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트럼프는 아베를 믿을까?…미국에 ‘올인’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이유

입력 2019.05.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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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함께 일본 호위함에 올랐다.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는 군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2015년 진수식 때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당시 중국은 "70여 년 전 '악마함'으로 불렸던 '가가'와 같은 이름"이라고 지적하면서 "일본은 침몰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942년 '가가'가 미군에 의해 격침된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지닌 호위함에 미국의 대통령이 승선한 것이다. 가가는 2017년 취역하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일 정상의 가가 승선은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될 만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나는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을 2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은 '진주만'을 기억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가가함 갑판에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의 미·일 간 밀월 과시를 다각도로 볼 필요가 있다.

아베, '트럼프 잡기' 올인…미·중 패권전쟁 '틈새' 노린다

공식 회담 11번, 골프회동 5번, 전화 30번.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자주 만나고 대화한 외국 정상은 일본 아베 총리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일 일정 첫날부터 세끼 식사를 함께 했다. 둘째 날에는 11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붙어 다녔는데, 아침 식사를 함께 한 뒤 2시간 반 동안 골프를 쳤다. 라운딩 도중 직접 카트를 운전했고, 골프 회동 후 점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대접했다. 오후에는 스모 경기도 함께 관람했다. 두 사람은 일본식 선술집에서 저녁 만찬도 함께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가 운전하는 카트를 타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가 운전하는 카트를 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백악관을 찾아 멜라니아 여사 생일을 챙겼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내 친구"라고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 중 아베 총리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을 "도널드"라고 부르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또한, 그가 '레이와(令和)'(이달 1일 즉위한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연호) 시대 첫 국빈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일왕이 주최한 만찬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관계는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뛰어넘어 훌륭한 관계가 구축됐다. 미·일 관계는 보물 같은 동맹"이라고 말했다.

'굴욕외교', '아베는 여행 가이드' 등의 비판을 감내하면서까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모시기'에 극진히 나선 이유는 뭘까? 우선, 지금은 미국이 중국과 양보할 수 없는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기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전체주의적 적'으로 규정하고 중국의 경제 체질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의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는 북핵 문제도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완벽한 해결'을 지향한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한국과 척지고 영국과 손잡는 日…열강의 추억인가?

종국엔 중국의 체제 변화까지 추구하는 미국의 기세에 중국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일본은 이런 미국과의 밀월 관계를 만드는데 외교의 승부수를 던진 모양새다. 미·중 패권 전쟁의 틈 바구니에서 '미·일 대 중국' 구도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결전을 벌이는 미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그림일 수 있다. 영국과의 동맹으로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올랐던 과거의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심상치 않은 '미·일 군사 동맹'…자위대의 비상(飛上)

최근, 미·일 간 밀착은 군사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띈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 함께 인도 태평양을 무대로 한 동맹국들과의 연합 훈련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산케이 신문은 지난달 "일본의 해상 자위대와 프랑스 해군이 인도양에서 공동 훈련을 벌였으며 이 훈련에는 미국과 호주도 가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훈련에 자위대는 경항모급 헬기 탑재 호위함인 이즈모를, 프랑스에서는 핵 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을 보냈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일본은 다음 달에도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프랑스, 호주와 공동훈련을 계획하고 있으며 7월 말 홋카이도 지토세 기지에서 항공자위대와 호주 공군의 공동훈련도 추진하고 있다. 항공자위대의 전투기가 미국 이외의 외국 군대와 일본 국내에서 훈련하는 것은 지난 2016년 영국군과의 훈련 이후 두 번째다.

가가함에 승선한 트럼프 대통령가가함에 승선한 트럼프 대통령

방일 마지막 일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가함에 승선한 것은 최근 무서운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미·일 군사 동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찾은 요코스카 기지는 동북아 최고의 해군전력을 자랑하는 미군 7함대의 주둔지다. 일본은 10년 전 핵 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이곳에 상주시키기 위해 부두를 확장했다. 요코스카 기지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증원 전력은 물론 유엔군 병력과 물자까지 집결한다.

