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그 많던 다슬기는 어디로 갔나?…‘납 그물’로 싹쓸이

입력 2019.05.29 (11:54) 수정 2019.05.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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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잇단 다슬기 싹쓸이... 잠수복에 납 그물까지
엄연한 불법이지만 단속 인력 부족
'하천 청소부' 역할 다슬기 보호가 생태계 보호의 시작

다슬기 싹쓸이 일당이 탄 차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다슬기 싹쓸이 일당이 탄 차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

야심한 시각 하천에서 발견된 수상한 차량

다슬기 불법 채취 단속반이 수상한 SUV 차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16일 자정 대전시 흑석동의 한 하천 주변에섭니다. 단속반은 해당 차량에 탄 사람들이 다슬기 불법 채취 일당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하천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는 신고까지 받은 상황. 곧바로 차량에 다가갔지만, 그대로 도망가 사라졌습니다.

해당 차량이 다시 발견된 건 1시간 뒤 하천 인근 배수로 근처에섭니다. 단속반을 피해 도주하던 중 울타리를 들이받아 앞유리가 깨지고 바퀴는 배수로에 빠진 채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마치 다슬기만은 뺏기지 않겠다는 듯 배수로 여기저기에 불법 채취한 다슬기 자루를 숨겨놓았습니다. 주변에서 발견된 다슬기만 150kg가량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적발된 불법 채취 다슬기와 도구들현장에서 적발된 불법 채취 다슬기와 도구들

다슬기가 뭐길래

다슬기가 뭐길래 도망을 가고, 사고를 당한 가운데 성치 않은 몸으로 숨기기까지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해 불법 채취 일당에게 다슬기는 '돈'입니다. 1kg에 비싸게는 2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단속반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다슬기 채취로 하룻밤 사이에만 3백만 원가량을 벌 수 있던 셈입니다.

다슬기가 생각보다 '비싼 몸'인 건 그 효능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간 기능을 돕고 눈의 충혈과 통증을 다스린다고 알려졌는데요. 여기에 다슬기만이 낼 수 있는 국물 맛까지. 이런 다슬기의 다양한 효능에 수요도 커 대량으로 채취해 팔아넘기려는 일당까지 등장한 겁니다.

다슬기 싹쓸이를 노린 ‘납 그물’다슬기 싹쓸이를 노린 ‘납 그물’

잠수복에 납 그물까지

문제는 '싹쓸이'입니다. 사실 여름이 다가오면 하천에서 수경을 들여다보며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잡은 다슬기는 많아야 5kg 정도고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는 수준도 아닙니다. 하지만 잠수복에, 특수 제작된 납 그물까지 동원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납 그물은 끈 대신 납으로 만든 그물인데요. 물론 그물 전체를 납으로 만들면 너무 무거워 끌 수조차 없으므로 그물 하단부에만 납이 씌워져 있습니다. 길이 4미터 가량의 이런 납 그물을 넓게 펼친 뒤 하천에서 끌어당기면 밑바닥에 있는 다슬기까지 전부 그물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싹쓸이인 겁니다.

불법 채취 현장의 불법 채취 금지 현수막불법 채취 현장의 불법 채취 금지 현수막

엄연한 불법이지만 단속 인력 부족

다슬기 싹쓸이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내수면어업법은 잠수복이나 투망을 이용한 어업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요. 이 납 그물은 사실상 투망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발될 시 최대 1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잠수복 사용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단속해야 할 자치단체에 단속 인력이 부족합니다. 실제로 대전시 5개 구의 다슬기 불법 채취 담당자는 각각 1명뿐인데요. 그마저도 전담 인력이 아니다 보니 단속반 운영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전시의 한 환경단체에 접수된 다슬기 불법 채취 신고만 5월 들어 10건을 넘지만, 자치단체 담당자가 참여한 단속은 1번 시행됐습니다.


