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흐의 헤드기어는 ‘투혼의 상징’이었다

입력 2019.05.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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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경기가 끝난 뒤 페트르 체흐(38)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20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경기, 유로파리그 결승전은 소속팀 아스널의 4대 1 완패로 마무리됐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무려 11시즌을 보냈던 친정팀 첼시였다. 영화 같은 해피 엔딩은 없었지만, 고별전에서도 수차례 선방을 펼친 체흐의 마지막은 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인 수문장...살아있는 전설

체흐는 한때 세계 3대 골키퍼로 불렸던 '월드클래스' 수문장이었다. 2004년부터 첼시에서 뛴 체흐는 네 차례나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첼시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러브'를 네 시즌이나 수상했고, 골키퍼로는 드물게 2007년 3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체흐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444경기에 나섰는데 절반에 가까운 202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체흐가 영입된 2004~2005시즌 첼시는 38경기에서 15실점만 허용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고 골키퍼의 영예도 체흐에게 돌아갔다. 체흐는 2011~2012시즌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바이에른 뮌헨 올리치의 슛을 막아내며 첼시에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겼다.

체흐는 체코 국가대표로 무려 124경기의 A매치에 출전했는데 유로 2004 4강 신화를 시작으로 2006 독일월드컵과 유로 2016 등 메이저 대회마다 뒷문을 든든히 지켰다. 196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한 공중볼 수비는 물론이고 위치 선정과 순발력, 안정감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 은퇴 직전인 2016년에는 우리 대표팀을 상대했는데 당시 윤빛가람과 석현준에게 잇따라 실점해 2대 1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체흐가 못 막았다기보다는 윤빛가람의 프리킥이 환상적이었고, 석현준의 슈팅도 강했다.

체흐의 헤드기어는 투혼의 상징이었다

체흐의 트레이드마크인 헤드기어는 그라운드 위에 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체흐는 2006년 레딩전에서 헌트의 무릎에 부딪혀 두개골 골절상을 당했다.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던 체흐지만 회복 이후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출전을 강행했다. 부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난 체흐는 결국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체흐의 헤드기어는 그야말로 투혼의 상징이었다.


체흐는 은퇴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높은 관심 탓에 압박감도 느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체흐의 원소속팀인 첼시 구단도 '진정한 전설의 대단했던 경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전설이 사라졌는데 작별의 순간까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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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흐의 헤드기어는 ‘투혼의 상징’이었다
    • 입력 2019-05-30 17:07:04
    스포츠K
체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경기가 끝난 뒤 페트르 체흐(38)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20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경기, 유로파리그 결승전은 소속팀 아스널의 4대 1 완패로 마무리됐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무려 11시즌을 보냈던 친정팀 첼시였다. 영화 같은 해피 엔딩은 없었지만, 고별전에서도 수차례 선방을 펼친 체흐의 마지막은 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인 수문장...살아있는 전설

체흐는 한때 세계 3대 골키퍼로 불렸던 '월드클래스' 수문장이었다. 2004년부터 첼시에서 뛴 체흐는 네 차례나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첼시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러브'를 네 시즌이나 수상했고, 골키퍼로는 드물게 2007년 3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체흐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444경기에 나섰는데 절반에 가까운 202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체흐가 영입된 2004~2005시즌 첼시는 38경기에서 15실점만 허용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고 골키퍼의 영예도 체흐에게 돌아갔다. 체흐는 2011~2012시즌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바이에른 뮌헨 올리치의 슛을 막아내며 첼시에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겼다.

체흐는 체코 국가대표로 무려 124경기의 A매치에 출전했는데 유로 2004 4강 신화를 시작으로 2006 독일월드컵과 유로 2016 등 메이저 대회마다 뒷문을 든든히 지켰다. 196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한 공중볼 수비는 물론이고 위치 선정과 순발력, 안정감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 은퇴 직전인 2016년에는 우리 대표팀을 상대했는데 당시 윤빛가람과 석현준에게 잇따라 실점해 2대 1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체흐가 못 막았다기보다는 윤빛가람의 프리킥이 환상적이었고, 석현준의 슈팅도 강했다.

체흐의 헤드기어는 투혼의 상징이었다

체흐의 트레이드마크인 헤드기어는 그라운드 위에 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체흐는 2006년 레딩전에서 헌트의 무릎에 부딪혀 두개골 골절상을 당했다.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던 체흐지만 회복 이후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출전을 강행했다. 부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난 체흐는 결국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체흐의 헤드기어는 그야말로 투혼의 상징이었다.


체흐는 은퇴 경기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높은 관심 탓에 압박감도 느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체흐의 원소속팀인 첼시 구단도 '진정한 전설의 대단했던 경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전설이 사라졌는데 작별의 순간까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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