요코스카 기지는 특히, 지난해 미국이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개편하면서 중국의 '해양 굴기'에 맞서기 위한 핵심 기지로 부상했다. 이에 맞춰 미군은 지난해부터 도쿄도 요코타 기지에 수직 이착륙기인 CV-22 오스프리를 배치했다. 최근에는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호와 스텔스 상륙함인 뉴올리언스호 배치 계획도 발표됐다. 영국과 프랑스의 군함들도 일본을 기항처럼 드나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방위성은 지난해 말, 이즈모급 호위함인 가가함과 '이즈모' 2척을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고 F-35B 등 최신예 전투기를 탑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군의 태평양 전력 자산의 주둔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군비 확충과 훈련에도 열을 올리면서 자체 군사력도 무서운 기세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군사력은 세계 6위로, 지난해 8위에서 두 계단 뛰어올라 7위를 고수한 우리나라를 뛰어넘었다.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트럼프, '중국과 일전' 위해 속내 감췄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일본으로 가는 길에 알래스카 앵커리지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를 들렀다. 지난 3월에도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 귀국 길에 이곳 기지에 들러 "미국은 갈등을 추구하지 않지만, 만약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면 싸울 것이고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적들에 대해 광범위한 경고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앵커리지 기지 ‘코끼리 산책’ 훈련 장면앵커리지 기지 ‘코끼리 산책’ 훈련 장면

[링크] ‘US 밀리터리 유튜브 채널’

미국 공군은 지난 3월 26일, 앵커리지 기지에서 세계 최강 전투기인 F-22 랩터 24대를 동원한 일명 '코끼리 산책(Elephant Walk)' 작전을 수행했다. 외신들은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알래스카 전투기들이 유사시 태평양 지역으로 가장 먼저 돌진한다"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외 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알래스카나 괌, 하와이의 미군 기지 등을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것 역시 미국이 세계 전략에 있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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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Pearlharbor)”는 문구가 담긴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Pearlharbor)”는 문구가 담긴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하지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한반도 주변 해역으로의 미군 무기 전개와 연합 작전을 위해 일본을 사실상 '베이스 캠프(근거지)'화 한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봐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 면전에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뒷얘기를 전한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일본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아베 총리는 당시 "오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일본 방문 전에도 트위터에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글을 남겼었다.

당시 양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정리한 뒤 일본을 겨냥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언급하는 맥락에서 '진주만'을 꺼내 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국가주의(Nationalism)'를 외쳐온 트럼프 대통령이 비장한 어조로 '진주만'을 언급한 것은 그가 가슴 속에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어떻게 담아두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가함에 올라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F-35 전투기를 가장 많이 사줘서 고맙다"고만 했다. 중국과의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웃는 얼굴로 아베의 손을 잡고 있는 트럼프의 '일본에 대한 진짜 속마음'은 뭘까?

'욱일기' 선전하며 '부활' 꿈꾸는 일본, '한미동맹' 빈틈 파고드나

1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옆에 선 아베 총리도 내심 불편함을 갖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지나칠 정도로 공을 들이는 그의 행보는 어쩌면 '가까운 관계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두 정상의 속마음까지 알 수 없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미·중 패권 전쟁과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계기로 일본이 세계 경제력 3위에 걸맞은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까지 꾀하는 아베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속마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 외무성 욱일기 게시물을 한국 언론이 비판한다’는 마이니치 인터넷 기사 ‘일본 외무성 욱일기 게시물을 한국 언론이 비판한다’는 마이니치 인터넷 기사