'하천 청소부' 다슬기에 관심을

최근 청주시와 경남 하동군 등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지역 내 하천에 다슬기 수십만 마리를 방류했습니다. '하천 청소부'라 불리는 다슬기를 방류해 수질 개선 효과를 기대한 건데요.
하지만 대전시처럼 다슬기를 싹쓸이해가는 일당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면 수질 개선은커녕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 보호는 불법 채취와 같은 무분별한 남획을 막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천 구석구석에 살며 물의 항상성 유지에 도움을 주는 다슬기를 지키는 일이, 거대한 생태계 보호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고 가끔은 직접 잡기도 하는 다슬기지만 '싹쓸이'만은 막아야 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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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그 많던 다슬기는 어디로 갔나?…‘납 그물’로 싹쓸이
    • 입력 2019-05-29 11:54:30
    • 수정2019-05-29 11:54:47
    취재후·사건후
잇단 다슬기 싹쓸이... 잠수복에 납 그물까지<br />엄연한 불법이지만 단속 인력 부족<br />'하천 청소부' 역할 다슬기 보호가 생태계 보호의 시작
다슬기 싹쓸이 일당이 탄 차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
야심한 시각 하천에서 발견된 수상한 차량

다슬기 불법 채취 단속반이 수상한 SUV 차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16일 자정 대전시 흑석동의 한 하천 주변에섭니다. 단속반은 해당 차량에 탄 사람들이 다슬기 불법 채취 일당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하천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는 신고까지 받은 상황. 곧바로 차량에 다가갔지만, 그대로 도망가 사라졌습니다.

해당 차량이 다시 발견된 건 1시간 뒤 하천 인근 배수로 근처에섭니다. 단속반을 피해 도주하던 중 울타리를 들이받아 앞유리가 깨지고 바퀴는 배수로에 빠진 채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마치 다슬기만은 뺏기지 않겠다는 듯 배수로 여기저기에 불법 채취한 다슬기 자루를 숨겨놓았습니다. 주변에서 발견된 다슬기만 150kg가량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적발된 불법 채취 다슬기와 도구들
다슬기가 뭐길래

다슬기가 뭐길래 도망을 가고, 사고를 당한 가운데 성치 않은 몸으로 숨기기까지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해 불법 채취 일당에게 다슬기는 '돈'입니다. 1kg에 비싸게는 2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단속반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다슬기 채취로 하룻밤 사이에만 3백만 원가량을 벌 수 있던 셈입니다.

다슬기가 생각보다 '비싼 몸'인 건 그 효능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간 기능을 돕고 눈의 충혈과 통증을 다스린다고 알려졌는데요. 여기에 다슬기만이 낼 수 있는 국물 맛까지. 이런 다슬기의 다양한 효능에 수요도 커 대량으로 채취해 팔아넘기려는 일당까지 등장한 겁니다.

다슬기 싹쓸이를 노린 ‘납 그물’
잠수복에 납 그물까지

문제는 '싹쓸이'입니다. 사실 여름이 다가오면 하천에서 수경을 들여다보며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잡은 다슬기는 많아야 5kg 정도고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는 수준도 아닙니다. 하지만 잠수복에, 특수 제작된 납 그물까지 동원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납 그물은 끈 대신 납으로 만든 그물인데요. 물론 그물 전체를 납으로 만들면 너무 무거워 끌 수조차 없으므로 그물 하단부에만 납이 씌워져 있습니다. 길이 4미터 가량의 이런 납 그물을 넓게 펼친 뒤 하천에서 끌어당기면 밑바닥에 있는 다슬기까지 전부 그물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싹쓸이인 겁니다.

불법 채취 현장의 불법 채취 금지 현수막
엄연한 불법이지만 단속 인력 부족

다슬기 싹쓸이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내수면어업법은 잠수복이나 투망을 이용한 어업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요. 이 납 그물은 사실상 투망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발될 시 최대 1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잠수복 사용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단속해야 할 자치단체에 단속 인력이 부족합니다. 실제로 대전시 5개 구의 다슬기 불법 채취 담당자는 각각 1명뿐인데요. 그마저도 전담 인력이 아니다 보니 단속반 운영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전시의 한 환경단체에 접수된 다슬기 불법 채취 신고만 5월 들어 10건을 넘지만, 자치단체 담당자가 참여한 단속은 1번 시행됐습니다.


'하천 청소부' 다슬기에 관심을

최근 청주시와 경남 하동군 등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지역 내 하천에 다슬기 수십만 마리를 방류했습니다. '하천 청소부'라 불리는 다슬기를 방류해 수질 개선 효과를 기대한 건데요.
하지만 대전시처럼 다슬기를 싹쓸이해가는 일당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면 수질 개선은커녕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 보호는 불법 채취와 같은 무분별한 남획을 막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천 구석구석에 살며 물의 항상성 유지에 도움을 주는 다슬기를 지키는 일이, 거대한 생태계 보호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고 가끔은 직접 잡기도 하는 다슬기지만 '싹쓸이'만은 막아야 하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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