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나’…풍력학계에 불어닥친 ‘기술유출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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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연구소 연구원, 대학으로 이직
이직하며 연구소 자료 옮겨
검찰, '기술 유출 혐의' 기소
1심 "유출 아니다" 무죄 선고
대학에 오기 전 몸담았던 국책 연구소에서 기술을 유출한 혐의라고 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구속기소까지 2달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유죄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 모두 무죄였다.
연구소에서 대학으로…자료도 옮겨
이 교수는 2009년부터 국책 연구소에서 일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인 '블레이드'의 성능 실험이 주 연구 분야였다. 블레이드가 풍력발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는지 시험하는 일이다.
이 교수는 2017년 초 연구소를 나와 대학으로 옮겼다. 이때 연구소에서 가지고 있던 연구 자료를 모두 들고 나왔다. 600GB 정도 되는 분량이다. 이 교수는 "(연구소에서 맡았던) 국책 과제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식 외부참여연구원 신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소속은 아니었지만,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연구소에서도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중국 업체와도 함께 일했다. 블레이드 성능 실험을 어떻게 할지 시험계획서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연구소에서 들고나온 파일을 바탕으로 중국 업체에 맞게 내용을 바꿔서 계획서를 만들었다. 이 작업은 중국 업체와 학교와의 컨설팅 계약을 통해 이뤄졌다.
검찰 "돈 받고 기술 넘겼다"…구속기소
이 일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첩보로 입수했다.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인 수원지검에서 수사를 맡았다.
검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투자한 국책 연구소의 기술을 이 교수가 중국 업체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넘겼다고 판단했다. 풍력발전은 그동안 나랏돈 600억 원이 들어갔고,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도 덧붙였다.
검찰은 이 교수에게 ①법적으로 보호 의무가 있는 산업기술을 연구소에서 가지고 나온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 ②기술을 해외로 넘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 ③기술을 빼돌려 연구소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했다.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의 기술을 해외로 넘긴 건 무거운 죄라고 판단했다.
'보호해야할 연구였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문제가 된 자료가 '보호해야 할 연구였나'이다. 검찰은 그렇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해당 연구소에서 개인 외장 하드는 사용이 금지돼 있고, 사전 승인 없이 기술자료 유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실험자료 등은 연구소 내 업무용 컴퓨터로 연구원들에게만 공유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활용해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소에서 해당 자료를 비밀로 보호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급받은 '산업기술 확인서'를 증거로 내면서 이 교수가 가지고 나온 자료는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산업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외부로 유출하면 처벌을 받는다.
이 교수 "오히려 공개해야 하는 기술"
이 교수는 자신이 들고나온 자료는 오히려 외부로 공개해야 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적자금을 사용해 얻은 국가과학기술 공공데이터를 공공기관이며 비영리기관인 정부출연연구소가 연구소의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검찰이 국책연구과제 관련 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사기업에서 사적자금을 사용하여 얻은 연구결과물과 동일시하여 구속기소 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기본법에는 정부는 소요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여 얻은 지식과 기술 등을 공개하고 성과를 확산하며 실용화를 촉진하게 돼 있다"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 및 민간연구개발의 성과에 대하여는 지식재산권의 설정 등을 통하여 보호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공개가 원칙이고, 보호하려면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지고 나온 자료는 아무런 보호 노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또 중국 업체에서 돈을 받는 건 자신이 개인적으로 받은 게 아니라 학교와의 컨설팅 계약을 통해서 정당하게 받은 것인데, 검찰은 마치 자신이 개인적으로 돈을 챙긴 것처럼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 "보호할 필요 없어"…무죄 선고
1심을 맡은 수원지법은 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무죄 근거로 연구소에서 비밀 유지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의 자료 중 일부는 보고서에, 일부는 연구소에서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도 담겨 있고,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된 적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 국책 과제는 비밀로 보호해야 하면 '보안과제'로 지정하는데, 문제가 된 자료는 '일반과제' 관련 자료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기술이라면 그에 맞는 보호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보호할 필요가 없는 기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또 문제가 된 자료가 산업기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산업부에서 만든 관련 고시에 이 교수가 가지고 나온 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업부는 고시에 빠져있는 기술인데도 산업기술이 맞는다고 확인서를 발급해줬는데, 법원은 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유무죄를 가리게 됐다.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산업기술 확인서가 효력이 있는지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책 연구소 연구 성과가 외부로 공유해야 하는 공공데이터의 성격을 얼마나 가졌는지도 또 다른 쟁점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국책 연구소 연구 성과의 외부 활용 기준이 세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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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나’…풍력학계에 불어닥친 ‘기술유출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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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5-29 15:30:28
- 수정2019-05-29 15:34:28
대학에 오기 전 몸담았던 국책 연구소에서 기술을 유출한 혐의라고 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구속기소까지 2달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유죄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 모두 무죄였다.