최근 일본 외무성은 욱일기를 설명하는 게시물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욱일기의 디자인은 일장기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상징한다"며 "욱일기가 해상자위대의 자위대함기와 육상자위대의 자위대기로 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욱일기가 제국주의 일본군이 사용했던 전범기였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욱일기는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된 독일 나치의 상징 문양과 달리 자위대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거짓 주장은 미국의 등을 엎고 비상하는 일본의 최종 지향점이 미국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동맹이라도 결코 패권은 나누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상, 트럼프 행정부도 자위대의 권한과 군사력 강화의 '상한선'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전범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킨 본래 취지와 맞물려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일본은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일본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활'을 추구한다고 해도 욱일기 사용까지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입장에서도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함께 승선한 자국 군함으로 굳이 '침략의 역사'를 지닌 이름의 가가함을 택한 것도 한편으로는 '미국이 일본의 과오를 모두 용서했다'는 식의 메시지를 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아베 총리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빼놓은 채 "(미·일 정상이) 호주, 인도, 아세안, 미국, 프랑스 등 관계국과 함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고리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밝히며 북한 문제까지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과 직접 협의해 나가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미국을 잡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보면 '70년 전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래'와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강해질지, 미국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미·중 패권 전쟁으로 한국이 누릴 수 있는 반사이익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서 한국이 짊어져야 할 역할까지 일본이 대신 하려 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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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9 07: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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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함께 일본 호위함에 올랐다.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는 군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2015년 진수식 때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당시 중국은 "70여 년 전 '악마함'으로 불렸던 '가가'와 같은 이름"이라고 지적하면서 "일본은 침몰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942년 '가가'가 미군에 의해 격침된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지닌 호위함에 미국의 대통령이 승선한 것이다. 가가는 2017년 취역하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일 정상의 가가 승선은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될 만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나는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을 2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은 '진주만'을 기억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가가함 갑판에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의 미·일 간 밀월 과시를 다각도로 볼 필요가 있다.

아베, '트럼프 잡기' 올인…미·중 패권전쟁 '틈새' 노린다

공식 회담 11번, 골프회동 5번, 전화 30번.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자주 만나고 대화한 외국 정상은 일본 아베 총리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일 일정 첫날부터 세끼 식사를 함께 했다. 둘째 날에는 11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붙어 다녔는데, 아침 식사를 함께 한 뒤 2시간 반 동안 골프를 쳤다. 라운딩 도중 직접 카트를 운전했고, 골프 회동 후 점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대접했다. 오후에는 스모 경기도 함께 관람했다. 두 사람은 일본식 선술집에서 저녁 만찬도 함께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가 운전하는 카트를 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백악관을 찾아 멜라니아 여사 생일을 챙겼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내 친구"라고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 중 아베 총리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을 "도널드"라고 부르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또한, 그가 '레이와(令和)'(이달 1일 즉위한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연호) 시대 첫 국빈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일왕이 주최한 만찬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관계는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뛰어넘어 훌륭한 관계가 구축됐다. 미·일 관계는 보물 같은 동맹"이라고 말했다.

'굴욕외교', '아베는 여행 가이드' 등의 비판을 감내하면서까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모시기'에 극진히 나선 이유는 뭘까? 우선, 지금은 미국이 중국과 양보할 수 없는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기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전체주의적 적'으로 규정하고 중국의 경제 체질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의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는 북핵 문제도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완벽한 해결'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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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미·일 군사 동맹'…자위대의 비상(飛上)

최근, 미·일 간 밀착은 군사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띈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 함께 인도 태평양을 무대로 한 동맹국들과의 연합 훈련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산케이 신문은 지난달 "일본의 해상 자위대와 프랑스 해군이 인도양에서 공동 훈련을 벌였으며 이 훈련에는 미국과 호주도 가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훈련에 자위대는 경항모급 헬기 탑재 호위함인 이즈모를, 프랑스에서는 핵 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을 보냈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일본은 다음 달에도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프랑스, 호주와 공동훈련을 계획하고 있으며 7월 말 홋카이도 지토세 기지에서 항공자위대와 호주 공군의 공동훈련도 추진하고 있다. 항공자위대의 전투기가 미국 이외의 외국 군대와 일본 국내에서 훈련하는 것은 지난 2016년 영국군과의 훈련 이후 두 번째다.

가가함에 승선한 트럼프 대통령
방일 마지막 일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가함에 승선한 것은 최근 무서운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미·일 군사 동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찾은 요코스카 기지는 동북아 최고의 해군전력을 자랑하는 미군 7함대의 주둔지다. 일본은 10년 전 핵 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이곳에 상주시키기 위해 부두를 확장했다. 요코스카 기지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증원 전력은 물론 유엔군 병력과 물자까지 집결한다.

