani et al, "Leonardo da Vinci: a genius driven to distraction", Brain Published Online(2019)
https://academic.oup.com/brain/advance-article/doi/10.1093/brain/awz131/54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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