연구소에서 대학으로…자료도 옮겨
이 교수는 2009년부터 국책 연구소에서 일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인 '블레이드'의 성능 실험이 주 연구 분야였다. 블레이드가 풍력발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는지 시험하는 일이다.
이 교수는 2017년 초 연구소를 나와 대학으로 옮겼다. 이때 연구소에서 가지고 있던 연구 자료를 모두 들고 나왔다. 600GB 정도 되는 분량이다. 이 교수는 "(연구소에서 맡았던) 국책 과제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식 외부참여연구원 신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소속은 아니었지만,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연구소에서도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중국 업체와도 함께 일했다. 블레이드 성능 실험을 어떻게 할지 시험계획서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연구소에서 들고나온 파일을 바탕으로 중국 업체에 맞게 내용을 바꿔서 계획서를 만들었다. 이 작업은 중국 업체와 학교와의 컨설팅 계약을 통해 이뤄졌다.
검찰 "돈 받고 기술 넘겼다"…구속기소
이 일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첩보로 입수했다.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인 수원지검에서 수사를 맡았다.
검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투자한 국책 연구소의 기술을 이 교수가 중국 업체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넘겼다고 판단했다. 풍력발전은 그동안 나랏돈 600억 원이 들어갔고,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도 덧붙였다.
검찰은 이 교수에게 ①법적으로 보호 의무가 있는 산업기술을 연구소에서 가지고 나온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 ②기술을 해외로 넘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 ③기술을 빼돌려 연구소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했다.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의 기술을 해외로 넘긴 건 무거운 죄라고 판단했다.
'보호해야할 연구였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문제가 된 자료가 '보호해야 할 연구였나'이다. 검찰은 그렇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해당 연구소에서 개인 외장 하드는 사용이 금지돼 있고, 사전 승인 없이 기술자료 유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실험자료 등은 연구소 내 업무용 컴퓨터로 연구원들에게만 공유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활용해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소에서 해당 자료를 비밀로 보호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급받은 '산업기술 확인서'를 증거로 내면서 이 교수가 가지고 나온 자료는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산업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외부로 유출하면 처벌을 받는다.
이 교수 "오히려 공개해야 하는 기술"
이 교수는 자신이 들고나온 자료는 오히려 외부로 공개해야 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적자금을 사용해 얻은 국가과학기술 공공데이터를 공공기관이며 비영리기관인 정부출연연구소가 연구소의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검찰이 국책연구과제 관련 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사기업에서 사적자금을 사용하여 얻은 연구결과물과 동일시하여 구속기소 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기본법에는 정부는 소요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여 얻은 지식과 기술 등을 공개하고 성과를 확산하며 실용화를 촉진하게 돼 있다"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 및 민간연구개발의 성과에 대하여는 지식재산권의 설정 등을 통하여 보호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공개가 원칙이고, 보호하려면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지고 나온 자료는 아무런 보호 노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또 중국 업체에서 돈을 받는 건 자신이 개인적으로 받은 게 아니라 학교와의 컨설팅 계약을 통해서 정당하게 받은 것인데, 검찰은 마치 자신이 개인적으로 돈을 챙긴 것처럼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 "보호할 필요 없어"…무죄 선고
1심을 맡은 수원지법은 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무죄 근거로 연구소에서 비밀 유지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의 자료 중 일부는 보고서에, 일부는 연구소에서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도 담겨 있고,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된 적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 국책 과제는 비밀로 보호해야 하면 '보안과제'로 지정하는데, 문제가 된 자료는 '일반과제' 관련 자료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기술이라면 그에 맞는 보호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보호할 필요가 없는 기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또 문제가 된 자료가 산업기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산업부에서 만든 관련 고시에 이 교수가 가지고 나온 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업부는 고시에 빠져있는 기술인데도 산업기술이 맞는다고 확인서를 발급해줬는데, 법원은 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유무죄를 가리게 됐다.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산업기술 확인서가 효력이 있는지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책 연구소 연구 성과가 외부로 공유해야 하는 공공데이터의 성격을 얼마나 가졌는지도 또 다른 쟁점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국책 연구소 연구 성과의 외부 활용 기준이 세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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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태 기자 highf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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