요코스카 기지는 특히, 지난해 미국이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개편하면서 중국의 '해양 굴기'에 맞서기 위한 핵심 기지로 부상했다. 이에 맞춰 미군은 지난해부터 도쿄도 요코타 기지에 수직 이착륙기인 CV-22 오스프리를 배치했다. 최근에는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호와 스텔스 상륙함인 뉴올리언스호 배치 계획도 발표됐다. 영국과 프랑스의 군함들도 일본을 기항처럼 드나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방위성은 지난해 말, 이즈모급 호위함인 가가함과 '이즈모' 2척을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고 F-35B 등 최신예 전투기를 탑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군의 태평양 전력 자산의 주둔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군비 확충과 훈련에도 열을 올리면서 자체 군사력도 무서운 기세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군사력은 세계 6위로, 지난해 8위에서 두 계단 뛰어올라 7위를 고수한 우리나라를 뛰어넘었다.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트럼프, '중국과 일전' 위해 속내 감췄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일본으로 가는 길에 알래스카 앵커리지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를 들렀다. 지난 3월에도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 귀국 길에 이곳 기지에 들러 "미국은 갈등을 추구하지 않지만, 만약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면 싸울 것이고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적들에 대해 광범위한 경고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앵커리지 기지 ‘코끼리 산책’ 훈련 장면
[링크] ‘US 밀리터리 유튜브 채널’

미국 공군은 지난 3월 26일, 앵커리지 기지에서 세계 최강 전투기인 F-22 랩터 24대를 동원한 일명 '코끼리 산책(Elephant Walk)' 작전을 수행했다. 외신들은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알래스카 전투기들이 유사시 태평양 지역으로 가장 먼저 돌진한다"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외 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알래스카나 괌, 하와이의 미군 기지 등을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것 역시 미국이 세계 전략에 있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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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한반도 주변 해역으로의 미군 무기 전개와 연합 작전을 위해 일본을 사실상 '베이스 캠프(근거지)'화 한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봐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 면전에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뒷얘기를 전한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일본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아베 총리는 당시 "오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일본 방문 전에도 트위터에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글을 남겼었다.

당시 양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정리한 뒤 일본을 겨냥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언급하는 맥락에서 '진주만'을 꺼내 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국가주의(Nationalism)'를 외쳐온 트럼프 대통령이 비장한 어조로 '진주만'을 언급한 것은 그가 가슴 속에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어떻게 담아두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가함에 올라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F-35 전투기를 가장 많이 사줘서 고맙다"고만 했다. 중국과의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웃는 얼굴로 아베의 손을 잡고 있는 트럼프의 '일본에 대한 진짜 속마음'은 뭘까?

'욱일기' 선전하며 '부활' 꿈꾸는 일본, '한미동맹' 빈틈 파고드나

1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옆에 선 아베 총리도 내심 불편함을 갖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지나칠 정도로 공을 들이는 그의 행보는 어쩌면 '가까운 관계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두 정상의 속마음까지 알 수 없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미·중 패권 전쟁과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계기로 일본이 세계 경제력 3위에 걸맞은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까지 꾀하는 아베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속마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 외무성 욱일기 게시물을 한국 언론이 비판한다’는 마이니치 인터넷 기사
최근 일본 외무성은 욱일기를 설명하는 게시물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욱일기의 디자인은 일장기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상징한다"며 "욱일기가 해상자위대의 자위대함기와 육상자위대의 자위대기로 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욱일기가 제국주의 일본군이 사용했던 전범기였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욱일기는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된 독일 나치의 상징 문양과 달리 자위대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거짓 주장은 미국의 등을 엎고 비상하는 일본의 최종 지향점이 미국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동맹이라도 결코 패권은 나누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상, 트럼프 행정부도 자위대의 권한과 군사력 강화의 '상한선'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전범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킨 본래 취지와 맞물려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일본은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일본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활'을 추구한다고 해도 욱일기 사용까지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입장에서도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함께 승선한 자국 군함으로 굳이 '침략의 역사'를 지닌 이름의 가가함을 택한 것도 한편으로는 '미국이 일본의 과오를 모두 용서했다'는 식의 메시지를 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아베 총리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빼놓은 채 "(미·일 정상이) 호주, 인도, 아세안, 미국, 프랑스 등 관계국과 함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고리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밝히며 북한 문제까지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과 직접 협의해 나가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미국을 잡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보면 '70년 전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래'와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강해질지, 미국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미·중 패권 전쟁으로 한국이 누릴 수 있는 반사이익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서 한국이 짊어져야 할 역할까지 일본이 대신 하려 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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